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39화
-오… 뭔진 잘 모르겠지만 그럴듯하게 들린다.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거 보니 분명 고도로 발달한 강력한 힘인가?
어지간한 통신사 약관보다 복잡한 교단 약관과 혜택에 고대 제국 전사들의 후손은 어질어질했다.
마법사의 정신 공격보다 더 강력한 것 같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되나? 우리가 왜 이걸 다 들어야 하는가?
-맞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인데, 설마 안 듣는다고 속이기나 하겠나? 우린 교황을 믿는다! 그냥 넘어가도 된다!
“…….”
“…….”
태현 일행은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양심이…!’
‘아무리 외진 산맥 속에 있다 하더라도 바깥소식에 너무 어두운 것 같습니다.’
태현 일행은 모두 태현을 존중했지만, 그런다고 아키서스 교단이 순수하고 따뜻한 교단이 되진 않았다.
자기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바로 아키서스 교단인 것이다.
그런데 저 전사들은 전투력만 높지 저런 부분에서는 허술하게 굴고 있었다.
크게 당해보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저런 인재들이 있다니 아키서스 교단의 미래가 밝다고 감탄합니다.]
카르바노그도 감탄하고 있었다.
완전히 아키서스 교단에 잘 맞는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힘세고 체력 좋고 멍청한…!
쾅!!
“???”
갑자기 사원 뒤쪽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에 일행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침략자들이 사원을 공격하고 있는 거다. 요즘 침략이 잦아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 사원은 예전부터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으니까.
[카르바노그가 그야 함락됐으면 다 뒤졌을 테니까 당연한 건데 뭘 저렇게 말하냐고….]
‘카르바노그. 너무 그러지 마.’
고대 제국 전사들은 튼튼하고 강한 이들이었다.
논리력과 의심이 좀 부족하다고 해서 그들을 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게 낫지.’
태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레벨 높고 성질 더러운 놈들보다는 레벨 높고 말 잘 듣는 놈들이 낫지 않겠는가.
태현이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먼저 사원을 뚫고 들어왔으니, 다른 이들이 이용하기 전에 태현이 먼저 이용하는 게 나았다.
어떻게 보면 정의로운 이용의 길인 것이다.
“태현님. 아무래도 수상해요.”
“내… 내가?”
“…아니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정신 차리세요. 사원 공격이 요즘 잦아졌다잖아요.”
이다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태현을 보며 말했다.
숙련된 랭커라면 저런 간단한 말에서도 퀘스트와 이벤트의 낌새를 눈치챌 수 있어야 했다.
특히 태현 같이 예리한 본능을 가진 사람은 저런 부분에서 남들보다 서너 수는 더 앞서 가는 사람.
…물론 지금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긴 했지만 누구나 가끔 실수는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군. 아까 고대 제국 전사 중에 한 놈이 굶주린 혼돈 이야기도 하고, 둘 다 연관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굶주린 혼돈이 습격을 일으키고 있을까?”
이세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위권 랭커들 중에 의외로 굶주린 혼돈을 얕보고 있는 이들이 제법 됐다.
굶주린 혼돈에 대해서 영상으로 보거나 게임 내 책으로만 접한 이들.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때때로는 눈을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태현이나 이세연처럼 몇 번 부딪혀 본 랭커들은 굶주린 혼돈이 얼마나 까다롭고 짜증 나는 적인지 잘 알았다.
쓰는 스킬들은 사기적이고, 그렇다고 기본 스펙이 약한 것도 아니고, 장비도 살벌하고….
“일단 그걸 가정하는 게 낫겠지. 그리고 아니어도 뒤집어씌우자. 아까 전사가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굶주린 혼돈이 여기 고대 제국 전사들 꼬시고 있더라. 절대 못 꼬시게 못을 박아놔야 해.”
“정말 좋은 의견이야.”
1초도 걸리지 않고 뒤집어씌우자고 합의를 보는 두 랭커.
