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30화 (1,429/1,826)

§ 나는 될놈이다 1430화

-구시온…! 난 널 믿는다!

-이 악마 놈은 아까부터 왜 자꾸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믿긴 뭘 믿어? 조용히 하지 못해?

드워프들이 다시 성수 펌프를 꺼내자 에다게르는 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구시온! 믿는다!’

에다게르는 혼자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 * *

“세금 잘 내고, 주민들 불만도 잘 관리하고, 또 길드원들만 입장하겠다고 시설 제한 걸었다가 게시판에 글 올라오면 알지? 처신 잘하라고.”

“아. 알겠다니까.”

“우리도 영지 운영해 본 경험 있어!”

두 길마는 태현의 충고에 투덜거렸다.

판온 1 때 영지를 운영해 본 적 있던 길마들 입장으로서 태현의 저런 참견은 좀 불쾌했다.

여기 길마들도 나름 잘나가던 영주들이었던 것이다.

“근데 망했잖아?”

“…….”

“…….”

그걸 망하게 한 놈이 저런 말을 하니 없던 분노가 갑자기 다시 샘솟으려고 했다.

“그 실패에서 많이 배웠겠지.”

“아. 하긴. 누구나 실패에서 많이 배우니까.”

이세연의 말에 태현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관리해라. 그럼 가자!”

태현이 일행을 거느리고 떠나버리자 두 길마는 즉시 입을 열고 명령했다.

“야! 소금 가져와! 소금 뿌려!”

“아무 사제나 불러와서 기도 올리라고 해라!”

“그런데 길마님.”

“?”

“김태현이 가트프리드 퀘스트 깬다는데, 이거 저희도 깨면 안 됩니까? 고대 제국 전사면 비전 검술 스킬 갖고 있을 확률도 높은데….”

“끄응.”

랭커들의 말에 길마들은 앓는 소리를 냈다.

검술 스킬 쓰는 전사들에게 비전 검술 스킬은 추가 목숨 같은 거였다.

하나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 쏠쏠하게 쓸지 모르는 스킬.

얻을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서 깨야 했다.

가트프리드 퀘스트는 확실히 비전 검술 나올 확률이 높은 퀘스트긴 한데….

“근데 너희들은 김태현하고 얼굴 맞대고 싶냐? 아무리 비전 검술 스킬이 좋아도 그렇지.”

“저는 별 상관없는데요.”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도 뭐….”

“!?!?”

길마들은 기겁했다.

판온 2 때부터 시작한 랭커들은 그렇다 쳐도, 판온 1에서 같이 김태현한테 맞은 적 있던 랭커 놈들도 ‘괜찮은데요’라니.

미친 건가?!

“야! 너 미쳤냐!? 너 왜 그래?! 김태현이 널 협박한 거냐?!”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번에 레이드 같이 하면서 보니까 김태현도 좀 변했더라고요.”

“뭘 변해 미친놈아! 사람은 안 변해!”

“에이. 아닙니다. 길마님. 길마님이 그 자리에 없어서 그렇지. 좀 변했어요 김태현도.”

길마, 남정훈은 정말 소름이 돋았다.

비슷한 때 클라우지아도 마찬가지 경험을 하고 있었다.

“길드가… 길드가 망할 징조인가??”

“난 진심으로 무서워…!”

길마들은 방금까지 싸운 것도 잊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길드 내에 정신교육을 추가해야 하나??

“그러면 길마님. 허락하신 걸로 알고 출발해 보겠습니다.”

“…그, 그래. 조심하고.”

“에이. 뭘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진짜 조심해야 한다!! 특히 김태현을!”

“???”

* * *

퀘스트 지역은 오랜만에 남쪽 대륙이었다.

중앙 대륙과 달리 늦게 발견된 남쪽 대륙은 아직도 개발이 덜 된 상태였다.

해안가에 여러 마을들과 요새, 도시들과 성이 생겨나고 있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애초에 중앙 대륙에 비해 입지가 안 좋은 것이다.

남쪽 대륙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산맥부터 시작해서 끝을 알 수 없는 정글지대까지.

