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07화 (1,406/1,826)

§ 나는 될놈이다 1407화

카르바노그가 경악하는 사이 태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하긴 굶주린 혼돈의 수작일 수도 있긴 하겠군.’

타락한 왕자가 너무 멀쩡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이동한 것도 수상했다.

물론 왕자의 레벨이 높고 강해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이 함정을 깔아놨다면?

‘왕자가 굶주린 혼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면, 다시 한번 부활시켜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지도….’

[카르바노그가 왜 이렇게 굶주린 혼돈의 심리를 잘 아냐고 소름끼쳐합니다.]

‘아니… 싸우다 보면 알 수도 있지.’

솔직히 태현이 굶주린 혼돈이랑 생각이 비슷하긴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태현은 선신의 후계자였고 굶주린 혼돈은 그냥 깡패라는 점.

“왕자 전하. 만약 왕자 전하를 쓰러뜨렸다가 굶주린 혼돈이 왕자 전하의 육신을 지배해 버리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크윽! 확실히…! 으윽!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몸을 오염시키는 탓에 왕자는 대화도 힘들어 보였다.

-모험가여…! 큭! 널 믿겠다! 올바른 방법을…!

“알겠습니다!”

태현은 달려갔다.

그리고 왕자의 몸을 사슬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올바른 방법…이… 맞… 는… 크윽! 크으윽!

대체 왜 자기를 사슬로 칭칭 감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왕자는 그럴 기운도 없었다.

“이세연! 도와줘!”

“…난 아까부터 상황을 못 따라가고 있어.”

이세연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왕자를 쓰러뜨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태현이 사슬로 감고 있다니.

왜?

태현은 빠르게 설명했다. 다행히 이세연은 무슨 소리인지 금세 이해했다.

‘확실히…!’

함정일 수도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사악한 적의 우두머리가 그런 것 하나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뭘 도와줘야 할까?”

“왕자한테 걸 수 있는 저주 마법이나 봉인 마법은 다 걸어버려!”

“알겠어!”

이세연은 태현을 돕기 위해 나섰다.

왕자의 몸부림을 막기 위한 강력한 저주 마법 연쇄!

[고대 제국의 왕자, 페르소텔턴이 신비로운 옛 혈통으로 저주 마법을 견뎌냅니다!]

[마법이 실패합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마법이 실패…]

[……]

꽤 많은 마법이 실패했지만 이세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라면 저주가 안 통하는 상대도 많이 만나게 되는 법.

그럴 때는….

‘될 때까지!’

-최상위 고속 마법, 신속 무영창, 저주 증폭, 저주 연쇄, 원혼의 추가 저주, 저주의 연환….

미친듯한 물량의 저주 마법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그걸 본 태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거 나한테 쓰려고 준비한 거 아닌가?’

-크으윽! 크윽!

“…잠깐. 이세연! 교체!”

“왜?!”

“나도 마법 스킬 올려야 해!”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지만 태현은 진지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 아키서스의 고대 냉기 마법, 사디크의 화염 마법, 드워프의 금속 마법!

[마법이 실패합니다!]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MP가 부족합니다.]

[……]

꿀꺽꿀꺽-

잘 마시지 않던 MP 포션까지 들이키며 마법을 연타하는 태현.

-큭, 큭, 크윽, 크읏, 크으읏….

[페르소텔턴이 당신의 모습에…]

‘아차. 너무 노골적으로 했나?’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왕자가 부탁했다고 해서 이렇게 허수아비 때리듯이 연타를 하는 건 좀 심했던 것이다.

왕자의 친밀도라도 떨어지면 위험하다!

지금 왕자가 태현을 믿고 있어서 이렇게 기회를 주는 거지, 아니었다면 바로 타락한 왕자와 싸워야 했다.

[…감동합니다! 친밀도가 오릅니다!]

-난… 좋은 모험가를 만났다. 이렇게 진심으로 열성을 다하다니.

“…….”

이세연은 왕자의 말에 눈을 감았다.

솔직히 미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을 때려 박았다.

“MP 다 떨어졌다. 이세연! 교대!”

“…너랑 같이 하면 왜 이렇게 플레이가 기괴해지는 걸까?”

이세연의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 스킬을 펼치기 시작했다.

태현이 갖고 있는 사슬은 마계와 하늘섬에서 구한 희귀한 금속들을 섞어 만든 강력한 합금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다만티움을 조금 섞어 넣어야 하나? 그래도 불안한데. 기계공학 장비? 아니. 기계공학 장비는 내구도가 약해서 왕자의 힘을 견뎌내기 힘들 거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태현은 결정했다.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를 제작합니다!]

[결과물이 랜덤으로…]

[……]

[……]

[……]

‘만약 쓸 만한 게 안 나온다면 왕자를 데리고 골짜기 위 하늘성으로 달린다.’

태현은 플랜 B를 생각하며 스킬을 준비했다.

[카르바노그가 하늘성으로 왕자를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묻습니다.]

‘냉기 핵 옆에 있는 시이바의 구속 의자에 앉힐 거야.’

[…!]

카르바노그는 경악했다.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떠올릴 수 있다니.

정말 남 엿먹이는 것만 24시간 공부하는 아키서스의 화신이 아니라면 떠올릴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한 번 앉으면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악한 권능!

“무슨 일이야??”

“왕자를 레이드하고 있다!”

뒤늦게 찾아온 플레이어들은 태현과 이세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왕자를 상대로 치열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태현은 왜 왕자 뒤에서 저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태현이 이상한 공략법을 쓰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역시 김태현! 믿고 있었다! 왕자를 방심하게 한 다음 잡으려고 하고 있었던 거구나!”

