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11화
태현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회에 특별 경기 하나 열어달라고 돈 주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태현을 설득하기 위해 중국 게임단에서 나온 직원은 바닥에서 떼굴떼굴 굴러야 했다.
“여기 보십시오! 정식 서류에 서명까지 해서 갖고 왔습니다! 허락만 해주시면 바로 이체 가능하단 말입니다!”
“…아니. 진짜잖아? 뭐지?”
“사실 절 보내신 분은 평생 하늘섬에서 경주 경기가 열리기만을 기대하셨던 분입니다. 그런 경기에 김태현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 슬퍼하셔서… 크흑.”
직원은 눈물을 찍으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카X라이더 때부터 레이싱 게임 매니아였는데 한동안 그런 게임이 다 망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물론 실제 사연은 그것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 * *
-김태현 쪽에 제안해서 특별 경기를 열게 한다고?
-예. 참가한 이상 어떻게든 저희 선수들이 김태현을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벤트 경기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선수들도 의욕이 가득합니다.
-나쁘지 않군. 진행하게.
-…그, 그게, 김태현을 설득할 방법이 없으니까… 선수들이… 단장님께서 돈으로 설득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자네 대가리에 총 맞았나??
그랬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아니라, 여기 온 선수들이 게임단에 요청을 한 것이다.
김태현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특별 경기를 한 번만 열어달라고!
-믿어주십시오! 열어주시면 꼭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솔직히 단장님께서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윗선에서는 또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겠습니까?
김태현을 이긴다-> 중국 언론에서 어마어마하게 홍보해 준다-> 윗선에서 불러서 칭찬해 준다-> 승진!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야!
순간 넘어갈 뻔한 단장이었지만 곧 제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특별 경기 하나 열어달라고 김태현 놈한테 돈다발 꽂아주는 건 너무 배가 아픈 짓이었던 것이다.
-청두 베어즈도 한답니다! 항저우 와이번즈 선수들도 와있으니까 그쪽과 같이 손을 잡고 나눠서 내면 어떻습니까?
-이런 미친놈들이 판온 리그에서나 잘할 것이지 대체 왜 여기에 목숨을 거는 거야?
-…….
단장의 말은 정확히 정곡을 찔렀다.
멀쩡한 대회에서 잘해야지 거기서 못하고 이벤트 대회에서 목숨을 걸고 있으니….
하지만 단장은 직원의 말에 결국 넘어갔다.
여러 게임단 선수들이 나섰다는 것에 흔들린 것이다.
여기에서 빠지면 빠진 게임단만 손해 볼 수 있는 상황.
-좋다. 밀어줄 테니 제대로 해내라!
* * *
“흠. 여기 명단 중국인인 거 보니까 중국 게임단 쪽에서 온 거 같은데.”
“아까 말 들어보니까 저 사람, 중국 게임단 선수하고 이야기 나누고 있었대요.”
“그럼 거의 확실하군. 직원인가 본데.”
“그런 사람이 왜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거죠?”
태현과 이다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눈치 9단인 이들에게 어중간한 수작질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설마 내가 불참해서 그런 건가?”
“쟤네들이 태현 님 불참하면 박수 치고 좋아해야지 왜 나와달라고 해요?”
“…박수 치고 좋아할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아까 실제로 태현 님 불참한다는 소식 퍼지니까 중국 플레이어들이 바닥에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기뻐하던데요.”
“…….”
생각보다 심각한 플레이어들의 상태에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범한 플레이어들이야 나 안 만나면 좋겠지만, 중국 선수들은 날 얼마나 이기고 싶겠냐. 게다가 여기 경기는 다른 것보다 훨씬 이기기 쉽잖아.”
태현도 매번 우승하지 못할 정도로 변수가 많은 경기.
그런 경기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국 선수들에게는 대회 우승보다 태현을 이겼다는 타이틀이 더 탐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듯하네요. 바로 거절해야겠어요.”
“응? 왜?”
“네? 태현 님을 이용해서 날로 먹으려는 거잖아요?”
“설사 내가 지더라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내가 못해서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텐데?”
중국 언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언론들은 그냥 ‘이벤트 경기 재밌었네요 ^^’ 정도로 끝낼 것이다.
물론 중국 언론은 ‘장하다 중국의 건아들아! 거악 김태현을 무너뜨리다!’ 같은 표현을 하겠지만 태현은 별 관심 없었다.
중국에서 뭐 지지고 볶든 간에 태현한테 돈만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태현 님을 이용해서 그러는 게 싫은데요….”
“이 정도 돈이면 마음이 바뀌지 않아?”
“안 바뀌는데요.”
농담했다가 이다비가 정색하고 거절하자 태현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미안….”
“아, 아니에요. 사과하실 일은 아니잖아요.”
이다비는 마음을 바꿨다.
사실 태현의 말이 틀린 부분은 없었던 것이다.
태현 본인을 이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을 뿐.
만약 파워 워리어 길드원 A였다면 이다비는 당연히 ‘해!’라고 했을 터.
“그런데 특별 경기는 누구 참가시키지?”
“아쉽게 탈락했지만 좋은 활약을 하거나 기대 많이 받은 선수 투표로 해서 나머지 7명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하긴 그거면 되겠네.”
* * *
“들었나? 특별 경기 연다는데.”
“…!”
중국 선수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이렇게 찾아오다니.
문제는….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내가 무조건 나가야 하는데.’
‘다른 자식들은 빠지고 내가 나가야 하는데.’
일반 경기와 달리 특별 경기는 인기 투표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중국 팬들이 투표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많아봤자 두셋 정도가 한계!
“흥. 당연히 내가 나가야지. 여기서 가장 성적 좋은 사람이 나잖아?”
“성적 갖고 하는 게 어디 있어? 인기 투표인데!”
