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57화
“그런데 태현 님. 저 보양식 악마 고기로 만든 거 아니에요?”
“뭐 악마들끼리는 서로 먹으니까 상관없지 않나?”
“그러네요.”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다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에다게르는 열심히 보양식을 먹고 마셨다.
두껍게 자른 고기는 선홍색이 남을 정도로 살짝 구워서 피 맛이 진했고, 각종 피와 광석을 섞어 만든 음료는 걸쭉한 맛이 아주 취향이었다.
-음. 이건 다른 악마의 고기를 썼나? 뭘 좀 아는군.
“…!”
류다영은 기겁했다.
악마들 진짜 무서워!
* * *
“이게 진짜 옳은 짓일까요?”
“아. 그러면 넌 돌아가던가.”
“그런 뜻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구요….”
<나인테일> 길드의 랭커, 바스토스는 어둠을 틈타 길드원 몇몇과 함께 사원을 빠져나왔다.
이번 아탈리 왕국의 스칼로 성을 점령한 두 길드 중 하나, <나인테일>.
당연히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인 고대 제국 전사들의 퀘스트에도 참가했었다.
하지만 퀘스트 도중 그들은 결정을 내렸다.
-야, 안 되겠다. 갈아타자!
A 세력과 B 세력이 싸우는 퀘스트에서 편을 갈아타는 건 의외로 잦은 일이었다.
한쪽이 너무 불리하다 싶으면 다른 쪽에서 뭐라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고집 부리다가 퀘스트 실패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차라리 현명한 일이긴 했다.
“다들 많이 남아 있는데 우리가 너무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게 아닌가 싶어서요.”
“너도 동의했잖아. 지금 저기 남아 있는 놈들은 김태현이나 이세연 때문에 환상에 빠져 있는 거고.”
바스토스와 몇몇 길드원들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안 될 것 같지?
-안 될 것 같습니다. 김태현이 저렇게 무리하는 거 보세요. 오히려 저게 더 위험 신호죠. 저렇게 무리할 이유가 없는데 버티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기가 아니면 답이 없으니까….
-맞는 말이야.
바스토스는 확실히 실력이 괜찮은 랭커였다.
남들이 승리에 취해 있는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적들은 아직도 강하고, 그에 비해 아군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
차라리 적에게 붙자!
“근데 들키면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스칼로 성 통치하느라 김태현하고 몇 번 마주쳐야 할 텐데.”
“그러니까 가면 벗지 마라. 들키면 너흰 모르는 사이인 거다.”
“역시 바스토스 님은 이런 부분에서는 김태현 못지 않게 철저하십니다.”
“너 지금 나 욕한 거냐??”
“아, 아니….”
일행은 빠르게 적들에게 찾아갔고, 쉽게 가입할 수 있었다.
[<사악한 산맥 연합>에 가입했습니다!]
[현재 공적치가 매우 낮습니다.]
[현재 평판이 매우 낮습니다.]
[다크 엘프들은 오만한 이들입니다. 그들을 대할 때 페널티가 붙습니다.]
[드워프들은…]
[……]
[……]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니까 한숨부터 나오는데요.”
“한숨 쉴 시간에 잡퀘라도 깨자. 빨리 공적치 포인트 올려서 보상 높여야지.”
-전사들이 항복한단다! 놈들의 요새로 가자!
“?????”
“뭐여???”
길드원들은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왜 항복을 해?
아직 공적치도 못 쌓았는데…!
* * *
-잘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하고 저능한 자들아. 이 사원을 넘겨주고 사라진다면 자비를 베풀어서 쫓지는 않을….
다크 엘프 대마법사가 거만하게 말하는 사이, 전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쳐라!!
-와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전사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다크 엘프들은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게 무슨… 너희는 명예도 모르냐!? 전사라는 자들이!!
-하하! 멍청하기는. 이게 행운의 힘이다!
-행운의 힘하고 이게 무슨 상관… 크억!
놀랍게도 다크 엘프들은 기습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로 고대 제국 전사들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멍청한 고대 제국 전사들이 이런 비열한 짓을 할 줄이야!
