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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19화 (1,418/1,826)

§ 나는 될놈이다 1419화

물론 그걸 밖으로 꺼냈다가는 황자가 울 테니까 말하진 않겠지만….

‘하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해.’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스칼로 성 같은, 아탈리 왕국의 남은 성과 도시들은 꽤 강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하지 않으면 태현이 진작 가서 두들겨 팼을 테니까!

물론 플레이어들도 그만큼 많이 강해지긴 했다지만, 저렇게 쉽게 성문이 돌파되었다는 게 좀 이상했다.

‘혹시 함정인가?’

성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공격하는 함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당장 태현도 그런 식으로 남을 엿먹이는 걸 즐겼으니까.

“잠깐. 정지시켜봐.”

“어째서냐!? 지금 기세가 좋은데!”

남정훈은 태현의 말에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따졌다.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움직일 때는 멈추란 명령도 쉽게 내리기 힘들었다.

한 번 명령이 떨어지면 다시 움직이게 하기까지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기세가 붙었을 때 확 밀어붙이지 않으면 몇 배로 느려지게 마련.

‘혹시 김태현이 먼저 들어가려고…?’

남정훈은 속으로 의심했다.

태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예전에 그… 광산에서 너희들이 신나서 입구 함정 뚫고 들어왔다가 어떻게 됐었지?”

“…다른 함정에 걸려서 박살 났었지.”

“그래.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 거다.”

“…….”

말이야 맞는 말인데 꼭 예시를 저런 걸 들어줘야 하나?

하지만 남정훈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예시가 너무 그럴듯했던 것이다.

“정지! 정지!”

“뭐야?!”

한창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당황했지만 일단 멈췄다.

“아, 지금 들어가면 다 점령하는데!”

“저기 수비병들 다 도망치고 있다니까? 별거 아니야! 밀 수 있어!”

“위에 보고 좀 해주십시오!”

각 파티를 이끄는 파티장들이 소리를 쳤지만, 길드 간부들은 고개를 저었다.

“정지해라!”

검은 갈퀴 길드뿐만 아니라 나인테일 길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지!!”

“김태현이 먼저 가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대체 왜 김태현 선수를 그렇게 음해하세요?”

“음… 음해?? 당해보지도 않은 것들이…!”

몇몇 길드원들은 뒷목을 잡았지만, 어쨌든 공격대는 그대로 성문에서 정지했다.

-겁쟁이 모험가 놈들아! 겁이라도 먹은 거냐!

-어서 들어와봐라!

병사들이 외쳤지만 플레이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렇게 외치면 오히려 더 수상하게 느껴지게 마련.

“뭐야. 진짜 뭐가 있나?”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 * *

“언데드들 보내볼게.”

이세연은 간단하게 말했다.

네크로맨서의 장점.

저런 함정이 있든 말든 언데드 군대를 미친 듯이 쏟아부어서 밀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세연의 말에 두 길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연이 그렇게 해준다면 아무 불만도 없었던 것이다.

“폭탄 설치해서?”

“…그걸 왜 지금 해? 미쳤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그거 할 때마다 언데드들 반란도 쭉쭉 올라가는 거 알고 있어? 위험하다니까.”

태현과 이세연의 대화에 두 길마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결국 태현과 이세연은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폭탄은 묶지 않고 언데드들을 보내자!

-진격하라!

어둠의 기운을 풀풀 풍겨내는 데스 나이트들이 이세연의 버프를 받고 돌격할 준비를 했다.

순식간에 숫자를 불리고 성문 주변의 거리를 점령하는 언데드들의 군대에,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역시 초일류 네크로맨서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철컥, 철컥-

“어…. 뭐 하십니까?”

그러는 사이 태현은 성문과 성벽 곳곳에 폭탄 함정을 설치하고 있었다.

만약에 밀려서 후퇴하게 되더라도 이걸 쓰면 이 근처 성문과 성벽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그냥 실패하지는 않겠다는 지독한 마음!

[카르바노그가 정말 못됐다고 감탄합니다!]

“후퇴할 때 함정을 설치해 놔야 못 따라오지.”

“…….”

길드원들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역시 김태현은 뭐가 달라도 정말 다르구나!

“으으…. 저 미친놈….”

“저거 보니까 온몸이 벌벌 떨리는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태현한테 당한 적 있는 길드원들은 태현이 함정을 덕지덕지 까는 걸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과거에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 *

[<격렬한 화염 파도>가 시전됩니다!]

[마법의 힘이 증폭됩니다!]

[…….]

[…….]

화르르륵!

앞에 돌격하던 언데드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함정에 그대로 녹아내렸다.

뒤에서 보고 있던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저런 함정은 없었는데!?”

공략하기 전에 스칼로 성에 잠입해서 성안의 구조를 파악한 이들이었다.

저런 함정 같은 건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크아아아악!

언데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리는 모습에 이세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함정이 강한데? 레벨 높은 마법사가 있 나봐.”

“폭탄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폭탄 함정 쓰는 NPC는 고블린 아니면 거의 없거든…?”

두 길마는 다급하게 말했다.

“함정이 밝혀졌으니 지금 다시 돌격해야 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지금 빨리 돌격하지 않으면….”

“어허. 이런 급한 사람들 같으니. 그냥 돌격한다고 다 되는 줄 아나.”

태현의 말에 두 길마는 어이가 없었다.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너만큼 겁 없는 놈이 어디 있다고 저딴 말을!’

‘우리는 너처럼 미친 플레이 절대 안 해! 돌다리도 두들겨 보면서 건넌다고!’

