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21화
“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류다영은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두 길드와 같이 협력하기로 했는데, 한쪽에 저렇게 어그로를 끌어버리게 만들면….
“왜?”
“뭐가 문제죠?”
태현과 이세연은 둘 다 진심으로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류다영이 더 황당할 뿐이었다.
“그게… 저쪽 길드에서 항의하면….”
“억울하면 자기들도 하라고 해.”
“이건 김태현 말이 맞아요.”
태현과 비교하면 상식인이라고 생각했던 이세연도 저렇게 말하자 류다영은 스스로의 상식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 건가!?
“지금 같이 깨는 것도 아니고 서로 알아서 경쟁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맞아.”
이세연은 그렇게 동의하며 언데드들을 불러냈다.
허공에서 날아온 대형 언데드 박쥐들이 병사들의 어그로를 끈 다음, 다시 한번 다른 길드 쪽으로 보내버렸다.
“저는… 제가 탱킹을 할 줄 알았습니다.”
“에이. 탱커라고 무조건 탱킹해야 할 필요가 있나. 필요할 때 하면 되는 거지.”
“맞아요. HP 아껴두세요. 나중에 쓸 일 많을 테니까.”
류다영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왠지 병사들 숫자가 많아진 거 같지 않아?!”
“설마 검은 갈퀴 자식들이 이쪽으로 병사들 보내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다. 그놈들이 설마 감히….”
나인테일 길드원들은 의심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저 멀리서 검은 갈퀴 길드원들도 몰려드는 병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칼로 성 정예 수비병들이 나타납니다!]
[스칼로 성 백인대장이 나타납니다!]
[스칼로 성의 힘이 병사들을 강화시킵니다!]
[백인대장의 전술이 병사들을…]
[……]
[……]
“내성에서 병사들 나온다!”
외성 성벽을 뚫고 내성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병사들의 수준이 올라갔다.
나인테일 길드의 랭커, 바스토스는 주변을 보며 외쳤다.
“시간을 끌어라!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예!”
대형 길드인 만큼 이런 상황에 준비된 대책이 있었다.
길드원들이 버티면서 시선을 끄는 사이, 몇몇 랭커들이 따로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스토스와 랭커들이 재빨리 옆의 골목으로 빠져서 우회하기 시작했다.
“왜 여기 무너져 있지?”
“싸웠나 보지.”
“아까 여기서 싸운 놈이 없었을 텐데?”
랭커들은 의아해하며 돌아갔다.
물론 검은 갈퀴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조건 내성으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내성 안을 점령해야 해! 영주 자리는 놓칠 수 없다!”
“검은 갈퀴 놈들한테 지면 망신 중의 개망신인 거 알고 있겠지?!”
이들은 태현이나 이세연처럼 굶주린 혼돈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직접 맞부딪혀 본 적이 없는 이들!
방송으로, 영상으로만 봐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랭커들이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을 상대하는 것만 보면 ‘아 저 정도인가? 강하긴 하지만 저 정도면 상대할 수 있겠네’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태현이나 이세연 모두 굶주린 혼돈을 상대할 때는 있는 스킬, 없는 스킬 다 들고 오는 것이다.
“내성 성문 발견! 적 확인했습니다!”
“스킬 써! 뚫고 들어간다!”
내성 성문 앞에서 버티고 있는 정예병들.
물론 길드의 랭커들은 저들과 맞상대를 할 생각이 없었다.
병사들이 계속 몰려올 테니, 이런 공성전에서는 차라리 뚫고 들어가서 안을 점령해 버리는 게 나았다.
-신성한 명예의 돌격!!
-일치단결의 힘!
[신성한 명예의 돌격으로 인해 돌격 보너스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인해 파티가…]
[……]
[……]
굉음과 함께 랭커들의 돌격이 정예병들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몇 번이고 한 적 있었던 돌격이었기에, 랭커들은 뚫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꽝!!
[스칼로 성 최정예 근위병들이 <스칼로 성의 영광>을 사용합니다!]
[스칼로 성 최정예 근위병들이 <스칼로 성의 명예>를 사용합니다!]
[스칼로 성 근위대장이…]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혼돈의 힘을 부여합니다!]
[돌격이 실패했습니다. 추가 데미지를 크게 받습니다!]
“!!!!”
“칵!”
비명을 지르며 랭커들은 튕겨 나갔다.
HP가 쭉 깎인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돌격이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막힌다고?
“저 멍청이들 뭐하냐?”
“우리가 잘 들어가겠다!”
“야! 아니야! 뭔가 이상해!”
뒤늦게 온 다른 길드 랭커들이 다시 돌격을 시도했다.
옆에서 열심히 말려봤자 그들은 듣지 않았다.
‘어디서 방해를!’
[돌격이 실패했습니다. 추가 데미지를 크게 받습니다!]
-감히 모험가 놈들이 이 성 안에 발을 내디디려 하다니!
“!??!!”
* * *
“와. 장난 아니군.”
태현은 멀리서 내성 성문에서 튕겨져 나가는 랭커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여러 스킬들 중첩시켜가면서 한 번에 폭발적으로 돌격했는데도 그냥 튕겨 나가다니.
상대의 방어력이 그만큼 어마어마한 게 분명했다.
‘저 정도면 폭탄도 버티겠는데.’
스칼로 성의 정예병에, 내성 버프, 굶주린 혼돈의 버프까지 받자 무슨 병사가 아닌 대전사 수준의 단단함을 자랑했다.
랭커들이 힘 모아서 돌격한 게 그냥 퉁, 하고 튕겨 나올 정도면 태현의 폭탄도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응? 아니. 왜?”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태현과 이세연은 말렸다. 류다영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제… 역할 아닙니까?”
“피할 수 있는데 굳이 싸움을 자처할 필요는 없지.”
