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33화 (1,432/1,826)

§ 나는 될놈이다 1433화

태현은 당황했지만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황당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문지기 눈깔 삔 거 아뇨!?!”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저놈이 불태운 던전이 몇 개인데!!”

“저거 저거 오스턴 왕국에서 도적질 했던 놈입니다!! 저놈이 날려버린 물자가 몇인데!!”

콰아아아아아아앙!

[<크로노스 검법>의 세 번째 공격이 발동됩니다!]

[막대한 충격파가 대기를 가르고 나아갑니다!!]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 옆에 있던 플레이어가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 사랑의 힘이 더 강하다면서…??”

-…가끔은 폭력도 쓸 수 있는 법이다.

‘저 자식 은근히 대충이군.’

태현은 사원 문지기를 보며 생각했다.

저 정도로 쉽게 마음 바꿀 수 있으면 사실 그냥 폭력을 더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진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고 다녔다는 게 뭐지?”

태현은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대체 뭘 했길래 사랑으로 인정된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 문지기는 더 감탄한 모양이었다.

-겸손함! 진정한 사랑에는 겸손함이 언제나 함께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 사랑이란 게….”

-겸손함을 알아야 사랑의 힘을 알 수 있는 법. 여기 있는 모험가들아, 들어라! 그리고 배워라. 겸손함을!

‘욕해도 되나?’

태현은 욕하려다가 참았다.

검격 모양 그대로 날아간 주변 지형.

방금 문지기가 날린 스킬에 박살이 난 모습이었다.

저절로 인내심이 생기는 모습!

“그래서 정말 뭡니까? 제가 뭘 했길래?”

-그렇게까지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너는… 최근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일행을 도운 적이 있다!

“…어.”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굶주린 혼돈의 던전을 공략하면서 스스로의 목숨을 하나 희생하긴 했던 것이다.

확실히 쉽게 보기 드문 선행이긴 했다.

레벨 높은 플레이어들 중에서 자기 목숨 희생해서 남 도와주는 사람은 어지간해서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너는 헐벗고 굶주린 모험가들에게 흙덩이 다섯 개와 돌멩이 두 개만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줬다. 이 또한 사랑의 힘 아니겠는가!

“그것도… 그럴듯하긴 한데.”

태현은 문지기의 말을 듣다 보니 설득되는 자신을 느꼈다.

어라?

사실 태현은 착한 사람이었던 건가?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서 너는 들어올 자격이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들어가도 좋다! 너는 사랑의 힘을 증명했다!

“그렇군. 최근에 세운 업적들에, 낭티오네를 강화시킨 업적이나 악마들을 붙잡아서 데리고 다닌 업적 같은 게 들어간 건가?”

-그딴 쓰레기 같은 업적들은 들어가지도 않았다. 헛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라!

“…….”

[카르바노그가 착한 화신이 참으라고 말립니다.]

태현이 발끈했지만 카르바노그가 말렸다.

일단 허락받은 이상 괜히 어그로를 끌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뭔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뭔가 이상하다니?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처럼, 고대 제국 전사들이 저렇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신앙일 가능성이 높다고 카르바노그가 추측합니다.]

-신앙이면… 아키서스는 절대 아니겠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사랑의 힘을 유난히 강조하는 교단이라면, 사랑의 신을 모시는 베레타르바 교단인가?

‘이제까지 접촉할 일이 없어서 신경 안 썼었는데….’

* * *

뜨거운 월드컵 예선이 끝나고, 본선에 올라온 진정한 강자들이 남았다.

한국대표팀의 다음 상대도 곧 나왔다.

바로 영국대표팀이었다.

“영국대표팀이면… 1부 리그에 있는 런던 파이레츠 선수들이 주축인가?”

“런던 파이레츠 선수들도 있고, 유럽의 다른 팀에서 뛰는 영국 선수들도 있어. 아무래도 유럽 쪽 선수들은 유럽 팀에서 도는 경우가 많으니까.”