-네놈들 혹시 굶주린 혼돈의 힘이라도 빌린 것 아니냐!?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크아아악!
-행운의 힘으로!
갑자기 사원 한복판에서 일어난 습격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지만, 곧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신나잖아!
“가자!”
“공격해!!!”
[<광란의 번개>가…]
[<빠른 그림자의 검>이…]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다크 엘프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마법 사용에…]
[……]
“저기 다크 엘프 대마법사다! 잡아!!”
“잡으면 이번 퀘스트는 대박이다!! 사원에서 못 빠져나가게 해!”
모든 플레이어들이 신난 상황에서 당황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이었다.
공적치 포인트를 쌓기 위해 다크 엘프 사절들을 호위하겠다고 나섰다가 졸지에 뒤지게 생긴 것이다.
-대체 뭡니까!? 왜 기습을!?
-김태현이 시킨 거야! 김태현 이 자식! 플레이어들한테 말도 안 하고 이런 짓을 하다니!!
바스토스는 김태현부터 의심했다.
멀쩡하던 고대 제국 전사들이 이런 기습을 한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현이 지시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남들이 혹시라도 알까 봐 플레이어들한테도 비밀을 지킨 것!
정말 치가 떨릴 치밀함이었다.
-플레이어들한테는 말해줘도 되잖아!! 설마 그게 밖에 새어 나가겠어?!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닙니다! 탈출해야 합니다!
다크 엘프들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무방비한 상태로 포위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믿을 건 밖에서 들어오는 지원밖에 없었다.
‘제발…!’
* * *
“저거 같은데.”
태현은 이번에는 소수의 인원만 끌고 나와 있었다.
네크로맨서들의 대군은 강력했지만 몰래 이동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어차피 언데드 소환이야 여기서 로브 입고 이세연과 손 잡으면 순식간에 해낼 수 있을 것이고….
‘간이 대장간처럼 생겼군.’
타락한 드워프 부족들이 갖고 다니는 불의 제단은 대장간을 연상시켰다.
저걸 내려놓으면 그대로 간이 대장간이 될 것 같았다.
“마법 퍼붓고, 흐트러지면 언데드들 불러서 돌격하고, 적당할 때 터뜨린다. 맞지?”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 스킬이 없어서 많이 불편하긴 했지만 이제 슬슬 받아들일 때였다.
“용용아. 흑흑아.”
-주인님께서 요즘 저희를 의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헤헤.
흑흑이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이 검술 스킬이 있을 때는 혼자 가서 썰고 다니는 탓에 두 드래곤은 잡몹 처리나 태현을 공격하는 적들을 막는 역할 정도만 했었는데, 태현이 검술 스킬이 사라지자 같이 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근접으로 붙었을 때 둘이 태현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이게 신수의 기분인가??
“지금 내가 검술 스킬 사라졌다고 기뻐하는 거냐??”
-흑흑이여.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아, 아니… 주인님… 그게 아니라….
-캬오오.
불불이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흑흑이를 쳐다보았다.
주인의 고통에 즐거워하다니!
-…그냥 싸우기나 합시다….
[용용이가 <골드 드래곤의 집중>을 사용합니다!]
[흑흑이가 <블랙 드래곤의 집중>을 사용합니다!]
[마력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불완전한 드래곤 브레스가 시전됩니다!]
둘 다 드래곤 브레스 한 방 세게 썼다가 있던 레벨 다 잃어버리고 약해졌던 쓰라린 경험이 있었지만, 지금 쓰는 건 그것과 달랐다.
시간을 들여서 마력을 모으고, 위력도 좀 더 낮은 순한 맛 드래곤 브레스!
하지만 파괴력은 충분했다.
꽈아아아아아앙!
불완전한 브레스라도 브레스는 브레스!
날아간 브레스가 타락한 드워프들을 휩쓸고 제단을 후려갈겼다.
-캬오오!!
불불이는 그 모습에 감동한 것처럼 기뻐했다.