“인기 투표로 하면 네가 나갈 줄 아나 보지?”
“나 펭귄팬더만큼 인기 있는 사람이 여기 있나?”
“인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월드컵 말아먹고 나서 닉네임에 펭귄하고 팬더 들어가는 사람 보면 무조건 죽이는 길드 생긴 거 알고 있냐?”
선수들은 투닥거리며 다퉜다.
방금까지는 진지하게 서로 손잡고 우승을 하겠다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진 상황.
‘흥. 실력으로 시선을 잡아끌면 그만이지.’
‘양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들.’
이렇게 된 이상 자기가 직접 팬들을 이끌어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파이터즈 팬 여러분! 인기 투표 때 꼭 제게 한 표를!”
“펭귄팬더! 펭귄팬더!”
“뭐? 펭귄팬더? 월드컵 탈락한 그 펭귄팬더??”
“이 자식이 어디서 뻔뻔하게 표를 달라고 해!”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펭귄팬더 같은 경우만 해도 바로 원한이 쌓인 중국 팬들의 욕이 날아왔던 것이다.
“펭귄팬더! 우린 널 응원한다!”
“한 표를 줄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말하던 펭귄팬더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놀랍게도 그건 중국 팬이 아닌 캐나다 팬이었던 것이다.
“펭귄팬더!!”
“…꺼져!!”
“아니. 인성 보게? 선수가 팬한테 이래도 돼?”
각자 열심히 특별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이빨을 갈고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저러니까 나한테 지는 거지!”
킹태현넘버원은 중국 선수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다른 사람들 플레이 스타일을 보고 전략을 세워도 모자랄 시간에 저게 무슨 멍청한 짓이란 말인가!
“너 성격이 변한 거 같다?”
“리그에서 그렇게 많이 싸웠는데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지. 난 반드시 올라갈 거다.”
“건방진 소리를 하네.”
뉴욕 라이온즈의 고메즈는 킹태현넘버원을 비웃었다.
웃기는 닉네임이긴 했지만 사실 실력은 비웃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이번 대회 다크호스로 올라올 정도로 놀라운 실력!
기계공학 탈것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솜씨가, 마치 김태현의 후계자 같은 실력이었던 것이다.
이름도 재수 없게 비슷했고….
하지만 고메즈는 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최상위권 랭커로서, 킹태현넘버원은 이류 랭커에 불과했던 것이다.
저런 랭커에게 지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화르륵-
그녀가 타고 있는 얼음 불사조는 화산지대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퀘스트를 깨고 나서 얻은 매우 희귀한 탈것.
저런 투박한 로켓 따위한테 지진 않았다.
“근데….”
“저건….”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참가한 선수들은 수군거리며 시선을 던졌다.
파워 워리어 길드명을 닉네임으로 달고 참가한 플레이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플레이어도 기계공학 탈것 타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만약 만나게 되면 위협적일 수도 있었다.
“혹시 정보 있으면 교환하겠어?”
“…싫어.”
“표정을 보아하니 너도 모르는 모양이군. 파워 워리어는 희한한 놈들이 많다니까.”
“…….”
선수들은 자존심이 살짝 상했다.
여기서 유명한 다른 선수들에게 지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랭커였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정체도 모르는 플레이어한테 지는 건….
‘대체 뭐 하는 놈인데 저렇게 플레이스타일이 종잡을 수가 없는 거지?’
‘매번 경기마다 다른 거 같던데.’
* * *
“…알았다!”
태현은 무릎을 치며 외쳤다.
“네?”
“저놈이 누군지 알겠어!”
파워 워리어 선수가 누군지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누군데요?”
“저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하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타고 있다.”
“…네???”
“뭔가 스타일이 매번 달라져서 이상했는데, 이 자식들 지금 번갈아 가면서 타고 있어.”
그걸 알아차린 태현의 눈썰미가 더 놀라울 정도였다.
아주 미묘하게 바뀌는 스타일 같은 걸 이 거리에서 눈치채다니.
“…당장 불러올게요.”
태현 앞에 불려온 파워 워리어 선수(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한 거지? 별로 도움도 안 될 텐데?”
“탈것이 비싸서 저희 모두 돈을 나눠 낸 다음에 나눠 타고 있어서 말입니다….”
“…….”
“…….”
생각지도 못한 처절한 이유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이다비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늘만큼은 파워 워리어 길마인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래. 못 본 척해줄 테니까, 알아서 잘해봐라. 걸리면 난 모르는 거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미안. 차마 그만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
“…이해해요 저도.”
* * *
남은 경기가 진행되고, 결승전 선수들이 하나둘씩 정해지기 시작했다.
고메즈도, 킹태현넘버원도 올라오고 중국 선수들도 두 명 올라왔다. 파워 워리어들도 간신히 올라왔고.
나머지는 새 얼굴들이었지만 전부 다 랭커였다.
‘누가 이길지 흥미진진한데.’
결승전 직전이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으로 변했다.
…그러나 결승전은 바로 시작되지 못했다.
“이 자식이 감히 날 떨어뜨리려고!”
“헛소리하고 있네! 내가 너 따위를 왜!”
“싸움이다!!”
탈락한 중국 선수들이 올라간 중국 선수와 말다툼을 하다가 PVP를 시작한 것이다.
“어, 어떡합니까!?”
설마 참가자들이 싸움을 할 줄을 몰랐던 스태프들은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뭐… 상관없지 않나?”
“예??”
“사람들 다 즐거워하잖아.”
실제로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신나는 경주를 본 다음에 피 튀기는 싸움까지 볼 수 있다니.
완전 종합선물세트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 그래도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응. 가서 죽일 거야.”
태현은 말과 함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화제를 만들어준 건 고맙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