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04화
“뭐? 왜?”
이세연은 태현이 쳐다보자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말 바꾼 게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태도!
평소라면 언데드들 불만 가지니까 하지 않는 짓이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페널티는 감안하는 유연함이었다.
랭커라면 필요한 재능.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의 그런 뻔뻔함을 좋아해.”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쁜데?”
갑작스러운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살짝 노려봤다.
“그러면 폭탄 단다?”
“정령 상대로 통하는 걸로 해야 해.”
“당연하지.”
태현은 아이템에서 폭탄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태현은 그렇게 폭탄을 많이 갖고 다니는 편이 아니었다.
폭탄이 의외로 무겁고 부피가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판온은 아이템마다 무게가 있고 부피가 있었다. 덕분에 아무리 좋은 가방을 갖고 다녀도 한계가 명확했다.
걸어 다니는 재료 창고인 토왕이 덕분에 꽤 여유롭긴 했지만….
‘재료 갖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직접 만드는 게 아무래도 낫지.’
때문에 태현이 갖고 다니는 폭탄들은 어느 상황에서든 쓸 수 있는 국밥처럼 든든한 폭탄들이 보통이었다.
이런 폭탄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발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고 거듭한 폭탄계의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었다.
재료, 가격, 무게, 발동 시간, 효과 등등 모든 요소를 종합한 폭탄!
광역기나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싶을 때 쓰는 <사디크의 지옥 화염 폭탄>.
안에 파편들을 잔뜩 채워 넣어 물리 데미지와 치명타를 입히는 <아키서스의 행운 파편 폭탄>.
‘으음. 즉석에서 만드는 게 낫겠군.’
정령 상대로 통하는 거라면 역시….
[폭탄 제작을 시작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기계공학 스킬이….]
[칭호….]
[….]
폭탄의 거장답게 태현은 즉석에서 순식간에 폭탄 제작을 시작했다.
[새로운 제작법을 시도합니다!]
[제작에 실패합니다.]
[새로운 제작법을 시도합니다!]
[성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눈부신 마력 충격 폭탄>의 제작법을 완성합니다!]
“됐어?”
“됐어. 자. 언데드들 이리 와라!”
-?
정령을 포위하고 충성스럽게 싸우던 데스 나이트들은 뒤에서 부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가, 인간이여?
-또 강화 마법을 걸어줄 생각인가? 좋은 생각이다. 내 죽음의 검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언데드들은 상황 파악이 덜 된 얼굴로 태현에게 다가왔다.
아까 걸어준 금속 마법 때문에 또 버프를 걸어주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이 이번에 걸어주는 건 금속 마법이 아니었다.
철컥-
-?
-이건… 불길한 기운이 풍긴다. 무엇인가?
“너희의 공격력을 좀 강하게 만들어주는 악세사리 같은 거지.”
[화술 스킬이 매우 높….]
[언데드들이 속아 넘어갑니다!]
이세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언데드들이 잘 넘어가자 안심했다.
흑마법 스킬이 아무리 높아도 언데드들을 완전히 통제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
언데드들의 레벨이 강해질수록 자아 또한 강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폭탄 목걸이 같은 걸 채울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언데드 텔레포트도 시킬 수 있었어?”
“응.”
“본 적 없는데 혹시 나중에 나한테 쓰려고 숨겨 놓았던 거 아니지?”
“…아, 아니거든.”
“너 방금 1초 정도 대답이 늦었던 거 같다?”
* * *
“요즘 뭔가 이상해요.”
“…어, 태현이 불러오면 안 되나?”
이다비가 상담을 신청하자 팀 KL 선수들은 당황했다.
최상윤과 정수혁, 케인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가 상담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나?’
‘그런 게 있으면 저희가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훗. 뭐든지 물어보라고.”
“…….”
“…….”
말리기도 전에 케인이 입을 열어버리자 둘은 노려봤다.
야, 인마!
“그래. 뭐가 문젠데?”
“집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 그래? 부러운데.”
“이건 진지한 고민이거든요?”
이다비는 요즘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동생들이 집안일 당번을 맡을 때 음식이 이상하게 맛있는 것이다.
얘네들이 갑자기 요리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닌데 음식 맛이 이렇게 좋아지는 건 뭔가 이상했다.
“동생들이 열심히 요리한 거 아니야?”
“맞습니다. 동생들이 참 기특합니다.”
최상윤과 정수혁은 진실을 알았기에 말을 돌렸다.
왜냐하면 그건 태현이 요리하고 있었던 거니까!
이다비의 동생들이 저번 시합을 이유로 ‘그러면 저희가 당번 할 때 요리하실래요?’라고 제안했고, 태현은 그걸 또 덥석 받아들여서 가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다음에 이세연과 붙어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저러는데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다비한테 말할 수도 없고….
-만약 들키면 우리만 박살 나겠지?
-그럴 겁니다.
구체적으로 고기반찬 금지부터 시작해서 최악의 경우 태현이 집안일 보이콧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 말인즉 남은 선수들끼리 밥을 차려 먹어야 한다는 뜻이고, 케인의 당번 차례가 늘어난다는 뜻.
선수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비밀을 지켜야 해!’
그러나 이다비는 생각보다 예리했다.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태현 님이 몰래 와서 요리를 해주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인데요….”
“헉…!”
“?”
“아, 아닙니다. 갑자기 하품이 나와서.”
생각보다 예리한 이다비의 감각에 모두들 경악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요리 맛이 태현 님이 하던 맛이던데요?”
‘무서워!’
‘아니, 그걸로 맞추는 게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케인은 공감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얻어먹은 덕분에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하죠? 태현 님이 바쁜데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그럼. 그럼. 물론이지.”
