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29화
펠마스한테 당한 게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런 역사 왜곡에 매우 분노했지만, 몇몇 플레이어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건 분명히 퀘스트로 나온다.”
“퀘스트라니?”
“멀쩡하던 사람이 저렇게 맛이 갔잖아. 이건 퀘스트로 나올 수밖에 없어. 펠마스의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와라, 같은 퀘스트로.”
“과연…!”
“근데 펠마스가 멀쩡하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 한 명이 의문을 품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무시했다.
그러나 펠마스의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오라는 퀘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갈락파드 님! 펠마스 님의 정신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지? 지금이 훨씬 더 보기 좋지 않나?
“펠마른 님! 펠마스 님의 정신이 이상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펠마스도 드디어 진정한 신앙을 깨달은 거겠지요. 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답니다.
“…….”
플레이어들은 할 말을 잃었다.
교단 NPC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 동료잖아…!’
동료애라고는 조금도 없는 냉정한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은 무서워서 떨었다.
“그런데 펠마스를 꼭 고쳐야 하는 건가?”
“넌 왜 자꾸 헛소리야?”
“펠마스를 보라고.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한테 너무 퍼줘서 문제가 될 정도로 퍼주잖아. 근데 원래대로 돌아오면….”
“…….”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침묵했다.
생각해 보니 그들도 딱히 펠마스의 예전 모습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예전의 펠마스는 정말로 악독 그 자체였다.
대형 길드들이 대놓고 삥을 뜯는다면 펠마스는 교묘하게 삥을 뜯는 데에 고수였다.
-새로 나온 퀘스트, <아키서스 교단의 괴수 토벌>에 참가하고 싶은 모험가 있습니까! 무려 영웅 등급 퀘스트에 보상도 이렇게 화려한 퀘스트입니다!
-저요! 저요!
-펠마스 님! 참가하게 해주세요!
-좋습니다. 모험가들! 이 퀘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퀘스트 참가권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군요.
플레이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던 것이다.
-신전에 가서 참가권을 사면 되나요 펠마스 님?
-아닙니다. 이 참가권은 팔지 않습니다.
-그러면요? 사전 퀘스트를 깨야 하나요?
-아닙니다. 아키서스 신전에 가면 축복 받은 상자를 파는데, 이 상자에서 일정 확률로 참가권이 나옵니다.
-…미친…!
대형 길드들은 그냥 ‘너 우리 길드원 아니야? 그러면 꺼져!’라고 쫓아냈지만, 펠마스는 누가 아키서스 교단 아니랄까 봐 확률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퀘스트 참가하고 싶으면 상자 돌려서 참가권 얻어내야 하고, 사제나 성기사들 빌리고 싶으면 상자 돌려서 대여권 얻어내야 하고, 교단 장비 얻고 싶으면 상자 돌려서 구매권 얻어내야 하고….
처음에는 ‘뭐 이딴 시스템이 다 있어?!’ 하며 거절하던 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빠져들더니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되어버린 뒤였다.
그런데 그런 펠마스가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여러분! 퀘스트에 그냥 참가하세요! 장비? 그냥 공적 포인트만 갖고 오면 됩니다!’이러고 있었으니….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던 것이다.
“그러게. 펠마스 돌아오는 게 꼭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모든 퀘스트를 다 깨야 하는 건 아니니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나?
“!!”
뒤에서 펠마스가 나타나자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펠, 펠마스 님! 최근에 펠마스 님께서 너무 멋지고 선량하시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펠마스는 아부를 좋아했다.
물론 아부한다고 돈을 깎아주지는 않는 대쪽 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최소한 페널티는 받지 않을 테니까….
-나는 멋지고 선량하지 않네. 나는 오로지 아키서스 님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지.
-정말 죽을 때가 됐나?
갈락파드는 멀리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죽을 때가 됐거나 도플갱어가 대체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펠마스는 무시했다.
진정한 아키서스의 종은 동료의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모험가 여러분들에게 퀘스트를 주려고 왔습니다.