어린 드래곤의 감동은 흑흑이도 코밑을 훔치게 만드는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었다.
-훗. 이건 별 것도 아니다. 내가 원래 힘을 다 되찾고 블랙 드래곤 본연의 힘을 가지게 되면 저 산맥 끝까지 날려 버릴 수 있….
-흑흑이여. 집중해라. 아직 적들이 남아 있다.
-아. 거 더럽게 뭐라고 하는군!
그러나 용용이의 말이 사실이었다.
브레스를 선빵으로 얻어 맞은 드워프 전사들이 분노해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타락한 드워프 전사들이 <불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타락한 드워프 전사들이 <조상의 원혼>을 사용합니다!]
[타락한 드워프 전사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악명이 크게…]
[……]
드워프하면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단단함’이었다.
드워프 특유의 장비로 중무장한 그 방어력은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고 욕이 나오기 마련.
성기사만큼 재생력은 없어도 방어력은 더 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드워프 전사들인 만큼 브레스를 견뎌내고 덤벼들 수 있었다.
-저 건방진 놈들을 붙잡아 제단에 넣고 태워버리겠다!
-네놈들을 제물로 바쳐버리겠단 말이다!
“김태현.”
“응.”
이세연은 태현에게 눈짓했다. 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흑색의 영역, 지옥의 표식, 금지된 죽음, 무한한 헌신, 빠른 골렘 소환, 빠른 골렘 소환, 빠른 골렘 소환!
[언데드 군단이…]
[……]
[……]
[골렘들이…]
최정예 언데드들이 어마어마한 버프와 함께 사방에서 튀어나오고, 골렘들이 태현 일행 앞을 지켰다.
-사디크의 화염 파도, 드워프의 황금 함정, 아키서스의 연쇄 냉기, 고대 제국 언데드 자폭특공대 소….
스킬을 쓰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일행에게 일시적으로 행운이…]
외침과 함께, 앞에서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거대한 불의 파도가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 불의 제단이 폭발합니다!!!]
[제단 안에 갇혀 있던 화염이 노여워하며 주변을 태워버립니다!]
“내 폭탄 아니다!”
“알고 있어!”
일행은 생각지도 못한 자연재해에 버티기 위해 애썼다.
갑자기 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다니!
-화염이 풀려났다!! 화염이 풀려났다!!!
-모두 도망쳐!!!
“?”
각종 방법을 통해 화염이 밀려오는 걸 막고 있던 일행들은, 드워프들이 도망치는 것에 당황했다.
…?
‘왜 안 덤벼들지?’
불의 제단을 건드렸으니 ‘감히!’ 하며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덤벼들어야 하는데….
드워프들은 뭐라도 잘못 먹은 것처럼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다고 불길해합니다.]
드워프들이 모시고 있던 여러 제단들 중, 태현이 뭔가 잘못 고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갈 무렵 대답이 나왔다.
[화염의 정령왕, 타프리오트가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정령들은 원래 은혜를 잊지 않는 종족들이지만, 정령왕 타프리오트는 오랫동안 제단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타프리오트는 화염의 정령입니다! 타오르는 성질을 주의하십시오!]
“망한 것 같은데.”
메시지창에 이세연이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건드려도 뭘 저런 걸 건드렸지?
“김태현. 언데드 다 풀어서 시선 끌자. 후퇴해야 해.”
“그ㄹ….”
[태초의 불을 갖고…]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
[……]
[……]
[사디크의 권능을 이어 받았습니다! 정령왕이 사디크의 기운을 알아차립니다. 상대할 때 크게 보너스를 받습니다!]
[타프리오트가 분노를 떨치고 이성을 되찾습니다!]
-아니, 사디크의 후계자인가?! 이거 반갑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반가워!
“사디크의 후계자가 아니라….”
-뭐라?
화르르르르르륵!
“…그보다 더 진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디크의 화신쯤?”
-아하!
타프리오트는 온몸으로 불꽃을 뿜어내며 기뻐했다.
이런 귀한 인재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