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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53화 (1,452/1,826)

§ 나는 될놈이다 1453화

-악마라고 모두 사악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아키서스의 영웅이 그런 말을 하니까 의외로군.

거인 전사장은 교양 있는 말투로 태현에게 말했다.

-고맙다! 저 아키서스의 영웅에게 잘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그러자 검의 악마도 매우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자기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자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의외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아키서스 교단이 악마들하고 사이 좋은 교단도 아닌데?”

아키서스 교단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쓰러뜨린 악마들만 해도 마계에서 줄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기록을 보면 아키서스 교단은 마계의 악마들 중 믿을 수 있는 악마들을 골라내서 포섭했다는 기록이 있네. <고대 제국 역사서>에 그런 기록이 있지.

“…뭔??”

[<고대 제국 역사서>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지식이…]

메시지창이 떴지만 태현은 지금 그런 거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저런 책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런 기록이 있었나??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아주 먼 옛날에 아키서스가 악마들과 싸울 때에도 다른 악마들의 힘을 빌리지 않았나? 이 정도면 전통 아닌가?

“…그건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속인 거잖아.”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신들과 악마들이 서로 크게 싸울 때 아키서스가 사이에서 이간질한 걸 저렇게 듣기 좋게 말해주다니.

-으음. 그런가? 내가 잘못 알았던 건가.

전사장은 태현이 강하게 부정하자 한 발 물러서려고 했다. 물러서기 전에 전사장은 물었다.

-그러면 아키서스의 영웅은 어느 악마들하고도 손을 잡지 않고 있는 건가? 데리고 있는 악마들도 없고?

“당연히 없….”

말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은 우리에 악마들을 넣어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있긴 해.”

-???

전사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내 말이 맞지 않은가?

“그래. 너희 말이 맞는 걸로 하자.”

태현은 반론을 포기했다.

저지른 업보가 너무 컸던 것이다.

* * *

-그래서 지금 상황이….

“밖에서 여기 사원을 싫어하는 산맥 종족 놈들이 총집합했지.”

-그렇군. 그자들은 언제나 이 사원을 노리곤 했다.

검의 악마가 내놓은 시련에서 전사장을 구출했지만, 아직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사원 밖에는 고대 제국 전사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찾아온 적들이 절벽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키서스의 영웅이여. 내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오오….”

케인이 저런 말을 했다면 ‘아니 그러니까 근거를 대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 선보이지 말고’라고 구박을 했겠지만, 거인 전사장이 저렇게 말하니까 왠지 모를 믿음이 갔다.

뭔가 있나 보다!

‘역시 전사는 묵직함이 있어야 든든한가?’

과묵하고 묵직한 전사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게 사실이긴 했다.

-게다가 나는 이번 검의 시련에서 많은 걸 배웠다.

“나도 많은 걸 배우긴 했지.”

클리어 보상도 보상이지만 드래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바로 치사함과 비열함-진정한 행운의 힘!

“응?”

-그 힘을 알았으니 우린 한층 더 강해질 것이다.

“아니….”

태현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전사장은 성큼성큼 걸어서 나타났다.

-전사들이여, 들어라! 내가 시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한층 더 강해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전사장이 돌아왔다!!

[고대 제국 전사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사들의 사기가 대폭 오릅니다!]

[전사들의 능력치에 일시적으로 버프가…]

[……]

고대 제국 전사들은 단순한 면이 있었다.

전사장이 나타나자마자 하늘을 찌르는 사기!

그 분위기는 플레이어들에게도 전염되었다.

사원에 기껏 들어왔는데 함락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듣고 당황하던 플레이어들.

전사들의 반응은 이들을 안심시켜줬던 것이다.

“뭐야? 전사장 돌아왔어??”

“안 도망쳐도 되는 건가?”

먼저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일단 같이 싸우고 봤지만, 뒤늦게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어떻게 들어왔는데 반드시 막아내서 이득을 보겠다 vs 지금 속아서 들어왔는데 저것까지 해야 하냐?

먼저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입 꾹 다물고 뒤의 사람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던 게 매우 괘씸했던 것이다.

-진짜 쓰레기들 아니냐?? 게시판에 익명으로 사원 너무 좋다고 글 올린 놈들 있었는데 저놈들 아니야?

-무슨 소리를! 우리가 그런 짓을 왜 해!

-저 얼굴에 철판 깐 것 봐! 너희들 말고 사원 좋다고 할 놈들이 어디 있어! 너희들만 믿고 퀘스트 깨려고 골드를 얼마나 퍼부었는데!

사원 들어오기 위해 깬 퀘스트들이 몇 개고 쓴 골드가 얼마인데 사람인 이상 열이 오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전사장이 나타나고 분위기가 달라지자 나가려던 플레이어들도 멈칫했다.

“…그래도 이것까지만 해보고 가볼까?”

“맞아. 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온 이상 뭐라도 먹고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이다.

그 모습에 태현은 흐뭇해했다.

‘전력이 부족하진 않겠군.’

안 그래도 태현은 검술 스킬 봉인당한 불리한 상황.

고렙 랭커들이 대거 이탈하면 퀘스트도 같이 불리해졌다.

“…너 뭔가 이상하다??”

플레이어들을 지휘하면서 언데드 군대를 준비하고 있던 이세연은 태현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뭔가….

달라졌던 것이다.

‘뭐지?’

“내가 검술 스킬이 봉인됐어.”

“농담하지 마.”

이세연은 정색했다.

