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23화
-큰일이다!
‘오. 통하는군.’
[화술 스킬이 매우 높…]
[굶주린 혼돈으로 인해 병사들이 의심에…]
[……]
[……]
“…….”
류다영은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NPC 상대로 뭘 성공시킨 거지?
-성주님께 연락을 드려라! 성주님 주변에 첩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니 아탈리 국왕이 찾아온 것도 그 첩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더더욱 그럴듯하군!
근위병들을 만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키는 화술 스킬.
근위병들이 떠나고 나자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럭저럭 잘 됐군.”
“…이게 그럭저럭 잘 된 거면 그보다 더 잘 된 건 뭡니까…?”
“근위병들을 설득해서 성주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거?”
“…?!?”
옆에서는 이세연이 맞는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랭커의 미친 대화에 류다영은 점점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철커덩!
“!”
근위병들을 뚫고 거대한 석조 계단 위를 올라가던 일행은 멈칫했다.
앞에서 갑작스러운 상대를 만난 것이다.
‘굶주린 혼돈!’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었기에 상대가 굶주린 혼돈의 전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틈 하나 없이 온몸을 뒤덮은 중갑옷에, 불길하게 풍겨내는 지독한 혼돈의 기운.
-너무 소란을 피웠어…!
-폭탄을 좀 살살 터뜨릴 걸 그랬나?
-폭탄을 살살 터뜨릴 수도 있어??
이세연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태현은 살짝 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농담한 건데 그렇게 진지하게 들을 줄은 몰랐어.
-…죽을래 진짜?
기계공학 모르는 이세연에게는 폭탄 살살 터뜨리는 방법도 있었나 싶었던 것이다.
-두 분, 지시를 내려주셔야….
류다영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귓속말을 보냈다.
여기서 싸움을 벌여야 하나?
그냥 통과할 수 있을까?
위로 올라가면 성주가 있을 텐데 성주를 내버려 두고 온 건가?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하기도 전에,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속임수에 내가 속을 줄 알았나, 아키서스의 후계자야!
“!”
일행은 깜짝 놀랐다.
들킨 건가?
-이 성 안에 첩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성주 근처까지는 오지 못했을 터. 우리를 속이기 위한 헛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감히 굶주린 혼돈 님께 선택받은 날 속이려고 들어?
‘싸워야겠군.’
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도 많이 속이는 덕분에, 태현의 적들도 이제 속임수에 꽤 내성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 싸워야 했다.
불리한 상황이지만 밖의 플레이어들도 있고 못 싸울 상대는 아닌….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끝까지 버티려고 하다니, 아키서스의 후계자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
일행은 당황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바로….
류다영이었던 것이다.
“…아, 아니.”
-포로인 척 위장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말했듯이… 소용없다!
콰르륵!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주인의 힘을 불러옵니다!]
[굶주린 혼돈이 힘을 빌려줍니다!]
[<위대한 힘의 봉인>을 사용합니다!]
-타이란 교단의 스킬이야!
이세연은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쓰는 권능 스킬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현도 분노해서 말했다.
-다른 교단의 스킬을 멋대로 뺏어가서 쓰다니!
[…???]
여러 신들을 집어 삼키는 게 목적이자 취미인 굶주린 혼돈답게, 빼앗은 권능들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타이란 교단의 권능 스킬이 사용되더니 포로 상태인 류다영이 단단히 묶였다.
-이대로 성주 앞에 널 끌고 가겠다. 성주가 네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아키서스의 후계자야!
“저… 그게….”
류다영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태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아까부터 계속 류다영을 변장한 태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변장한 태현은 그냥 병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
‘속임수에 내성이 생긴 게 딱히 아니군….’
정확히는 당한 게 있어서 의심은 하는데, 제대로 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역시 굶주린 혼돈에게 선택받은 전사님이십니다!”
-하찮은 병사 주제에 보는 눈이 있구나.
“예! 저는 예전부터 굶주린 혼돈 님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제법 기특한 소리를!
[최고급 화술 스킬을…]
[악명이 매우 높습니다!]
[여러 교단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호감을…]
사실 태현만큼 굶주린 혼돈과 잘 맞는 인간 영웅도 드물었다.
교활하지, 능력 있지, 다른 교단 권능들 잘 뺏지….
그런 만큼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태현을 기특하게 쳐다봤다.
-좋다. 저 포로를 끌고 가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네게 맡겨주겠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끌고 따라와라. 성주한테 저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을 던져줘야겠다.
“예!”
“…….”
류다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끌려가면서 류다영은 자신도 모르게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거 괜찮은 거 맞죠?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미안. 나도 잘 모르겠어….’
* * *
류다영은 끌려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케인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까지 봐왔던 케인의 활약 영상들.
방패가 되고 미끼가 되고 폭탄이 되고 폭탄이 되었던 일화들.
예전에는 ‘저렇게 플레이하다니 저게 말이 돼?’ 하면서 웃어넘겼지만, 자기 일이 되자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탱커가 이렇게 힘든 자리였나…?’
-아키서스의 후계자를 붙잡아왔다!
-국왕을!? 어디 있나!
[스칼로 내성 최상층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으로 스칼로 내성 최상층에…]
[명성이 오릅니다!]
[……]
[……]
성주는 내성 최상층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밑에서 이어진 계단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서는 침입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마법으로 방어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가파른 성벽을 타고 오르거나 날아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한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는 두려움에 떨었다.
