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37화
두 스카우트들이 옆에서 씁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장원상과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감동 넘치는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만약 잘 되면 인터뷰에서 꼭 김태현 선수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좀.”
태현은 멈칫했다.
별로 태현에게 좋을 일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장원상 선수가 못 하면?
-김태현 나쁜 놈아 견제할 게 없어서 2부 리그 팀도 견제하냐??
장원상 선수가 잘 하면?
-김태현 나쁜 놈아 저걸 우리 팀 안 주고 다른 팀으로 보내?? 니가 사람이냐??
…가드 불가의 이지선다 공격. 이건 태현도 회피가 불가능했다.
“어디 가서 괜히 말하지 마시죠. 곤란하기만 할 테니.”
“이런 걸 왜… 예.”
장원상은 이런 고마운 이야기를 왜 못하게 하나 의아해했지만, 태현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이니까 저렇게 겸손한 걸지도 몰랐다.
“김태현 선수. 혹시 저희 게임단에 추천할 선수는 없습니까?”
“어. 딱히 없는데요?”
“…….”
* * *
LK 갤럭시는 작년 시즌에 아쉽게도 승강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1부 리그로 올라가지 못한 팀이었다.
승강전에서 패배가 아쉬웠기에, 게임단 내부에서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 게임단 매각될지도 모른다!
-매각되면 다행이고 해체될 가능성도 높다!
-선수들 다 팔고 새로 구성한다더라!
다른 구기종목 게임단과 달리, E스포츠 쪽 게임단들은 그 생명력이 좀 짧은 편이었다.
해외의 역사 깊은 대형 게임단에 비해 한국 쪽 게임단들은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한 것이다.
아무래도 모기업이 되어주는 대기업들이 게임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만큼, 조금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단칼에 자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만큼 시즌 끝 LK 갤럭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웠었다.
-다들 고생했고, 오늘 회식하고 마무리짓자! 오늘 패배는 잊지 말고 승리로 바꾸는 거다!
-저, 단장님. 사장님 오신답니다.
-…어느 사장님?
-윤 사장님이요.
그런 만큼 LK 그룹의 실세인 윤 사장의 방문은 게임단 직원들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파이팅을 하려던 단장이 그대로 얼어붙어버릴 정도로.
-차라리 지금 회식을 시작해서 분위기를 흥겹게 바꾸면 어떻습니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사장님이 소주병 휘두르면 여러 사람 다칠 텐데 회식은 잠시 멈추자.
평소 윤 사장이 게임에 관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게임단 직원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윤 사장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바로 그 정신이 LK의 정신이지!
-사… 사장님. 저희 졌습니다.
-졌지만 잘 싸웠잖나! 솔직히 야구단보다 잘 하니까 됐네!
-…???!
소주를 벌써 한잔하고 오셨나 했지만, 윤 사장은 매우 제정신이었다.
직원들을 차례대로 불러주고 호탕하게 칭찬해 준 다음 선수들 줄 금일봉까지 쫙 챙겨주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단장을 불러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우리 팀이 지금 보니까 탱커가 좀 약하고 지휘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정, 정말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내가 대책을 몇 개 생각해 왔네.
-경청하겠습니다!
-김태현 선수를 영입하는 건….
-…그건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습….
이런 해프닝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간에 LK 갤럭시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사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이상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장님이… 무관심보단 낫지만 너무 관심 가지시는 거 아닙니까?”
직원의 말에 오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 연습 경기를 봤는데 이 선수는 왜 이런 플레이를 한 거지? 뇌가 없는 건가 아니면 방출해달라는 뜻인가 그도 아니면 어제 술을 처먹은 건가?
-왜 1킬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1킬을 못하지?? 양심이 없나??
“그래도 예전에 비교하면 훨씬 낫지.”
사장이 관심이 많은 건 무섭긴 했지만, 관심이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이었다.
일단 지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가.
“아. 예! 예! 이렇게 전화를 해주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아닙니다! 좋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구 말인데요!”
