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28화 (1,427/1,826)

§ 나는 될놈이다 1428화

아예 쓰기 힘들 정도로 페널티가 붙자 태현의 생각도 살짝 달라지긴 했다.

보상이 얼마나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황금 루비 목걸이:

내구력 4/150, 마법 방어력 210.

스킬 ‘정령왕의 군대 소환’ 사용 가능.

뛰어난 정령사가 정령왕의 인정을 받아 하사받은 아름다운 목걸이다. 파손 정도가 심해 스킬을 사용할 경우 파손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아이템의 파손 정도가 심해서 스킬을 사용할 경우 망가질….]

[…….]

‘윽.’

태현은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이런 아이템의 가치를 모르고 폭탄을 갈겨 버리다니!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쓰면 파손인가. 그래도 정령왕의 군대 소환 정도면 꽤 강력해 보이는데.’

이제까지 소환 스킬로 쏠쏠하게 이득을 본 태현이었다.

악마 군대 소환, 아키서스의 천사 소환 등등.

한 번 소환할 때마다 불리했던 상황을 대번에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런 스킬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트프리드 퀘스트 깨실 겁니까?”

“글쎄. 견적을 봐야 할 것 같….”

말하던 태현은 류다영의 눈빛을 보고 멈칫했다.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왜 저래?

-그야 전사 직업이니까?

아이템을 확인하던 이세연이 대신 설명해 줬다.

-고대 제국 전사 관련 퀘스트면 누구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잖아. 난 오히려 네가 그렇게 관심 적게 보이는 게 신기한데.

태현처럼 검술 스킬을 주력으로 쓰는 직업이면 꼭 전사가 아니더라도 이번 가트프리드 퀘스트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태현은 가트프리드 퀘스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급한 게 마법 스킬이라서.

-…내가 조언할 위치는 아니긴 하지만 스킬은 하나만 주력으로 파는 게 낫지 않을까?

대체 몇 개를 주력으로 파는 거야…!

“그래. 바로 가트프리드 퀘스트 깨자.”

“감사합니다!”

태현은 선선히 수긍했다.

가트프리드 퀘스트가 나쁜 퀘스트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에 전사 위주가 될 것 같아서 굳이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

하지만 저렇게 말한다면 깨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트프리드의 양손검도 보상으로 바꿔야 했고….

* * *

“다 정리했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정리했어. 밖에 가서 한번 봐.”

“많이 건드렸다고 그게 많이 정리한 거냐? 우리가 맡은 곳이 훨씬 더 난이도가 높았다. 건축 스킬이 높지 않았으면 감히 건드리지도 못했을 곳들이 많은데!”

“그렇게 따지면 쓰러진 병사들 회복시켜서 원상복귀시킨 건 왜 빼는데? 그쪽은 힐러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못했나?”

‘정말 추한 싸움이군.’

태현은 두 길마의 싸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이렇게 싸울 수 있을까?

[카르바노그가 네크로맨서와 화신을 번갈아 쳐다봅니다.]

‘왜?’

[카르바노그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태현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원래 둘이 협력해서 점령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점령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두 길드가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려고 했지.”

“그건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저렇게 배신하려는 플레이어하고 어떻게 믿고 운영할 수 있겠나!”

“내가 할 소리거든? 김태현. 그냥 한쪽을 정해! 이렇게 된 이상 끝장을 봐야 할 테니까. 어떻게 저쪽을 믿겠어?”

공성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태현은 고민했다.

판온 1이었다면 둘 다 패고 꺼지라고 했겠지만, 지금 태현은 아탈리 왕국의 왕이었다.

고민해서 잘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성을 반으로 쪼개서 나눠주는 건 어때?”

이세연은 농담 삼아서 그렇게 말했다. 태현은 그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한 거야.”

“아니. 그렇지만 꽤 그럴듯한 소리군.”

“방금 그 소리의 어디가?!”

태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이 두 길드 때문에 오래 시간을 잡아먹는 것 자체가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1분 안에 끝내도 모자란 이들!

“결정을 내렸다.”