“…….”
이것도 피한다고!?
류다영은 다시 한번 놀랐다.
같이 파티플레이를 한 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피하려는 거지?’
“내가 미끼를 해야겠군.”
태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류다영은 당황해서 말했다.
“제가 탱커인데 제가 미끼를….”
“근데 이건 어쩔 수가 없어. 잘 들어봐.”
화술 스킬+굶주린 혼돈 상대로 어그로 300%+성주 상대로 어그로 500%.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을 보면 상대가 먼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넌 이세연한테 접근하는 상대만 막아주면 충분해. 꼭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알, 알겠습니다.”
이세연은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가 미끼를 맡아서 성문 경계를 뚫으면 그 다음은?”
“안으로 들어가서 혼란 일으켜야지. 언데드한테 폭탄 묶어도 돼?”
“…너 이러려고 말 꺼낸 거지?”
이세연은 괜히 언데드 폭탄을 가르쳐줬나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효율적인 합체기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언데드 전술의 약점은 그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점.
그런데 폭탄을 묶어서 쓰면 순식간에 약점이 해결됐다.
정예 언데드들은 따로 돌리고 앞에 배치한 하급 언데드들은 길을 막으면서 폭파시키면….
“알겠어. 빨리 해.”
“진짜 해도 된다고?”
태현은 살짝 놀랐다.
허락 안 해줄 줄 알았던 것이다.
이세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가 미끼 역할 한다는데 이것도 안 해줄 줄 알았어?”
“응.”
“…한 대 치기 전에 그냥 폭탄이나 빨리 매달아.”
이다비가 없으니 유난히 더 때리고 싶어졌다.
류다영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둘이 싸울까 봐 진지하게 걱정한 것이다.
“싸우시는 거 아니…시죠?”
“싸우는 거 아니에요!”
“싸우는 거 아닌데??”
태현과 이세연은 살짝 반성했다.
남이 보기에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 * *
“너희 부모님은 고ㅂ….”
“?”
“아니 김태현… 아까 도발 통했다고 너무 막 나가는….”
랭커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외치는 태현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아무리 도발 스킬에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저딴 도발에 넘어갈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탈리 국왕이다!!! 잡아라!!!!
-굶주린 혼돈 님의 적이다!! 잡아라!!!
그러나 성주부터 시작해서 굶주린 혼돈의 전사까지 태현을 보자 눈이 뒤집혔다.
서로 다른 이유로 미움을 받는 위치!
-진형을 풀고 놈을 잡아라!!!
-예!
철컹, 철컹-
그 굳건하게 서 있던 정예병들이 진형을 풀고 태현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랭커들은 경악했다.
도발 스킬을 무슨 전설 스킬까지 찍은 것도 아니고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김태현…! 고맙다!!”
“솔직히 네가 이렇게 해줄 줄은 몰랐다!!”
랭커들은 일단 고마워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급박한 상황에 내성 성문을 열어준 건 정말 감사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태현이….
그들 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야! 뭐하냐!”
“같이 퀘스트 깨는 입장에 같이 좀 싸우자!”
“그건 그냥 뒤의 길드원들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 우리는 잠입조라고!”
랭커들이 아무리 항변해 봤자 태현은 들어주지 않았다.
사이좋게 움직여서 검은 갈퀴, 나인테일 길드 랭커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섬세한 움직임!
순식간에 랭커들이 섞이고 병사들과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추가 버프를…]
[직감과 행운의 지휘를 사용합니다!]
[폭군의 지휘로…]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이…]
“고맙다고 안 해도 된다!”
‘개자식이 진짜.’
‘지가 데리고 와놓고 생색을 내다니…!’
태현의 외침에 랭커들은 욕이 나오는 걸 꾹 참아야 했다.
욕을 했다가는 태현이 자기부터 먼저 죽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태현이 주는 버프 스킬들은 좀 달콤했다.
전술 스킬부터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들까지.
랭커인 이상 이렇게 버프를 받으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광기의 폭발 검법으로…]
[제국섬광검 스킬로 인해 스킬이 추가 발동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 폭발! 스택이 전부 소모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태현은 가장 압도적인 딜링을 자랑했다.
온갖 버프를 받은 근위병 상대로 밀리지 않는 폭발적인 딜링!
다른 랭커들 상대로는 맞받아치는 근위병들도, 태현을 만나면 방패부터 들고 버티려고 했다.
태현은 그 틈 사이로 귀신같이 검을 찌르고 스킬을 집어넣었다.
이런 난전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기계처럼 해야 할 일을 하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바스토스!”
“?!”
랭커, 바스토스는 태현이 그를 부르자 깜짝 놀랐다.
왜 날 부르지?
“부탁한다!”
“어… 알겠다! 그런데 뭘?”
쾅!
천인대장이 돌격해서 그대로 바스토스를 박아버렸다. 튕겨 나가며 바스토스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개XX가 진짜!!’
뭘 부탁하나 했더니, 탱킹 부탁한 거였냐!!
“내가 말했는데 왜 못 막냐!?”
욕할 정신도 없었다. 바스토스는 허겁지겁 방패를 들어올려야 했다.
검은 갈퀴 쪽 랭커들이 바스토스를 안타깝고 딱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토스도 울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두 길드 랭커들의 마음이 하나로 통했다.
어느 길마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태현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인해 두 길드 랭커들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쪽으로! 탱커들 한쪽에 그냥 묶어 놓자!”
“힐러들은 그냥 버프 한 곳에 같이 걸어버려! 길드원 찾지 말고!”
“앗. 성문 열렸나? 그럼 난 들어간다.”
“…….”
치사하게 회피력 믿고 빠르게 돌파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태현의 뒷모습에, 랭커들은 죽일 듯이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