그리고 거기를 넘어 더 남쪽으로 가면 화산지대가 나왔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 대륙은 기후도 좋고, 에스파 왕국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녹음 우거지고 강물 졸졸 흐르는 편안한 곳인데….

남쪽 대륙은 심심하면 해안가에서는 해일 일어나고 몬스터 습격하고 해적들 닥쳐오고 산맥에서는 몬스터 내려오고 산적들 내려오고 산사태 내려오는 수준.

그래도 그만큼 남쪽 대륙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높고 실력이 있었다.

“고대 제국 퀘스트가 여기서 떴다고?”

“그렇다니까.”

검은 갈퀴 길드나 나인테일 길드가 규모가 있는 만큼, 그 안에서 퀘스트 소식이 퍼져나가는 건 당연했다.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가 이쪽에서 떴다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흥분해서 수군거렸다.

“무조건 참가지!!”

“그쪽 길드원들이 화내지 않을까?”

“지들이 공개해놓고 무슨 화를 내? 억울하면 방송을 하지 말던가, 공개를 하지 말던가!”

“사실 나도 농담으로 한 말임.”

남쪽 대륙에서 험하게 살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저 위 중앙 대륙에서 거들먹대는 길드들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여기는 우리의 땅.

멀리서 온 놈들이 중앙 대륙처럼 거만하게 굴 수는 없는 것이다.

[오랑카 마을에 입장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와. 남부는 진짜 올 때마다 달라지네.”

“미리 몇몇 곳을 선점해두길 정말 잘했어요.”

태현은 살짝 감동한 표정이었다.

중앙 대륙은 이미 있는 영지들을 누가 먹고 먹냐의 싸움이 많았지만, 남부 대륙은 아예 새로 영지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태현 입장에서는 후자에 감정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이 골짜기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여기에 잡템 좀 팔고 갈까?”

마을에서 잡템을 많이 팔면 그 마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법.

이다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마을 플레이어들이 되게 고마워하겠네요.”

안 그래도 태현은 저번에 남쪽 대륙에 와서 카프 산맥에 <아키서스 대로의 요새>들을 설치한 적이 있었다.

험준한 산맥 곳곳에 길과 요새를 뚫은 것이다.

…남의 힘으로!

어쨌든 누구를 시켰든 간에 결과물은 괜찮았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뿐만 아니라 여러 제작 직업들이 그 길과 요새들을 이용하면서 산맥에서 열심히 재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남부 대륙의 플레이어들이 늘어날수록 태현에게는 좋았다.

더 쏠쏠하게 돈이 될 테니까.

태현과 이다비는 상점을 깔고 있는 NPC한테 다가갔다.

“잡템을 좀 팔려고 하는데요.”

-아… 안 됩니다.

“???”

“안 된다고요?”

이다비는 당황했다.

태현은 화술 스킬을 최고급까지 찍은 혀의 신이었고, 이다비는 상인 랭커들 중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둘이 말을 걸면 보통 상인이 후광에 벌벌 떨면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해야 하는데….

여기 상인 NPC는 그냥 피곤하고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제가 골드가 없어서요.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쳐다보았다.

-이다비. 상인 NPC가 골드 없는 경우도 있니?

-보통 상인 NPC 금고를 누가 훔쳐 가지 않는 한 없죠?

“알… 알겠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볼게요.”

상점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 이다비는 태현을 끌고 옆의 상점으로 갔다.

“잡템을 좀 팔고 싶은데요.”

-골드가 없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

그제야 이다비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마을….

‘파워 워리어 초기 모습 같은데?’

파워 워리어 초기 모습.

한마디로 거지 같다는 뜻이었다.

마을이 대체로 가난해 보이고, 뭔가 구질구질해 보이고, 없어 보이고….

“헉헉. 여기 <돼지 비계를 아주 조금 넣은 뜨끈한 수프>야! 같이 먹자!”

“쉿. 조용히 해! 다른 사람들 와서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미, 미안.”