해외 팀에 용병으로 가더라도 가능한 가깝고 문화권이 닿아 있는 나라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영국대표팀 경기를 이미 봤으니까 알겠지만, 영국대표팀은….”

“싸가지가 없지.”

“…그건 맞지만 경기적 특성을 이야기하는 자리잖아.”

그랬다.

이세연이 동의할 정도로, 영국대표팀은 이번 대회의 이슈메이커이자 트러블메이커였다.

-중국대표팀이 탈락한 건 당연한 일… 차라리 잘 됐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영국에 약한 편….

-한국대표팀은 강하지만 허술하다. 후보 선수가 약하고 김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스타 선수들은 유명하지만 서로 호흡이 잘 맞지 않는다. 게다가 불화설까지 돌고 있으니 만나면 쉽게 이길 자신이 있다.

-우리 대표팀의 목표는 우승밖에 없다. E스포츠에서 2등은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E스포츠 판에서 어디까지가 쇼맨십이고 어디까지가 싸가지 없는 짓인지 그 경계가 애매하긴 했다.

팀 KL을 운영하는 태현은 게임단과 선수들이 대중의 주목을 끌려는 그 마음을 넘치도록 이해했다.

대중한테 욕먹는 것보다 무서운 게 대중한테 관심을 못 받는 것!

그런 면에서 유럽 쪽 팀들이 저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고 노이즈마케팅을 하는 것도 이유가 있긴 했다.

일단 미국이나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E스포츠 투자를 하는 국가였다.

전 세계에서 돈 많은 게임단, 시설 커다랗고 좋은 게임단 보면 윗순위를 꽉 채우고 있는 두 국가!

그리고 한국은 전통의 강호였다.

막대한 자본에 밀려 최근에는 빌빌댔지만 그래도 쌓아 놓은 업적이 어딜 가질 않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예전부터 싸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와서 해외 팀 스카우트들이 탐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팀 성적은 꼬라박혀도 한국 선수 한 명 못 찾는 경우는 드문 것이다.

그에 비해 유럽 쪽 팀들은 아무래도 관심을 좀 덜 받는 편이었다.

유럽 팀들도 당당하게 1부 리그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전 세계 팬들의 관심도를 놓고 보면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 팀들이 살아남으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미지를 만들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같은 어그로!

“그런데 불화설은 대체 어디서 본 겁니까? 한국 기사 중에 그런 거 못 봤는데?”

“아마 인터넷 뉴스 중에 아무거나 하나 잘못 보고 오해한 거 같은데.”

태현은 영국대표팀 선수들이 한 발언을 좀 더 찾아봤다.

-우리는 김태현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다. 머리와 목을 떼놓으면….

-김태현이 첫 시즌 때 지지 않았던 건 리그 선수들의 수준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르다.

-케인은 과대평가 된 선수….

‘흠. 확실히 그럴 수 있지.’

태현은 의외로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것에 일일이 반응할 정도였으면 그렇게 많은 PK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작 후보인 케인을 저렇게 욕하는 건 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케인이 유명하긴 하지.’

-이다비 같은 선수를 갑자기 등용한 건 김태현의 실수다. 친분으로 선수를 고른 것. 이제까지는 운이 좋아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과가 드러나면 김태현도 반성하게 될 것이다.

“…….”

태현은 정색했다.

케인을 욕하는 건 이해해 줄 수 있었지만 이다비는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태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이다비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태현은 선수 이름을 확인했다.

영국대표팀 소속 브리그스.

‘저놈은 대회에서도 죽이고 대회 끝나고도 죽인다.’

판온에서 만나면 목숨 부지 못할 줄 알아라!

류태수는 태현의 표정을 보고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평소랑 똑같았던 것이다.

“그냥 평소 표정 같으신데…?”

