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41화 (1,440/1,826)

§ 나는 될놈이다 1441화

원래 힘든 퀘스트는 다 같이 해야 하는 법.

퀘스트를 혼자 먹으려고 하면 배탈이 나게 마련이었다.

그중 몇몇 플레이어는 좀 더 나갔다.

-와, 고대 전사들 사원 진짜 대단한데?? 진짜 대단한데???

…이렇게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그 밑에는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몰려왔다.

-어떻게 대단한데요? 뭐가 달라요?

-대체 뭐가 있는 거죠?? 특수한 장비를 파나요?

-진짜 대단함. 아. 이거 참 대단한데. 정말 대단한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그러니까 뭐가 대단한…?

-지금 퀘스트하느라 대답할 시간 없음!

-???

-저거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에이… 저거 거짓말해서 뭐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몇 명인데 곧 답이 나오겠지.

글을 올린 플레이어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퀘스트를 공유하니 기분이 좋군!”

“넌 정말 쓰레기야.”

* * *

‘대규모 공성전 오랜만에 하니까 정신이 없군.’

태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오랜만에 긴장 잔뜩 하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일대일로 맞붙는 싸움이 연주자 혼자 하는 독주라면, 수천수만 명이 넘게 참가하는 대규모 공성전은 일종의 오케스트라에 가까웠다.

일개 참가자면 머리 비우고 시키는 대로 눈앞의 적만 상대하면 됐지만, 지휘하는 사람은 온갖 걸 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방어시설 내구도부터 시작해서 배치되어 있는 플레이어들 숫자, 걸려 있는 버프들, 걸어야 하는 버프 쿨타임, 적들이 준비하고 있는 스킬들….

레벨과 별개로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숫자가 적었다.

쑤닝도 게시판에서는 ‘만 명으로 1명도 못 이기는 사람이 있다?!’ 같은 식으로 조롱받곤 했지만 사실 지휘 능력만 놓고 보면 나름 준수한 편에 속할 정도!

안 그렇다면 그렇게 공성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괜히 대형 길드들에서 판온 1때부터 공성전 해온 경력자들 구하는 게 아니었다.

“11번 구역 맡고 있는 플레이어들 뒤로 확 빠져라! 스킬 날아온다! 13번 구역 맡고 있는 플레이어들 앞으로! 괴수들이 땅 파기 전에 공격해서 물러나게 만들어! 힐러들은 4번 구역 전체에 버프 넣어! 4번 구역 위험하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태현은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러가며 덤벼드는 다크 엘프 암살자들에게 치명타를 넣었다.

그러면서 계속 주변을 확인하면서 지시 내리고 전술 스킬 버프를 걸어줬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써서 버프를 걸어주려면 계속해서 주변 보고 지시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의 귀환, 죽음으로부터의 행군! 사악한 거부의 오오라!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을 사용했습니다! 언데드 대군이 다시 한번 일어납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행군을….]

[…….]

콰아아아악!

굉음과 함께 사원 절벽 앞에 거대한 언데드 군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마법을 준비한 이세연이 드디어 시작한 것이다.

-흑마법사를 노려라! 흑마법사를 노려라!

-저 흑마법사가 아키서스 교단 놈팽이보다 더 위험한 자다!!

“…….”

이세연도 살짝 상처받았다.

흑마법사라고 욕 많이 먹는 건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저런 참신한 욕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다크 엘프 고위 암살자들이 순간이동을 사용합니다!]

[다크 엘프….]

“이세연. 조심해! 얘네 생각보다 까다롭다!”

태현은 경고를 날렸다.

지금 앞에서 절벽을 타고 날아오르는 다크 엘프 암살자들을 상대해 보니, 이들이 까다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암살자 주제에 공격 마법이나 저주 스킬도 걸고 독 스킬도 사용하는 다재다능한 놈들!

마법 잘 쓰는 다크 엘프들답게 암살자 하나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살자 직업이라 방어력이 낮고 HP가 낮은 편이라, 태현이 폭딜로 숫자가 늘어나기 전에 끊을 수 있었던 거지만….

암살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순간 상황이 급격하게 꼬일 게 분명했다.

“암살자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이세연은 냉정하게 판단하고서 말했다.

마법사의 천적이 암살자라지만, 그런 만큼 암살자 상대로 일일이 겁먹어서는 마법사 랭커가 될 수 없었다.

암살자가 가까이 붙어도 아무렇지 않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직스러운 이세연의 반응에 태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이게 파티 플레이 아니겠는가.

서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함.

암살자 여럿이 덤벼드는데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냉정하게 지팡이를 겨누는 이세연의 모습에서는 마치 국밥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카르바노그가 뭔가 이상한 비유라고 의아해합니다.]

팟!

팟팟팟팟팟팟팟….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서 미친 듯이 나타나는 다크 엘프 암살자들.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구나!’

다크 엘프들이 작정하고 암살자를 보냈다는 게 실감이 됐다.

“김태현…!”

“가고 있다!”

아무래도 저것까지 다 상대하기는 무리였는지 이세연이 태현을 불렀다.

태현은 후다닥 내달렸다. 저 암살자들 중 몇 명만 공격에 성공해도 이세연 HP는 쭉쭉 깎일 테니까.

-비겁한 자 같으니! 감히 흑마법사와 결탁해?! 네가 그러고도 신을 섬기는 자냐?

“…암살자 놈들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지!”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서 반격했다.

암살자들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탓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심해라. 다크 엘프 놈들은 지독한 놈들이다!

우리 안에 갇힌 고대 제국 왕자, 페르소텔턴이 외쳤다.

