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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06화 (1,405/1,826)

§ 나는 될놈이다 1406화

흑흑이는 솔직히 감동했다.

흑마법사가 설마 흑흑이를 챙겨주는 날이 올 줄이야.

블랙 드래곤이나 흑마법사 모두 사악한 인성으로 따지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이들이었기에 그 감동은 더욱 컸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태현은 이세연을 데리고 흑흑이 위에서 뛰어내린 다음 용용이로 갈아탔다.

흑흑이는 배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째서!?

“미안. 사실 이세연이 뭐라고 대답하든 내가 알아서 할 생각이었어.”

-…….

태현의 예상대로, 호수 정령은 흑흑이에게 집중했다.

용용이 위에 올라탄 태현과 이세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번 스킬 끝날 때까지 버틴 다음에 다시 언데드 소환해서 공격하자.”

“알겠어.”

무슨 해일이 덮친 것처럼 주변의 물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내고 보니 호수 정령은 의외로 해볼 만한 상대였다.

일단 패턴이 단순하다는 게 컸다.

레벨 높은 보스 몬스터들이 온갖 다양한 스킬과 패턴으로 공격을 해오는 것에 비해, 호수 정령의 공격은 많이 단조로웠던 것이다.

별다른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공격은 덩치를 앞세운 일반 공격.

가끔씩 이렇게 주변을 뒤덮어버리는 범람만 막아내면 됐다.

‘이렇게 보니 갑자기 왕자한테 고마워지는데.’

너무 이상한 던전에 데려온 거 아니냐고 불평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새삼 괜찮은 던전 같아진 것이다.

물론 흑흑이는 죽을 맛이었지만.

-그만 쫓아와라 이 멍청하고 둔한 정령 놈아!

흑흑이는 각종 혼란 마법을 걸며 정령의 눈을 속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호수 정령은 끈질기게 물 덩어리를 날리며 쫓아왔다.

쾅!

-주인님! 믿고 있었습니다! 도와주러 오셨군요!

뒤에서 호수 정령이 크게 얻어 맞는 소리를 내자 흑흑이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역시 도와주러 오시는구나!

…그러나 뒤에 와 있던 건 태현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

-???

* * *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왕자에게 선택받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랭커들이었다.

경주에서 실력 보여줄 정도면 랭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눈치가 빠른 이들.

태현과 이세연이 이다비 데리고 왕자와 함께 사라진 채 돌아오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김태현하고 이세연이 지금 왕자하고 혼자 좋은 퀘스트 깨는 건 아니겠지?”

“설마… 탈출해야지 퀘스트 깨고 있겠냐?”

랭커 중 한 명은 그렇게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타락한 왕자한테서 결국 탈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좋은 퀘스트 몇 개 깰 수는 있지 않은가.

그들도 만약 왕자가 퀘스트 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넙죽 받을 테니까.

“아니. 그 생각은 틀렸다!”

“왜지?”

신진 랭커, 파렐이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잠깐. 저거 김태현하고 퀘스트 같이 깼다고 사칭한 놈 아냐?”

“저런 놈이 여기 있네. 아무리 이 자리가 일부러 모인 자리는 아니지만 최소한 상대할 사람은 골라야 하지 않나?”

“사칭 아니라고!! 방송 제대로 안 봤냐!”

“어. 뭐야. 사칭 아니었어?”

“미안하군. 다들 그러길래 사칭인 줄 알았지.”

원래 가짜 정보가 한 번 퍼지면 그 뒤에 해명해도 수정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한 번 찍힌 이상 파렐이 아무리 뒤에 증거를 내놓아도 오해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 봐라. 여기 팀 KL 다른 선수들도 있잖아.”

파렐은 정수혁과 최상윤을 가리켰다.

멍하니 앉아 있던 둘은 그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의아해했다.

“확실히 그렇군.”

“팀 KL 선수들이 있는데 두고 갔을 리는 없겠지.”

“어….”

정수혁과 최상윤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 인간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냥 오해하게 내버려 두자. 우리 잘못 아니잖아.

생각해 보니 태현이 둘을 내버려 두고 간 것도 이걸 노린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전혀 의심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자 슬슬 하나둘씩 가보려는 플레이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한 번 찾아보고 올게. 저쪽으로 갔으니까.”

“나도 간다.”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며 하나둘씩 나서기 시작하자 최상윤과 정수혁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잠깐. 지금이 기회 아니냐?

-그런 것 같습니다.

팟!

플레이어들이 왕자의 전차꾼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며 왕자가 간 던전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이, 정수혁과 최상윤은 냅다 달렸다.

탈출이다!

* * *

“이것 봐! 정말 퀘스트를 깨고 있었… 어푸! 어푸푸!”

호숫가 던전에 들어 온 플레이어들을 맞이해 준 건 호수 정령의 범람 스킬이었다.

미친 듯이 차오르는 호수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버둥거리며 헤엄쳤다.

[타락한 호수 정령의 힘으로 MP가 빠르게 감소…]

[수영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

[……]

“뭐하냐?”

용용이를 타고 거리를 벌리던 태현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도와줘! 김태현!”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라.”

태현은 냉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플레이어들은 이세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다가 말았다.

김태현보다 더 안 도와줄 사람인 게 뻔했으니까!

“저 자식들 왜 나한테는 도와달라고 안 하는 거지?”

“뭐 어때. 편해서 좋겠네.”

그러는 사이 이다비는 빠르게 오토바이를 불러낸 다음 소용돌이치는 호수 위에서 허우적대는 플레이어들 위로 다가왔다.

“파워 워리어 길마님!!”

