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50화
“…….”
“괜찮아. 잘 말하면 이해해 주겠지.”
“그, 그렇지?”
“사실 그냥 대충 말한 거라 나도 잘 모르겠다. 네 여자친구 속마음을 네 여자친구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
좌절해서 앞으로 엎어진 케인은 내버려 두고, 태현은 유지수와 떠들었다.
“넥돈 퀘스트가 거의 끝이라고?”
“네. 진짜 더럽게 힘들더라고요.”
아키서스 교단 소속, 전직 근위기사 넥돈.
한동안 사라졌던 넥돈은 자신의 친구인 탑지기 앙콜라스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무려 자기 친구를 아키서스 신앙으로 개종시키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좋은 짓인지 나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지수는 그 퀘스트에 휘말렸다.
앙콜라스가 비전 궁술 스킬을 갖고 있는 뛰어난 궁수 NPC다 보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것.
“비전 궁술 스킬이라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렇죠??”
“비전 궁술 스킬이라면 어쩔 수 없지.”
태현은 공감했다.
비전 스킬이라면 어쩔 수 없지!
스킬 하나에 목숨 거는 게 랭커들인 만큼 저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것 같지만 이 퀘스트가 깨다 보니까 <아키서스의 활잡이>로 전직 나오고, 그래서 그걸 염두에 두고 깨고 있었는데….”
“있었는데?”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퀘스트가 연계 퀘스트던데요?”
유지수가 손가락을 쫙 폈다. 태현은 그걸 보고 놀라서 말했다.
“10개?”
“…의 두 배는 될걸요.”
“20개?”
태현은 괜히 자신이 미안해졌다.
저렇게 연계 퀘스트가 많이 붙은 퀘스트라니.
“미안하다. 내가 아키서스 교단 NPC들을 관리 못 해서….”
“아니. 경험치 잘 나와서 하는 거죠. 경험치 안 나왔으면 예전에 접었죠.”
“…….”
아키서스 교단이라서 깨준 게 아니었구나!
훌륭하게 성장한 유지수의 모습에 태현은 감탄했다.
“어쨌든 이 퀘스트 상당히 대형 퀘스트니까, 이거 다 끝나면 한 번 정리해서 드릴게요. 거의 막바지거든요.”
유지수의 말은 상당히 겸손한 편이었다.
위치가 잘츠 왕국 쪽이고 유지수가 이런 걸 전혀 방송할 필요가 없어서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수십 개의 연계 퀘스트를 낀 대형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도 완벽하게 눈치를 채진 못했지만 유지수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런데 저 정도 대형 퀘스트면 대륙에 변화를 주는 퀘스트 아닌가?’
* * *
-앙콜라스! 여기서 저들을 막지 못하면 대륙은 암흑으로 물들을 거다!
-넥돈. 지금이 위험한 상황인 건 알겠지만 호들갑 좀 작작 떨도록.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고대 탑의 유적이 개방됩니다!]
[옛 무덤을 지키는 궁수들이 나타납니다!]
-침입자들을 죽여라!
-침입자들을 무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유지수는 넥돈과 앙콜라스를 보며 욕했다.
보통 NPC를 대할 때는 친밀도를 쌓기 위해 친절하게 대하는 게 태현한테 배운 기본이었지만, 넥돈과 앙콜라스는 그런 기본을 잊게 만들었다.
둘을 따라 탑 지하에 있는 유적에 들어갔더니, 유적 안에서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강한 궁수 집단들이 꺼지라고 나오고, 그 궁수 집단들을 쓰러뜨렸더니 갑자기 그 유적 안에서 또 던전이 열리고, 던전의 문을 열기 위해 근처 마을에서 숨겨진 열쇠를 찾아오고,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될 때마다 정체불명의 암살자들이 자꾸 습격해 오고….
솔직히 유지수 입장에서는 이런 산골짜기 잘츠 왕국 구석에 박혀 있는 탑에 뭐 그리 비밀이 많은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별로 대단한 비밀 같지도 않았다!
그냥 비전 궁술 스킬 내놓고 <아키서스의 활잡이>가 어떤 직업인지나 알려주면 되는데 자꾸 규모만 키우면서 적들만 늘어나고, 넥돈은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모험가 자네가 싸워야 하네!’ 이딴 소리나 하고 있고….
-모험가. 포기하지 말게! 세계는 자네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아. 헛소리 하지 말라고! 세계는 저기 다른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그냥 궁술 스킬만 달라고!”
* * *
퀘스트 이야기는 지나가고, 현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의 주제로 넘어갔다.
유지수가 게임단 운영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태현은 흥미를 가졌다.
“게임단 운영에 관심이라면… 게임단에 입사하려고? 그런데 회장님이 유성 게임단 말고 다른 게임단 들어가면 섭섭해하시지 않나?”
유회장 성격에 손녀가 유성 게임단 말고 다른 게임단 들어가면 꽤나 삐질 게 분명했다.
유지수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죠.”
“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몰래 하면 그만이죠?”
“…!”
“그리고 유성 게임단의 경쟁 상대에 들어가서 돕거나 할 생각 없어서 괜찮아요. 그 정도만 아니면 나중에 알아도 넘어가실걸요.”
‘그러면 숨길 이유가 없지 않나?’
하지만 유지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유성 게임단의 라이벌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아무 상관이 없는 2부 리그 게임단 같은 곳에 들어가는 걸로 유회장이 삐지지는 않….
‘아니 조금은 삐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 들어가게?”
“네? 아. 들어간다고 안 했는데요? 게임단 하나 인수해 보려고 고민 중이었어요.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으니….”
“괜찮은데?”