“저 친구 누구랑 전화를 하는데 저렇게 공손하게 통화를 하는 거야?”
감독은 프런트 직원이 열심히 허공에 대고 굽신거리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김태현 선수가 전화해서 선수 추천했다는데요.”
“…뭐?!?! 누구!?”
“이름 못 들어본 선수인데… 그,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에서 본 선수인가 봐요.”
“야… 이거 좀 곤란하게 됐는데요.”
들은 스카우트들이 표정을 찌푸렸다.
원래 기업 윗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거, 화려한 걸 중요시했다.
어디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어디서 몇 킬을 했다, 어느 퀘스트를 깼다 이런 화려한 이력이 있어야 ‘음 좋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원상은 수수해도 너무 수수했다.
요즘 관심 많이 가지는 윤 사장님이 과연 OK 사인을 낼까?
“그래도 김태현 선수가 추천했다는데 이걸 그냥 넘기는 건… 서로 얼굴 붉힐 일입니다.”
“좋아. 내가 총대를 매고 말해보고 오겠다.”
감독은 직접 일어서더니 전화를 들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30초 정도의 통화 후 감독은 전화를 끊었다.
‘망했나?’
저렇게 짧은 통화는 보통 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뭐라고 하십니까?”
“…바로 데려오라고 하시는군.”
“!??!”
* * *
“사랑… 사랑이라.”
고대 제국 전사들의 사원에서 온갖 시련이 나올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강력한 괴수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어마어마한 힘과 체력이 필요한 시련을 통과하거나, 전사와 맞붙는다거나….
그런데 고대 제국 전사들의 후예들은 뭘 잘못 먹었는지, 갑자기 사랑의 힘을 강조하고 있었다.
사랑!
“사랑이 뭘까?”
“…….”
“…….”
일동 다들 침묵하자 태현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괜한 걸 물었군.”
“아니. 대답할 수 있어.”
“앗. 이세연. 뭐지?”
“그게… 그러니까… 같이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 그런 거 아닐까?”
“…….”
말하던 이세연은 태현이 안쓰럽고 딱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판온을 하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아니. 사랑이 레벨이라고 하니까 좀 당황스러워서 생각하고 있었지.”
이세연이 울 것 같자 이다비가 거들었다.
“사랑은 몇 마디로 간단하게 정의하기 좀 그렇지 않나요?”
“아니. 고대 제국 전사들이 생각하는 사랑이 뭐냐고.”
“아…!”
“아, 라니. 여기서 뭐 다른 게 있나?”
“…그러게요!”
일행은 급히 말을 돌렸다.
“사랑과 결혼의 신인 베레타르바 교단은 좀 애매한 교단이긴 해요. 인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미묘하거든요.”
이다비의 설명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도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베레타르바 교단은 아키서스 교단의 초반 전략과 비슷한 교단이었다.
자기네 교단을 독점적으로 밀고 나가기보다는, 다른 교단과 상생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교단.
베레타르바 교단만 믿으라고 하지도 않았고 플레이어들이 베레타르바 교단을 안 믿는다고 페널티를 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레타르바 교단이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베레타르바 교단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어서였다.
-연인끼리 축복을 받고 싶으시다고요? 베레타르바 교단으로 와서 축복을 받으세요! 사랑과 결혼의 신인 베레타르바를 모시는 사제들이 당신들을 축복해드립니다!
-결혼 기념 반지, 연인 기념 반지, 이혼 기념 반지 등등 각종 기념 퀘스트는 오로지 베레타르바 교단에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다루지 않는 각종 업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에서는 다른 교단에서 볼 수 없는 각종 뽑기와 도박을 취급한다면, 베레타르바 교단은 애정 관련 이벤트들을 취급하는 것!
그런 만큼 평소에 베레타르바 교단에서 열심히 믿는 플레이어들은 적어도, 일이 생기면 베레타르바 교단에 찾아가서 공적치 포인트 좀 쌓고 퀘스트나 아이템 받는 사람들은 제법 됐다.