랭커 중 한 사람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그렇지 그 김태현이 상대한테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릴 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오크 대족장, 거인 전사, 악마 공작 등 쟁쟁한 상대를 모두 쓰러뜨린 사람 아닌가.

아무리 고대 제국의 왕자라 하더라도 겁먹을 리가 없다!

“잡는 거 아니야, 멍청한 놈들아!”

“?!”

“돕기나 해!”

태현은 랭커들에게 호통을 쳤다. 졸지에 멍청한 놈들이 된 랭커들은 당황했다.

“잡는 게 아니면 뭔데?”

“디버프 마법을 걸어서 약화시켜!”

“그게 잡는 거 아닌가…?”

랭커들은 당황해하면서도 갖고 있는 약화 스킬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냥감의 표식!

-가려지는 시야!

-체력 약화의 낙인!

랭커들이 가세하기 시작하자 왕자는 더욱더 약화되었다.

‘젠장. 시간이 부족해.’

아키서스의 아티팩트는 들인 시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시간을 많이 들일 수 없는 상황.

태현이 쌓은 업적과 스킬들을 믿고 빠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을 만들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아키서스의 사슬:

내구력 9999/9999.

스킬 ‘아키서스의 혼동’ 상시 발동. ‘아키서스의 약화’ 상시 발동. ‘아키서스의 흡수’ 상시 발동.

위대한 아키서스의 화신이자 대장장이인 영웅이 강력한 적을 포박하기 위해 만들어 낸 사슬이다.

한 번 묶으면 어떤 괴물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사슬의 변덕스러움은 주의해야 한다.

‘됐다!’

그래도 일단 쓸 만한 게 나왔다는 것에 태현은 안도했다.

재수가 없었다면 ‘묶이면 더 강해지는 쇠사슬’ 같은 게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봉인 효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비켜!”

“그런 사슬로 막을 수 있습니까??”

모인 랭커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태현이 뛰어난 대장장이라는 건 이제 어지간하면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레벨 700~800이 훌쩍 넘어가는 몬스터를 사슬 하나로 묶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걸로 되나?

철컥! 철컥! 철컥!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슬을 빙빙 두른 다음에 묶었다.

왕자를 땅에 꽉 눌러두고 묶는 솜씨가 납치 좀 많이 해본 솜씨였다.

[아키서스의 사슬이 발동됩니다!]

[명성이…]

[왕자가 포박 상태로 변합니다!]

-잘… 잘 했다. 모험가! 내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아주 잘 했다!

왕자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사슬이 힘을 흡수하고 약화시키면서 굶주린 혼돈의 힘도 같이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래! 이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모험가?

왕자는 태현의 능력을 완전히 믿고 있는지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

태현과 이세연은 순간 시선을 교환했다.

-생각해놨어?

-아니… 우리에 가둬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다른 랭커들도 태현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싶어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이 폭주한 왕자를 어떻게 처리하려는 걸까?

“일단 왕자 전하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마차에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악마들을 넣고 다니는 우리도 일종의 마차긴 했다.

좀 특이한 마차여서 그렇지.

-나는 전차가 좋은데… 어쩔 수 없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 좋은 왕자답게 이런 상황에서 불평을 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이겨내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크으으윽!

“!?”

그 순간 왕자가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혼동>이 발동됩니다!]

[페르소텔턴이 <제국 황실의 회오리 투창>을 사용합니다!]

완전히 묶여 있는데도 갑자기 왕자 앞에서 스킬이 발동됐다.

거대한 토네이도처럼 앞을 뚫고 날아가는 강력한 투창 스킬!

“으아아아아악!”

그 궤도에 있던 랭커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렀다.

콰아아아앙!

조금만 반응이 늦었으면 스킬과 함께 그대로 로그아웃당할 뻔한 것이다.

“저… 저 왕자 죽여야 해! 날 죽이려고 했어!”

“아니. 실수일 뿐이야.”

“뭔 저게 실수야! 미쳤냐!?”

랭커는 펄펄 날뛰었지만, 정말 실수였다. 제정신이 돌아온 왕자는 앞을 보고 놀랐다.

-이… 이 스킬을 내가 썼단 말인가?

“저… 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김태현! 저 왕자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냐!? 굶주린 혼돈에게 타락해서 수작을 부리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고서 그런 소리가 나와?”

태현의 반응에 이세연도 거들었다.

“왕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스킬 때문이겠지.”

둘은 레벨업에 도움이 되고 퀘스트에 도움만 되면 악마 공작이라도 살려서 가둘 사람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왕자의 결함 정도는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왕자를 내버려 두면 분명 우리를 죽이려고….”

[<아키서스의 혼동>이 발동됩니다!]

[페르소텔턴이 <무혈의 회오리 일격>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아아아앙!

“…제가 잘못했습니다.”

랭커는 기가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입을 열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

“그래도 왕자를 이렇게 잡았으니 도시 퀘스트는 깬 셈 아닌가?”

“장로들 퀘스트도 깬 게 될 것 같은데… 장로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어.”

이세연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장로들은 분명 굶주린 혼돈의 힘에 깨어난 왕자를 걱정하고 쓰러뜨리기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슬로 꽁꽁 묶인 왕자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잘 설득하면 그만이지.”

“그런 네 자신감은 정말 놀라워.”

도대체 어디까지 설득할 수 있는 걸까?

저기서 실력이 더 늘면 하늘섬 NPC들한테 ‘사실 내가 고대 제국 황제 후손이야’라고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험가… 모험가여. 내… 내가 후계자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을 받아야 한다. 가까이… 가까이 와라.

“꼭 가까이 가서 들어야 합니까?”

태현은 매우 꺼림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또 폭주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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