“상자를 돌려서 1% 확률로 나오는 입장권을 모아 와야 하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퀘스트를 깨는 데 왜 그런 게 필요합니까?
“…….”
“…….”
플레이어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니가 퍼뜨린 방법이잖아…!
<고대 제국 전사들의 개종-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고대 제국의 적통을 이은 전사들은 강하고 거친 자들이다.
이들을 설득하고 개종시키는 건 아무리 교황이라도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
진실된 신도들답게 가서 교황을 도와야 한다!
보상: ?, ???, ????
“교황이면… 김태현이잖아??”
“김태현 퀘스트!?”
“이런 걸 공짜로 준다고!?”
“지금 거기서 놀라는 거야?”
“그럼 여기서 놀라지 어디서 놀라?”
김태현이 하는 퀘스트에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공짜로 제공해 준다는 게 너무나도 놀라웠다.
골짜기에서 오래 있던 플레이어들일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퀘스트가 공짜로 풀리다니.
“와. 진짜 교단 엄청 편해졌네.”
“나 때는 말이야….”
“아. 시끄럽고. 같이 갈 준비나 합시다!”
“파티 구합니다! 성기사 이미 꽉 찼으니 사제로!”
“도적은 필요 없습니다! 그 외 직업 구합니다!”
골짜기 곳곳에서 파티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암살자 랭커, 재칼에게도 퀘스트가 뜬 건 마찬가지였다.
“재칼 님. 저희도 갑시다!”
재칼도 랭커다 보니 재칼을 존경하는 플레이어들이 몇몇 있었다.
암살자 꿈나무들이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요청해 오자 재칼은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으음… 그게 말이다.”
‘김태현 퀘스트에 내가 끼어도 괜찮을까?’
김태현이야 괜찮다고 했지만 그건 김태현 입장이었고 재칼 입장은 또 달랐다.
괜히 옆에서 깝치다가는 케인 선수가 화내는 것 아닐까?
-저 건방진 놈이 감히 용서해 줬는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옆에서 까불고 있어?
“재칼 님! 재칼 님이 안 가면 저희들을 누가 이끌어주겠습니까!”
“맞아요! 암살자들은 파티에 잘 끼워주지도 않아요!”
“…알겠다! 같이 가자!”
재칼은 결심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나 하나 정도 가도 눈에 안 띄겠지?’
퀘스트를 깨되 눈에 띄지 말자!
그게 재칼이 한 결심이었다.
* * *
[<악마가 빙의된 톱날검>을 완성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이번에 얻은 제작법 3개 중 가장 만들기 쉬운 게 <악마가 빙의된 톱날검>이었다.
<제국 건강 광선 장난감>은 들어가는 재료들이 어마어마하게 희귀한 축에 속했고, <강철의 유성> 같은 경우는 아예 발사대부터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에 비해 <악마가 빙의된 톱날검>은 악마만 있으면 나머지 재료는 꽤 구하기 쉬운 편이었다.
[<악마가 빙의된 톱날검>을 장착하시겠습니까?]
‘아니…?’
다 만들고 나서야 태현은 이 톱날검이 특이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 톱날검은 그냥 드는 게 아니라, 기존 검에 장착하는 형태인 것이다.
[<혼돈과 악마와 불의 검>에 <악마가 빙의된 톱날검>을 장착했습니다!]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부아아아아앙!
태현이 들고 있는 검의 날에 악마의 기운이 톱날처럼 날카롭게 삐죽삐죽 서렸다.
뒤에 우리에 갇혀 있던 악마들이 그걸 보고 기겁을 했다.
아키서스 후계자 놈 대체 뭔 괴물 같은 걸 만든 거야!?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할 수 있습니다.]
[검이 파괴될 경우 같이…]
내구도 관련해서 페널티가 붙긴 했지만 태현에게는 별 상관없는 문제였다.
행운 스탯으로 내구도 관해서는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받는 데다가, 애초에 태현은 검을 소모품처럼 제작해서 쓰고 있었으니까.
