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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25화 (1,424/1,826)

§ 나는 될놈이다 1425화

-아니. 미쳤소!?

전사는 성주의 공격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굶주린 혼돈을 따르는 신도들 사이에서도 급이 있었다.

성주처럼 방금 막 타락해서 이성을 잃은 자는 가장 아래 등급!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그런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 무시하고 성주가 공격을 해오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폭발 때문에 타락이 도중에 멈췄나!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이를 갈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혼돈에 타락하던 도중 폭발하는 바람에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은 모양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성주를 설득하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성주까지 적으로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성주. 정신 차리시오! 지금 성주를 죽인 게 누군지 기억하란 말이오! 성주가 지금 살아 있는 건 굶주린 혼돈 님께서 내려주신 힘 때문이오. 굶주린 혼돈 님을 배신할 생각이오?

-죽어라!!!

[스칼로 성주가 정령을 소환합니다!]

[정령과의 연결이 굶주린 혼돈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정령들이 타락하고 폭주합니다!]

쿠오오오오오!

허공에서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원소 정령들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타락하고 폭주한 정령들은 강력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전사를 위협했다.

-성주!! 정신 차리시오!

-네놈이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감히 혓바닥을 놀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걸 알잖소! 저 아키서스의 후계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소!

“…….”

“…….”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랭커들은 할 말을 잃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미친놈인가 진짜….’

‘대체 뭔 짓을 해야 보스 몬스터 둘을 싸움 붙일 수 있는 거냐?’

아무리 화술 스킬이 높다고 하더라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분명 저 둘은 아까까지만 해도 성 가장 높은 첨탑 위에서 ‘크하하! 우리 둘을 상대해 봐라!’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근데 왜 서로 죽일듯이 저렇게 싸우고 있는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의외로 끈질겼다. 포기하지 않고 태현을 가리키며 성주의 분노를 다시 일깨우려 했다.

-성주! 저 아키서스의 후계자를 보시오! 분노를 떠올리시오!!

“아 저 끈질긴 새끼.”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라는 놈이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질척대는 거야?

[아키서스의 이간질로 인해 성주의 상태가….]

[화술 스킬로 인해 성주의 상태가….]

[…….]

[…….]

그러나 전사의 말은 성주에게 와 닿지 않았다.

각종 스킬도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배신을 때린 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저 국왕은 원래 그런 놈이었다. 그에 비해 네놈은 내게 약속을 하고 날 배신했다! 네놈은 용서할 수 없다!!

-…….

“…….”

그럴듯한데?

[카르바노그도 확실히 원래 미운 놈보다 원래 안 미웠던 놈이 미운 짓을 하면 더 밉다고 말합니다.]

태현한테는 실망할 게 없었지만 굶주린 혼돈의 전사한테는 실망할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 크악!!

성주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정령들을 부려서 공격을 개시했다.

[폭주한 정령들이 원소 난동을 사용합니다!]

[화염이 퍼져 나갑니다!]

“김태현!! 지시! 지시!!”

“너희 파워 워리어 소속이냐? 왜 나한테 지시를 물어??”

랭커들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

이 상황에서 김태현을 불렀다는 게 매우 쪽팔렸던 것이다.

‘아니…!’

‘누가 불렀냐?! 자존심도 없어?’

남탓을 했지만 사실 랭커들도 다 알고 있었다.

1초만 늦었어도 자신들이 태현을 불렀을 거라는 걸.

길드의 랭커로 뛰면서 다른 길드 사람한테 지시를 내려달라고 외치는 건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에 [주의! 김태현 길드원 아님] 같은 제목으로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쪽팔림.

“일단 공격하지 말고 기다려!”

태현은 그래도 나름 친절하게 지시를 내려줬다.

성주와 전사가 치고받고 싸우는데 괜히 어그로를 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

그 말에 두 길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의 말도 일리가 있긴 했지만, 지금 둘은 기다리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저 녀석이 먼저 들어가서 안을 차지하면 어떡하지?’

‘저놈은 배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놈인데….’

검은 갈퀴 길드나 나인테일 길드나 서로를 안 믿는 건 마찬가지.

사전에 미리 약속을 해놨다지만, 서로한테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배신을 해야 했다.

두 길드 모두 ‘일단 약속을 지키더라도 우리 길드가 먹어야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지금 둘이 눈동자를 굴리는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

태현은 뒤를 보며 말했다.

그 서늘한 모습에 두 길마는 움찔했다.

“무, 무슨 소리냐? 내가 언제 눈동자를 굴렸다고?”

“내가 언제 눈동자를 굴렸어?”

두 길마는 단호하게 스스로를 변호했다.

‘귀신 같은 자식…!’

판온 1에서 섬뜩할 정도로 남의 심리를 읽던 능력이 어딜 가지 않았는지, 여기서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성주가 여기 있으면 성주의 방은 어디 간 거냐?

-저희도 지금 싸우느라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너희는 대체 와서 뭘 한 거냐??

길마가 구박했지만 랭커들은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너무 진도가 느리긴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강했고, 생각치도 못한 적이 나와서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은 사실.

-지금이라도 움직이겠습니다.

-지금?

-예! 지금 보면 아시겠지만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보스 몬스터 둘이 싸우는 데다가 한국대표팀 선수들까지 있지 않습니까.

-…후자는 왜 넣은 거지?

나인테일 길마, 클라우지아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보면 같은 길드원인 줄 알겠다.

-아니… 지금은 같이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태현이 의외로 괜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뭐??

클라우지아는 귀를 의심했다.

김태현이 뒤에서 칼 들이대고 협박했나?