“그리고 이걸 한 번에 다 먹자니.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런 사치를 부려서는 안 돼!”

“하, 하지만… 퍽퍽한 검은 빵은 이제 질렸단 말이야! 그냥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자! 대체 우리가 왜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건데!”

“참아! 대신 레벨하고 골드가 오르잖아! 나중에 크게 벌고 중앙 대륙에 돌아가면 집도 사고 이런 수프 같은 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

“…….”

옆에서 나누는 대화에 태현과 이다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여기….

지금…??

-여기 지금 물자가 거의 없는 거 같은데요. 태현 님.

이다비는 능숙한 상인답게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원래 한 마을이 잘 굴러가려면 그냥 마을만 있어서는 안 됐다.

그 마을을 꾸준히 드나드는 상인들이 있어야 물자가 돌아다니는 것이다.

태현이 골짜기를 받았을 때, 골짜기는 완전히 허허벌판이었지만 그래도 중앙 대륙이었고 왕국 안이었다.

상인 NPC들 부르는 데에 별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남부 대륙은 그런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

[해적으로 인해 물자를 실은 상선이 늦게 도착합니다!]

[행상인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상인들이 이 마을을 포기합니다! 설득하지 못하면 마을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

[……]

아무리 남부 대륙 플레이어들이 이 레벨 높고 근성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다 해결할 수는 없었다.

즉….

몇몇 운 좋고 위치 좋은 마을이나 도시를 제외하면 다른 개척지 마을들은 전부 다 물자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헉… 허억! 뉴비잖아!?”

“새로 온 사람 맞지??”

“맞, 맞는 거 같아. 자. 다들 침착해. 뉴비가 우리 상황을 눈치채면 비싸게 받을지도 모른다고.”

마을 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시선은 태현 일행의 가방으로 향해 있었다.

여기까지 올 정도면 분명 음식을 넉넉하게 들고 있겠지???

‘…불쌍하잖아!’

태현은 저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예전에 태현이 시작한 잘츠 왕국의 플레이어들 같은 모습.

하지만 그 고통은 몇십 배였다.

잘츠 왕국은 그래도 물자 부족으로 고통받지는 않았으니까.

“흠흠. 새로 온 플레이어들인가 보군.”

“어… 그래.”

“기뻐해도 좋아. 여기 오랑카 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길드는, 친절과 배려가 길드 원칙이거든. 손님들이 오면 주변을 안내해 주는 건 물론이고 어떤 던전이 좋은지, 어떤 몬스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설명까지 다 해준다고.”

‘지금 누구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는 걸까?’

류다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정체를 알게 되면 이불 좀 발로 찰 것 같은데….

“그렇군. 고맙다.”

태현의 말에 길드원은 무릎을 치며 외쳤다.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 아주 작은 조건이 있어.”

“뭐지?”

“상점에 아이템을 좀 팔아줘야 해. 보다시피 우리 마을이 지금 아주 쑥쑥 크고 있잖아? 아이템을 팔아도 팔아도 모자라거든.”

“…….”

태현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차마 짠해서 말하질 못했다.

[카르바노그가 눈시울을 붉힙니다.]

“아까 아이템 팔려고 했는데 상인이 골드 없다던데.”

“…그, 그놈이 이상한 거야! 그리고 상인한테 팔지 마! 우리한테 팔아!”

부끄러운 마을의 사정을 들킨 길드원은 얼굴을 붉혔다.

“그래. 어떤 아이템이 필요하지?”

“음식!!!”

“먹을 거!!!!!!”

“맛있는 거!!!!”

길드원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뒤에 누워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사납게 외쳤다.

길드원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렸다.

저 새끼들이 진짜 길드 망신은 다 시키는구나…!

“…음식 재료가 필요한가?”

“…비싸게 팔 테니까 많이 팔아줬으면 좋겠군….”

이렇게 된 이상 숨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눈이 달린 플레이어라면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챘을 테니까.

“물자가 그렇게 없나?”

“…그, 그냥 일시적으로 없는 상황이야. 오해하지 말라고. …이거 게시판에 올리지 마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