하지만 길마들의 부르짖음과 달리, 태현은 매우 조심스러운 플레이어가 맞았다.

겉으로 보면 미친놈 같았지만 플레이하는 걸 잘 분석해 보면 매우 조심스럽게 여러 방법을 준비해 두고 하는 것이다.

일단 함정이 하나 발견됐으면 좀 더 알아봐야 하는 법.

“원거리 공격으로 도발을 해볼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군. 화술 스킬로 끌어들여봐야겠다.”

태현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두 길마는 당황해서 말했다.

“잠깐. 잠깐!”

“?”

“공격으로 도발하는 게 아니라 화술 스킬로 도발하겠다고…?”

“이미 공격으로는 도발에 실패했잖아?”

성문 근처를 점령한 플레이어들은 도망치는 수비병들을 공격하고 다른 건물들을 공격하면서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나서서 덤비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그거야 그렇지만 화술 스킬로 도발이 돼?”

“너희들도 도발에 잘 걸리지 않았나?”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판온 1 때 떠올려 보면 남정훈 같은 플레이어들은 도발에 정말 잘 넘어왔던 것이다.

-여기가 너희 자리라고 그렇게 우겨대더니 뺏지도 못하나? 아. 묫자리 이야기였나 보군.

-저 저 저 새끼 저 조동아리를 확!

“…우린 플레이어고 저건 NPC잖아!”

“NPC가 더 잘 넘어와. 보고 있어라.”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두 길마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먹힐까?

-크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모험가!!

[병사들이 분노 상태에 빠집니다!]

[병사들이 광란의 공격을 시작합니다!]

“음. 효과가 너무 좋았군.”

“끌어냈으니까 됐어!”

태현과 이세연의 대화에 두 길마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도망치던 병사들이 다시 돌격하기 시작한 거지?

* * *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 네놈은 부하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느냐!

-크… 크윽! 죄송합니다!

수비병 백인대장은 무릎을 꿇었다.

그 앞에 서 있던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저 모험가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깊숙이 끌어들이라고 몇 번을 말했거늘! 그것 하나 하지 못하다니.

-내 병사들에게 무슨 짓인가!

-진정하시오. 성주. 놈들의 유약함을 고쳐주고 있었으니.

태현 일행은 보지 못했지만, 내성 쪽에서는 스칼로 성의 성주와 굶주린 혼돈이 보낸 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성안에는 굶주린 혼돈이 보낸 전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라면 그냥 성벽과 성문에서 적들을 차단해야 했지만,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저 오만한 모험가 놈들이 전부 도망칠 것 아닌가.

성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 다음 도망칠 길을 차단하고 전부 쓰러뜨려서 굶주린 혼돈에게 바치리라!

…그런데 병사들이 저런 하찮은 도발에 이끌려서 함정을 무시하고 돌격하고 있으니, 전사 입장에서는 답답할 법도 했다.

-다시 성주가 명령을 내리시오.

-알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난 네 명령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여부가 있겠소. 하지만 기억하시오. 성주는 이미 굶주린 혼돈 님의 손을 잡았소.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성주 또한 위험하오.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 얼마나 사악한지 잘 알고 있을 텐데?

-흥.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그렇게 당했다지?

-감히…! 그건 헛소문이오!

-뭐든 간에 상관없다. 네 능력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스칼로 성의 성주는 야심에 찬 귀족이었다.

태현 같이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르는 모험가가 국왕의 자리에 앉아서 여러 귀족들을 쫓아내고 영지를 점령한 것에 대해 매우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정면으로 대항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태현의 세력이 너무 크고 명성이 거대한 상황.

그래서 성주는 굶주린 혼돈과 손을 잡았다.

미친 짓이었지만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빠른 방법도 드물었던 것이다.

-보고 계시오. 성주. 저 모험가들을 전부 다 잡아서 바칠 테니까.

-흥. 어디 한번 해봐라.

-…성주. 잠깐. 저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앞에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모험가의 모습이 꽤나 낯익었던 것이다.

-어디서 봤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빨리 가서 처리해라! 놈들이 내 성을 더럽히고 있는 꼴을 더 이상 참아주기 힘들단 말이다.

-아니…. 저자는 국왕이잖소!

* * *

“후퇴하게 해주세요!”

“안 돼! 탱커들 사라지면 그대로 무너진다!”

병사들이 분노해서 덤벼들어 주는 건 좋았지만, 생각보다 싸움이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성문과 성벽을 뚫을 수 있었던 건 병사들이 봐주면서 유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스칼로 성의 수비병들이 본 실력을 드러내면서 진심으로 덤벼오자, 난이도가 차원이 달라졌다.

-아키서스의 축복!

태현은 광역 버프를 걸어주며 앞으로 이동했다.

당장에라도 HP가 박살 날 것 같은 탱커들은 광역 버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김태현 선수! 감사합니다!”

“끄으으윽… 고…맙…습…니…다….”

길드원들 중에서 판온 2부터 시작했는지, 판온 1부터 시작했는지 구분하는 건 매우 쉬웠다.

순수하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전자, 매우 괴로워하면서 고마워하는 건 후자!

“김태현 선수! 여기 딜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아니! 마법 말고요! 왜 마법을?!”

“폭탄을 던지라는 건가?”

“아니…! 검이요 검! 검사시잖아요!”

그러는 사이 앞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아챈 것이냐, 이 아키서스의 하수인 놈!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저 내성 성벽 위에서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스칼로 성의 성주가 굶주린 혼돈 님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이리도 빨리 알아채다니…. 성안에 첩자를 풀어놓은 것이냐?!

태현은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물론이다!”

“진짜 풀어놨어?”

“당연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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