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20화 (1,419/1,826)

§ 나는 될놈이다 1420화

“…….”

황당하긴 했지만 태현의 반응은 좋은 반응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에게 의심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저들은 이제 없는 첩자를 찾아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보다 성주가 굶주린 혼돈과 계약했었나? 이런 사악한 놈 같으니.”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태현이 여러 영주들을 여러모로 공격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영주들이 먼저 멋대로 굴어서 아니었던가.

-크아악! 저 사악한 모험가 놈이 우리를 전부 죽이고 영지를 뺏을 거야!

-저놈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그런 의심과 별개로 태현은 왕국 관련해서는 정말 아무런 욕심이 없었었다.

태현의 1차 목표는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였고 2차 목표는 레벨 업.

판온 1에서도 그랬지만, 태현은 왕국이나 영지 경영에 그렇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주 NPC들이 알아서 반란을 일으키고 왕국 치안을 뚝뚝 떨어뜨리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있는 수단 다 동원해서 제압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상황인데 자기 불리하다고 굶주린 혼돈과 손을 잡은 걸 보니 매우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카르바노그도 이 문제에서는 화신이 올바르다고 동의해 줍니다.]

‘고맙다. 카르바노그. 그런데 <이 문제에서는>이라는 건, 다른 문제에서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거니?’

[…….]

카르바노그가 침묵하는 동안, 태현은 두 길마를 보며 물었다.

“둘은 성주가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걸 알고 있었나? 대단한데?”

성을 얻는 건 물론이고 굶주린 혼돈과 관련된 NPC를 토벌하면 각종 보상이 나왔다.

명성은 기본에, 여러 교단에서 공적치 포인트까지 나오는 것이다.

“…물, 물론이지.”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모르고 있었군.’

두 길마의 어색한 반응에 태현은 한심해했다.

공성전 하기 전에 열심히 조사했을 텐데 저것도 모르고 있다니.

‘하긴 나도 눈치 못 챘으니.’

왕국에 NPC가 몇 명인데 그중에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이를 바로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두 길마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태현 이 자식 진짜 사람이 아닌가?’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두 길마 입장에서는 태현이 온 이유가 굶주린 혼돈 때문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사이도 안 좋은 길드들이 공성전하는 걸 도와주러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영주가 말을 안 듣는다는 것도 거짓말이겠지. 그게 말이 돼?’

두 길마들이 생각하기에 태현이 댄 이유는 말이 안 됐다.

아무리 그래도 국왕인데, 자기 영지 다스리는 영주들이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게 말이 되나?

…태현이 들었다면 ‘니들이 한 번 해봐라 이것들아’ 소리가 나왔을 테지만, 둘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 나타난 이상 후퇴하는 게 낫지 않나?”

태현의 말에 두 길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후퇴는 무슨… 저쪽 길마나 후퇴하라고 해.”

“흠. 너희들은 정말… 쑤닝과 케인 같군.”

“…?”

“???”

칭찬인가?

왠지 칭찬 같기도 하고 욕 같기도 한 오묘한 기분이….

이세연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설득할 수 없어? 굶주린 혼돈 하수인은 이쪽 전력으로 상대하기 만만치 않을 텐데?”

태현이나 이세연은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 얼마나 강하고 사기적인 스킬들을 갖고 있는지 잘 알았다.

하물며 여기는 성 안.

저들이 준비한 필드에서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보니까 설득될 애들이 아닌데. 네가 해볼래?”

“네가 안 되면 난 더더욱 힘들걸.”

“왜? 네가 나보다 낫지 않아?”

“으응….”

이세연은 고민에 잠겼다.

물론 태현보다야 랭커들과 사이가 괜찮은 편이긴 했다.

판온 1 때부터 얼굴 알고 지내던 이들도 여럿이었고, 일단 이세연은 태현처럼 게임 접을 때까지 누군가를 조지거나 하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세연도 길마인데다가 최상위권 랭커.

