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40화
-저 우둔한 전사 놈들이 머리를 쓴다!!!!
곳곳에서 다크 엘프들을 지휘하고 있던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외쳤다.
고대 제국 전사들은 발끈했다.
-감히 우리가 평소에는 머리를 쓰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다니!
-저건 우리를 도발하려는 흉계다! 넘어가지 마라!
-아차. 당할 뻔했군. 행운의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추한 질투로다!
도발은 가끔 투박하고 서투른 솜씨로 해야 더 효과적일 때가 있었다.
지능 관련으로는 산맥의 여러 적들에게 무시받고 있는 고대 제국 전사들의 도발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우리 다크 엘프들이 너희를 질투한다고!? 우리 위대한 보랏빛 거미 부족이!?
-드워프의 수염에 맹세코, 흑요석 왕관 부족의 정문에 저놈들의 모가지를 매달아버리고 말겠다!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은 드워프들이 평소 이상으로 흉흉한 살기를 내뿜자,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진정하라, 드워프들아! 멋대로 돌격했다가는 피해만 커질 뿐이다. 괜히 진형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지금 우리한테 명령을 내리는 거냐, 이 음험한 놈들아? 감히 누구한테 명령을? 너희 일이나 잘 해라!
“그래! 다크 엘프들이 드워프들을 좀 무시하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
태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술 스킬을 가동시켰다.
MP 하나 없이 수만 명의 적들을 이간질시킬 수 있는 것이 화술 스킬의 힘인 것이다.
[여러 드워프 부족들과 친밀도가…]
[칭호로 인해 드워프들에게 평가가…]
[……]
[……]
게다가 태현은 드워프들과 어울린 경험들이 꽤 많았다.
그런 전문가가 ‘다크 엘프들은 드워프들을 많이 무시하긴 하지’라고 외치자, 타락한 드워프 부족들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팍팍 썼다.
-역시…!
“다크 엘프들아. 드워프들도 너희를….”
-모두 귀를 막아라!!! 모두 귀를 막아라!!! 저놈,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놈이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태현은 깜짝 놀랐다.
다크 엘프 대마법사들이 황급하게 부족원들의 귀를 막기 시작한 것이다.
-청각 상실, 청각 상실, 청각 상실, 청각 상실!
-드워프 광산 특제 귀마개를 꺼내라! 장착해라!
-모두 극도로 주의해라!!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놈이다.
“…….”
“…….”
태현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너무 반응이 심한 거 아니야?
‘여기 산맥이 워낙 외진 곳이니까 아마 고대 제국 때부터 쌓여 있던 이미지 때문에 저러는 거겠지?’
[카르바노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에 편할 거라고….]
* * *
“깼다!! 깼다고!”
태현이 프리패스로 가장 먼저 들어간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떤 선행을 해야 하는가?
“이봐! 배가 고파 보이는데 내가 갖고 있는 이 <햄과 양상추를 끼워 넣은 갓 구운 빵>을 먹겠나? 안 먹겠다고? 먹어 이 자식아!”
“구걸하실 분 구합니다! 구걸하실 분! 제가 돈 드릴 테니까 구걸 좀 해주세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신나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선행을 쌓기 위해 온갖 꼼수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됐다.
플레이어들은 허겁지겁 해안가를 돌고 마을, 요새를 찾아다니며 퀘스트들을 깨야 했다.
“재칼. 아키서스 교단은 정말 대단하군. 물론 가장 대단한 건 이런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을 훌륭하게 이끌고 있는 너다!”
개척지 마을 경영하느라 먹을 게 없어서 흙을 뭉쳐 먹던 길드, 오랑카 길드원들은 행복해 죽기 직전이었다.
퀘스트 때문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고 → 이들이 퀘스트 깨기 위해 온갖 개척지 마을들 돌아다니면서 잡퀘스트 깨고 → 이들이 사고파는 물자들 덕분에 마을 경제 대활성화!
덕분에 오랑카 길드원들은 재칼과 함께 온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잘 굴러가고 있을 때 최대한 한몫 벌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NPC들이 보상해 준다는데 뭘로 받을까요?”
“당연히 식량으로 받아야지!! 골드 받지 마! 식량으로 받아! 식량이 무조건 필요해!”
“…….”
“…….”
골짜기에서 온 플레이어들은 오랑카 길드원들을 짠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놈의 영지가 뭐길래 저렇게 고생하면서 버틸 가치가 있나?
“재칼 님. 저 길드원들 좀 이상한데 같이 다녀도 될까요?”
“별문제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그리고… 나한테 묻지 말라니까??”
재칼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 퀘스트에서 재칼의 목적은 쥐죽은듯 조용히 참가해서 깨기.
퀘스트 나왔으니 깨긴 깨야 하는데, 괜히 나댔다가 케인 선수 같은 사람이 나와서 ‘너 나 사칭한 주제에 양심도 없냐? 뻔뻔한 놈 같으니!’ 같은 소리를 하기라도 하면….
그런 걸 피하려면 애초에 조용히 있는 게 가장 좋았던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자꾸 재칼의 활약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
일퀘 깨러 갔더니 암살자 필요하대서 나서야 했고, 교단 플레이어들이 다투길래 나서서 중재해야 했고, 저기 오랑카 길드원들 같은 외부인들도 감시해야 했고….
각자 퀘스트 깨려고 온 길드원들도 재칼의 활약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지금 내 방송 시청자들도 재칼 네 활약에 감탄하고 있다고. 이번 퀘스트에서 꽤 이름 많이 올라갈걸.”
“…야!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고맙다고 할 것이지 왜 화를 내?”
재칼은 끙 소리를 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겠지?’