이다비는 이런 모습은 절대 영상 공개할 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 잘라내야지.’
-전사들이여, 침입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원 뒤쪽의 절벽으로 집합하라!
<사원 사수-고대 제국 전사들의 사원 퀘스트>
고대 제국 시절 지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온 고대 제국 전사들의 사원은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보물이다.
이 사원이 파괴된다면 고대 제국 전사들은 더 이상 훈련받지 못할 것이고, 대륙은 강력한 방패를 또 하나 잃는 셈이 되리라.
이들을 도와 사원을 지켜라!
보상: ?, ???, ????
“플레이어들도 슬슬 빨리 들어와 줬으면 좋겠는데. 이 자식들은 왜 이렇게 착하게 안 살아서 늦게 오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태현과 류태수의 대화에 이세연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게 많았던 것이다.
-보통 산맥의 다크 엘프 부족들이 많이 습격하곤 합니다. 가끔은 괴수 몬스터들도 쳐들어오고, 어떨 때는 사악한 드워프들도 쳐들어오고….
남부 대륙의 카프 산맥은 판온에서도 손꼽히는 길고 거대한 산맥이었다.
어느 곳에 어느 부족이 있는지 다 파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 지역.
그만큼 다양한 침략자들이 쳐들어오곤 했다.
“다크 엘프들이면 차라리 낫겠어.”
이세연은 다크 엘프들이 상대이길 원했다.
다크 엘프들은 주로 마법이나 기습으로 승부를 많이 보는 이들.
이세연 또한 마법으로서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만큼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저는 괴수형 몬스터면 좋겠습니다.”
“저도….”
류태수, 류다영 둘은 괴수형 몬스터가 상대이길 원했다.
광전사-성기사 조합은 안정적이고 묵직한 조합이라 괴수같이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좋았다.
다크 엘프들처럼 특이한 마법 많이 쓰고 사악한 주술 쓰는 상대는 까다로웠다.
“김태현 너는?”
“나는 뭐 크게 상관없긴 한데 아무래도 드워프들이 좋지.”
태현은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 스킬의 달인인 만큼 드워프들을 상대할 때 유리한 게 사실이었다.
드워프들이 온갖 공성 병기를 끌고 와도 역설계하면서 카운터를 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다크 엘프들인데?”
“이런. 다크 엘프들인가?”
“저기는 괴수 몬스터 있는데요?”
“다크 엘프들하고 괴수 몬스터들인가 보군.”
“…드워프들도 있습니다만?”
“…….”
“…….”
사원 뒤쪽 절벽으로 집합한 태현 일행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절벽 밑에서부터 저 언덕 아래까지.
새까맣게 적들이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많지 않나?”
태현도 당황해서 물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적.
“고대 제국 전사들은 몇 번이고 막았으니까 그렇게 크게 위험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군. 일리가 있어.”
태현은 이다비의 말에 살짝 안심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은 아까 강력한 자신감을 보여줬었다.
그걸 봤을 때 이 사원의 방어력은 저런 물량 공세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게 분명했다.
-…왜 이렇게 많냐!?!?
-비상이다, 전사들을 더 불러와라! 침략자 놈들이 서로 연합했다!!
“……”
태현은 고민했다.
사원 안쪽 뒤져서 쓸 만한 건물 설계 방법 얻어내고 아이템이나 스킬 찾은 다음 튈까?
“이다비.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하나가 아니라 백 개를 하셔도 상관없는데요.”
“우리 싸우고 있는 동안 사원 안쪽 돌아다니면서 건물 제작 방법이나 아이템 제작 방법, 비전 스킬 같은 거 있나 확인 좀 해줘.”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어요!”
척하면 척이라고, 이다비는 태현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퀘스트를 깨면 좋겠지만 사람은 가끔 퀘스트를 실패할 때도 있는 법.
이 사원이 함락된다 하더라도 사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지켜야 했다.
“빠르게 돌면서 최대한 확인해 볼게요.”
