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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02화 (1,401/1,826)

§ 나는 될놈이다 1402화

“꼭 왕자 전하와 싸워야 할까요? 어쩌면 그게 고정관념이 아닐까요?”

-그게 대체 무슨 미친 개소린가?

크라스비 장로는 태현의 화술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대대로 내려온 충성심은 화술 스킬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과 싸우시던 왕자 전하께서 저렇게 괴로워하시는데 어떻게든 돌려보내야지!

‘딱히 괴로워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멀리서 보는 왕자는 매우 기운차 보였다.

굶주린 혼돈에 오염된 것 치고는 자기 인생을 아주 잘 즐기는 것 같아 보였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같이 힘을 모아서 왕자 전하를 돌려보내죠.”

-고맙군! 역시 경기에서 다른 쓰레기 같은 상대들을 두 명이나 탈락시키고 멋지게 우승한 모험가다워.

태현의 말에 크라스비 장로는 만족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이세연이 속삭였다.

“퀘스트 깰 생각 없지?”

“어떻게 알았어?”

받기만 하고 그냥 도망치면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

장로들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밑에까지 쫓아오진 못하겠지!

* * *

둥둥둥-

왕자의 행렬은 매우 화려했다.

왕자 중심으로 늘어선 고대 제국 전차들이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장관이었다.

이쯤 되자 몇몇 플레이어들은 슬며시 왕자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왕자 전하! 사실 저는 예전부터 왕자 전하를 존경했습니다!”

“옛날에 왕자 전하에 관한 책도 읽은 적 있습니다! 시도 외운 적 있습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뽑혀서 저기 전차꾼으로 있는데, 그들이라고 못하란 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생각보다 냉정했다.

-얼마나 빠르지?

“…예?”

-너희는 얼마나 빠르냐?

“어… 그게….”

보통 이런 세력에 가입 신청을 하면 레벨이나 명성 스탯을 봤다.

칭호나 깬 퀘스트를 볼 때도 있었고, 안 좋은 곳일 경우는 악명 스탯도 봤지만….

속도를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빠릅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경주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버러지 같은데?

“버러지까진 아닌데….”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자! 저기 새로 뽑은 전차꾼들과 붙어봐라.

“!”

플레이어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은데?’

‘이기면 들어갈 수 있는 거니까.’

<입단 시험-페르소텔턴 세력 퀘스트>

부활한 왕자 전하께서는 빠른 전사를 선호하신다.

버러지같이 느린 이들이 세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전차꾼들을 상대로 승리해라.

실패할 경우 처형당하리라.

보상: ?, ???

“…?????”

“처형이라니?”

-느린 자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죽을 텐데 지금 미리 죽는 것과 별 차이가 없겠지.

왕자는 냉정하게 말했다.

플레이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실수 한 번 하면 질 수도 있는 게 경주인데 그거 갖고 처형은 좀…!”

-이기면 된다. 준비해라!

왕자는 듣지도 않고 명령을 내렸다.

플레이어들은 벌벌 떨면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경주에서 만나게 되자 공포 그 자체였다.

‘저, 저렇게 강해 보였나?’

‘동작 하나하나가 고수 같아…!’

유선형 로켓 위에 앉아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마치 여유만만한 고수들 같았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오만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플레이어들에게 도발을….

“얼마에 하시겠습니까?”

“어?”

“얼마에 하시겠어요?”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오만한 표정이 아니라,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겸손한 표정이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친근하고 따뜻한 태도로 속삭였다.

“이번 퀘스트를 위해 저희가 져드릴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주시는 비용에 따라 어떻게 져드릴지도 정해줄 수 있는….”

“…….”

긴장한 플레이어들은 순간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런 놈들을 고수처럼 생각하고 겁을 먹었다니…!

* * *

-왕자 전하께서 뛰어난 경주꾼인 모험가를 불러서 부관으로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도망칠 계획 짜기도 전에 전차꾼이 달려와서 태현을 부르자, 태현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치더라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지 왕자 옆은 곤란한 것이다.

이세연은 태현이 곤란한 눈빛을 보내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길마님이 원래 저러시는 분이 아니신데….’

길드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는 냉정, 엄격, 진지를 한 몸에 구현하고 있는 이세연이었는데 태현만 상대하면 자꾸 유치하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모험가님도 이리 오시지요! 모험가님의 경주 실력을 왕자님께서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아니….”

이세연은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이세연도 경주에서 몇 번 우승한 덕분에 실적이 괜찮았던 것이다.

-모험가 님들을 모셔라! 귀한 분들이시다. 왕자 전하께서 직접 명령하실 정도니!

태현과 이세연은 사이좋게 전차꾼들에게 끌려갔다.

남은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두 분이 끌려가시면 저희는 어쩌라고요…!’

-길마님 뭐하세요??

-…미안. 생각해 보니까 나도 끌려갈 수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어.

-언니 김태현만 만나면 왜 이렇게 정신 못 차려요??

김현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그 말에 길드원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야, 그건 건드리면 안 돼!

-역시 아직도 판온 1 때의 원한이 남아 있는 거죠?

-…….

-…김현아 씨 그건 아닌 것 같….

-쉿. 닥쳐.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는 눈치 없는 김현아의 모습에 길드원들은 다들 침묵을 지켰다.

-일단 다들 기다려봐. 왕자 설득해서 빠져나오든가 할 테니까.

-예! 믿고 있겠습니다!

* * *

태현과 이세연만 왕자에게 불려온 건 아니었다.

주변을 보니 나름 경주에서 실적을 낸 사람들은 다 끌려 온 상태였다.

최상윤과 정수혁도 있을 정도로.

-자! 맛있게 들게!

