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59화 (1,458/1,826)

§ 나는 될놈이다 1459화

멀쩡한 상태라면 화염 기둥이 곳곳에서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고대 제국 전사들 상대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것이다.

솔직히 고대 제국 전사들을 상대하는 게, 타락한 드워프 전사들 상대하는 것보다 몇 배로 무서웠다.

눈이 뒤집힌 거구의 전사들이 대검을 미친듯이 휘두르면서 괴성을 질러대는데 겁을 먹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악몽을 꾼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니. 아니!! 저건 드워프들이 만들고 있는 게 아니야!!!”

그래도 랭커라고 바스토스가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주변을 습격하고 있는 언데드 군대들!

저건 플레이어 쪽 NPC였다.

절벽 위에서도 그걸 봤는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김태현이다!!! 김태현이 정령을 소환했어!”

“…야. 이상한데???”

“뭐가?”

“김태현이 어떻게 정령을 소환해??”

“그러면 김태현이 검사인데 대장장이 기술 스킬은 어떻게 쓰고 마법은 어떻게 쓰냐?”

“그, 그렇군.”

그렇게 말하면 확실히 할 말이 없긴 했다.

이제 와서 태현이 무슨 스킬을 꺼내더라도 사람들은 딱히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잡다하게 익힌 스킬들!

제국 전사장이 그걸 보더니 단호하게 외쳤다.

-이건 신호다! 아키서스의 영웅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행운의 힘이다! 가라, 전사들이여!

-우어어어어어어어!

[고대 제국 전사들이 <제국의 광란>을 사용합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이 <마지막 투쟁>을 사용합니다!]

[….]

[….]

고대 제국 전사들의 근육이 부풀기 시작하더니 중갑이 틀어질 정도로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이 붉어지고 온몸에서는 증기가 뿜어나왔다.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기겁해서 물러설 정도였다.

“이거 뭐야, 무섭게….”

-크아아아악!

고대 제국 전사들이 파도처럼 절벽 아래 적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숫자는 훨씬 적었지만 기세를 타자 다크 엘프 검사들은 막지 못하고 쭉쭉 밀려났다.

게다가 한 번 기세를 타자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나는 공격대!

그리고 뒤에서는 태현 일행이 이끄는 화염의 정령왕이 드워프들을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바스토스 님. 바스토스 님. 이거 어떡합니까??”

<나인테일> 길드원들도 경험이 많다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이건….

망하기 직전의 분위기!

[다크 엘프 대마법사가 쓰러졌습니다! 사기가 크게 하락합니다!]

[드워프 제단이 파괴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의 사기가….]

[다크 엘프 부족 하나가 이탈합니다! 이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비겁한 짓입니다! 이들을 쫓아서 붙잡는다면….]

[드워프 부족 하나가….]

[….]

곳곳에서 누구 죽고 누구 쓰러지고 사기 떨어지고 누구 도망치고 있다는 메시지창만 우르르 나오는 상황.

아직 이 주변에 많은 다크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있었지만 지금 서로 도망치고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 답이 나왔다.

튀어야 한다!

“그냥 튑시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바스토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랭커 체면이 있지 여기 와서 그냥 맨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괜히 편 갈아탔다가 아무것도 못 받는 상황이었다.

알려지면 개망신!

“어쩌시려고요??”

“가장 강해 보이는 놈을 찾아라!”

“예!? 지금 말입니까??”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를 찾거나, 아니면 타락한 드워프 족장들 중 가장 강한 자를 찾거나.

바스토스의 명령에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빨리 튀어도 모자랄 시간에 이게 무슨 명령이란 말인가.

“튀는 게 낫지 않아요? 찾아봤자 공적치 포인트 낮아서 우리 도와주지도 않을 텐데….”

“도움을 받으려는 게 아니야! 김태현한테 위치를 팔려는 거다!”

“…!?”

그제야 바스토스의 뜻을 깨달은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편을 갈아타시려는 거구나!

물론 페널티야 좀 받겠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역시 바스토스 님이시다!