다른 스포츠 구단에 비하면 게임단은 정말 싸게 먹히는 종목이긴 했다.
게임단에 관심도 없는 기업들이 깔짝대면서 건드리는 것보다는 저렇게 관심 있는 사람이 인수하는 게 훨씬 더 나으리라.
“아앗. 그러면 나중에 비교 좀 해주실 수 있어요?”
태현만큼 보는 눈이 좋은 사람도 드물었다.
어느 게임단이 좋은지, 어느 선수들이 좋은지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다른 애들도 불러서 같이 봐줄게.”
“고맙습니다!”
“이세연도 불러야겠군.”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되는 거 맞나요??”
일단 다른 팀이잖아…!
* * *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고급 마법 스킬이 최고급 마법 스킬로 변합니다!]
‘됐다!!’
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만큼 고이오노스의 훈련이 지독했던 것이다.
[<광기의 마력 회복 로브>를 너무 오래 착용하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해제!!
태현은 바로 로브부터 벗어 던졌다.
그 모습에 고이오노스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키서스의 어린 영웅아. 로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니?
“아니… 로브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워낙 귀중하고 소중한 옷이라 아껴 입으려고 그랬습니다.”
방긋!
고이오노스는 태현의 말에 만족한 듯이 웃었다.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가 당신의 말에 기뻐합니다!]
[친밀도가 오릅니다!]
‘골드 드래곤 종족들이 기본적으로 귀찮은 성격인가?’
태현은 용용이가 들었으면 화냈을 말을 속으로 생각했다.
성격이 나쁜 건 아닌데 여러모로 좀 귀찮았던 것이다.
[최고급 마법 스킬을 얻었습니다.]
[비전 마법 스킬을 얻습니다!]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 마법을 얻습니다!]
‘아니, 쓰레기가 나오네.’
태현은 분노했다.
스킬 하나를 최고급으로 찍으면 그 보상으로 주는 비전 스킬.
이 비전 스킬이 무엇이 나오는지는 매우 매우 중요했다.
어디 가서 쉽게 구할 수도 없는 스킬인 만큼 더더욱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디크의 마법이 나오다니!
아마 태현이 갖고 있는 마법 중 하나가 <사디크의 화염 마법>이라서 그랬던 게 분명했다.
‘사디크 이놈.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군.’
[카르바노그가 사디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킬 확인은 해보고 욕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스킬 확인 안 하고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어. 카르바노그.’
태현은 혀를 차며 스킬을 확인했다.
원래라면 스킬을 확인하고 판단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끔은 그러지 않아도 될 때가 있었다.
이름으로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디크의 화염 환영 분신>
사디크의 화염으로 된 환영 분신을 소환합니다. MP를 소모해 이 분신들과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어라??’
좋잖아??
분신 만드는 스킬은 태현 같은 플레이어한테 매우 쓸모 있는 스킬이었다.
심지어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성능까지 있다니!
태현처럼 변칙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트릭스터 스타일의 딜러에게 이런 마법은 정말로 괜찮았다.
‘…함정 없나? 뭔가 안 좋은 조건이??’
[카르바노그가 사디크 안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사디크가 좀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정말로 좋은 스킬이었다.
스킬 보상으로 좋은 걸 받은 기억이 별로 없고, 하물며 사디크 관련으로는 더더욱 없었던 태현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 사디크도 가끔은 좋은 걸 주는 건가.’
태현은 깊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디크도 가끔은 맞는 말, 아니, 좋은 스킬을….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마법 스킬을 최고급으로 찍은 것에 대한 경험치 보상.
그리고 동시에 다음 메시지 창이 떴다.
[<화신의 성장>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화신의 성장-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아키서스의 화신으로서, 열 개 이상의 스킬을 고급 이상으로 찍은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아키서스의 뜻과 별개로 이 길을 실제로 걷는 자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무작위 스킬 세 개를 최고급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도전에 전부 다 성공했던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무작위 스킬 세 개를 최고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퀘스트.
하지만 직업 퀘스트라서 무시할 수도 없었고, 태현은 요리 스킬이나 노래 스킬을 강제로 찍으면서 개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 퀘스트도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아키서스의 권능을 깨닫습니다.]
[아키서스의 룰렛을 얻습니다!]
‘…아키서스의 룰렛??’
그러나 태현이 아키서스의 룰렛 효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다음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화신의 길-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여러 스킬들을 빼놓지 않고 최고급의 경지까지 달성한 당신은 그야말로 아키서스의 환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지는 법.
최고급의 영역에 도착한 이상 앞으로의 성장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제발 좀 도와주는 스킬을 주면 안 되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말하는 것치고 아키서스 교단이나 화신에서 딱히 직업 스킬로 도와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 태현이 맨바닥에 헤딩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위대한 아키서스의 뜻으로 화신을 도울 방법이 준비되어 있으니.
스킬 <아키서스의 금제>를 받고, 최고급 스킬 중 하나의 레벨을 올려라!
보상:?, ???
‘…생각보다 그렇게 무리한 퀘스트는 아닌데?’
최고급 찍으면 스킬 레벨 1 올리기가 미친 듯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레벨 하나 올리는 게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다.
게다가 퀘스트가 도와준다면 더욱더 할 만한 퀘스트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아무것도 없는 스킬 최고급 찍는 것보다는 오히려 할 만한 것 같은데….’
[스킬 <아키서스의 금제>가 강제로 발동합니다!]
<아키서스의 금제>
랜덤으로 스킬 하나를 일시적으로 봉인합니다. 그동안 다른 스킬의 성장폭이 크게 증가합니다.
“…!!!!”
태현은 오랜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