-누가 뭐한 구석이 있다고?

-길마님. 판온 1 때문에 김태현 싫어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번 공성에서 김태현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내성 안으로 진입할 때도 도와주고, 내성 안에서 상대할 때도 도와주러 왔습니다.

클라우지아는 현기증이 일어나서 비틀거렸다.

길드가….

망할 징조인가?

그러나 태현에게 도움받은 랭커들은 꿋꿋이 의견을 꺾지 않았다.

판온 2부터 시작한 놈들이라 그런지 ‘길마님께서 지금 과거에 너무 집착하고 계신 겁니다!’ 같은 헛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다.

‘랭커들이 지금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면 김태현이 우릴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클라우지아는 계산해 봤다.

이건 일종의 강 건너기 문제였다.

김태현과 랭커들, 보스 몬스터와 길드원들이 있는데 이때 김태현과 길드원들을 두고 랭커들이 빠지면 김태현이 길드원들을 잡아먹….

-길마님! 움직여야 합니다!

-알고 있어! 좋아. 움직여!

클라우지아는 날카롭게 외쳤다. 일단 움직이고 봐야 했던 것이다.

-성주의 방이 사라졌을 테니, 내성 안의 다른 장소가 지정되었을 거다. 거길 찾아!

원래 점령하고 있어야 할 성주의 방이 사라졌으니 대신 내성 어딘가의 장소가 점령지로 바뀌었을 것이다.

거길 먼저 잡아야 했다.

“김태현! 지금 저놈들이 싸우는 틈을 타 내성 안의 다른 적들이 숨어 있지 않나 확인하게 해줘!”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고 있지?”

“…….”

태현의 말에 검은 갈퀴 길마는 움찔했다.

자기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니들 지금 설마 여기 보스 몬스터 있는데 내성 점령지 찾아서 먼저 점령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이 상황에??”

“…….”

“…물론 아니지!”

“김태현!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우리 길마님을 뭘로 보고!”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화를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길마가 그럴 리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랭커들 뺄 리가 없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아니. 지금 너희 길마들이 다른 성 확인하겠다고 했는데?”

“길마님께서 직접 확인하시거나 하려고 하신 소리겠지, 무슨 점령을 해!”

“뭐야. 그런 거였나?”

“…그런 거였긴 한데….”

이쯤 되면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그래! 사실 그러려고 했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 그런 거면 갔다 와라.”

“…….”

두 길마는 왠지 힘이 빠진 어깨로 움직였다.

내성 안의 다른 적들 찾으러 가는 것치고는 좀 기운 빠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 성주와 전사의 불꽃 튀는 대결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해?

-크아악!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태현한테 폭탄으로 두들겨 맞고 랭커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저력을 발휘한 것이다.

성주가 불러낸 정령들을 칼로 베고 손으로 잡아 찢으며 성주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

쾅!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패왕의 세 번째 공격>을 사용합니다!]

[땅이 진동합니다!]

우르릉!

태현한테 멍청하게 속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보고 있던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검술 스킬을 갖고 있었다.

거의 전설 레벨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검술 스킬!

“패왕의 검법…! 저걸 갖고 있었나!”

몇몇 랭커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익히기 지극히 까다로워서 검술 스킬만 파고 있는 검사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난이도 높은 검법 스킬을 갖고 있다니.

“김태현. 너도 패왕의 검법 스킬 갖고 있지 않았냐?”

“뭔 소리냐? 그런 거 없는데?”

“어? 폭발 이펙트 나가고 그런 거 패왕의 검법 아니었어?”

“…….”

태현은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사실 그게 <광기의 폭발> 검법인데….

…라고 말하는 순간 태현을 쳐다보는 눈빛에 동정심이 섞일 것 같았던 것이다.

-폐하!!

“……?”

-도와주십시오!!

“…넌 양심이 없냐??”

태현은 정말 오랜만에 놀랐다.

스칼로 성주가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왔으면 대성했을 인재!

-폐하! 도와주십시오! 저와 폐하 사이지 않습니까!

“네가 나하고 무슨 사이인데?”

-폐하! 제가 쓰러지면 이자는 폐하를 노릴 겁니다!

-이런 미친놈 같으니!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서 아키서스의 후계자한테 도움을 요청하느냐?? 그리고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널 도와줄 것 같으냐??

“공격 개시!! 성주를 도와라!!”

“…공, 공격 개시!!”

-?!?!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노려보았다.

태현은 당당하게 외쳤다.

“아키서스 교단은 굶주린 혼돈과 달리 도움을 청하는 자를 쫓아내지 않는다!”

-저런 뻔뻔한 잡놈이 감히!!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격노합니다!]

[지나친 분노로 인해 검술 스킬에 페널티가….]

쾅!

태현은 굶주린 혼돈의 전사 앞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그 뒤로 랭커들과 길드원들의 지원이 살벌한 수준으로 날아들었다.

“김태현을 지원해! 빠져나가지 못하게 묶어!”

수십 개의 마법과 스킬들이 작렬하자 굶주린 혼돈의 전사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태현은 닥치는 대로 스킬을 켜고 덤벼들었다.

‘가능한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각성>은 쓰지 않고 잡고 싶다!’

워낙 아까운 스킬이다 보니, 이번 레이드에서 저 스킬까지 쓰지 않고 잡기만 해도 성공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의 갑옷이 파괴됩니다!]

-감히!!

-사디크의 화염!

태현은 피하면서 쉬지 않고 마법을 꽂아 넣었다.

[사디크의 화염이 치명적으로 데미지를 입힙니다!]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고급 마법 스킬 레벨이 9로 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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