아탈리 국왕이 그만큼 무시무시한 존재였던 것이다.
-저놈 첩자 아니냐? 저놈 수상하게 생겼는데??
-성주님. 그자는 성주님을 십 년 넘게 모셔 온 시종입니다.
-그러면 저놈이 첩자 아니냐??
-성주님. 그분은 성주님의 아버지십니다.
-그러면 저놈은? 저놈은??
…그렇게 의심에 떨며 두려워하던 도중,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국왕을 잡아 왔다고 하자 성주는 기뻐서 펄쩍 뛰었다.
-어디! 어디 있느냐!
-여기 있지 않소!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류다영을 가리켰다. 성주는 당황해서 물었다.
-아예… 성별이 다른데?
-어리석기는! 그러니까 아키서스의 후계자에게 당하는 것이오. 아키서스의 후계자를 상대할 때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오. 성별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는 놈이지! 이자의 눈빛을 보시오.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류다영의 눈빛을 가리켰다.
당황한 거 같기도 하고, 포기한 거 같기도 하고, 체념한 거 같기도 한 오묘한 눈빛!
-확… 확실히 범상한 눈빛이 아니다!
-그렇소. 이자가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아니라면 누가 아키서스의 후계자겠소?
“…….”
“…….”
태현과 이세연은 시선을 교환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슬금슬금 성주 쪽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미묘할 정도로 조금씩.
그리고 이세연은 은신 상태를 빌려 닥치는 대로 마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신호만 떨어지면 준비된 마법들을 미친 속도로 쏟아낼 것이다.
이런 변화도 눈치채지 못하고, 성주는 류다영을 보며 말했다.
-폐하!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
-그렇게 입만 다물고 계셔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입을 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주는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산맥에 박혀 있는 성의 주인으로 끝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 되셨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이 새끼는 그럼 지가 하던가….’
태현은 울컥했다.
니들이 안 해서 내가 강제로 왕 자리 앉게 된 것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한 줄 아냐?
그냥 골짜기만 관리했으면 골짜기 레벨이 2배는 뛰었을 것이다.
도움도 안 되는 왕국 관리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폐하께서는 제게 왕관을 양보해 주셔야 할 겁니다. 폐하를 따르는 귀족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게 왕위를 넘기십시오! 그러면 폐하를 귀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르잖소. 아키서스의 후계자는 내게 줘야지. 굶주린 혼돈께서 저자를 원하시오.
-쉿. 일단 설득은 해야 할 거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굶주린 혼돈이 화신을 매우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별로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닌데….’
그러는 사이 태현은 준비를 마쳤다.
팟!
-아키서스의 이간질, 아키서스의 저주!
[<아키서스의 이간질>을 사용합니다! 적들의 사이가 일정 확률로 크게 나빠집니다!]
[<아키서스의 저주>를…]
태현은 아키서스의 저주를 성주한테 사용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한테 썼다가는 버틸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만났단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주인의 힘을 빌려 태현의 권능을 튕겨냈던 적도 있었다.
그걸 생각해 보면 안전하게 가야 했다.
노리는 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성주!
-뭐, 뭐야?!
“움직이지 마라. 성주!”
태현은 성주를 붙잡고 검을 들이댔다. 그리고 폭탄을 빠르게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저주>는 어지간한 스킬들은 다 실패해 버리는 사악한 저주.
성주는 그대로 제압당해서 몸에 폭탄을 주렁주렁 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고!! 네가 첩자였던 거냐!?
“성주. 내가 국왕이다.”
-…그러면 저건 뭐냐!?
“그냥 아무 데서나 붙잡아 온 일반인이지.”
-…….
-…….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투구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태현은 왠지 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멍청한 놈아! 칼질만 할 줄 알지 어떻게 이런 걸 놓치느냐!
-닥… 닥치시오! 아키서스 놈의 속임수 때문에 어쩔 수 없었소!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급히 변명했지만, 솔직히 태현이 보기에도 설득력 없는 변명이었다.
게다가 지금 태현이 이간질 스킬을 켠 덕분에 둘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권능이 맴돌고 있었다.
-내 목숨을 빨리 구하지 못할까?!
-닥치고 있으시오. 성주!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당신도 뛰어난 정령사라면 소리만 지르지 말고 스스로 벗어나 보란 말이오!
-지금 저주 때문에 스킬을 못 쓰는 게 안 보이느냐!
‘정령사였군!’
태현은 성주가 정령사라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정령을 소환해서 끌고 다니는 정령사는 네크로맨서와 상대법이 비슷했다.
최대한 붙어서 절대 틈을 주지 않는다!
“성주. 미안하지만 저 전사가 아무리 빠르고 강하더라도 내가 성주 하나 정도는 같이 저승으로 보낼 수 있다.”
-폐… 폐하. 이러지 맙시다. 이 고블린들이나 만지는 흉악한 물건이 터지면 폐하께서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아키서스께서 돌봐주고 있으셔서 괜찮은데? 아키서스를 믿지 그랬나?”
-…….
성주는 침묵했다. 속으로 태현을 욕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이를 갈며 태현에게 말했다.
-뭘 원하나, 아키서스의 후계자야!
“이 성을 내놔라.”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지금 네놈을 바로 죽일 수도 있다!
“저런. 성주. 저놈이 성주를 죽이려고 하는 모양이군. 하긴 아까 행동부터 좀 수상하긴 했어.”
-닥치고 있어 네놈은!!
성주는 씩씩대며 전사를 타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