왕자는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밖의 야영지에서 차렸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식사가 깔려 있었다.

-내 요리사들을 시켜서 만든 요릴세.

“이건… 대단한데?”

이세연은 요리들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고대 제국 레시피들이 아낌없이 사용된 것이다.

그것도 고대 제국 황실에서 쓰던 레시피!

레시피는 요리사들의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고대 제국 레시피는 그 값이 몇십 배로 뛰었다.

그런데 고대 제국 황실에서 쓰던 레시피라니.

요리사 랭커들이 안다면 환장을 해서 달려올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요리사들이 하나도 없다는 건데.’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세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요리사 랭커가 여기 와서 경주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여기 레시피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

[현재 요리 스킬이 높습니다.]

[<고대 제국 황가의 오색 케이크> 레시피를 얻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현재 요리 스킬이 높습니다.]

[<경주자를 위한 비장의 칠면조 양념 구이> 레시피를 얻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 여기 레시피 천국인데?”

태현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렇게 날로 먹는 이득만큼 기쁜 것도 없었던 것이다.

“…제작법 떠?”

“레시피? 응. 다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모든 레시피는 못 얻더라도 꽤 많은 레시피가 태현의 손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세연은 살짝 얄미워졌다.

이런 쓸데없이 스킬 많이 익히는 자식!

[일시적으로 이동 속도가 크게 증가…]

[일시적으로 마력 회복이…]

[……]

[……]

[추가 버프, <고대 제국 황실의 만찬>이 적용됩니다!]

파아아앗!

식사의 힘은 놀라웠다.

영구 스탯 증가부터 시작해서 일시적인 버프들까지.

거기에 <고대 제국 황실의 만찬>은 랭커들도 놀랄 정도의 버프였다.

공격 속도 증가, HP와 MP 회복 속도 증가, 스킬 쿨타임 감소 등등.

‘고대 제국 사람들은 이런 걸 먹고 살아서 강했던 건가?’

[카르바노그가 그럴듯하다고 말합니다.]

-다들 식사를 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사냥을 한 번 해볼까?

왕자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경주에서 한 번 이상 우승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랭커들도 여럿이었지만….

역시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의지할 만한 건 태현과 이세연이었다.

“김태현 선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세연 선수. 진짜 사냥에 나설 겁니까? 저 왕자가 우리를 화살받이로 쓰면 어떡하죠?”

“김태현 선수. 파렐이란 놈과 같이 퀘스트를 깬 게 정말입니까? 그냥 립서비스 한 거죠?”

“그냥 차라리 다 같이 레이드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까 싸우는 거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김태현 선수가 너 정도 수준인 줄 알아? 충분히 하실 수도 있지!”

혼란 그 자체.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 있다.”

“뭡니까?”

“우리 각자 알아서 하자.”

“…….”

“아, 아니. 명령을 내려주시면 안 됩니까?”

“너희들도 랭커인데 각자 알아서 해야지.”

태현과 이세연이 이렇게 나오자 랭커들은 당황했다.

평소라면 누가 나서서 명령을 내렸을 경우 ‘니가 뭔데 우리한테 명령이야?’라며 대번에 짜증을 냈을 랭커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그 반대였다.

태현과 이세연은 랭커들 책임지기 싫어서 모르는 척하고, 랭커들은 든든한 둘의 지휘를 받고 싶어서 매달리는 상황!

“한 번만! 한 번만 지휘해 줘!”

“우릴 케인이라고 생각해도 돼!”

“매우 참신하게 불쾌한 소리를 하는데?”

태현은 어이없어했다.

“우리 처음 만났는데 뭘 믿고 지휘해달란 거야?”

“김태현 선수 인성을 믿습니다!”

‘미친 건가?’

이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믿을 게 없어도 김태현 인성을…?

* * *

랭커들이 서로 도와달라느니 말라느니 하는 동안 왕자는 가볍게 먼저 움직여서 손을 풀고 있었다.

콰르르르르릉!

왕자가 전차를 한 번 몰고 지나가자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이 그대로 튕겨나가며 박살이 났다.

-모험가여. 이리로 와보게.

“?”

왕자는 태현에게 오더니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몬스터들이 있군.

“어… 왕자 전하께서 잡으신 거 아닙니까?”

두 눈이 달린 플레이어라면 저건 왕자가 치고 지나간 몬스터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저 몬스터들을 잡은 적이 없네.

“??”

-그냥 지나가다가 발견한 거야. 자네가 처리하게.

[당신의 경주 실력에 왕자가 호감을 표합니다!]

[왕자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왕자는 빠른 사람을 좋아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중 가장 우승 경험 많은 태현에게 가장 많은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키이잇!

낭티오네는 왕자를 노려보며 쉿쉿 소리를 냈다.

왕자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흉측하게 생긴 바실리스크는 왜 나를 보고 저러는 건가?

“원래 성격이 좀 더러운 편입니다.”

-빠름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치장에 신경을 안 쓴 것 같군. 내가 나중에 좋은 탈것을 하나 구해주겠네.

“감사합니다?”

-흠. 뭐가 좋을까… 골드 드래곤… 아니, 골드 드래곤은 좀 순진무구하고 멍청한 부분이 있지.

태현의 품속에서 용용이가 분노해서 파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저 인간 놈이 감히!

-어쨌든 꼭 하나 구해주도록 하겠네. 자! 저기 있는 걸 마저 잡도록 하게. 내가 건드린 게 아니라 그저 오다가 발견했을 뿐이야.

“…??”

태현은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몬스터들을 쓸어담았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경험치가…]

[……]

‘어라?’

이거….

생각보다 되게 편한 자리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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