저 두 길마에게는 경쟁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세연은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말을 걸어봤다.

“지금 길드원들이 오랫동안 싸워서 많이 지친 데다가, 상대가 뭘 준비했을지 모르는데 후퇴하는 게 낫지 않겠어?”

“맞는 말이군.”

“그러면 후퇴하겠어?”

“하지만 우리 길드원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맞아. 우리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야.”

“…….”

이세연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될 것 같았지!

“그냥 저것들 버리고 우리끼리 알아서 하자고.”

태현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저런 걸로 멘탈이 흔들리기에는 이제까지 겪었던 진상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오히려 좋지 않아?”

“대체 어떤 부분이?”

“저기 길드원들 죽으면 시체로 소환할 수 있는 게 많아지잖아.”

“…….”

“…….”

“…….”

태현의 화끈한 아이디어에 일행이 침묵했다.

그리고 이세연은 속으로 살짝 부끄러워했다.

사실 저 의견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저들의 도움을 받는 건 원래 계획에 없었잖습니까? 없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류태수의 말에 류다영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맞아요. 저 사람들 죽어도 우리 탓은 아니죠. 그냥 무시하고 우리끼리 싸울 방법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나머지 일행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이다비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이다비. 왜 그래? 그냥 억지로라도 도와줄까?”

“네? 아니요. 저 사람들 나중에 도와달라고 하면 한 명당 얼마씩 받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

* * *

-내 정체를 밝혀야 했나? 꼭?

-그만 징징거리시오. 성주. 아탈리 왕국의 국왕은 귀신 같은 자요. 아키서스의 힘을 빌리고 있는 이 사악한 영웅은 우리의 일을 몇 번이고 방해했소. 그자가 왜 여기 왔겠소? 성주의 배신을 눈치챈 게 분명하오.

-제기랄… 모를 줄 알았는데!

스칼로 성주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첩자가 있나?

-하여튼 빨리 쓸어버려라!

-알겠소. 보고 있으시오.

콰드드득!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칼을 추켜올리자 성 전체로 스킬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혼돈의 대장벽>을 사용합니다!]

[성벽 위로 혼돈의 힘이 장막을 칩니다!]

[텔레포트할 수 없습니다!]

[……]

[……]

“!!!”

갑작스럽게 시작된 반격에, 성 안에 들어와 있던 길드원들은 당황스러워했다.

“길마님!”

“당황해하지 마라. 그냥 던전에 들어온 셈이나 마찬가지야! 이 스킬은 밖에 있는 길드원들한테 해제하라고 하고, 우리는 내성을 공략한다!”

지금 공격대가 위치한 곳은 외성 성문 근처.

이 주변을 점령한 상태로 몰려드는 병사들을 막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스킬을 썼다지만 결국 내성을 공략해서 점령하고 성주와 보스 몬스터를 끝내버리면 끝나는 일!

남정훈의 외침에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검은 갈퀴 길드에게 지지 마라!”

나인테일 길드의 길마, 클라우지아도 사납게 외쳤다.

클라우지아의 외침에 나인테인 길드의 길드원들은 지지 않기 위해 돌격할 준비를 했다.

“알겠습니다!”

“성문 밖으로 나가고 싶으신 분들은 선착순으로 골드 받고 내보내드립니다! 순서 뒤로 늦춰질 때마다 골드 비싸질 테니까 최대한 빨리 신청하세요!”

“…….”

파워 워리어 길드의 길마, 이다비의 말에 모두들 찬물을 끼얹어진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태현이 뭘 쳐다보냐는 듯이 대꾸했다.

“뭐, 왜?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덕분에 흥분해서 달려들려던 길드원들은 좀 제정신이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긴 빠져나갈 방법이 있긴 해야 할지도….’

‘전멸하는 것보단 낫지.’

있는 걸 모를 때와 달리, 도망칠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사람 마음이 좀 여유가 있어지는 것이다.

