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97화
-어어? 차단을 해?
-이런 비겁한 놈 같으니.
다른 랭커들은 파렐의 차단에 어이없어했다.
자존심도 없이 김태현한테 붙어 날로 먹으려는 놈이 저렇게 나오니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퀘스트 어떻게 깨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려고 했는데….
-됐어. 우리끼리 움직이자고.
파렐은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비밀이란 건 완전히 지켜지는 경우가 더 드물었다.
다른 랭커들도 파렐이 받은 퀘스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깨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쫓던 도중, 김태현하고 붙어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물어본 건데….
-그런데 김태현 부를 정도면 퀘스트 거의 깬 거 아니야?
-아무리 김태현이라고 여기서 앞서 나가지는 못할걸. 도시 이상한 거 다들 알잖아.
-하긴 그것도 그래.
랭커들은 알지 못했다.
태현이 지금 벌써 도시의 장로와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 * *
“그런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슈라익 장로가 타고 있는 거미 탈것을 보는데 아무리 봐도 슈라익 장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지?
-내가 장로일세.
“!”
놀랍게도 슈라익 장로는 따로 있지 않았다.
거미가 슈라익 장로였던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안 타고 자기가 뛰는 건 반칙 아닌가?”
‘거미가 장로님인 건 안 놀라시나요?’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슈라익 장로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지. 경주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네. 남들보다 몇 초 먼저 출발하거나, 기다렸다가 공격해서 추방시키거나.
‘그건 반칙 아닌가?’
-자네라면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자네도 그런 스타일의 경주를 하고 있으니까.
“??”
태현은 갑자기 슈라익 장로가 친한 척을 해오자 당황했다.
딱히 그런 자유로운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슈라익 장로가 당신의 경주 스타일에 친근함을 갖고 있습니다.]
[친밀도에 추가 보너스를….]
“어…. 뭐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지. 경주에서는 뭐든지 써도 된다네! 속도만 겨뤄야 한다는 건 웃기는 생각이야.
확실히 슈라익 장로는 태현과 생각이 잘 맞는 편이었다.
대화가 좀 무르익자 태현은 빈틈을 타 말했다.
“그런데 장로님. 그 멋있는 갑옷은 어디서 나신 겁니까?”
-아. 이 갑옷 말인가?
슈라익 장로는 거미 특유의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기뻐했다.
하늘섬에서 거대 거미 종족 출신인 슈라익 장로는 꽤나 오랜 기간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이 고대 제국 출신 기계공학 갑옷은 가문의 보물로서 내려오던 것.
‘아니. 만든 게 아니었나.’
태현은 매우 아쉬워했다.
장로가 직접 만든 거였다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보아하니 슈라익 장로는 기계공학 스킬과는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갑옷을 갖고 싶나? 그렇다면 방법이 있네.
“그런데 거미 전용 갑옷이어서 못 입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파렐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것도 방법이 있지.
“아. 인간 종족도 입을 수 있는 갑옷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거미로 변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였는데.
파렐은 질색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거대 거미 장로의 말이 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다시 물었다.
강해질 수 있다면 거미 종족으로 변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장 케인도 팔 몇 개를 추가로 달았고, 스파이X맨도 거미로 변신을 하는데….
“어떤 방법입니까?”
-자네가 영주가 되면 이 도시 지하에 있는 고대 제국 유적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위험한 곳이지만 아직도 많은 보물이 남아 있는 곳이지.
“……!!!”
셋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고대 제국 유적이 지하에 있었나!’
판온에 많고 많은 던전 중에서 고대 제국 유적은 좀 특별한 위치에 속했다.
고대 제국 관련 아이템들이 보상으로 나온다는 뜻 아닌가.
그런 던전이 뜨면 정말 온갖 놈들이 몰려왔다.
-여긴 우리 조상 때부터 썼던 던전이야 이 새끼들아! 저리 꺼져!
-조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난 이 던전에서 태어났다! 내 고향이 여기 던전이야!
별거 아닌 던전도 하나 점령해서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대 제국 유적쯤 되면 길드 동맹 정도 되는 초대형 길드도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다.
“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파렐은 신이 나서 말했다.
꽤 괜찮은 퀘스트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누구보다 빨리 움직여서 던전을 점령하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만드시는 겁니다, 김태현 선수!”
“어? 아니. 그럴 생각까지는 없는데.”
“예?”
“난 던전 점령 잘 안 하잖아.”
태현은 던전 점령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먼저 와서 ‘야 여긴 내 던전이니까 딴 데로 꺼져라’하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던전 점령을 그렇게 잘하셔놓고!?”
“그건 오해가 있다니까….”
태현은 혀를 찼다.
유명해지고 나니까 태현이 판온1에서 했던 일들이 자꾸 영상으로 올라오곤 했다.
<김태현 판온1 업적 총정리>, <김태현 판온1에서 깬 랭커들 봤냐? 김태현은 정말 전설이다….> 등등.
김태현 이름 하나 박아 넣으면 조회 수가 몇십 배로 뛰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영상들을 보면 태현이 무슨 아침에 일어나면 심심해서 길드 하나 부숴 먹고 점심 먹고 심심해서 던전 하나 갈아버리는 괴물처럼 나왔다.
