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10화 (1,409/1,826)

§ 나는 될놈이다 1410화

‘아니, 진짜 여기서 뒤집을 수가 있나?’

태현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펭귄팬더한테 뭔가 있나?

하긴 여기 올 정도 랭커면 뭔가 숨겨진 한 수가 있을지도….

-킹태현넘버원 선수 앞에서 멈춥니다! 상대 선수들을 도발하고 있어요! 이 무슨 자신감입니까! 하지만 너무 오만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역전되기라도 하면 치명적일 텐데요!

킹태현넘버원은 멈추더니 뒤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기 시작했다.

그 건방진 행동에 선수부터 팬들까지 분노했다.

-저 캐나다 놈 저거!!

-죽고 싶냐! 월드컵 예선 통과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냐!

-월드컵 예선이 여기서 왜 나와?

-나올 수 있지. 중국은 예선 탈락했잖아.

물론 중국 선수나 중국 팬들만 화를 내는 것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분노는 분노.

이대로 역전이라도 된다면 그 분노에 조롱까지 얹어서 받을 게 분명했다.

“자신만만한데요?”

“이기기 전에 저런 짓은 하면 안 되지….”

그러나 태현의 말이 무색하게 킹태현넘버원은 벌려놓은 거리를 이용해서 깔끔하게 경기에서 승리했다.

-킹태현넘버원 선수가 경기에서 승리합니다!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습니다! 약간 얄미워 보이지만 이것 또한 선수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팬들도 환호하고 있습니다!

‘욕하고 있는 놈들이 더 많은 거 같은데.’

다른 나라 팬들은 제법 괜찮았다고 환호해주고 있었지만, 중국 팬들은 ‘너 밤길 조심해라 이 새끼야!’ 같은 말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만큼 얄미웠던 것이다.

그냥 이기는 것도 모자라서 저렇게 재수 없게 이기다니.

-김태현도 그렇고 이름에 태현 들어간 놈들한테 뭐가 있는 거 아닌가?

-진짜 김태현한테 진 것보다, 가짜 김태현한테 진 게 더 기분이 나쁜데….

* * *

대회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번에 8명씩 참가해서 우승한 사람만 위로 올라오니, 진행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온갖 탈것과 전략이 다 등장하는 상황.

당연히 파워 워리어 쪽 길드원들도 참가했다.

“선생님. 제발 그 로켓 타고 내 쪽으로 오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저한테 다가오지 않으신다면 제가 돈을 드리겠습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을 본 다른 참가자들은 극존칭으로 말을 걸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였다.

팀 KL의 최상윤이나 정수혁쯤 되면 저런 로켓 같은 기계공학 탈것을 타도 꽤 잘 타고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그 정도로 운전 솜씨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광기로 그걸 커버했다.

-나 공격하면 너 죽고 나 같이 죽는 거야! 여기 자폭 버튼 보이지! 한 번에 훅 간다!

-이 탈것 이름을 알아? 바로 <날아다니는 폭탄>이야! 매판 자폭 스킬이 걸린다 이 말이지!

자기한테 아이템을 쓰거나 스킬을 쓰면 다 같이 죽는다고 협박하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실제로 그러는 놈들이었으니까!

“김… 김태현이다!!!”

“김태현이다!!! 모두 물러서!”

“…아니. 난 저놈들이랑 한패가 아닌데?”

태현은 당황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같은 파티 취급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김태현 님! 오셨습니까!!”

“이쪽입니다!!”

“너희가 이러면 괜한 오해 받잖아.”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정하게 굴러가야 하는 대회인데 이렇게 몇몇이 모여서 승부를 조작한다는 오명을 사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태현은 팀 KL 주최 쪽 아닌가.

“아닙니다! 김태현 님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나 참가 안 한다.”

“!!”

꽤 많이 고민해 봤지만 태현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태현이 참가하면 그건 그거대로 화제가 되고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을 수 있었겠지만, 대회는 이미 태현이 없어도 충분히 흥한 상황이었다.

굳이 태현이 참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주최 측 신분으로 너무 많이 이기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될 것 같았고….

“크흑…!”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김태현 님을 위해 우승하겠습니다!!”

“…그, 그래. 고맙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태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김태현이 참가를 안 한다고?

“야. 김태현이 참가 안 하다는데?”

“그거 정말… 다행 아닌가?”

경주에 참가하려고 대기하던 플레이어들은 좋아해야 할지 실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김태현 같은 선수와 경주에서 만나는 건 부담되는 일이었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또 김태현 같은 선수와 언제 같은 경기를 뛰어보나 싶었던 것이다.

“아니. 난 김태현하고 붙어보고 싶어서 참가한 거라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네가 김태현 이길 수는 있고?”

“야. 지더라도 영광이지! 같은 카메라에 나오는 게 어디냐. 게다가 만에 하나 이기기라도 하면 난 평생 자랑할 거라고.”

친구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김태현과 겨룰 수 있겠는가?

“김태현 선수! 제발 출전해 주세요!”

“맞습니다! 저희는 김태현 선수만을 기다렸는데!”

“아니 뭐라는 거야! 김태현 선수가 나가기 싫대잖아!”

진지하게 경주 우승을 노리는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들 반응에 펄쩍 뛰었다.

김태현이 안 나온대서 웃음 참기 위해 입술 꽉 깨물고 있었는데 주변 놈들이 그걸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

* * *

“김태현이 안 나온다고!?!”

“잘된 거 아닙니까?”

“잘됐다니! 김태현을 이겨야 했는데!”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 눈빛은 뭐지?”

“아, 아닙니다.”