“맞습니다.”
“그리고 제 동생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요.”
“…….”
“…….”
이다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살기에 모두들 공포에 떨었다.
원래 평소 화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법.
“동생들이 태현이한테 배운 거 아닐까?”
“바쁠 텐데 그런 건방진 짓을 한다고요?”
“아, 아니… 배울 수도 있지….”
케인은 쭈그러들며 말했다.
케인도 태현한테 요리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그리고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해주고 있을걸?”
“????”
“!!!!!!”
최상윤과 정수혁은 사색이 되어 케인을 쳐다보았다.
‘너 미쳤냐??’
‘죽으시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저희까지 같이 끌고 가시는 겁니까?’
둘이 사색이 되어 쳐다보자 케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걸 말하면 어떡해…!”
“말하지 말라고 안 했잖아.”
“…그걸 꼭 말해야 아냐?!”
최상윤이 새파랗게 질리자 슬슬 그 공포가 케인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케인은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당연합니다.”
“어… 그, 그래도 너무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김태현이 말하지 말라고 안 하기도 했고.”
“그거 정말 그럴듯한… 아차. 내가 순간 넘어갈 뻔했네.”
최상윤은 납득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개소리는 개소리였던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있습니다.”
“어? 뭐야? 왜? 김태현한테 좋은 일 있냐? 봐주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케인 선수 혼자서 말했으니 저희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
케인이 배신감 가득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동안 이다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거죠?”
“…….”
“아, 아니. 태현이가 좀 미친 짓을 하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을 거야.”
“지금 태현 님한테는 딱히 화 안 났거든요?”
이다비는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문자를 보냈다.
…동생들한테.
[죽을 준비하렴.]
“동, 동생들도 악의는 없었을 거야!”
“그러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뭘, 뭘?”
“솔직하게 말 안 하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한테 시켜서 악플 달라고 할 거예요.”
“……!”
이건 진짜로 무서웠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중국 네티즌하고 키보드로 붙어도 밀리지 않는 쪽수와 널널한 시간을 자랑하는 이들.
“식사 준비해 달라고 말 꺼낸 게 태현 님이에요 제 동생들이에요?”
“…동생들.”
팀 KL 선수들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 문자가 하나 더 날아갔다.
[너희는 진짜 죽었어.]
* * *
[도와주세요!]
이다솔과 이다샘이 다급하게 연락을 보내자 태현은 분노했다.
감히 어떤 겁 없는 자식이 둘을 건드린단 말인가.
[같은 반 친구? 누군지 이름만 말하면 내가 이족보행에서 사족보행로 바꿔놓을 테니 이름만 말해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언니가 상대인데요.]
[…….]
태현은 정색했다.
[이다비랑 너희들이면 너희들 잘못 아니야?]
[저희 버리시면 안 돼요!]
[같이 손잡았잖아요!]
[언니가 지금 집에서 칼 갈고 있을 거예요!]
[도와주세요!!]
연달아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에 태현은 쯧쯧 혀를 찼다.
[학교 끝나면 말해라. 이야기 들어줄 테니까.]
[언니가 교문에서 몽둥이 들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죠?]
[…이다비가 그럴 사람이니?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학교 끝나면 말해라.]
태현은 하품을 하며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슬슬 하교 시간이 되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
“???”
“?????”
지나가던 학생들은 교문 앞에 서 있는 눈매 매섭게 생긴 사람을 한 번 보고 지나가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김태현 선수 아니야?”
“네가 어제 판온에서 개발렸다고 헛소리를 해도 되는 건 아니거든? 너 때문에 나까지 같이 죽었잖아.”
“아니… 진짜 김태현 선수 같은데?”
친구의 말에 학생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김태현 선수는 더 잘생겼어.”
“그건 게임 안이라서 보정 들어간 거 아닌가?”
다들 긴가민가해서 차마 말을 걸어보진 못했다.
만약 말을 걸었다가 그냥 닮은 사람이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그러는 사이 이다솔과 이다샘이 걸어나왔다.
친구들하고 같이 떠들면서 걸어나오는 모습이 상당히 정겨웠다.
“여기….”
태현은 손을 흔들면서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잠깐만.’
원래 학창 시절은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아닌가.
그런 시절에는 가족이 교문에 찾아와도 창피한데 가족의 친한 사람이 교문에 찾아와서 아는 척하면 더 창피할지도 몰랐다.
[나 교문에 있어.]
“저기 김태현 선수야!”
“…진, 진짜 김태현 선수다!”
그러나 태현의 그런 배려와 상관없이 둘은 신나서 태현을 자랑했다.
둘이 지목하는 순간 옆에 있던 친구들은 둘을 버려버리고 태현에게 돌격했다.
하늘섬 경주에 참가해도 될 정도의 스피드!
“팬, 팬이에요! 정말 팬이에요. 오빠.”
“고맙다.”
“케인 선수는 없나요?”
“걔는 지금 집에서 밥… 아니, 훈련하고 있단다.”
“다솔이하고 진짜 친해요?”
“그래.”
“다솔이 밥도 해준 적 있어요?”
“그래.”
“혹시 밥하는 걸 좋아하시는 건가요?”
“아니. 가족같이 아끼니까 해주는 거겠지?”
“그러면 케인 선수는 왜 밥을 해주시는 건가요?”
“걔도 좀 가족같은 사이니까. 선수들이 다 친해.”
“그래도 케인 선수는 너무한 거 같아요!”
“맞아! 케인 선수는 좀 심한 거 같아!”
졸지에 학생들 사이에서 ‘케인은 왜 잘못했는가?’로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케인을 대신 변명해 주던 태현은 문득 분노가 치솟았다.
‘아니. 이 자식 때문에 왜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