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08화 (1,407/1,826)

§ 나는 될놈이다 1408화

-폭주를 참고 있으니 빨리 가까이 오게.

태현은 경계 가득한 자세로 가까이 다가섰다.

문제 생기면 바로 스킬 켜고 도망칠 준비가 끝난 상태.

-내… 무덤이 기억나나?

“예.”

왕자가 뚫고 나온 그 무덤.

전차꾼들이 경주하자고 시비를 걸어오던 고대 제국 경기장!

-거기로… 가야 한다. 내 전차가 거기에 있어. 후계자에게 물려주기 위해 보관해 둔 전차야.

“!”

-왕자님!!

전차꾼들은 꽁꽁 묶인 왕자를 보며 울기 직전의 얼굴로 외쳤다.

-비켜라! 지금 나를 이렇게 묶지 않았다면 난 너희들을 내 손으로 죽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자님…!

-너희들은 나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제 돌아가라! 영원한 안식 속에서 쉬어도 좋다!

[왕자의 부하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니….’

태현은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깝다!’

유령마를 몰고 다니는 이 전차꾼들은 고대 제국 출신답게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이런 이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덮치면 왕국의 기사단도 무너질 터.

그걸 그냥 소환 해제해서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니 괜히 태현의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저런 감동적인 이별 장면에 끼어들 수는 없는 법.

-왕자님!!

-자네들도… 왔나….

이번에는 장로들이 달려왔다.

크라스비 장로와 슈라익 장로 둘은 묶인 왕자를 보고 기겁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비켜라! 내가 자청한 거다.

태현이 화술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왕자가 직접 나섰으니까.

태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상식적이고 예의 바른 NPC가 또 어디 있을까!

태현이 쓸데없이 귀찮은 싸움을 하지 않게 이렇게 먼저 나서주다니….

-이제야 너희들의 말을 알겠다. 내가 굶주린 혼돈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크으윽!

-왕자 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놈의 사악한 힘이 전하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나는 반드시 굶주린 혼돈의 힘을 이겨내고 돌아올 것이다. 나를 믿어다오!

-왕자 전하!!

-믿겠습니다! 저희는 왕자 전하의 충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꼭 불편하게 갇혀 있어야 하는 겁니까!? 꼭 죄인 같습니다!

장로들이 따지는 이유가 있었다.

쇠사슬로 붙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왕자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던 것이다.

“아. 나중에 쓸 만한 마차 만들어드린다니까.”

-크으윽…!

-왕자 전하를… 잘 부탁하네!

장로들은 결국 포기하고 물러섰다.

왕자가 저렇게 말하는 이상, 태현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페르소텔턴의 정화-페르소텔턴 세력 퀘스트>

당신은 놀라운 기지와 능력으로 페르소텔턴 왕자를 일단 묶어 놓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부활한 이상, 왕자는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물리치고 왕자를 정화할 방법을 찾아라!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지만 왕자를 죽이지 않고 봉인한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보상: ?, ???, ???

‘난이도가 상당히 높나 본데.’

새로 나온 퀘스트가 놀랍진 않았다.

왕자를 죽여야 하는데 죽이지 않았으니 이렇게 새로 나와도 놀랍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퀘스트의 난이도.

설명부터 ‘나는 미친 듯이 어려운 퀘스트다’라고 선언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꼭 지금 당장 정화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왕자를 질질 끌고 나아갔다.

주변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위풍당당하게 왕자를 쇠사슬로 묶어 끌고 가는 모습을 경악에 찬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게 대체….

뭔 상황이지?

* * *

“어우. 진짜 무서웠다.”

“저도 그랬습니다.”

최상윤과 정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확인했다.

하필이면 대회가 얼마 안 남은 날에 갑자기 왕자가 무덤에서 뛰쳐나오고 도시를 점령해서 기겁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 퀘스트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되었다.

대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

“안녕하십니까! 참가 신청 하러 왔습니다.”

“아. 예. 여기 예선 참가 지원서 써주시고….”

“하하하. 여기 분들은 다 아실 만큼 아시는 분들 아닙니까?”

“?”