* * *

화르르르륵!

“잘 태우십니다! 한 번만 더!”

-알겠다!

화르르르르륵!

“흠. 이제 됐습니다!”

-아니. 다 안 죽었는데??

“나머지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저쪽 태우고 계십시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데, 혹시 나를 그냥 화염 스크롤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령왕의 말에 태현은 정색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가 얼마나 정령왕 님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는데!”

-하하하! 역시 그렇지??

“예! 저기 좀 더 태워주십시오!”

태현은 정령왕을 손바닥 위에 갖고 놀고 있었다.

정령왕이 어느 정도 데미지 주면 이제 태현이나 이세연이 마법으로 쓰러뜨리는 것이다.

상대 적들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경험치 수급이 꽤나 잘 됐다.

류다영은 솔직히 감탄했다.

‘다른 대형 길드들과는 차원이 달라.’

질 좋은 사냥터 통제하고 몬스터들을 몰이 사냥하는 대형 길드식 사냥보다, 지금 이렇게 하는 사냥이 훨씬 더 경험치가 많이 오르는 것이다.

태현이 레벨 높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미친 듯이 효율 높은 사냥만을 추구하니 레벨이 안 오를 수가 없지 않겠는가.

레벨이 한 350은 그냥 넘길 것 같았다.

“김태현!! 김태현!!!”

“……?”

한창 주변을 태우고 마법 날리고 언데드들을 시켜서 싸우고 있는 와중에, 한쪽에서 플레이어들이 달려왔다.

“나다! <나인테일>의 바스토스!”

“오… 접근하지 마라.”

“…!”

태현의 말에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은 움찔했다.

설마….

설마 들킨 건가??

“왜, 왜?!”

“경험치 뺏으려고 하는 거지? 수작 부리지 말고 다른 곳 가서 너희들이 잡아라. 남의 경험치 뺏지 말고.”

한창 마법 스킬 올리고 경험치 쌓고 있는 태현이었기에 더더욱 민감했다.

검술 스킬도 봉인당했는데 지금 안 올리면 손해가 막심한 것이다.

“…아니야!!”

“아니라는 놈들 중에 진실을 말하는 놈이 없지. 길드 동맹 놈들이 뭐라고 하면서 왕국 다스리냐? 우리는 남기는 게 하나도 없다, 그냥 왕국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하는 게 목적이다, 이렇게 말했지? 걔네가 얼마나 남기는 줄 알아?”

“…그건 그렇지만 이번에는 진짜 아니라고!”

들킨 줄 알았던 바스토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한테 제보하려고 온 거다. 다크 엘프 대마법사 위치다! 같이 잡으러 가자!”

“더 수상한데.”

“미친듯이 수상한데?”

“정말 수상합니다.”

“…….”

의심 많은 태현 일행의 반응에 바스토스는 속으로 욕했다.

‘아오 의심 많은 새끼들.’

하지만 이해는 갔다. 바스토스도 의심을 했을 테니까.

“수상한 제안이 아니야! 나 혼자 잡을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온 거다!”

“아. 그런 건가.”

태현은 약간 의심을 풀었다.

확실히 다크 엘프 대마법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랭커 몇 명으로는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여럿이서 다 같이 레이드를 해야….

“게다가 그냥 다크 엘프 대마법사가 아니다! 소문을 들으니 이번 습격을 주도한 대마법사래! 다크 엘프 부족들 중에서도 매우 지위가 높다고….”

[정보를 얻었습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사악한 쟈켄겔라드를 처치하라- 카프 산맥 다크 엘프 토벌 퀘스트>

다크 엘프 대마법사, 쟈켄겔라드는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대마법사다.

모든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쟈켄겔라드가 살아 있는 한, 산맥의 평화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보상:?, ???, ???

“오….”

대마법사의 이름에 태현은 놀랐다.

확실히 이런 목표라면 절대 놓칠 수 없긴 했다.

그냥 뒀다가는 어디서 힘을 회복한 다음 다시 돌아올 테니까.