그들보다 진도 빠른 플레이어들도 여럿 있었으니 아직 재칼이 활약해도 그렇게까지 눈에 띄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그런 재칼의 다짐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케인 선수다!!”
“…무… 뭐… 왜???”
재칼은 기겁해서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있어야 할 케인이 여기 왜 왔단 말인가.
‘들켰나?! 날 죽이러 온 건가!?’
김태현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했지만 케인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
만약 PK를 하려고 온 거면….
“케인 선수! 여기입니다!”
“여기까지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물론 아니었다.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이 케인을 불러낸 것!
케인은 엄격하고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노드란체 영지를 경영하느라 바빴지만,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기도 하고, 제 팬이기도 하니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역시…!”
“대단하셔!”
플레이어들은 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했다.
상위권 랭커들이나 1부 리그 선수들은 ‘아 케인 놈 개거품임 ㅡㅡ 김태현 잘 만나서 인생 날로 먹는 놈임 ㅡㅡ’ 같은 소리를 했지만, 일반적인 팬들이 보기에 그건 그냥 질투심에 찬 중상모략처럼 느껴졌다.
-아, 진짜 나도 우리 팀에 김태현 있으면 케인 같은 성적 낸다!
-케인하고 1:1로 붙으면 말도 못 할 사람이….
-하여간 랭커들은 인성이 다 너무 별로인 거 같아요. 케인 선수는 인성도 좋은데.
-…미친놈들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케… 케인 선수.”
재칼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과연 케인은 어떻게 행동할까?
표정을 보니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야. 재칼 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잘 싸우신다고… 헤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정말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재칼은 더더욱 놀랐다.
‘…함, 함정인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다음 재칼이 건방지게 굴면 그걸 핑계로…?
“아니… 아닙니다! 제가 더 영광입니다!”
“무슨… 싸우는 거 보니까 진짜 잘 싸우시던데요.”
케인은 옆에 태현이 없으면 자신감이 50% 미만으로 내려가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 태현이 없는 만큼 몇 배로 겸손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재칼 같은 경우는 최근에 잘 싸우는 걸 영상으로 봤고, 퀘스트에서 활약하는 것도 봤으니….
‘친하게 지내야지!’
이렇게 호감을 사두면 퀘스트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재칼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겠는가.
케인은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재칼에게는 다른 의미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
재칼은 깨달았다.
케인은 아예 이걸 없던 일로 만들어주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다! 이런 사람을 내가 뭐라고… 크읏.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정말 하찮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와. 통했나 본데?’
케인은 기뻐했다.
재칼의 반응을 보니 꽤나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재칼 님! 사원 퀘스트 깬 놈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희도 빨리 나머지 마을 돌아서 친밀도 얻은 다음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다들 나눠져서 남은 퀘스트를 마무리 짓자. 케인 선수는….”
“같이 가시죠!”
“…그, 그러시죠.”
거북할 법도 했는데 먼저 제안하는 케인의 그릇을 보고, 재칼은 다시 한번 감동했다.
이것이 그릇의 차이인가?
* * *
“달려! 달려!”
“사원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런데 대장. 김태현이 이끄는 파티가 들어갔는데 이미 늦은 거 아닙니까? 이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어요?”
두 번째로 입장을 허락받은 파티는 허겁지겁 사원 안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멍청하기는…! 퀘스트가 그거 하나만 있겠냐? 그리고 김태현 파티가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남은 퀘스트들은 우리 차지가 되는 거다. 뭐든 간에 빨리 움직여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해! 뒤늦게 온 놈들한테 뺏길 순 없지!”
새 지역에서 나오는 스킬, 아이템 등등은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유리하게 마련.
플레이어들은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눈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원을 샅샅이 뒤져서….
-사원 뒤쪽 절벽으로 움직여라, 모험가들아!
“예? 어? 왜요?”
-사원 뒤쪽 절벽으로 움직여라, 모험가들아! 반론은 받지 않는다! 자꾸 반론하면 행운의 힘을 보여주겠다!
“아니, 뭐 저런 미친놈들이….”
“근데 사랑의 힘이 아니라 왜 행운의 힘이지?”
“미친놈들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기껏 들어왔는데 바로 사원 뒤쪽으로 가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황당해했다.
뒤에 뭐가 있나?
“더 좋은 게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쾅, 쾅!
-죽여라! 저들을 죽여라!
-절벽을 기어 올라라!
[다크 엘프들의 <소름끼치는 음파>를 들었습니다. 물리 방어력이 내려갑…]
[블러드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공격력이…]
[……]
[……]
뒤쪽 절벽에 도착하자마자 나오는 수많은 메시지 창.
그리고 눈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소음.
셀 수도 없이 많은 적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입장 허락받은 첫날에 지역이 망하려고 해!?”
“시끄럽고 와서 도와라!”
태현은 뒤에서 플레이어들이 온 걸 깨닫고 급하게 손짓했다.
지금 상황이 워낙 혼잡해서 한 손이라도 귀했던 것이다.
“오른쪽 절벽으로 가! 그쪽이 약하다.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하면 전사들이 포위당할 테니, 절대 절벽을 올라오지 못하게 사수해!”
“어, 그, 알겠다! 일단 알겠다!”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외침에 가라는 대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파티 진형을 갖춘 다음 문득 의문에 빠졌다.
‘우리가 김태현 말 왜 듣고 있냐?’
‘분위기가…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나?’
“그리고 생방송 진행하지 마라!”
태현의 외침에 플레이어들은 항의했다.
“어째서냐! 이건 우리 권리다!”
“생방송 틀면 뒤늦게 오는 놈들이 여기로 안 올 수도 있는데?”
“생방송 꺼라!! 모두 생방송 꺼!!!”
판온 플레이어들은 이럴 때는 참 뜻이 잘 맞았다.
-나만 겪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