“!”

두 길마는 긴장과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과연 김태현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우리 검은 갈퀴 길드를 골랐을 거다. 나인테일 길드보다 우리 길드원들 숫자가 더 많으니까!’

‘김태현이 길드원들 숫자로만 파악할 정도로 단순한 사람은 아니지. 최근에 깬 퀘스트들을 보면 우리 나인테일 길드가 더 우세해.’

“공성전 시작할 때 둘이 약속했던 것처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눠주겠다.”

“…?”

“아니. 김태현. 잘 굴러갈 리가 없다니까?”

“아. 알겠다.”

검은 갈퀴 길마, 남정훈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태현. 반반씩 줄 테니까 길드끼리 싸워서 승부를 내란 건가?”

“과연….”

“역시 김태현이군.”

“하여간 싸움 더럽게 좋아하는 놈이야.”

뒤에서 수군거리며 납득하는 길드원들. 태현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방금 마지막에 말한 놈 누구냐?”

“…….”

“…….”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태현은 굳이 캐묻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길마들을 쳐다봤다.

“아니거든?”

“…아니었냐?”

남정훈은 좀 민망해졌다. 클라우지아도 속으로 살짝 민망해했다.

‘저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지금 바깥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성주도 쫓아내고 굶주린 혼돈의 전사도 쫓아냈는데 둘이 싸우면 퍽이나 성이 잘 굴러가겠다.”

“하, 하지만 그러면 둘을 나눈다는 게 무슨 의미가….”

“들어봐라. 정확히는 둘로 나눠서 주는 게 아니라 셋으로 나눠서 줄 거다.”

“셋?”

셋이라니. 두 길드 말고 하나 더 있단 말인가?

태현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나.”

“…….”

“…….”

“왜. 나 정도면 받을 권리 있지 않나? 애초에 지금 내가 성주인데?”

“아, 아니. 받을 권리 없다는 게 아니라….”

“당, 당황스러워서 그랬어.”

태현의 말에 두 길마는 급히 변명했다.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가 태현의 성질이 나오면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걱정 마라. 난 딱히 영지 경영에 참가할 생각 없으니까. 너희들이 세금을 걷든 영지 앞에 용암을 깔든 이상한 짓만 안 하면 크게 신경을 안 쓰겠지만….”

‘그게 이상한 짓 아닌가?’

“…그래도 이렇게 하면 둘이 서로 싸우지 못하겠지?”

“!”

“나 지금 다른 영지 경영하느라 정신없으니까 여기에 신경 쓰이게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두 길드가 잘 할 수 있으라 믿어.”

한마디로 두 길드가 서로를 못 믿으니, 태현이 남아서 감시역을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태현 본인보다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남아서 감시하는 형태가 되겠지만….

“김태현! 말은 좋지만 그게 잘 돌아갈까? 김태현 네가 없으면 저쪽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 김태현. 이런 건 한쪽이 끝장을 봐야….”

쾅!

태현은 검을 뽑아 바닥에 찍었다.

“해.”

“…알겠다.”

“응….”

그걸로 공성전의 정리는 끝났다.

성문에서 정리하던 이다비가 돌아와서 말했다.

“세 분 이번 공성전 기념으로 같이 사진 하나 찍으시죠?”

“그럴까? 자. 둘 다 내 옆으로 와봐. 다들 웃어. 왜 안 웃지?”

“웃, 웃고 있는데?”

“웃고 있다.”

두 길마와 태현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사이좋게 사진을 찍었다.

그걸 찍으며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얼굴 표정을 포토샵으로 고쳐야 할까?’

* * *

암살자 랭커, 재칼은 꽤 뛰어난 플레이어였다.

태현이 보고서 ‘와 너 잘하는데?’라고 말할 정도면 정말 컨트롤이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재칼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무언가를 고를 때 안 좋은 것만 고르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명성을 얻고 싶어서 케인이 있던 레드존 길드 출신이라고 사칭을 했던 것에서 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골라도 아주 이상한 걸 고르는 재주.

