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60화 (1,459/1,826)

§ 나는 될놈이다 1460화

사실 다크 엘프나 타락한 드워프들 중 누군가가 굶주린 혼돈과 계약했으리라는 의심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둘 다 성질 더럽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이들인 만큼 얼마든지 굶주린 혼돈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 태현만 예리하게 추측한 것도 아니었다.

<고대 제국 사원 퀘스트 깨는 사람들 있으면 들어와 봐라. 다크 엘프들 목적 싸게 판다.>

<타락한 드워프들이 왜 갑자기 사원 공격하는지에 대한 분석… 놀랍게도 굶주린 혼돈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아…>

└와 정말 알고 싶은 정보였어요!

└└머리 달린 놈이면 추측 가능한 정보 아닌가?

워낙 요즘 핫한 만큼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 아니면 어느 사악한 신인데, 산맥으로 도망쳤던 사디크 교단이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런 신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겠는가.

그보다는 굶주린 혼돈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크 엘프 대마법사, 쟈켄겔라드가 <사나운 갈기바람>을 소환합니다!]

[강풍에 주의하십시오!]

쟈켄겔라드는 시작부터 대마법을 시전하며 공격대를 몰아붙였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에 도망치던 와중이라지만 다크 엘프 대마법사로서의 능력은 어디 가지 않는 것이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

하지만 이번에는 마법을 잘못 고른 셈이었다.

바람의 칼날들이 날아오는 걸 본 태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앞으로 전진했다.

“???”

“김태현 선수???”

다른 플레이어들이 기겁해서 말리려고 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태현이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다 보니 착각한 것이다.

마법사 플레이어가 저렇게 마법 안쪽으로 맞아주면서 들어가는 경우는 절대 없는 법.

…하지만 태현은 일반적인 마법사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사디크의 화염 화살!

가까이 접근한 태현이 마법을 날리려고 하자 쟈켄겔라드가 비웃었다.

-지금 그따위 마법으로 날 상대하려는 것이냐? 사디크의 마법 하나 얻었다고 네깟 어린 놈이 날??

‘딱히 사디크의 마법을 과대평가한 건 아닌데.’

쟈켄겔라드는 태현이 사디크의 마법을 얻고 나서 간덩이가 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면 과소평가했지 절대 과대평가는 하지 않는 것이다.

[화염의 정령왕, 타프리오트가 정령의 힘을 불러냅니다.]

[모든 화염 스킬에 추가적으로…]

[……]

[……]

화르르르륵!

태현 앞에 맺힌 사디크의 화염 화살이 더욱더 두꺼워지고 그 안에 담긴 마력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쟈켄겔라드는 깜짝 놀랐다.

저건…!

-위대한 마나의 힘, 비전의 깨달음, 오색 절대 방패!

얕보고 있던 쟈켄겔라드는 바로 마법 방어를 시전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태현의 공격이 날아갔다.

꽝!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사디크의 화염 화살이…]

[정령왕의 힘이…]

[……]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크아악!

얕보던 마법사한테 얻어맞자 쟈켄겔라드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뭐하는 거냐, 나를 도와라!

-예!

[쟈켄겔라드의 호위대가 소환됩니다!]

[쟈켄겔라드가 마법 방벽을 강화시킵니다!]

마법사 계열 보스 몬스터들은 레이드 방향이 좀 달랐다.

보통 HP가 높고 방어력이 높아서 아무리 때려도 꾸역꾸역 버티는 보스 몬스터들과 달리, 마법사 계열 보스 몬스터들은 방어력과 체력이 낮은 편이었다.

그 대신 마법사 계열 보스 몬스터는 살벌하고 다양한 마법들이 있었다.

동시에 마법사의 빈틈을 막아주는 호위들까지.

원래라면 검을 뽑아 들고 처리했겠지만 지금 태현은 그럴 수가 없었다.

태현은 대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바스토스, 와서 막아라!”

“!?”

태현의 부름에 바스토스는 순간 당황했다.

왜 우리 길드를 부르지?