공적을 높게 세운 사람은 없지만 얕게 세운 사람은 많은 교단.
그게 바로 베레타르바 교단이었다.
“아키서스 교단은 근데 저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는데.”
“사실 다뤘던 영역 생각해 보면 비교하기가 힘들긴 하죠.”
베레타르바 교단은 가만히만 앉아 있어도 새로 생긴 커플들부터 시작해서 이혼하려는 사람들까지 찾아와서 각종 이벤트 받고 골드 내고 가지만 아키서스 교단은….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괜히 배가 아프군. 왜 아키서스는 하필 행운의 신이어서….’
태현은 수십 번도 했던 불평을 다시 한번 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 들어가는 곳은 이 베레타르바 교단에 심취한 놈들이 있는 곳이란 걸 명심해야 해. 베레타르바 교단이 뭘 좋아하는지 미리 염두에 두고 거기에 행동을 맞추자고.”
“베레타르바 교단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나 만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일단 난 통과한 거 같군.”
태현의 말에 모두들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문지기부터 태현을 보고 통과시켜줬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사랑에 관한 쓸 만한 거 미리 생각해 놓는 게 좋겠어.”
“…….”
일행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의외로 떠오르는 게 없었던 것이다.
‘이거… 못 떠올리면 어떡하지?’
‘다른 분들 다 떠올리는데 나만 못 떠올리면 그것도 망신인데.’
‘뭐가 있었지…?’
일행이 고민하는 사이, 사원 안쪽에서 NPC가 나타났다.
문지기를 통과한 모험가가 나왔다는 소식에 마중을 나온 것이다.
-사랑이 함께하기를. 모험가들이여.
“…아. 안녕하십니까?”
-인사가 틀렸습니다. 자. 저를 따라 해주십시오. 사랑이 함께하기를.
“사…랑이 함께하기를?”
-그렇습니다. 모험가 여러분. 여기 들어오셨다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사랑이야말로 진정 강한 힘입니다.
“여기 문지기는 폭력으로 침입자 쫓아내던데…?”
태현의 질문에 NPC는 못 들은 척했다.
-그것 또한 사랑의 일부죠.
[카르바노그가 저 전사 놈 이해 못했는데 대충 갖다 붙이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합니다.]
전사들은 기본적으로 뇌까지 좀 근육질인 면이 있어서, 교단의 교리를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았다.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이 하는 말을 ‘뭐? 사랑이 강하다고? 와. 사랑 개쩌는데?’ 같은 식으로 이해했을 수도….
“뭐 사랑이 강하다고 치고, 안으로 들어가도 됩니까? 전사장님을 뵙고 싶은데.”
-아무나 전사장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지요.
“설마 또 사랑 퀘스트?”
-무슨 소립니까? 전사장님을 모시는 대전사와 겨뤄서 이기면 만날 수 있습니다.
“…???”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평범하게 멀쩡한 퀘스트긴 했는데 그래서 더 당황스러운 면이 있었다.
“아니… 사랑의 힘은?”
-그게 사랑의 힘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거기 서있지 말고 들어오실 거면 빨리 들어오시죠. 이 주변은 험해서, 사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합니다.
[고대 제국 전사들의 사원 안으로 입장합니다!]
[명성이 크게…]
[……]
[……]
“!”
태현 일행은 솔직히 놀랐다.
고대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근근이 살아왔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된 소도시였던 것이다.
고대 제국 때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원이라니.
“저기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이에요.”
“치사한 놈들 같으니. 가서 따져야겠다. 저놈들 때문에 퀘스트가 더 어려워졌어.”
태현은 뭐라도 뜯어낼 생각으로 걸어갔다.
태현을 발견한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이 깜짝 놀랐다.
“교황님 아니십니까?”
“그래. 나한테 할 말 없나?”
“있습니다!”
“있다니 다행이군. 말해봐라.”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