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51화
‘잘못 걸리면 망한다!’
태현이 아무리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스킬 하나 봉인은 선을 넘은 페널티였다.
만약 검술이라도 걸리면 태현의 폭딜 중 대부분이 멈추는 것이다.
물론 스킬 레벨 하나 오를 때까지만 일시적인 봉인이라고 하지만, 잘 생각해야 했다.
지금 태현의 스킬들은 꽤 많은 숫자들이 최고급 상태.
최고급 상태에서는 스킬 레벨 하나 올리는 것도 막대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검술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기라도 하면….
[검술 스킬이 봉인됩니다!!]
[검술 스킬이 봉인되는 동안 다른 스킬들의 성장 속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
[…….]
언제나 불안한 예감은 맞기 마련.
태현은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 * *
어이가 없었지만 태현은 빠르게 받아들였다.
사실 여기서 절망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드래곤 쓰러뜨리고 시련 탈출해서 전사장과 함께 사원을 위협하는 적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일단 검술 스킬 쓰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보자.’
폭딜 스킬들이 봉인되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나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일단 근접 상황에서 회피 능력은 있었으니 버틸 수 있었고, 폭탄과 마법으로 어떻게든 대처 가능하리라.
태현은 다음으로 <아키서스의 룰렛>을 확인했다.
이 고생을 하고 얻은 권능 스킬인 만큼 강력한 효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검술 스킬이 일시적으로 봉인된 상태인 만큼 더더욱!
‘룰렛이면… 일시적으로 스킬 향상시키는 건가?’
태현은 <아키서스의 주사위> 권능 스킬을 떠올렸다.
<아키서스의 주사위>는 랜덤성이 좀 강하긴 했지만 강력한 권능 스킬이긴 했다.
주사위 굴려서 나온 숫자에 따른 버프 효과 부여!
버프 스킬들 중에서 이렇게 MP 적게 쓰고 강한 효과 주는 스킬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룰렛이 그런 계열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룰렛 굴려서 하나 나온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권능이라면 나쁘지 않은데.’
최고급 단계부터는 레벨 하나 올리려면 뼈와 살을 깎아야 하는 수준.
그걸 스킬로 커버할 수 있다면 매우 남는 장사였다.
당장 태현이 뭘 제작할 때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나 기계공학 스킬 레벨을 하나만 올려도 그 아이템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검술 스킬이나 마법 스킬이라면 더욱 더 좋을지 몰랐다. 전투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기대가 되는….
<아키서스의 룰렛>
상대를 하나 정합니다. 상대와 자신 중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아키서스의 천벌이 내립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 모두 경악했다.
그러니까 룰렛이….
그 룰렛이 아니라 러시안 룰렛이였냐??
‘아키서스 진짜 미친 놈 아닌가?’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 * *
어찌 되었든 간에 준비가 끝난 이상 도전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법 스킬 최고급 찍은 상태에서 받을 퀘스트 보상까지 받았으니, 이제 여기서 한 번 부딪혀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이오노스 님. 도전해 보겠습니다!”
-앗. 정말이냐?
고이오노스는 태현의 말에 반색했다.
그러더니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지금 마법 훈련으로 지쳐 있을 텐데 과연 지금 도전하는 게 옳은 선택일까? 좀 더 쉬고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키서스의 어린 영웅아?
“으음. 고민이 되… 공격해!”
태현의 말이 떨어지자 뒤에서 숨어 있던 전사장, 곤과 사냥꾼 잘츠가 공격을 시작했다.
고이오노스는 영웅들을 키워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돌아오는 건 이런 매콤한 뒤통수였던 것이다.
-훌륭하구나! 아키서스의 영웅이라면 이런 기습도 잘 해야지! 여기 온 영웅들은 이런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았는데 아키서스의 영웅이 와준 덕분에 많은 배움이 있었겠구나?
-아니… 영웅답게 싸우라면서!!