쓰다가 심심하면 폭파시키고 다른 검 쓰는 식으로 돌려쓰는 것!
본인이 뛰어난 대장장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검에 깃든 악마의 힘이 줄어듭니다.]
[악마를 충전해야 합니다.]
“흠.”
태현은 우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포병대 우리에 갇혀 있던 악마들이 기겁해서 시선을 피했다.
“여기 어느 악마가 일을 못하지?”
태현의 질문에 포병대 드워프들이 앞으로 달려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기 검은 놈이 못 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왜 거기서 말 안 하고 여기 와서?”
-아이 참. 폐하. 아무리 말 못하는 악마 놈이라지만 듣는 귀가 있는데 일 못한다고 하면 상처 받지 않겠습니까?
“과연!”
태현은 포병대 드워프들에게 감탄했다.
악마 수십 마리를 우리에 넣어서 데리고 다니다 보니 악마들 관리하는 솜씨에는 이골이 난 것이다.
“그러면 저 검은 놈 하나 꺼내주게.”
-예! 지금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드워프들은 바로 우리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악마 하나를 꺼내왔다.
[악마의 힘을 흡수합니다!]
[검에 악마의 힘이 충전됩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악마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마계로 퇴출되었다. 태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전 효과가 나쁘지 않군.”
-하지만 폐하. 매번 쓸 때마다 이렇게 충전해 줘야 하면 악마의 씨가 마를 겁니다!
드워프들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끌고 다니는 대포들이 쿨타임 없이 닥치는 대로 마력을 퍼부을 수 있는 건 악마들 덕분이었던 것이다.
다른 곳이라면 마력석이나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악마 덕분에 그런 게 필요가 없었다.
“걱정 마라. 요즘 악마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내가 또 질 좋은 놈으로 하나 구해다 주마.”
-정말이십니까!?
드워프들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뒤에 갇혀 있는 악마들은 질린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저런 미친놈들…!’
‘왜 저런 놈들이 마계에 안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마계에 있어야 할 인재들이 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모든 걸 주도하고 있는 아키서스의 후계자 저놈!
“악마들을 좀 정예화시킬 필요가 있긴 한 것 같아.”
“확실히 지금은 너무… 부피가 크긴 해요.”
이다비도 동의했다.
포병대의 약점은 그 덩치였다.
대포도 끌고 다녀야 하고, 감옥 수레도 끌고 다녀야 하고….
드워프들과 부족 전사들과 거인들까지 우르르 붙어서 다니고 있는 만큼 공격 받기도 쉬웠던 것이다.
“이번에 에다게르를 새로 잡고 느낀 건데, 질 좋은 악마 한 마리가 어중간한 악마 백 마리보다 나은 거 같아. 네임드 다섯 정도만 있으면 그 이하 악마들은 솔직히 다 비워도 될 거 같거든.”
-맞는 말씀이십니다.
우리에 갇혀 있던 악마 공작의 아들, 구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조언을 했다.
-사실, 이름 없는 악마들은 아무리 상급이라고 해봤자 마력량에 한계가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렇지? 역시 구시온이야.”
-후후. 감사합니다.
에다게르는 구시온을 세상에서 제일 괴상망측한 악마를 보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악마 공작의 아들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 그렇군. 속임수를 쓰는 거군. 속임수를 쓰는 거겠지?
에다게르는 유일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지금 구시온은 아키서스의 후계자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추하게 아부할 리가 없지 않은가!
-드워프 어르신! 이 악마 놈이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고 있습니다!
-뭐!? 에다게르 저놈이 아직도 철이 안 들어서!
-성수 펌프 틀어!
-크아아아악!
드워프들이 몰려와서 에다게르를 따끔하게 혼냈다.
에다게르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라, 구시온! 난 널 믿는다! 이렇게 놈들을 속여서 탈출할 기회를 만드는 거다!’
물론 구시온은 에다게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구시온이. 여기 이거 좀 먹고 하라고.
-감사합니다. 드워프 어르신들!
-악마들이 다 우리 구시온이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