“믿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기대도 하지 않던 구조에 감격해서 이다비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매 들어가겠습니다.”

“…??”

“네?”

그러나 이다비는 당연히 공짜로 온 게 아니었다.

“경매 들어가겠습니다. 가장 비싸게 부른 사람부터 구출할게요.”

“…10, 10골드!”

“20!”

“100!”

“500!”

순식간에 미친 듯이 뛰어오르는 골드!

그 모습에 이다비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말려도 돼?”

“이다비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리고 호수 정령은 이다비 신경 안 쓰고 있어.”

태현은 고지대에 도착한 다음 내렸다. 호수 정령은 아직도 흑흑이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을 싫어하나?’

호수 정령이 유난히 블랙 드래곤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흑흑이가 유독 밉상이었던 게 분명했다.

“다시 공격 들어간다.”

“알겠어.”

파아아아앗!

이세연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언데드 군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인님, 뭔가 이상한….

언데드들이 이상함을 깨닫기도 전에 더 많은 폭탄들을 채우는 태현.

순식간에 자폭 부대가 한 번 더 완성되었다.

“가라!”

꽈과과과과과광!

-므어어어어어!

호수 정령은 다시 한번 들어오는 공격에 신음했다.

지켜보고 있던 왕자는 외쳤다.

-훌륭하다! 저 정령을 상대로 이렇게나 잘 싸우다니.

“왕자 전하께서도 도와주시면 어떻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너희를 돕는다면 아직 약한 너희들의 성장을 막는 일이 될 테니까!

“…….”

“…….”

이세연과 태현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약하다’는 말을 너무 안 들어봐서 많이 어색했던 것이다.

“저희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왕자 전하의 솜씨를 보고 싶었던 건데, 오랜만에 깨어나셔서 자신이 없으신 거라면 뭐….”

[화술 스킬이 매우 높…]

-그런 의미였나? 거기 가만히 그러고 있어라! 내가 실력을 보여주도록 하지!

[페르소텔턴이 <고대 제국 혈통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페르소텔턴이 <죽음의 질주>를 사용합니다!]

[……]

[……]

페르소텔턴은 전차 위에 올라탄 다음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사방을 휩쓸었다.

마치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는 번개 같았다.

콰르르르릉!

왕자는 거대한 거인 같은 덩치를 가진 호수 정령에게 그대로 돌격했다.

굉음과 함께 아예 뚫고 뒤로 나가버리는 막대한 파괴력!

-므어어어어어!

“와. 진짜 대단하긴 하군.”

태현은 감탄했다.

고대 제국 시절에 싸움만 했는지 전투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설득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그런지 친밀도 높은 상태에서 말 몇 마디 해주면 알아서 움직였다.

“처치하기 아까운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이세연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NPC를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진짜 처치해야 하나?

“다시 준비하자. 마무리 들어가야지.”

태현과 이세연은 쉬지 않았다.

왕자가 호수 정령에게 크게 타격을 입힌 덕분에 훨씬 준비하기가 쉬운 상황.

아까보다 더 많은 언데드 자폭 부대가 차례대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주인이시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빛나는 아이템은 수상쩍기 그지없….

“텔레포트!”

이세연은 빠르게 언데드들을 보냈다.

언데드들이 거의 눈치채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쾅! 쾅! 쾅!

폭죽처럼 호수 정령의 위에서 연신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타락한 호수 정령이 쓰러집니다!]

[호수 정령이 오염된 자신을 쓰러뜨린 당신들에게 감사해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얻습니다!]

[스킬, <호수 정령의 가호>가 추가됩니다!]

[업적, <호수 정령의 구원자>가 추가됩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므어어….

애달픈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호수 정령.

그러나 호수 정령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굶주린 혼돈에게 계속 고통받고 있던 것에서 풀어준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을 쓰러뜨렸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분노합니다!]

[하늘섬에 있는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을 쓰러뜨릴수록 굶주린 혼돈이 약해집니다.]

[……]

[……]

“다음 던전 갈까?”

“당연히 가야지. 왕자한테….”

-크아아아악!

“?!”

쉬지도 않고 왕자한테 다음 던전 안내해달라고 하려고 했던 태현은 깜짝 놀랐다.

왕자가 갑자기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왕자를 오염시킵니다!]

-감히…! 감히!

<페르소텔턴의 구원-페르소텔턴 세력 퀘스트>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인해 부활한 페르소텔턴 왕자는 겉모습과 달리 타락한 상태였다.

왕자의 놀라운 힘과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의 강력한 하수인과 싸운 여파로 타락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타락이 더 심해진다면 왕자는 이성을 잃게 되리라.

타락이 더 심해지기 전에 왕자를 영원한 안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보상: ?, ???, ???

-굶주린 혼돈, 이 비열한 놈!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못하고 이런 방법을….

이를 갈던 왕자는 둘을 보며 외쳤다.

-모험가들이여!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내 심장을 찔러라!

“!!!”

왕자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라고 하다니.

도시 관련 퀘스트를 모두 다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니. 잠깐.’

태현은 멈칫했다.

[카르바노그도 뭔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흉계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기껏 왕자를 타락시켰는데 이렇게 왕자가 스스로 자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굶주린 혼돈이 벌인 일치고는 너무 쉬웠다.

혹시 왕자를 찌르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걸 알아차리다니 대단하다고 카르바노그가 칭찬합니다!]

‘아니… 그런 식으로는 생각 안 해봤는데 일리가 있긴 하군.’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어떻게든 왕자 안 죽이고 우리에 잘 가둬서 악마처럼 쓸 수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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