“좋아. 쫓자!”

“……!”

바스토스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현이 넘어온 것이다.

이제 같이 퀘스트를 깬 다음 공적치 포인트만 받으면 도중에 편을 갈아탔던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그런데 넌 이 퀘스트 어디서 얻었냐? 산맥의 다크 엘프 부족들은 거의 접근하기가 힘들 텐데?”

태현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바스토스는 그 질문에 멈칫했다.

“…….”

-바스토스 님! 대답하셔야 합니다!

-…잠, 잠깐. 시간 좀 끌어봐라.

“김태현 선수! 이 화염의 정령은 대체 어디서 소환하신 겁니까?”

-화염의 정령왕이다, 멍청한 놈들!

“정령왕을!??!”

시간 끌려고 말 걸었던 길드원들은 기겁했다.

어쩐지 강하다 싶었더니 정령왕이었다고??

-사디크와의 인연이 있어서 힘을 빌려주게 되었다.

“사, 사디크 교단이 그런 스킬이 있습니까??”

“아니. 그런 스킬 없는데.”

태현은 솔직하게 말해줬다.

아키서스 교단이라면 모를까 굳이 사디크 교단을 위해서 거짓말을 해주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길드원들은 반대로 이해했다.

‘진짜 있나 보다.’

‘김태현이 저렇게 부정하는 거 보면 숨겨야 할 정도인가 본데?’

‘생각해 보니까 사디크 교단은 좀 이상하게 인기가 없잖아. 저거 알아서 일부러 숨긴 거 아니야? 스킬 독점하려고?’

“그래서 퀘스트 어디서 얻었냐니까?”

태현은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세연도 슬슬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퀘스트 깨는 동안 어디 있었지?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여러 길드끼리 모여서 같이 전투하는 구역에….”

“응. 그러니까 거기 언데드들 보내서 봤는데 너희 본 적 없어서 물어보는 거야.”

“…….”

바스토스의 등줄기에 진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들키면….

“…서 싸우다가 좀 더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깨고 싶어서 다크 엘프 부족들 사이에 잠입을 시도했다.”

“잠입을?? 어떻게??”

태현은 놀랐다.

산맥의 다크 엘프 부족들은 외부의 방문을 거의 허락하지 않았다.

남부 대륙이 열린 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크 엘프 마을들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런데 그걸 뚫고 잠입을 했다니.

어떻게 한 거지??

“그건 비밀이다. 우리가 열심히 고생해서 얻은 방법이라 남한테 알려줄 수는 없다.”

바스토스는 허겁지겁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이런 비밀을 알려달라고 하는 건 무례한 짓이었으니까.

“하긴 그렇군.”

“저걸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그래도 뭐 잘됐네. 다음에 다크 엘프 쪽에 들어갈 일 필요하면 쟤네 시키면 되겠군.”

“…….”

“…….”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 *

쟈켄겔라드는 결국 따라잡혔다. 위치까지 알려진 이상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쟈켄겔라드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사납게 외쳤다.

-하찮은 사디크의 하수인 놈이 감히 건방지게!

그러자 발끈한 고대 제국 전사들이 외쳤다.

-입조심해라! 이분은 아키서스의 영웅이시다!

-…! 네놈이 바로 그…!

[쟈켄겔라드의 경계가 올라갑니다!]

[쟈켄겔라드가 마력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아오. 전사 놈들 괜히 데려와서.’

물론 레이드에 필요하니까 데리고 왔지만, 괜히 입을 털어서 난이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열이 받았다.

검술 스킬 봉인된 상태니 어쩔 수도 없고….

-아키서스의 영웅. 네놈이 아무리 강해 봤자… 내가 얻은 힘을 상상도 하지 못할 거다.

“설마 굶주린 혼돈하고 계약했냐?”

-…….

“지금 개나 소나 다 굶주린 혼돈하고 계약하는데 너만 계약한 걸로 착각한 건 아니겠지?”

-닥쳐라!!

좀 더 날카로워진 쟈켄겔라드의 외침과 함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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