중국의 청두 베어즈 소속 선수, 린융리는 자신을 못 믿겠다는 듯이 쳐다보는 플레이어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김태현을 이길 수 있습니까?”

“투기장이 아니잖아.”

“투기장이 아니라도 김태현은 김태현이던데요….”

태현의 경기 영상을 몇 개 보고 온 플레이어였다.

시작하자마자 길막하고 주변 플레이어들을 덥석덥석 탈락시키는 플레이는 기가 막혔다.

역시 김태현이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 경기는 투기장처럼 어렵지 않아. 충분히 변수가 많다고.”

탈것부터 시작해서 스킬, 아이템까지 변수가 많고 속도도 빨랐다.

실제로 그 대단한 김태현도 매번 우승을 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걸 알았기에 린융리와 몇몇 중국 선수들은 뜻을 모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김태현을 이기자!

-김태현과 만나게 되면 팀을 맺어서 견제하는 거다!

일명 티밍이었다.

개인전으로 뛰어야 하는 경주에서 서로 팀을 맺고 싸우는 것!

반칙이었지만 목표가 너무 탐나는 목표였다.

충격의 월드컵 탈락 이후 중국 국대팀 선수들은 대역죄인이 되었다.

-저놈들의 삼족을 멸해야 한다!!

-세금 뱉어내라 먹튀들아!!

-아니, 어떻게 수십 명을 모아놓고 김태현 한 명을 못 이기지? 내가 바둑 보는 줄 알았다!

…국대팀에 탈락해서 아쉬워했던 선수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살벌했던 분위기.

오죽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줄일 정도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거기서 뺨맞고 여기서 분풀이를 하는 게 좀 졸렬하게 보일지 몰라도 중국 선수들은 어떻게든 승리를 하나 가져가야 했다.

안 그러면 언론이 편을 들어주려고 해도 편을 들어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김태현을 꼭 이겼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김태현 나오라고 해봐!”

“제,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걸 시키십니까? 그냥 대회 우승 노리면 안 됩니까?”

“대회 우승은 가능성이 훨씬 더 희박하다니까!”

8명이 달려들어서 한 명이 우승하는 건데, 이 대회 전체에서 우승하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행운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김태현 없는 대회 우승은 효과가 반 이하로 줄었다.

김태현이 있을 경우에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전사들! 김태현을 꺾고 대회 우승컵을 갖고 오다!

-그 김태현을 꺾다! 중국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예선 탈락을 설욕하다! 차세대 국대팀 선수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이런 식으로 금칠을 하며 예전 선수들 문제라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김태현이 없을 경우에는….

-김태현 없는 조그만 대회에 우승해 놓고 뭘 저렇게 자랑을 하는 거지?

-자기들 양심이 없다는 걸 자랑하려는 거지.

-우리가 눈도 없고 뇌도 없는 줄 아나?

…같은 싸늘한 조롱이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아무리 1부 리그에서 뛰는 유명 선수들이 여럿 참가한 대회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대부분의 중국 팬들은 중국 선수들 이름과 김태현 이름만 기억했으니까.

“김태현 나오게 해야 해. 선수들한테 말 돌려서 어떻게든 청원이라고 해봐.”

“그, 한국에는 국민청원 같은 게 있다는데 거기에 넣어볼까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방법은 다 해보라고!”

* * *

-킹태현넘버원 선수, 또 승리를 거둡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가장 기세가 좋은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이야, 김태현 선수가 불참 선언을 해서 아쉬워했는데 이렇게 스타가 나오나요?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이 경기는 끝날 때까지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경기니까요!

-이번 경주에 참가하는 선수는 또 누가 있습니까?

-텍사스 카우보이즈 소속 선수인 곤잘러스 선수가 있겠군요. 판온 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입니다. 민첩 스탯이 높아서 각종 난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선수죠.

-저기 옆에 있는 선수는 황롱하오 선수입니다. 항저우 와이번즈 소속 선수! 이번 리그에서는 좀 부진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저력은 있는 선수입니다. 이번 경기도 팽팽하겠군요!

-저기 얼굴을 가린 선수는 누군가요?

-아. 저 선수는 <파워 워리어> 길드에서 나온 선수입니다. 이번에 길드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나왔다면서 얼굴을 가린 선수지요. 지거나 우승하면 가면을 벗겠다고 합니다!

“저거 누구야?”

“저희 길드원들 중에 이상한 사람 너무 많아서 저도 다 알진 못해요. 아마 관심 끌려고 저러는 걸걸요.”

이다비는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파워 워리어 선수는 매우 인기가 좋았다.

-파워 워리어! 파워 워리어!!

‘아니. 잠깐. 저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잖아?’

태현은 관중석에서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런 무시무시한 놈들 같으니!

“저… 김태현 선수.”

“?”

관중석에서 이다비하고 팝콘 뜯고 있는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팬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저희는 꼭 김태현 선수의 경기를 너무나도 보고 싶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특별 경기로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만.”

“사실 절 보낸 분이 어마어마한 부자신데, 김태현 선수가 나오는 경기만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 대회에 기부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기꾼 아냐?’

‘사기꾼이죠 저건.’

태현과 이다비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저런 말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대회 진행 중에 그런 말을 해봤자….”

“아니,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투자자분하고 연결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바로 입금도 가능해요!”

“진짜 이상한 사람 같은데요.”

“나도 그런 거 같다.”

불신의 눈초리에, 중국 게임단 쪽에서 나온 직원은 가슴을 탕탕 쳤다.

진짜 허가 받고 온 건데….!

“제발 이야기라도 좀 들어주십시오!”

“뭐 경주장 밑에 폭탄이라도 설치해놨나?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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