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09화 (1,408/1,826)

§ 나는 될놈이다 1409화

태현이 생각한 것처럼 중국 팬들은 중국 선수들이 대회에 나가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나라 대회였다면 좀 반응이 달랐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건 태현이 여는 대회.

남의 나라 대회니까 참가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너무 쏟아지는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한둘이 참가하는 게 아니라 제법 많은 선수들이 참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가하지 말라고 화내는 사람이 이상한 놈이 되게 마련.

차라리 팬들은 여기서 중국 선수가 우승이나 해주길 원했다.

최소한 김태현의 체면을 구길 수 있을 테니까!

중요한 월드컵에서는 예선 탈락을 해놓고 이렇게라도 자존심을 살리려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짠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팬들은 얼마 없었다.

-맞아! 설욕을 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졌다고 여기서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건 이성적이지 않은 것 같…(해당 사용자는 차단되었습니다)

-아니, 말 한마디 했다고…(해당 사용자는 차단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참가하는 선수가 많지 않나?

-저기 뉴욕 라이온즈 선수 있지 않아?

처음에는 그냥 김태현이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을 뺏어서 소소하게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뜻에서 응원을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중계가 풀리자 중국 팬들도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컸던 것이다.

-뭐?? 진짜? 미국 놈들도 왔어?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많이 오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네. 저번에 중국에서 연 판온 일대일 대회는 아무도 참가 안 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홍보를 했는데 무시해 놓고.

-내 생각에는 미국 게임단들이 손을 잡고 참가 보이콧을 해서 그런 거 같아. 그놈들이 견제 엄청나게 잘하잖아.

-그 대회는 무조건 현장 참가에 외국 선수들은 예선전부터 올라와야 하는 불리한 규칙이라 다들 참가할 이유가 없ㄷ…(해당 사용자는 차단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규모가 큰 게 아니라 참가한 인원들의 라인업이 화려한 것이었다.

판온 리그 1군에서 뛰고 있는 여러 선수들이 대폭 참여한 것이다.

한국 구석에서 방송사 몇 개 끼고 게임단 개인이 주최하는 소규모 대회에!

자기네 나라에서 연 대회들은 대부분 해외 선수들이 ‘이런 규칙으로 참가하라고요? 제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는 한 안 갑니다’라며 거절했는데, 저런 소규모 대회는 잘 나가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해 보니 저건 그렇게 흥행한 거 같지 않음.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가 훨씬 잘나가고 있는 거 같다.

-맞아.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는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대회인데 저건 그냥 소소한 지역 대회지.

-아직 빅대회 아닌 듯.

배가 아픈 팬들이 이런저런 소리를 해도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성공!

“와. 진짜 최근에 눈에 띄는 대회가 월드컵 말고는 없긴 해도 이 정도로 흥할 줄은 몰랐다.”

“해외 선수들이 이렇게 여럿 참가할 줄이야….”

참가비를 주고 섭외해도 안 올 선수들이 이렇게 자기 발로 온 건 정말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팀 KL의 이름값도 이름값이었지만 그만큼 이 대회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홍보해야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참가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대회.

“이거 중계권 안 사겠다고 한 방송사 책임자들, 시말서 써야겠는데.”

“그 정도입니까?”

“아. 넌 못 들었겠구나.”

기자 중 하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E스포츠 쪽 기자로 잔뼈가 굵었던 만큼, 관련 방송사 사정을 제법 들었던 것이다.

“이번에 팀 KL 쪽에서 대회 준비하면서 대회 중계권 판매하려고 교섭을 했었거든.”

중계권.

대회의 경기 장면을 방송사에서 틀어주고 중계하려면 이런 중계권을 구입해야 했다.

축구든 농구든 판온 리그든 이런 중계권은 당연히 가격이 비쌌고 게임단 쪽에 막대한 수입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건 잘나가는 대회 이야기였고, 아마추어들이 여는 아마추어 대회 중계권을 판다는데 ‘아 그러십니까?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하는 방송사들은 없었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방송사에서 돈을 받고 중계를 해줘도 모자란 것이다.

저런 아마추어 대회는 커다란 방송사에서 중계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래도 김태현이 주최하는 건데 중계권을 안 사려고 했던 겁니까?!”

“사는 게 이상한 거지. 인마.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그렇지 중계권이 장난이냐? 대회가 잘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누가 그걸 덥석 사?”

“하지만 잘됐잖습니까.”

“그렇긴 해. 이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겠냐. 소문에 따르면 김태현이 방송사 여러 군데 돌면서 직접 이야기 나눴다는데 꽤 많이 거절당했다더라. 가격도 엄청 쌌다는데….”

“와… 진짜 배 아프겠는데요.”

“산 방송국만 잘됐지.”

* * *

“배장욱! 배장욱! 배장욱!”

“방송의 신! 방송의 신!”

“회사 앞에 배장욱 PD의 동상을 건설합시다!”

직원들은 함성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E스포츠 전문 방송사, MBS.

판온의 흥행과 함께 수많은 E스포츠 방송사들이 생겨나고, 기존 대형 방송사들도 E스포츠에 뛰어들었지만, MBS는 비교적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 분야에서 1위를 지키고 있었다.

능력 있는 인재들과 뛰어난 프로그램 구성, 그리고 운 덕분이었다.

‘와. 이게 먹히는군.’

배장욱은 헹가래를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이번 건 진짜 운이었던 것이다.

