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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45화 (1,444/1,826)

§ 나는 될놈이다 1445화

‘아니. 아직 당황할 필요가 없지.’

태현은 진정했다.

왕국 세우겠다고 말하는 놈들이 다 왕국을 세울 수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케인은 지금쯤 결혼해서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 했으니까.

동명이인이긴 했지만 뭐….

[카르바노그가 그런데 이 투기장에 들어오는 자들을 생각해 봤을 때 저 잘츠라는 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으음. 그러면 지금 이 잘츠를 죽이면 잘츠 왕국이 사라지나?’

[카르바노그가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과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잘츠 왕국은 대륙에서 태현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왕국에 속했다.

무엇보다 태현이 잘츠 왕국 출신 아니었던가.

타이럼 사냥꾼들이 산을 타고 다니며 뛰어노는 곳이 바로 잘츠 왕국.

물론 잘츠 왕국이 문제가 없는 왕국은 아니었다.

‘잘츠 왕국 아직도 초보자들의 지옥일 텐데.’

판온이 열린 지 꽤 됐는데도 아직도 잘츠 왕국에 관한 낚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초보자라면 잘츠 왕국에서 시작하세요. 두 번 시작하세요.

-뭐? 에랑스 왕국?! 잘츠 왕국이지!! 너 바보냐?!

-에랑스 왕국에서 시작하는 건 삼류다. 아탈리 왕국에서 시작하는 건 이류다. 잘츠 왕국에서 시작하는 게 일류다.

-잘츠 왕국 위치부터 봐라. 서쪽으로는 에랑스 왕국이 있고 동쪽으로는 오스턴 왕국이 있는 데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탈리 왕국이 나오는 교통의 요지야! 어떻게 이런 곳이 안 좋을 수가 있겠어?

‘생각해 보니 이건 잘츠 왕국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 잘못이군.’

초보자들 상대로 낚시하는 놈들 잘못!

“그래. 왕국을 세운다니 잘 됐으면 좋겠군.”

-뭘 좀 아는걸? 내 왕국은 가장 험준한 곳에 세워질 거다.

“…아니. 내가 어지간하면 넘어가려고 하는데 자꾸 참기 힘들게 만드는군. 대체 왜 험준한 곳에 세우려는 거지?”

골짜기 같은 똥땅을 받은 태현 입장에서는 험준한 곳에 세워진 영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

영지는 일단 무조건 기름지고 풍족한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잘츠는 멍청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한 대 더 칠까…? 아니. 그랬다가는 왕국 세우면서 아키서스 놈들 죽으라고 유언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참아야지.’

-험준한 곳에 세워야 왕국이 오래 가지! 나는 천 년도 넘게 가는 왕국을 세우고야 말겠다.

“그렇군. 그건 일리가 있어.”

-그렇지? 가장 험준한 산 위에 세워질 왕국. 그런 만큼 사냥꾼들과 레인저들이 필요하겠지. 이들을 우대해서 내 왕국의 병사들로 만들겠다.

“…다른 제작 직업들을 데리고 올 생각은 없나? 아니면 마법사나 전사나….”

-에이. 산 위인데 그런 게 왜 필요하지? 그리고 제작 직업이라니. 그런 건 그냥 사오면 되잖아.

“산 위로 사서 들고 간다고?”

-훈련도 되고 좋지 않나?

“…너 원래 직업이 혹시 사냥꾼이었나?”

-어떻게 알았지? 맞다. 자이언 산맥의 거인 사냥꾼이 바로 나지.

“…….”

잘츠 왕국은 어떻게 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태현은 포기하고 시선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전사장과 함께 이 시련을 통과하는 거였으니까.

쿵쿵쿵-

태현은 문을 세게 두드리며 외쳤다.

“계십니까!”

-안 계시는 거 같은데 돌아가지 않을래?

“들어가겠습니다!”

쾅!

-야!

잘츠가 기겁해서 말리려고 했지만 태현은 화끈하게 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건물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지만, 태현이 일으킨 소란 때문인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냐?

“새로 온 검투사입니다.”

-인사할 필요 없다. 돌아가도록.

“인사해야겠습니다.”

-…뭐하는 미친놈이….

쿵, 쿵, 쿵-

전사장이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거대한 소리.

마치 거인처럼 거대한 덩치였다.

…아니 그냥 거인이었다.

‘거인이잖아!?’

[고대 제국은 거인도 차별하지 않고 잘 썼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건… 대단하긴 한데… 거인은… 옆의 사람을 먹지 않나??’

[뭐 배부르면 안 먹지 않겠냐고 카르바노그가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저거 대충 말하는 거 봐.’

안 그래도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판온 종족들 중에서 압도적인 종족이 거인인데, 그런 거인이 전사로서의 능력도 뛰어나면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인 여럿 잡아 본 잘츠 입장에서는 더더욱 겁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잘츠. 거인 사냥꾼이라면서? 왜 겁을 먹지?”

-쉿… 쉿! 미쳤냐!!

잘츠는 기겁했다.

저런 거인 전사 앞에서 거인 잡았다는 전적을 이야기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아.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이… 이놈….

잘츠는 겁에 질려 떨었지만, 전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군. 내가 다른 인간을 죽였다고 해서 너희들이 그 인간의 원수를 갚고 싶어하지는 않을 텐데, 왜 나는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

-…….

생각보다 너무 유창하고 지적인 전사장의 말투에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당황했다.

어라?

거인 아닌가?

태현의 기억 속에서 거인은 보통 ‘배고프다! 밥 내놔라! 먹는다! 우와아앙!’이러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사장은 2.5 케인 정도 되는 것 같은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인 맞아?

“맞는… 말이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반성하도록 하라. 사냥꾼.

-…반, 반성하겠습니다.