…덕분에 태현이 괜찮다고 용서해 주고 교단 비전 암살자로 전직 퀘스트까지 내줬어도, 재칼은 불안에 떨었다.

언젠가 케인 선수가 찾아와서 멱살을 잡고 화내는 것 아닐까?

-이 자식! 감히 날 사칭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그러고도 랭커냐! 이 골짜기에서 사라져!

몇 번을 꿔도 사라지지 않는 악몽.

이런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칼은 열심히 플레이에 집중했다.

<교단의 적, 탐욕스러운 이골덴 처치-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 퀘스트>

탐욕스러운 이골덴은 교단의 적으로서….

<교단의 적, 사기꾼 제팔크 처치-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 퀘스트>

사악한 제팔크는 교단의 적으로서….

교단 비전 암살자 직업이 새로 생겨나고, 교단에는 암살자 NPC들과 함께 새로 가입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났다.

그만큼 걸맞은 퀘스트들도 늘어난 상태.

꼭 암살 퀘스트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암살자들을 위한 무기 개발-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 퀘스트>

암살자를 위한 뛰어난 무기의 제작법을….

<암살자들의 불만 해결-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 퀘스트>

교단의 암살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걸 해결해야….

제작법 획득, 불만 해결, 독에 쓸 재료 수급 등 잡다한 퀘스트도 많았던 것이다.

암살자로 전직한 플레이어들은 이런 퀘스트를 잘 깨지 않았다.

암살을 하고 싶어서 전직한 거지 잡퀘를 하고 싶어서 전직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칼은 이런 잡퀘도 꾸준히 했다.

나중에 케인을 만나면 핑계를 대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자식! 감히 날 사칭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케인 선수! 저는 골짜기에서 이렇게 남들이 하지 않는 퀘스트도 하며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제발 이걸 참작해주셔서….

-그래? 훌륭하군! 널 용서하겠다!

-감사합니다!

…같은 상황을 꿈꾸고 있었다.

“근데 아키서스 교단이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지 않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나가는 교단 암살자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게 들렸다.

재칼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던 것이다.

모든 아키서스 교단 관련 전직자들이 하는 말.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데!?

뭘 상상하든 간에 상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교단이 바로 아키서스 교단이었다.

암살자 플레이어들은 ‘아키서스 교단이 그렇게 전투력이 강하다던데 분위기 꽤 살벌하겠지?’라고 예상했었다.

원래 전투력 높은 교단일수록 내부 분위기가 군대처럼 살벌한 것이다.

그런데 교단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좀 많이 달랐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 제 형제입니다. 여러분들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자. 여기 제 돈을 써서 사 온 장비가 있으니 이 장비를 입어주십시오!

-어… 장비 안에 함정이 있나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렇게 악독하고 살벌하다던 펠마스 같은 NPC도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무슨 속임수인가??’싶어서 황당해했다.

물론 예전부터 교단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배가 아파서 투덜거렸다.

-아. 요즘 가입한 뉴비들은 완전 날로 먹는다니까. 나 때는 펠마스가 저런 거 해주지도 않았는데.

-맞아. 펠마스한테 퀘스트 보상 50%씩 뜯겨봐야 교단 생활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는 거지.

-너희 펠마스한테 보상 100% 연속으로 5번 뜯기면 히든 퀘스트 나오는 거 알고는 있었냐? 요즘은 그런 것도 없을 듯.

…물론 펠마스의 이런 변화는 플레이어들한테도, 동료 NPC들한테도 적응 안 되는 변화였지만 새로 가입한 플레이어들한테는 매우 좋은 변화였다.

게시판을 보면 온통 펠마스 찬양하는 글들이었으니까.

<새로 가입했는데 펠마스란 NPC 너무 착한 거 같아요!>

<펠마스 욕 많은데 사람들이 자기들만 꿀 빨려고 욕한 거 아님? 펠마스가 괜히 불쌍하네.>

<여러분 펠마스 너무 믿지 마세요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릅니다>

<네가 펠마스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펠마스 욕하는 놈들은 진짜 다 반성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