하도 싸운 경험이 많았기에 다크 엘프들도 상대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놈들이 지금 <혈관을 파고드는 맹독>을 쓴다! 뒤로 물러서서 피해라!

[페르소텔턴의 조언으로 인해 다크 엘프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가 늘었습니다!]

[<혈관을 파고드는 맹독> 스킬의 위력이 감소합니다!]

페르소텔턴은 제국의 왕자답게 강력한 버프들로 태현을 지원해줬다.

사슬로 꽁꽁 묶인 채 우리 안에 갇혀 있어도 클래스는 어디 가질 않는 것이다.

[페르소텔턴이 제국의….]

[…….]

[…….]

[전체 능력이 크게 오릅니다!]

페르소텔턴의 응원에 힘입어 태현은 암살자들과 팽팽하게 맞섰다.

그냥 싸워도 정신이 없는데 뒤에 있는 이세연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만큼 더더욱 정신없는 상황.

그러나 태현은 이를 악물고 맞섰다.

-아키서스의 두 번째 공격, 반격의 원, 폭발 도약, 광기의 폭발 검법, 치명타 폭발!

[아키서스의 두 번째 공격을 사용했습니다! 광역 공격이….]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췄습니다. 반격의 원으로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 보냅니다!]

[광기의 폭발 검법이 시전됩니다! 화염 폭발이 일어납니다!]

-잘하고 있다, 아키서스의 후계자! 너는 제국의 자존심이다!

-…어?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싸우던 고대 제국 전사들은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생김새를 가지신 분인데…?

-저분 이상하게 낯이 익지 않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싸움에 집중해라!

고대 제국 전사들은 이상하게 페르소텔턴에게 신경이 쓰였지만, 워낙 적들이 새까맣게 몰려 들어오는 상황이라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일단 적들부터 해치우고 보자!

-적들이 물러선다!

[누적된 피해로 인해 다크 엘프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누적된 피해로 인해 드워프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

[…….]

[적들이 물러섭니다!]

-후퇴해라!

기껏 보낸 암살자들도 실패하고 피해가 누적되자, 다크 엘프들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후퇴 명령을 내렸다.

-후퇴해라! 후퇴해라!

-지금 다들 귀를 막고 있습니다.

-깃발로 후퇴 신호를 보내!

* * *

이겼지만 고대 제국 전사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적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그 기세도 살벌했던 것이다.

지금은 잠시 물러났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

전사들은 절벽 위에 모여서 휴식을 취하며 대책을 고민했다.

-행운의 힘을 어떻게든 더 끌어내야….

-그런데 행운의 힘을 어떻게 끌어내는 거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행운의 힘이 솟아나는 것인가?

멍청한 소리들은 무시하고, 태현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전사장은 왜 안 보이는 거지?”

생각해 보니 회의장에는 전사들만 있었고, 이 사원의 전사들을 이끄는 전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서 나오지 않고 있나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까지 나오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모습을 드러내야 하지 않나?

-전사장께서는 지금 나서서 싸우실 상태가 아닙니다.

“부상을 입은 상태인가?”

-예. 더욱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수련을 하시다가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전사들은 원통하다는 듯이 말했다. 태현은 설마 싶어서 물었다.

“…설마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 수련하다가 다친 건 아니지?”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검술을 수련하시다가 다치신 건데요?

“아. 다행이군.”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 수련하다가 다쳐서 도움이 안 되는 거라면 전사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뻔했던 것이다.

뒤에 있던 페르소텔턴이 말했다.

-제국 검술들 중에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검술들이 많다. 전사장은 그런 검술을 이어받았을 테니, 익히다가 크게 다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자기 몸 지키려고 배우는 검술인데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건 너무 안 좋은 검술 아닌가?”

태현의 말에 듣고 있던 카르바노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신 너… 광기의 폭발 검법 쓰고 있잖아…?

-검술은 원래 배우다 보면 다칠 수 있는 것!

-맞다! 검술은 원래 파괴적이다.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하지.

이세연은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저럴 거면 그냥 마법을 배우지 뭐하러 검술을….

전사 중 한 명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저기 묶여 있는 자는 대체 누군데 고대 제국에 대해 저렇게 잘 아는 거지?

“저 사람은….”

페르소텔턴이 황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자기 정체를 말하지 말아달라는 신호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국의 왕자가 굶주린 혼돈에게 타락했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잖나!

“아. 그거 때문에?”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나?

“전 쇠사슬로 묶인 채 감옥에 갇힌 게 수치스러우신 줄 알았죠.”

-그건 별로 수치스럽지 않은데? 제국에서는 이렇게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흔했다.

“…?”

어쨌든 태현은 왕자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 사람은 음… 그냥 고대 제국에 대해 잘 아는 미친 사람이지. 풀어 놓으면 광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묶어 놓았다.”

-과연. 그냥 미친 사람이었군.

-어쩐지 잘 안다 싶었지.

제국 전사들은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니 그냥 믿고 넘어갔다.

계속 대책을 고민하던 전사들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행운의 힘이 대단하다면 전사장님도 행운의 힘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닌데.”

-그럴듯하다!

“그럴듯하지도 않은데.”

-교황이여! 행운의 힘으로 부디 전사장님을….

* * *

“어… 왜 다들 우리를 이렇게 노려보는 거지?”

뒤늦게 사원 입장 퀘스트를 깨고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먼저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눈총에 당황했다.

왜 노려보는 거지?

“조금만 더 빨리 들어오지….”

“요즘 사원에 들어오는 놈들은 완전 꿀 빤다니까. 나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기껏 공성전에 참가시키려고 수작을 부렸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피해 버린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