상대 플레이어는 슬쩍 뇌물을 꺼내 바치면서 속삭였다.

“예선 처음부터 통과하면 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위로 좀 올려보내 주세요. 티도 안 날 겁니다.”

“오… 과연.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도록 하지요.”

최상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가리켰다.

플레이어는 뇌물이 잘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걸어갔다.

“진짜 통과시켜주실 겁니까?”

“아니. 미쳤냐? 이건 참가한 스태프들한테 나눠주자. 공짜 용돈이네.”

팀 KL의 선수들은 태현이 하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사람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케인이 삼 년이면 지능적 플레이를 하는데 이들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방송사에서 나왔답니다!”

“방송사 기자들 앉을 좌석은 저쪽에 만들어 놨어. 가서 앉으라고 해.”

“따로 인터뷰를 따고 싶다는데요?”

“사전에 말해놨듯이 정해진 시간 외 인터뷰 신청은 경기에 방해될 수 있으니까 안 돼.”

“말을 해도 안 듣습니다!”

“기자가 나온 회사가 어딘지 물어봐! 팀 KL 인터뷰 앞으로 안 하고 싶으면 계속 진상 부려보라고 해!”

‘멋… 멋있다!’

진행을 돕던 스태프들은 최상윤과 정수혁의 모습에 감탄했다.

팀 KL 선수들은 이런 것도 되는구나!

국내의 어중간한 게임단 소속이라면 방송사나 기자들 눈치가 보여서 강하게 나설 수가 없겠지만, 팀 KL은 아니었다.

그냥 문제 생기면 해외 기자들 부르면 되는 것이다.

팀 KL 선수들이 부탁만 하면 달려올 해외 기자들이 넘치고 넘쳤다.

게다가 기사말고 개인 방송이나 SNS로 의견선언하기 쉬워진 시대다 보니, 방송사나 기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너무 거만한 거 아닙니까? 이게 무슨 대단한 대회도 아니고, 우리가 와서 홍보해 주는 것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넌 입사한지 몇 년 된 놈이 아직도 눈치가 없냐? 입 다물고 있어. 지금 너보다 경력 많은 사람들도 다 입 다물고 기다리고 있잖아.”

기자 한 명이 불평하자, 같이 온 선배가 따끔하게 혼을 냈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이게 무슨 판온 리그도 아닌데….”

기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했다.

원래 대회 같은 게 열리면 주최 쪽에서는 기자들을 좀 더 대접해 주는 법이었다.

판온 리그처럼 전 세계 대형 게임단들이 돈다발을 들고 달려드는 대회면 모를까, 이런 소규모 대회일 수록 기자들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했다.

홍보하고 알리는 게 다 기자들의 역할인 것이다.

하지만 팀 KL 선수들은 ‘오셨습니까? 딱히 안 오셔도 되는데 오셨다니 뭐 저기 있다가 알아서 취재하고 가세요~’ 하면서 마치 굴러들어온 돌 취급했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

그렇다고 여기서 진상을 부리거나 따질 수도 없었다.

진지하게 PK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예전에 김태현 기사 한 번 잘못 썼다가 아작난 놈도 있었지.’

판온에서 PK 당하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 현실에서 ‘기자 새끼 너 이름 외워 놨다! 밤길 조심해라!’ 협박 날아오기 시작하면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그러면 이대로 계속 기다려야 합니까?”

“이제야 깨달았구나. 그래.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가 영상 찍고 인터뷰 한 다음 가면 된다.”

“…….”

기자들은 풀이 죽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앞에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고메즈.”

“고메즈??”

고메즈는 분명 <뉴욕 라이온즈> 소속의 유명 플레이어.

뛰어난 실력과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 때문에 스미스와 함께 뉴욕 라이온즈의 간판처럼 활동하는 선수였다.

다만 성격은 좀 오만한 부분이 있어서 이런저런 구설수가 있긴 했는데….

“고메즈가 여기 왜 와? 동명이인이겠지.”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

대화를 듣던 다른 기자는 눈을 깜박였다.

‘아니 진짜 고메즈 맞는 거 같은데?’