“류다영 선수. 낭티오네. 이다비를 호위해 줘.”
-키잇. 키잇.
“…….”
류다영은 그냥 ‘저 혼자 호위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려다가 참았다.
아무리 봐도 저 메카 바실리스크의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몹인 줄 알았네…!
“모두들 당황하지 마라! 지금 적들의 숫자가 많긴 하지만, 저건 모두 굶주린 혼돈의 흉계 때문이다. 우리가 당황하면 적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거다!”
-오오…!
-과연… 굶주린 혼돈 놈이!
고대 제국 전사들과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 모두 태현의 말에 솔깃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너희들은 왜 속냐…?’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명성이…]
[칭호가…]
[……]
[……]
[혼란도가 낮아집니다!]
[사기가 높아집니다!]
[굶주린 혼돈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집니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굶주린 혼돈 놈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전사 중 한 명이 무릎을 쳤다. 태현은 무심코 물었다.
“뭘 깨달은 거지?”
-우리가 손에 넣은 사랑의 힘을 노리다가, 그것보다 더 강한 행운의 힘까지 넣으려고 하자 어떻게든 뺏으려고 하는 거다. 저번에 부린 수작질을 봐라!
-그럴듯하다! 제국 시절에도 제국 하나 점령 못 한 놈답게 하는 짓이 참으로 비열하고 쪼잔하구나!
굶주린 혼돈이 들으면 울었을 소리를 하며, 전사들은 투지를 다졌다.
[고대 제국 전사들이 <불타는 심장의 함성>을 사용합니다!]
[물리 방어력이…]
[마법 방어력이…]
[최대 체력이…]
[……]
[……]
‘와. 사람이 달라 보이는군.’
평소에 이상하던 사람도 퀘스트 잘 깨고 몬스터 잘 잡는 거 보면 이미지가 좀 달라지게 마련.
고대 제국 전사들은 안 싸울 때는 멍청해 보였지만 싸움을 앞두고 나서는 누구보다도 용맹해 보였다.
철컥, 철컥!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중갑을 입고 방패를 든 채 진형을 구축한 전사들은 절벽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몰려오든 간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와라, 비겁한 침략자 놈들아!
-너희에게 행운의 힘을 뺏길 것 같으냐, 너희 같은 놈들에게 사랑의 힘도 줄 수 없다!
전사들의 외침에, 다크 엘프 부족 대마법사 중 한 명이 날카롭게 외쳤다.
-우둔한 전사 놈들아. 오늘이 너희가 죽는 날이다! 감히 굴종하라는 우리의 명령을 거부하고 멋대로 굴다니. 다크 엘프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타락한 드워프 족장도 사납게 외쳤다.
-이 산맥의 모든 광산들은 드워프들의 것이다. 고대 제국이 망했으면 그 전사 놈들도 같이 죽었어야지, 어딜 아직도 남아서 진상을 부리는 것이냐!
“…어라? 굶주린 혼돈 아닌가?”
이세연은 살짝 당황했다.
다크 엘프들이나 드워프들이 못되고 사악하긴 했지만, 딱히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린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놈들이야.”
“…너 지금 그냥 우기려고 그러는 거지?”
태현은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이세연은 태현을 너무 잘 알았던 것이다.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은 같이 힘을 합쳐야 할 때였으니까.
-돌격하라! 저 우둔한 전사 놈들은 단순하게 막기밖에 못하는 놈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죽음의 화음과 함께 태현이 끌고 온 아키서스 포병대가 벼락같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악마들의 마력으로 가동되는 거대 대포들과 박격포, 거인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용 대포들까지.
달려드는 1파를 그대로 갈아버리는 흉악한 파괴력이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
-이것이 사랑… 아니, 행운의 힘인가! 사랑의 힘보다 더 강력하다!
-크에엑… 크에에엑….
우리 안에 갇힌 악마들이 헉헉대고 있었지만 고대 제국 전사들은 무시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