잘츠는 반성했다.

원래 이 투기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겁 없는 사냥꾼으로 불리는 잘츠였지만, 이 투기장에 오고 나서부터는 겁이 많아진 상태였다.

검투사들부터 시작해서 상대까지 너무 쟁쟁했던 것이다.

잘츠에게 훈계를 마친 전사장은 태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인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숙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지나치게 난폭하고 야만스러운 짓 아닌가?

너무 맞는 말이라 이건 태현도 어떻게 할 말이 없었다. 태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잘츠가 했습니다.”

-?!?!!

잘츠가 기겁해서 태현을 쳐다봤지만, 태현은 못 본 척했다.

전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하긴 이제 막 새로 들어온 검투사인데 그런 짓을 하진 않았겠지. 사냥꾼. 남의 숙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아니….

길고 긴 설교가 끝나고 나서야 태현은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전사장님. 저는 전사장님을 도와서 시련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밖은 지금 적들로 인해 난리가 난 상태입니다.”

-이런. 그게 정말인가? 내가 전사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야.

전사장은 신사답게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거인인데도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고 우아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바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저 골드 드래곤을 쓰러뜨려야 하니까.

“맞습니다. 골드 드래곤을 쓰러뜨려야 하지요.”

-내가 들어오기 전에 아주 강력한 힘에 대해 들은 게 있었지.

“!”

-!

전사장의 말에 태현과 잘츠 모두 솔깃해했다.

-내 밑의 전사들이 얻은 정보인데, 사랑의 힘이 그렇게나 강력하다더군.

“…….”

-…….

태현과 잘츠 모두 어이없어했다. 잘츠는 특히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아니, 뭔 사랑의 힘이 그렇게 강력하겠소? 사랑의 힘 같은 건 날카로운 화살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데!

전사장은 가만히 주먹을 들었다. 그러자 잘츠는 떠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몰라도, 전사장의 주먹이 강력하다는 건 짐작이 갔던 것이다.

“그 사랑의 힘이라는 건 아마 전사들이 좀 오해한 것에 가까울 겁니다.”

-아. 역시 그런가? 하긴 내 부하들이 좀 오해를 많이 하긴 하지. 걱정일 때가 많네.

“그래서 제가 설득했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에 솔깃해하는 자도 있어 따끔하게 말해놓았고요.”

-그건 정말 잘 됐군.

[고대 제국 전사장이 당신의 헌신에 감사합니다!]

[고대 제국 전사장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고대 제국 전사들 내에서 평가가…]

[……]

-그러면 내 부하들은 지금 무슨 힘을 쫓고 있지?

“…어….”

-?

“…행운의 힘…을 쫓고 있긴 한데.”

옆에서 듣고 있던 잘츠가 감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행운의 힘이라니. 그건 꽤 강력해 보이는군.

사냥꾼 입장에서 행운은 언제나 필요했던 것이다.

대충 쏴도 급소에 맞는 행운, 상대의 숨통이 바로 끊어지는 행운, 희귀한 사냥감을 발견하는 행운….

그러나 전사장은 당황스러워할 뿐이었다.

-전사라면 무릇 자신의 힘을 단련하고 그걸로 이길 생각을 해야지 행운의 힘에 기대면 안 되지 않나? 그걸… 요행이라고 하지 않나?

‘이 거인 너무 싫군.’

사실로 두들겨 맞은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 대신 잘츠가 반박했다.

-세상일에 운이 들어가지 않는 게 어디 있겠소. 이 투기장에서의 싸움도 운이 필요한데! 그런 걸 배제하고 순수한 실력만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오. 세상의 경험이 부족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란 말이오!

말하던 잘츠는 전사장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전사장은 잘츠를 죽이려고 쳐다본 게 아니었다.

-그럴듯한 말이군. 그래서 고대 제국 시절에 아키서스 교단이 그렇게 강했던 건가?

전사장과 태현이 고대 제국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잘츠는 알아듣지 못했다.

잘츠는 말 그대로 여기 두 사람과 시대가 전혀 다른, 고대 제국 시절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아키서스 교단은 당연히 강하지. 그게 바로 행운의 힘 아니겠소? 얼마 전에도 아키서스 교단이 악마 군단을 오뢱스 강에서 전멸시켰소. 교단이 아니었다면 도시 몇 개가 날아갔을 거요.

‘이렇게 들으니까 정말 위화감 장난 아니군.’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교단 성기사들이 여럿 죽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 아니겠소. 원래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법.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는 안 죽었나?”

-안 죽었는데?

“…….”

태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고대 제국의 전투, 오뢱스 강의 전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제국 관련 정보가 늘어납니다!]

[이 일을 제대로 확인할 경우 돌아가서 보상이…]

[……]

[……]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 강함을 추구하면서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를 무시하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계속 검술 훈련만 할 게 아니라 그 행운의 힘을 받아들여보도록 해야겠네.

전사장은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태현에게 말했다.

-자. 내게 행운의 힘을 전수해 주게.

-나도 한 번 배워보자!

“…….”

<행운의 스승-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검의 투기장에 참가한 영웅들은 투기장을 지배하는 골드 드래곤을 꺾고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

당신은 그런 그들을 이끌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아키서스의 권능과 힘으로, 진정한 행운의 힘이 무엇인지 그들이 깨닫게 만들어라.

그런 게 과연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보상: ?, ???, ????

퀘스트가 나온 건 좋았는데 너무 막막한 퀘스트였다.

행운의 힘을 깨닫게 하라니.

교단에 가입해서 신성 마법이나 스킬들 나올 때까지 공적치 쌓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셋 중 한 명이 폭탄 돼서 골드 드래곤 잡고 나가면 안 되나?’

[그건 행운의 힘이 아닌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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