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46화
플레이어였다면 교단에 가입해서 착실하게 단계를 올리라고 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
태현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행운이라고 우겨야겠군.’
생각해 보니 사랑보다 행운이 이런 점에서 좀 더 유리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붙잡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자! 전사장 님이 앞에 서시고 공격을 받아내는 겁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휘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잘츠는 뒤에서 활을 들고 지원! 적의 약점을 노리는 거다! 골드 드래곤의 눈을 쏴버려! 방어 마법이 사라지고 나면 기회가 생길 터!”
-…그런데 이게 행운의 힘과 무슨 상관이지?
뒤에서 활을 들고 조준하던 잘츠는 문득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합을 맞춰보는 건 좋은데, 그가 생각했던 행운의 힘과는 좀 달랐던 것이다.
그가 생각했던 행운의 힘은 좀 더 한 방에 확, 하고 날로 먹을 수 있는 그런….
“뭘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행운의 힘은 평소부터 꾸준히 노력하는 데에서 나오는 거다.”
-…정말?
잘츠는 그 말을 듣고 아리송해졌다.
확실히 평소부터 노력해서 나오는 거라면 좀 그럴듯하긴 했는데….
-과연! 평소부터 노력하는 것에서 행운의 힘이 나온다니. 마음에 드는군.
그에 비해 전사장은 태현의 이론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계속해서 같이 싸우는 것으로 인해 움직임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스킬들을 연계시킬 때 실패 확률이 줄어듭니다.]
‘문제는 이걸로 이길 수 있을 만큼 드래곤이 만만하지 않다는 건데.’
일단 셋이서 힘을 합치는 건 좋았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드래곤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저번에는 어떻게 잡았더라?’
현재 수준으로 잡을 수 없는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는, 그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동맹 NPC들을 불러와야 했다.
태현 같은 경우는 대악마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의 천사들까지 동원하곤 했지만….
‘지금은 동원 가능한 상황이 아니지.’
먼 과거로 날아가 시련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다른 세력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태현은 반성했다.
‘좀 더 성실하게 살아서 레벨 한 500쯤 찍어놨으면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지만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서 퀘스트를 깨온 것에 대한 반성을 조금 하고 나서, 태현은 생각을 바꿨다.
‘내가 갖고 있는 권능 스킬들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키서스의 영혼관>이었다.
태현이 갖고 있는 권능들 중 가장 강력한 권능.
이제까지 쓰러뜨렸던 적들의 영혼을 가둬 놓고 필요할 때 불러내서 쓰는….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사악하게 들리는데?’
[카르바노그가 정의로운 곳에 쓰면 정의로운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이 영혼관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권능이긴 했다.
에다오르부터 시작해서 여러 대적들이 안에 들어 있었으니까.
‘문제는 저번에 굶주린 혼돈 던전 깨느라 우이포아틀로 변신했다는 거지. 아직 쿨타임 돌아오려면 멀었고.’
그다음으로 태현이 주목한 건 검술 스킬 중 하나인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각성>이었다.
하늘섬에서 고생고생하면서 아키서스 고대 신전 찾아서 열었던 보람이 있는 스킬!
성기사단장으로 일시적으로 각성하는 이 스킬은, 검술 관련해서 거의 사기적인 힘을 자랑했다.
한 번 써서 변신하는 순간 무적의 살육기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골드 드래곤 상대하기에는 좀 부족하게 느껴지는군.’
태현은 다른 스킬들을 점검해 봤다.
기계공학, 요리, 화술, 노래, 대장장이 기술….
없나?
정말로 없나?
‘역시 답은 직업 스킬밖에 없나.’
아키서스의 화신이 정말 괴상한 직업이라고 투덜거리긴 해도, 갖고 있는 권능 스킬들이 독특하다는 것까지 부정할 순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뒤흔드는 강력한 변수.
‘지금 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권능 스킬 퀘스트는….’
<화신의 성장-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아키서스의 화신으로서, 열 개 이상의 스킬을 고급 이상으로 찍은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아키서스의 뜻과 별개로 이 길을 실제로 걷는 자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무작위 스킬 세 개를 최고급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도전에 전부 다 성공했던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거군.’
무작위 세 개 스킬 최고급.
다른 두 개는 이미 예전에 찍은 상태였지만 아직도 남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마법 스킬이었다.
나름 열심히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고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태현이 유난히 마법 스킬과 인연이 없긴 했다.
태현이 마법 스킬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태현 본인은 꾸준히 마법 스킬을 찍고 올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르지 않는다는 건….
[카르바노그가 마법이 적성에 안 맞는 거냐고 묻습니다.]
‘아니. 직업 때문이지.’
아키서스의 화신은 스탯과 스킬에 장점이 있는 대신 레벨 업에 강력한 페널티를 거는 직업.
레벨 업에 페널티가 걸리면 가장 먼저 부족해지는 게 HP와 MP였다.
HP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텨서 해결을 본다지만 스킬 쓸 때마다 팍팍 주는 MP를 해결 볼 수는 없었다.
HP를 MP로 전환하는 스킬 같은 것도 HP가 워낙 부족해서 쓰기 힘들었고….
MP가 부족하니 태현이 싸울 때 마법을 피하는 것도 당연해졌다.
안 그래도 써야 할 스킬들 많은데 굳이 MP 소모 심한 마법을 써가면서 불리해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마법 스킬에 걸어봐야 했다.
마법 스킬 최고급 찍고 아키서스 퀘스트 진행시켜서 권능을 받는 걸로 상황을 돌파한다!