‘뭐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부른 이상 가야 했다.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은 앞으로 뛰어나와서 다크 엘프 호위들과 대치했다.

각종 버프들을 이미 걸어둔 상태라서 밀리지도 않았다.

콰아앙!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은 검과 방패를 휘두르며 다크 엘프들과 충돌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상대의…]

[상대의 공격이 시야 밖에서 들어옵니다. 추가 데미지가…]

[쓰러뜨렸습니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그렇구나!’

바스토스는 태현의 뜻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태현은 그들을 챙겨주기 위해 이들을 넘겨준 것이다!

바스토스도 랭커.

랭커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얼마나 보기 드문 일인지 잘 알았다.

당장 바스토스도 퀘스트 도중에 편을 두 번이나 갈아타지 않았던가.

그런데 평소에 악독하다고 그렇게 욕하던 김태현이 이렇게 배려를 해주다니….

‘젠장, 부끄럽다!’

남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 길드만 생각해서 퀘스트 두 번 바꾼 바스토스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러면 그들은 태현을 악독하다고 욕할 자격도 없는 셈 아닌가.

“…미안하다!”

“??”

태현은 갑자기 바스토스가 사과하자 의아해했다.

몬스터 늦게 잡아서 미안해하나?

“알면 빨리 잡아라. 대체 호위대 하나 처리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 거냐? 너희들 길드 맞냐? 손발이 왜 이렇게 안 맞냐?”

바로 쏟아지는 폭풍 같은 잔소리.

원래라면 다시 따졌겠지만 바스토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알, 알겠다.”

-왜 화를 안 내십니까?

-이렇게 몬스터를 양보해 줬는데 그건 좀….

-확실히 그렇습니다. 김태현이 양심 하나 없는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미친놈 같긴 한데.

-야. 말 조심해라. 지금 김태현 욕하는 건 아니지.

-?!?

태현 욕했다가 졸지에 나쁜 놈 된 길드원은 황당해했다.

‘이 인간들 1시간 전까지는 같이 욕해놓고…!?’

저거 하나 해줬다고 홀라당 넘어갔다고!?

“아, 뭐하냐고!! 빨리 쓰러뜨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어요!”

태현의 재촉하는 모습에 이세연은 황당해져서 물었다.

“야… 같은 길드 아니잖아. 그렇게 재촉해도 괜찮아?”

누가 보면 같은 길드원인 줄 알 것이다.

같이 레이드 뛰는 입장에서 저렇게 재촉을 할 줄이야.

류태수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서로 불만 없는 거 보니 괜찮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나인테일 길드원들도 저런 지시를 내심 받고 싶었을 겁니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한테 저런 지시를 받는 경험이 흔한 게 아니잖습니까.”

“…???”

이세연은 더더욱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저런 걸 즐기는 건 변태 아닌가?

아니….

하지만 실력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 그냥 내버려 둬야지.’

* * *

쟈켄겔라드 레이드는 정석적으로 착착착 진행되었다.

그 진행 속도에 태현은 뿌듯해했다.

‘이렇게 정석적으로 레이드하는 경우가 정말 오랜만이군.’

이게 원래 레이드였다.

착실하게 공격대를 준비하고, 보스 몬스터를 포위하고,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차례대로 공격을 퍼부으면서 보스 몬스터를 깎아내는 것.

폭탄 던지고 보스 몬스터를 폭탄으로 바꾸고 뒤에서 암살하고 이간질하고 변칙적으로 기회 만들어서 겨우겨우 잡는 건 정석이 아닌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오랜만에 마음 편하다고 편안해합니다.]

카르바노그도 이번 레이드를 매우 편안해하고 있었다.

언제 또 이런 레이드를 보겠는가.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과 고대 제국 전사들이 쟈켄겔라드를 둘러싸고 소환되는 호위대들을 처리하고 방어막을 두들기고, 그 뒤에 있는 이세연이나 태현 같은 마법사들은 정령왕의 지원을 받아가며 쟈켄겔라드에게 딜을 넣고 있었다.