-피디님. 제가 이번에 기획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뭡니까,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가 기획한 거라면 뭐든지 좋습니다. 김태현 선수가 24시간 자는 것만 틀어주는 거여도 저는 틀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대회 하나 주최하는데, 이 대회가 계속 굴러가려면 돈이 좀 필요하거든요. 이거 주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 자선봉사시킬 수는 없으니까 수입이 필요해요. 중계권을 팔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중… 중계권을 말입니까?

아무리 배장욱이라도 열리지도 않은 대회의 중계권을 사는 건 좀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보통 대회가 많이 흥행하고 나서야 팔리는 게 중계권 아닌가.

만약에 샀다가 안 팔리면….

-안 됩니까? 음. 역시 무리한 부탁이었습니까. 사실 다른 방송사들도 그건 난색을 표하더군요.

팀 KL 선수들한테 말하진 않았지만, 태현은 방송사를 돌면서 지속적으로 협상을 해왔었다.

-김태현 선수! 이번에 꼭 출연을! 아니. 중계권은 좀….

-김태현 선수!! 제발 이번에는 꼭 출연을! 아니, 중계권은 좀….

다들 태현을 보면 자식 만난 것처럼 기뻐했지만, 협상 이야기로 넘어가면 매우 곤란해했다.

중계권은 솔직히 지나친 모험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배장욱은 갑자기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김태현 선수가 진행하는데 남들이 다 거절하는 이 상황.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남들이 안 할 때 해봐야 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배장욱은 그렇게 태현을 기다리게 한 다음 국장에게 찾아갔다.

-국장님! 제가 이제까지 히트 친 프로그램이 몇 개입니까?

-…너 타사 섭외 받았냐?

-아닙니다! 이번 한 번만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말에 국장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좋다! 배 PD가 날 실망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뭐든 좋으니까 한번 해봐!

-예!

그렇게 배장욱은 허락을 받고 중계권 계약을 해냈다.

…물론 배장욱이 제작비 조금 비싼 프로그램 정도를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던 국장은, 중계권 계약을 듣고 멱살을 잡았지만!

“피디님은 정말 방송의 신이십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예측하신 겁니까!?”

직원들의 찬사를 받으며 배장욱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표정 관리를 하지 않으면 또 언제 하겠는가.

‘다른 방송사들은 배 아파 죽으려고 하겠군.’

설마 이렇게 잘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 * *

“저분, 되게 인기가 좋네?”

태현은 신기해하며 말했다.

MBS 쪽에서 나온 해설자를 중심으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사인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해주는 속도보다 새로 쌓이는 사람들의 속도가 더 빠를 정도였다.

“아. 태현 님은 모르세요? 요즘 MBS 해설 쪽에서 되게 인기 좋은 분이에요. 판온 리그 해설도 맡으시는데.”

“나는… 보통 직접 뛰거나 그냥 현장 경기를 보잖아.”

“…하긴 그랬죠.”

아무래도 국내 방송은 해설이 추가되거나 분석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더 늦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판온 측에 경기 영상을 바로 받는 태현은 모를 수밖에 없는 것!

“저렇게 인기가 좋은 걸 보니 예리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하시는 모양이군.”

“예리하고… 날카롭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해설이 아니라면 해설자가 어떻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한번 보시면 알걸요.”

“으음.”

MBS에서 나온 해설자는 즉석 사인회를 끝내고 서둘러 중계석으로 올라갔다.

곧 예선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경기에 주목할 만한 선수는 일단 펭귄팬더 선수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선수죠. 최근 성적도 괜찮고요.

‘평범한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선수는 캐나다의 킹태현넘버원 선수입니다! 특이한 닉네임으로 한국에서도 팬이 많은 선수죠.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킹태현넘버원은 생각보다 인기가 되게 많았다.

“아니 저런 닉네임이 인기가 많단 말이야?”

“닉네임 때문이 아니라 플레이 때문에 인기가 많은 거 아닐까요….”

실제로 킹태현넘버원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에서 좋은 성적을 낼 뿐만 아니라 뛰어난 팬서비스와 인성까지 갖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캐나다는 무려 월드컵 예선을 통과한 것이다.

“캐나다 밑에 중국!”

“캐나다 밑에 중국!”

“…….”

캐나다 팬들이 있었는지 매우 도발적인 응원을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서로 욕설이 오가는 중이었다.

-경기 시작합니다!

쟁쟁한 이름에 비해, 경기는 의외로 초반부터 쉽게 기울었다.

펭귄팬더 선수가 실수를 한 탓에 뒤로 쭉 밀려난 것이다.

거기에 다른 선수들까지 휘말려서 동반 추락!

이렇게 되면 킹태현넘버원만 유리해졌다.

-아! 킹태현넘버원 선수! 앞으로 쭉 밀고 나갑니다!

‘이건 거의 뒤집기 힘들겠군.’

-물론 하늘섬 경주는 이런 상황에서 뒤집기가 힘든 룰이긴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아시다시피 하늘섬 경주는 랜덤성! 랜덤성이 강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펭귄팬더 선수는 노련하고 경험 많은 선수입니다. 이런 상황 정도는 이미 염두에 두고 대회에 참가했을 거라는 거죠. 그런 점을 봤을 때 지금 상황은 누가 이길지 모르는 팽팽한 상황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

태현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고 해설자를 쳐다보았다.

아니….

뭔 말도 안 되는…?

“어떤 경기도 끝까지 흥미롭게 해설해주는 것 때문에 인기가 많아요. 작년에 리그 경기 도중에 태현 님이 활약한 덕분에 상대 팀원들이 멘탈 깨져서 던진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아직 모른다고, 5:5라고 해설을 했던 분이라….”

“…그, 그렇군.”

황당하긴 했지만 태현은 납득하기로 했다.

일단 관중들이 좋아하고 만족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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