“너무 서두르지 마! 함정 있을 수도 있다!”

“진형 갖추고 천천히…!”

길드원들이 서로 전진하는 사이, 태현 일행은 고민에 빠졌다.

“내성으로 같이 갈지 성문을 뚫어볼지 고민이군.”

“그런데 성문은 어떻게 뚫으실 생각이십니까?”

류태수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다비가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말한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맞습니다. 주인님. 이 혼돈의 장벽은 쉽게 뚫리는 게 아닌….

“걱정 마라.”

-오. 혹시 권능의 힘으로 뚫으실 겁니까?

“아니. 너희들이 땅 파야지.”

-…….

두 드래곤과 바실리스크 하나는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었다.

또 우리야?

“저번에 한 번 경험해 봤듯이, 이런 장벽은 의외로 땅 밑이 허술하더라고. 물론 꽤 깊게 파야겠지만.”

-하지만 주인님. 여기는 흙이 아니라 돌입니다.

흑흑이는 태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득에 나섰다.

흙바닥이면 모를까 이 성의 바닥은 단단한 암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역시 이건 무리….

“그런 만큼 너희들처럼 능력 있는 애들이 필요한 거지.”

-캬오.

“안 돼. 불불아. 넌 아직 약해서 저런 중노동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단다.”

-…….

불불이가 하겠다고 나서는 걸 태현이 말리자, 두 용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너무한다 진짜!

“뭘 봐? 작업 시작해.”

-크흑…! 나도 그냥 어렸으면…!

-…그 말을 정말 할 줄은 몰랐는데.

-너도 그 생각 하고 있었으면서 무슨!

두 드래곤은 투덜거리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낭티오네는 그 거대한 덩치로 바닥을 부수기 시작했다.

“제가 도와서 뚫을게요.”

“그러면 제가 남아서 주변을 막겠습니다.”

이다비가 빠지면 최소한 딜러 한 명은 있어주는 게 좋았다. 이다비도 레벨이 낮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힐러였으니까.

그렇게 되자 태현과 이세연은 류다영을 쳐다보았다.

“난 힐러가 없어도 되는데 류다영 선수는 좀 그렇지?”

“나도 힐러 없어도 되긴 하는데 류다영 선수는… 확실히.”

“…….”

두 괴물들의 말에 류다영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태현이나 이세연이 특수한 경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 다른 랭커들은 힐러를 데리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저 둘이 매우 미안하고 걱정된다는 듯이 ‘힐러 없으면 류다영 선수는 힘들겠지?’ 하고 쳐다보는데, 어떻게 ‘네 힘듭니다!’라고 말하겠는가.

“…저도 괜찮습니다!”

“아. 진짜?”

“무리하는 거면….”

이세연이 걱정된다는 듯이 말하자, 태현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세연. 류다영 선수가 케인도 아니고 그런 말을 하겠어? 자기 실력 파악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수야.”

“…….”

류다영은 속으로 태현을 욕했다.

분명 칭찬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억울했던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니까. 그렇게 같이 싸웠으면서 못 믿으면 안 되지.”

“맞는 말이야. 류다영 선수. 내가 잘못했어요.”

“아, 아닙니다.”

류다영 선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 가자!”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탱커 셋으로 구성된 불안정한 파티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 *

“앞에 병사들 몰려온다!”

“알겠어.”

태현은 폭탄을 꺼내더니 병사들에게 던지지 않고 옆의 건물로 던졌다.

콰콰쾅!

건물이 무너지더니 옆으로 쓰러져내려 길이 막혀버렸다.

-저런 사악한 놈!

-감히 도시 내에서!!

병사들은 욕설을 내뱉더니, 굳이 막힌 길을 뚫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전진하고 있는 길드원들 쪽으로!

‘이 사람…!?’

류다영은 경악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순식간에 다른 파티 쪽으로 어그로를 끌어버리는 솜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러면 탱커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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