고메즈가 입고 다니던 장비와 뒷모습이 거의 비슷했다.

뭐지?

진짜 이 대회 참가하러 왔나??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텍사스 카우보이즈> 소속으로 뛰고 있는 곤잘러스.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펭귄팬더.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의 스콧과 킹태현넘버원 등등.

나름 전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들이 하나둘씩 참가서 내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

“이건 때려죽여도 받아야겠다!”

기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달려나갔다.

“비켜! 한 명만! 한 명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난 이래야 되겠다! 비켜! <이중 점프>! <신속한 발걸음>!”

기자는 훌쩍 뛰어오르더니 앞으로 쭉 달려 나갔다.

그 뛰어난 솜씨에 다른 기자들은 살짝 감탄했다.

‘판온에 목숨 걸더니 이럴 때 쓰는구나!’

‘나도 다른 기자들과 싸울 때를 대비해서 레벨을 좀 더 올려야 하나?’

보통 판온 관련 취재는 판온에 들어가서 해야 하다 보니, 기자들도 장비와 레벨이 어느 정도 필요했다.

특히 다른 기자들과 몸싸움 벌일 때 스탯이 높아야 유리한 것이다.

몇몇 기자들은 아예 파티를 짜고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전법을 연구해 올 정도로!

“드디어 이걸 쓰게 되는구나. 잡아!”

촤르륵!

[사슬 덫이 발동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크아아악!”

선수들 들어가는 곳으로 달려가려던 기자는 그대로 덫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기자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잡힐 줄 알았지!”

“잠, 잠깐만. 내가 실수를 한 거 같아! 좀 풀어줘!”

“벌금 내기 전에는 풀어줄 수 없습니다.”

“…얼마 내야 하지?”

* * *

“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뿐만 아니라 텍사스 카우보이즈, 보스턴 타이거즈 선수들도 왔고. 심지어 중국 게임단 선수들도 슬쩍 참가했다니까? 대단하지 않냐??”

“…그런 꿈을 꿨냐?”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최상윤과 정수혁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진짜라고!”

“중국 쪽 게임단 선수들이 여길 왜 참가해? 뉴욕 라이온즈나 보스턴 타이거즈 쪽이야 인맥이 있으니 참가할 수 있다지만.”

심사위원으로 만난 인연이 있어서 그쪽 후보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태현은 몰랐다.

후보 선수들뿐만 아니라 1군 선수들도 와서 참가하려고 하고 있다는 걸.

“지금 길드 동맹 쪽에서 그렇게 열심히 대회 진행 중인데 이런 대회 나갔다가는 욕 먹을걸. 잘못 본 거겠지.”

“저기 펭귄팬더 있잖아! 저기 있는 건 장웨이고!”

“…????”

태현은 눈을 깜박이고 다시 확인했다.

다시 봐도 중국 선수들이 맞았다.

너희들 왜 거기에 있냐?

“아니… 저것들은 왜 참가한 거지?”

“어, 쫓아냅니까?”

“쫓아낼 건 없는데 좀 당황스럽긴 하군. 중국 팬들이 욕 안 하나?”

“설마 그런 걸로 하겠습니까?”

“중국 팬들은 그런 걸로 욕할 텐데?”

정수혁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의아해했지만, 태현은 생각이 달랐다.

게임단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나라 스타일 분석하고 전해 듣고 했던 것이다.

중국 쪽 팬들은 중국 쪽 대회 말고 다른 나라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한 편.

욕먹는 거 아닌가?

-자기 나라 대회는 내팽개치고 남의 나라 대회에 나가다니. 저런 비애국자 같으니!

-김태현이 주최하는 대회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어! 너 한국놈이지!

-솔직히 김태현이 주최하는 대회면 어쩔 수 없긴 하지. 나라도 참가해 보고 싶을 듯.

-이렇게 된 이상 선수들을 응원해 주자. 김태현이 주최한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이 우승하면 그것도 좋지 않겠어?

-맞는 말이야! 한 번쯤은 설욕을 해줘야 한다!

-월드컵이나 잘할 것이지 세금 아까운 놈들….

-월드컵 얘기는 왜 하는데?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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