쟈켄겔라드가 버티면서 반격을 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반격이 나올 때마다 플레이어들이 기가 막히게 카운터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몰아치는 사악한 폭풍!

-아키서스의 축복!

-지옥 마력 충전, 화염공의 꺼지지 않는 불꽃 소환!

-화염 재생!

-저주가 메아리치는 곳!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니, 주로 태현이 카운터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현 일행도 새삼스럽게 감탄할 정도였다.

맨날 검 휘두르고 폭탄 던져서 잊고 있었지만 태현은 신성 직업이었다.

저런 카운터에 가장 알맞은 사람!

-어린 놈의 새끼가!!!

쟈켄겔라드는 분통을 터뜨리며 핏발을 세웠다. 그러자 더욱더 마력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졌다.

[계속된 실패로 인해 쟈켄겔라드의 분노가…]

[……]

“저건 위험하다!”

“이다비. 이쪽으로! <고대 제국의 노래> 쓴다!”

[<고대 제국의 노래>를 사용했습니다.]

[<고대 제국의 노래> 버프가 적용됩니다.]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데미지가 무효화됩니다.]

노래 스킬 최고급 찍고 나서 얻은 사기적인 방어 스킬, <고대 제국의 노래>.

셋이 같이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콰르르르르르르륵!

쟈켄겔라드가 쏟아낸 마법이 스킬에 막히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와아아아아아아!”

광역기에 겁먹었던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보스 몬스터를 이렇게 완전히 틀어막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다.

마법사 랭커들(한 명은 이상했지만) 모이니까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작작… 하란 말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쟈켄겔라드는 숨통을 헐떡이며 마법을 몇 번이고 실패하기 시작했다.

태현은 아쉬워했다.

검술 스킬만 있다면 들어가서 숨통을 끊어놨을 텐데!

[굶주린 혼돈이 쟈켄겔라드의 추태에 실망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쟈켄겔라드와의 계약을 이행합니다.]

순간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굶주린 혼돈의 힘이 쟈켄겔라드를 감싸기 시작했다.

“다시 회복하는 거 아닌가?!”

“지금 들어가야….”

“아니. 위험해. 기다려라.”

태현은 서둘러서 끝장을 보려는 플레이어들을 말렸다.

굶주린 혼돈의 힘과 직접으로 부딪혀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포위망은 제대로 완성되어 있고, 다시 한번 부활한다 하더라도 패서 잡을 자신이 있었다.

‘아직 정령왕의 힘도 남아 있고. 이세연의 언데드 군단도 멀쩡하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 괜찮으니….’

[쟈켄겔라드가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유성이 소환됩니다.]

[유성이 고대 제국 사원으로 떨어집니다!]

“…????”

[사악한 다크 엘프 대마법사, 쟈켄겔라드가 쓰러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

[……]

쟈켄겔라드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도, 레벨이 250이 되었다는 것도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성이….

어디로 떨어진다고??

태현 일행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날아가는 유성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유성이 고대 제국 사원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대 제국 사원이 파괴됩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의 근거지가 사라집니다. 이는 슬프고 비통한 일입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은 앞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근거지를 찾아 헤매게 될 것입니다.]

[분노에 찬 고대 제국 전사들을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대륙에 퀘스트가 추가됩…]

[대륙에 퀘스트가…]

[……]

“…….”

“…….”

공성전은 승리로 끝냈지만, 정작 지켜야 할 사원이 개박살 난 상황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굶주린 혼돈이 하찮은 필멸자인 당신을 조롱합니다!]

굶주린 혼돈은 몇 번의 경험으로 빠르게 파악한 것이다.

쟈켄겔라드를 지원해서 괜히 이기기 힘든 싸움을 다시 하는 것보다, 그냥 쟈켄겔라드를 희생해서 아키서스의 화신을 물먹이는 게 낫다고!

‘…넌 진짜 뒤졌다.’

태현은 이를 갈았다.

네 사원 찾아서 불태워버린 다음에 카르바노그의 신전을 세워주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