뒤에서 활을 당기고 있던 잘츠는 분노해서 고이오노스에게 외쳤다.
고이오노스는 분명 ‘여기 온 영웅들에게 진정으로 영웅다운 자세를 기대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잘츠도 최대한 영웅답게 싸우려고 노력한 거였는데…!
그 말에 고이오노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영웅답게 싸우라고 했지 누가 멍청하게 싸우라고 했니?
-…….
-어린 사냥꾼아.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너는 너무 순진무구하구나. 그 정도 경력이 있는데도 그렇게 순진무구하면 대체 대륙의 적들과는 어떻게 싸울 생각이니?
-앞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놈이 되어주마!
잘츠는 분노한 목소리로 활을 당겼다.
-위대한 사냥꾼의 일격!
활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거대한 마력이 모이더니 마치 유성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고이오노스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막아냈다.
용언 마법이 펼쳐지더니 장벽이 생겨나 공격을 튕겨낸 것이다.
-쏟아지는 화살의 비, 지독한 회전의 화살, 영원한 추적, 검은 활의 화살!
잘츠는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솔직히 감탄했다.
‘그냥 멍청한 놈이 아니었군.’
무시했던 것과 달리 잘츠의 능력은 어마어마했다.
궁수 랭커들 중에 한두 명 갖고 있는 사기적인 비전 궁술 스킬들을 연속으로, 숨도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모습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만약 궁수 랭커들이 이 영상을 본다면 깜짝 놀랄지도 몰랐다.
-저런 스킬들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공격보다 더 대단한 건 고이오노스였다.
무슨 거대한 태산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처럼 잘츠의 연속 공격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사장, 곤이 고이오노스 앞으로 돌격했다.
쾅!
거인의 괴력에 검술 스킬까지 더해지면 그 위력은 파괴적이기 그지없었다.
고이오노스도 위협적으로 느꼈는지 바로 자세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니, 날아오르려고 했다.
-아키서스의 냉기 사슬!
준비가 끝난 태현이 마법을 개시했다.
아키서스의 고대 냉기 마법 스킬 중 하나인 냉기 사슬이 펼쳐지며 고이오노스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이오노스의 마법 스킬이 너무 높습니다!]
[고이오노스의 가죽이…]
[고이오노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용의 피가…]
[고이오노스의 레벨이…]
[마법의 효과가 크게 떨어집니다!]
[마법의 효과가…]
메시지창이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떴지만 태현은 무시하고 집중했다.
어차피 스킬 한 방으로 끝장을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냉기 사슬, 아키서스의 냉기 사슬, 아키서스의 냉기 사슬!
-어린 영웅아. 그런 마법으로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니?
고이오노스는 어이가 없었는지 태현을 훈계했다.
냉기 사슬이 나쁜 마법은 아니었지만 드래곤을 쓰러뜨리기에는 위력이 좀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
태현은 멈추지 않고 새로 얻은 비전 마법 스킬을 사용했다.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을 사용했습니다!]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을 사용했습니다!]
[……]
MP가 쭉쭉 내려갔지만 광기의 로브 덕분에 바로 차올랐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구분하기 힘든 분신의 모습에 고이오노스가 깜짝 놀랐다.
-사디크가 이런 재주가? 블랙 드래곤 같은 패배자들과 붙어먹는 한심한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고이오노스는 딱히 악의 없이 상처를 주는 능력이 있었다.
사디크 교단 NPC들이 있다면 엉엉 울었을 정도의 폭언.
-위치 교체!
태현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화염 분신과 위치를 바꿨다.
-고대 제국의 저주, 고대 제국의 저주, 고대 제국의 저주….
저주 연타!
냉기 사슬부터 시작해서 태현은 집요할 정도로 디버프 저주만 시전했다.
고이오노스가 마법으로 반격을 시전하면 태현은 회피력과 분신으로 맞서며 시간을 끌었다.