[그런데 카르바노그가 쓸데없는 권능을 받으면 어떡하냐고 묻습니다.]
‘…조용히 해라.’
* * *
-마법은 진정한 검의 힘에 비교하면 너무 하찮고 약한 힘이지.
전사장은 신사다운 태도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그에 비해 잘츠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마법 쓰레기지.
“…….”
태현은 이 둘을 괜히 골랐나 후회했다.
전사장은 뭐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런 것보다 이걸 좀 봐주겠나? 갑옷을 벗고 공격을 맞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회피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군. 이게 행운의 힘인가?
“행운의 힘 맞습니다.”
-나는 눈 감고 화살을 쏘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좀 더 많이 맞는 거 같은데 이것도 행운의 힘이고?
“행운의 힘 맞다.”
-오오오….
-오오오….
태현은 이 둘에게 물어보는 대신 투기장에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 혹시 마법 잘 쓰는 사람 없나?”
-마법? 쓰레기….
“쓰레기처럼 맞기 전에 묻는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너무 거친 거 아니냐?? 마법 잘 쓰는 상대가 있긴 하지.
“오.”
태현은 솔깃했다.
역시 고대 제국 시절이라고 뛰어난 마법사들이 여럿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대 제국 시절이 영웅들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마법 아니겠는가.
당장 느부캇네살처럼 본인이 신에 도전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도 고대 제국 출신이었고, 실전된 마법들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렇게 생각하니 또 설렜다.
누구지?
-음. 지도를 줄 테니 한번 가봐라.
[지도가 추가되었습니다!]
“고맙다. 잘츠.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너도 장점이 있긴 있구나.”
-…….
[잘츠의 친밀도가 아주 조금 떨어집니다!]
* * *
‘같은 검투사인가 보군.’
이 검의 투기장에는 대륙에서 몰려온 여러 영웅들이 있었다.
당연히 뛰어난 마법사도 있으리라!
‘마탑 출신이면 좋겠는데.’
[카르바노그가 왜냐고 묻습니다.]
‘마탑 출신이면 돌아가고 나서도 퀘스트 관련해서 받을 수 있으니까.’
고대 제국 시절 마탑 마법사면 현재로 돌아가도 꽤나 유리했다.
게다가 이세연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세연이 불평없이 맨날 도와주는데 나도 뭔가 해주고 싶군.’
[해골 선물하는 건 어떠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네크로맨서라고 무조건 해골을 좋아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강력한 시체의 해골이라면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흠. 하긴. 이세연은 좋아할 거 같아.’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에 납득했다.
그냥 해골이라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강한 해골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누가 싫어하겠어?
똑똑똑-
“계십니까?”
전사장의 숙소에 쳐들어갔던 것과 달리 태현은 매우 예의 바르게 접근했다.
마법사들은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던 것이다.
친절하고 예절바른 아키서스 젊은이로서 접근하겠다!
-들어오도록 하려무나.
다행히 안에서는 따뜻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태현은 안심했다.
‘생각보다 덜 괴팍한 모양이군.’
[카르바노그가 아직 방심하기는 이르다고 말합니다.]
마법사들 중에는 워낙 괴팍한 놈들이 많다 보니 목소리가 친절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아무것도 없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투명 마법?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 건가?
-그쪽이 아니라 위를 보려무나.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고개를 들어서 위를 보자….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를 목격합니다!]
[공포 상태에….]
[칭호로 인해 공포 상태에 면역됩니다!]
[….]
[….]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골드 드래곤 종족과 대면했을 때 특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잘츠 이 미친놈이…!
태현은 속으로 경악했다.
마법을 잘 쓰는 상대가 누군가 했더니….
골드 드래곤을 말한 거였다.
아니, 마법을 잘 쓰는 상대긴 했다. 골드 드래곤만큼 여기서 마법에 능한 자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미친놈이!
‘돌아가면 아키서스 형에 처하고야 말겠다.’
-아키서스의 어린 영웅아.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더냐? 혹시 어디 아프거나 다친 곳이라도 있느냐?
“딱히 그런 곳은 없….”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라. 내가 주문서와 포션을 갖고 있으니까.
“…진 않고 그렇게 말하니까 예전에 입었던 상처가 욱신거립니다. 굶주린 혼돈 놈들에게 당했던 상처가….”
-저런!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가 아이템을 선물합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는 연금술과 마법의 달인이었다.
그런 만큼 고이오노스가 만든 포션과 주문서의 질도 보통이 아니었다.
<고이오노스의 최상급 체력 포션>
<고이오노스의 최상급 마력 포션>
<고이오노스의 최상급 상태 회복 주문서>
<고이오노스의….>
<….>
‘산… 산타인가?’
태현은 감동받은 표정으로 아이템을 주섬주섬 챙겼다.
고이오노스는 어린 손자를 보는 늙은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린 영웅아. 많이 챙기고 많이 강해지려무나.
“감사합니다.”
-그래서 온 이유는 이게 다더냐?
“아… 그게 아니라….”
태현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신 쓰러뜨려야 하는데 마법 좀 배울 수 있어요?
…를 어떻게 세련되게 말하지?
[카르바노그가 그냥 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젠장. 맞는 말이긴 해.’
화술 스킬도 잘 통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빙빙 돌리는 것보다 본론을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실패하면 잘츠 몇 대 패고 나서 다른 마법사를 찾아보자!
“마법 스킬을 좀 연습하고 싶어서 여기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를 찾아왔습니다만….”
-뭐라고??
고이오노스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잘못 건드렸나?’
-참으로 잘 왔다! 그래. 요즘 영웅들은 이렇게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