“아뇨. 극도로 분노한 표정인데요. 마치 케인 선수가 하기로 약속한 훈련을 빼놓고 도망갔을 때 같은….”

“…그, 그런 도망을 쳤단 말입니까?”

류태수는 기가 막혔다.

남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받을 그럴 훈련을…!

“자.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영국대표팀의 경기적인 특성을 이야기해 보자. 김태현?”

태현이 손을 들자 이세연은 막대로 가리키며 발언권을 넘겼다.

“보통 투기장에서 굴러가는 파티를 보면 공격 중시, 방어 중시, 밸런스형 등등이 있는데. 얘네들은 극단적으로 공격에 치중된 애들이다. 예전에 5인 탱커 전술 유행하던 때 기억나지? 얘네들은 5인 딜러야.”

5인 딜러.

정말 말 그대로 공격에 모든 것을 몰아 부은 폭풍 같은 팀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전략을, 리그도 아닌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쓰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지만….

영국대표팀은 놀랍게도 이 전술로 예선을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런 만큼 공격력 하나만큼은 진짜야. 후보들도 탄탄해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바꾸면서 딜을 집요하게 넣더군.”

“김태현 상대하기 위해서 무조건 저주 관련 딜러 들고 온다고 봐야지.”

“상관없어. 그런 거 한두 번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맞아. 사실 김태현은 크게 상관없지.”

이세연은 태현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모든 룰이 자기한테 불리하게 바뀌어도 태현은 알아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비해 걱정되는 건 다른 사람들.

이제까지 싸움들은 사실 꽤나 정석적이고 템포가 느렸다.

덕분에 태현이나 이세연이 휘저으면서 유리하게 이끌어간 다음 경기를 좋게 이끌어가는 게 가능했다.

그에 비해 영국대표팀은 정말 극단적인 공격 팀.

‘모 아니면 도’ 같은 식으로 목숨을 걸고 몰아붙일 게 분명했다.

이 때 잘못해서 휘말리면 어어 하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수가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승리를 따내는 게 패턴 중 하나였고.

“탱커를 한 명 늘리는 것도 생각 중인데. 류태수 선수. 괜찮겠어?”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탱커를 늘린다면 류태수가 나가고 케인을 넣어야 했다.

류태수는 유성 게임단의 주장인 이세연의 말을 안 듣고 적 게임단 주장의 팬질을 하는 등 여러 단점이 있긴 했지만, 팀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선수였다.

결정에 어떤 불만도 갖지 않고 선선히 양보하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덕목이었다.

‘…케인 놈 경기 나간다고 하면 긴장해서 적응 못 하는 거 아니야?’

태현은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 *

“쟤가 브리그스군.”

“왜? 저 선수가 가장 위협적인 거 같아?”

이세연은 태현의 반응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이 저렇게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브리그스 선수가 꽤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경기 영상을 봤을 때 놓쳤던 것들이 있는 걸까?

“아니. 저 자식이 가장 말을 재수없게 했어.”

“…그, 그렇구나.”

이세연은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시합에 집중해 감정은 잊어버리고’라고 했겠지만….

태현의 경우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알아서 잘 하겠지!

“몇 번이고 말했지만 전술은 간단해. 탱커 앞에 세우고 버틴다. 힐러 공격 못 받게 막는다. 버티면 저쪽은 무너지게 되어 있어.”

영국대표팀이 패배한 라운드들은 결국 뚫는 데에 실패한 경기들이었다.

막으면 제 풀에 알아서 무너지는 조합.

상대가 강하고 빠르게 몰아붙이면 이쪽은 조용하고 느리게 받아친다!

…가 계획이었지만….

[치명타가 터집니다!!]

[출혈 상태에…]

[스턴 상태에…]

“뭐 이런 괴물 같은 새끼가 다 있어!!”

빈사 상태까지 몰린 브리그스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옆에 적들이 여럿 있는데도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고들었다.

“너. 다시 지껄여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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