-어린 영웅아. 나를 약하게 만들려는 건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바다를 찻잔으로 다 퍼낼 수는 없지 않겠니.
고이오노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태현이 고이오노스를 약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잘츠와 전사장 둘의 딜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태현이 노리는 건 그게 아니었다.
‘조금 더 깎는다.’
이번에 새로 얻은 <아키서스의 룰렛>을 쓰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서로 한 명 쓰러질 때까지 공격이 날아온다는 게 어떤 수준인지는 직접 봐야 하겠지만, 고이오노스와 태현이 한 대씩 맞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불리했던 것이다.
최대한 디버프를 덕지덕지 붙여놔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고대 제국의 언데드 소환, 고대 제국의 언데드 소환!
[언데드들이…]
[……]
[……]
그러나 고이오노스 상대로 시간을 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쓰러뜨리기에 앞서 고이오노스의 공격을 일단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태현은 정말 가능한 수단을 닥치는 대로 동원했다.
곳곳에서 언데드들이 고이오노스의 시선을 잡아 끌고, 불리하다 싶으면 분신과 위치 교환하고, 정 안 되면 회피력 믿고 버티고, 권능 스킬을 쓰고….
[고이오노스의 공격을 계속해서 버텨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고이오노스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골드 드래곤 내에서 평가가 오릅니다!]
-훌륭하구나! 가르친 보람이 있다!
고이오노스는 매우 매우 기뻐했다.
뒤에 있는 잘츠나 전사장은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태현만 집중해서 패고 있었는데 그걸 저렇게 버티고 있다니 기특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고이오노스 님! 그런데 왜 저 둘은 안 패는 겁니까??”
문득 억울해진 태현이 피하면서 물었다.
고이오노스는 허공에서 거대한 암석 덩어리들을 만들어서 쏘아보내며 대답했다.
-좀 더 될성부를 영웅에게 투자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니?
-…….
-…….
“질투하는 시선 보내지 마라…!”
태현은 둘의 시선에 울컥해서 외쳤다.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저것들이 일에 집중 안 하고!
[언데드들이 전부 사라집니다!]
하지만 역시 마법만으로 부딪히는 건 역부족이었다.
언데드들한테 폭탄 주고 고이오노스에게 돌격까지 시켰지만 고이오노스는 마법으로 전부 처리한 것이다.
잘츠는 그 모습에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일까?
-이거 잘 되어가고 있는 게 맞나??
“그래. 아직 계획은 진행 중이다! <공포의 화신>, <화술의 근원>!”
[짧은 시간 동안 공포의 화신이 됩니다!]
[화술 스킬의 쿨타임이 없어집니다!]
[화술 스킬의 MP 소모가 없어집니다!]
-뭐하는…?!
잘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지금 한창 싸우는 와중에 왜 화술 스킬을 쓴단 말인가?
항복하게??
그러나 그건 잘츠의 착각이었다.
버프 스킬을 켠 태현의 위로, 어마어마한 양의 언령 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언령 마법으로 둔화의 저주를 시전합니다!]
[언령 마법으로 둔화의…]
[언령 마법으로 둔화의…]
[……]
[……]
마치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언령 마법의 연쇄에 고이오노스는 감탄했다.
-마법이 아니라 화술로. 대단하구나!
‘지금인가?’
미친듯이 쏟아부은 태현은 슬슬 기회가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이제 기회가 아니라도 나서야 할 때였다.
가진 저주란 저주는 다 고이오노스한테 퍼부은 것 같았으니까.
-아키서스의 저주, 아키서스의 룰렛!
[아키서스의 저주가 시전됩니다!]
[아키서스의 룰렛이 펼쳐집니다.]
-???
고이오노스는 처음 보는 권능 스킬에 당황했다.
아키서스의 저주야 대충 짐작이 갔지만 아키서스의 룰렛은 처음 보는 권능이었던 것이다.
버프 스킬인가?
[천벌이 내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