지금 이 퀘스트 끝내고 나면 월드컵 다음 경기가 기다리는데 검술 스킬이 봉인됐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진짜인데.”

이세연이 이렇게 나오자 태현은 처음으로 살짝 겁을 먹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진짜??”

“응. 진짜.”

“…….”

“…미안….”

“…….”

이세연은 할 말을 잃고 충격에 빠졌다.

태현은 어떻게든 이세연의 마음을 좀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대신 마법 스킬을 최고급 찍었어.”

“…이 와중에 그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한 내 자신이 싫어지는데.”

이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서 태현이 어떻게 마법 스킬 최고급 찍었는지 궁금한 스스로가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이세연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더니 뺨을 손바닥으로 쳤다.

평소처럼 화를 내거나 싸늘하게 말을 하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조용히 입 다물고 있자 태현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태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난 거 아니지?”

“화는 안 났지….”

“대답이 없길래.”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일부러 한 것도 아닐 텐데. 네가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니까 사과할 건 없어.”

“…….”

태현은 감동했다.

이세연이 이렇게 말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평소에 매번 차가운 목소리로 구박만 해서 이번에도 욕할 줄 알았는데….

“그 눈빛은 뭐야?”

이세연은 태현이 빤히 쳐다보자 부담스러웠는지 물었다.

“네가 화낼 줄 알았거든.”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네.”

“아니. 고마워서 한 말이야.”

“이런 걸로 고마워하지 말고 평소에 다른 걸로 고마워하면 안 되니? 내가 그렇게 해준 게 없었어?”

옆에서 듣고 있던 류태수가 참다 참다 결국 입을 열고 끼어들었다.

“두 분. 화기애애한 건 좋은데 지금 저희 망하기 직전이니까 이것부터 좀 해결해 주시면….”

“아.”

“아.”

류태수의 말에 둘은 논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조용히 입 다물고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쟤네 왜 저렇게 떠들고 있냐?’

‘몰라. 싸웠나 봐.’

‘싸우는 게 아니라 사귀는 거 아닌가?’

‘그냥 싸움이든 사랑싸움이든 지금 같은 상황에 꼭 이래야 하나?? 앞에 몰린 적들 처치하고 싸우면 안 되나?’

‘레벨 제일 높은 놈들은 쓸데없이 시간낭비하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미안하군. 이제 준비할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 * *

-전사장 놈이 나타났습니다!

-저 덩치 커다랗고 멍청한 놈이 하나 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공격을 개시하라!!

[적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됩니다!]

다크 엘프 부족들과 드워프 부족들. 그리고 괴수들.

산맥에 살고 있는 적들이 까맣게 아래를 채우며 몰려오는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침을 삼켰다.

그러나 다들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쪽 라인업도 워낙 든든했던 것이다.

“그런데 너 마법 스킬 뭘로 익혔어?”

“나야 잡다하게 다 익혔지.”

“하나 전문으로 파는 게 좋을 텐데.”

마법사들이 바보라서 한 가지 종류의 마법을 쭉 파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마법 스킬 레벨뿐만 아니라 흑마법, 화염 마법, 냉기 마법 등등 이 마법 스킬들의 레벨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스킬들을 쓰면 쓸수록 경험치가 쌓여서 추가 스킬들이 나오기 마련.

한 가지 특화는 필수적이었다.

문제는….

“…나도 아는데 이게 하다 보니까 억지로 손에 쥐어주더라고….”

태현도 한 가지 마법만 진득하게 파볼까 했던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다만 게임을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

이렇게 마법을 잡다하게 익힌 이상 이제 남은 건 숫자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좀 불리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

화르륵!

불꽃과 함께 태현과 닮은 분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뛰어난 분신 스킬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스킬이네.’

마법사 랭커답게 이세연은 태현이 쓰고 있는 마법 분신 스킬이 좋은 스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얻은 걸까?

“움직여라! <고대 제국의 언데드 소환>! <고대 제국의 언데드 소환>!”

분신들을 절벽 위 곳곳에 배치한 다음 언데드들을 소환하는 태현.

마치 이세연 같은 플레이 방식에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태현이 언데드 소환 스킬 갖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지만….

‘아니. 차라리 다행인가?’

지금 적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지금, 네크로맨서는 여럿일수록 좋았다.

태현이라면 전술 스킬도 높고, 호흡도 잘 맞을 테니 언데드들을 같이 지휘해서….

그러나 태현은 그런 평범한 이유로 소환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고대 제국 언데드 자폭특공대 소환! 고대 제국 언데드 자폭특공대 소환! 고대 제국 언데드 자폭특공대 소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언데드 자폭특공대를 숨기려면 그만큼 언데드들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너 뭐 이딴 마법 스킬을 배워온 거야!?!”

이세연은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류태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러니까 맨날 화낸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

* * *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들은 이쪽으로 집합! 같이 언데드 군대 합치죠!”

이세연의 부름에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들은 황송해하며 달려나갔다.

이세연과 같이 할 수 있다니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무조건 배운다!’

‘스킬 쓰는 법 물어봐도 되나? 스킬 콤보는 뭐가 좋은지 물어보고 싶은데….’

‘장비 뭐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

“…어. 그런데 김태현 선수는 여기 왜 계십니까?”

“멍청한 놈아. 호위겠지.”

“아아…! 감사합니다!! 김태현 선수가 호위까지!! 너무 든든합니다!”

“근데 왜 검이 아니라 지팡이를 들고 계십니까?”

“나도 네크로맨서로 참가했는데.”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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