“그런데 실제로 하신 일이잖아요?”
“너까지 그러면 어떡해?”
보통 태현이 던전 점령을 한 경우는 상대에게 원인이 있었다.
재료 필요해서 던전 들어가려는데 웬 길드 놈들이 ‘여기 우리 자리다 꺼져’ 하면 ‘그래, 너희 묫자리다’가 반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길드 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으니 태현도 싸워야 했고, 직업도 전투 직업이 아니었으니 태현은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장 손쉬운 게 던전 들어가서 치고 빠지는 거였다. 아무래도 함정 설치도 쉽고 기습도 쉬웠으니까.
“그리고 고대 제국 유적쯤 되면 여기 있는 놈들부터 시작해서 여기 없는 놈들까지 다 달려올 텐데 점령하려고 버티는 건 힘들지.”
태현은 빠르게 계산을 내렸다.
태현이 무슨 대형 길드 길마도 아니고 그런 짓은 타산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역시 빠르게 깨고 빠져나가실 건가요?”
“그게 좋지 않을까?”
남들보다 먼저 빠르게 던전을 깬 다음 챙길 수 있는 보상을 닥치는 대로 챙겨서 빠져나간다.
그게 태현이 선호하는 방법이었다.
“장로님. 영주 말고 고대 제국 유적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걸 물으면 어떡하나?
슈라익 장로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답했다.
“경주에서 지셨잖습니까.”
-아니….
“경주에서 지셨잖습니까.”
-…크윽. 맞는 말이야.
슈라익 장로는 수긍해 버렸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여기 도시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도 ‘경주에서 졌잖아!’를 밀어붙인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꽤 있는 곳이었다.
경주에서 이긴 이상 최선을 다해 도와줄 수밖에 없다!
-…으음.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고대 제국 유적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장로가 있네. 그 장로가 머무르는 저택인데….
“아. 어떤 곳인지 압니다.”
-이미 들어가 봤었나? 크라스비 장로의 저택이네.
[퀘스트 정보가 추가됩니다!]
[크라스비 장로에 대해….]
-그 장로도 나 못지않게 빠른 사람이지. 물론 내가 더 빠르네.
“당연히 슈라익 장로님이 이 도시에서 가장 빠르시지 않겠습니까.”
[친밀도가 오릅니다.]
[도시 내 평판이….]
빠르다고 해주면 바로 오르는 친밀도가 좀 웃기긴 했지만, 어쨌든 저택의 정보가 나오자 태현은 주먹을 쥐었다.
하늘섬 영주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내가 여기서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지.
<슈라익 장로 강화-하늘섬 스파다 시 퀘스트>
이 도시의 장로들은 언제나 더 빨라지고 싶어 한다.
당신이 메카 바실리스크를 통해 얻은 노하우로 슈라익 장로를 더욱더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라!
만약 성공한다면….
‘아니, 뭐 이딴 퀘스트까지 나오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기계공학 스킬이 높은 탓인지 슈라익 장로한테 부스터 달라는 퀘스트가 나온 것이다.
[꼭 부스터 달 필요는 없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저기서 더 강화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해. 그리고 잘못했다가는 장로가 날 매우 싫어하게 될 거 같군.’
기계공학 장비들은 오작동 한 번 하면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스킬이었다.
낭티오네야 태현이 어르고 달래서 잘 써먹었지만 슈라익 장로한테도 통할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저택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으음…. 사실 그건 나도 방법이 없네. 영주가 아닌 이들은 들여보내 주지 않는 저택이니까.
“경주에서 지셨잖습니까. 방법 내놓으십쇼.”
-끄으으응….
슈라익 장로는 끙끙 앓으며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 * *
-알겠나? 중요한 건 스피드일세. 복도가 길어지기 전에 빠르게 달려서 앞에 도착해야 하네.
크라스비 장로의 저택은 영주가 아닌 이들이 들어오면 무한히 복도가 길어졌다.
이 복도가 길어지기 전에 미친 듯이 내달려서 따라잡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슈라익 장로는 다리를 쫙 펴서 옆으로 둔 채 전력으로 몸을 굳혔다.
들어가는 순간 미친 듯이 달려나갈 생각이었다.
-신속의 거미, 마력의 추가 다리, 질풍의 가속, 눈부신 빛의 길, 고대 제국의 바람….
‘오오.’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아까 경주할 때 슈라익 장로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각종 사기 스킬들을 걸자 슈라익 장로의 주변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났다.
이 정도라면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세!
슈라익 장로는 폭발하듯이 앞으로 날아갔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 미 친듯이 내달리자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퉁!
[저택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
-…….
물론 그런다고 해서 안 되는 게 되지는 않았다.
슈라익 장로는 복도가 길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쫓겨나왔다.
-…크흠.
슈라익 장로도 좀 민망했는지 이쪽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영주가 아니라면 힘들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태현은 장로를 배려해 줬다.
이 정도 배려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자네도 허튼 생각은 그만하고 영주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 보게. 자네라면 언젠가 영주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냥 크라스비 장로를 붙잡아서 협박하면 안 됩니까?”
-……!?
태현의 말에 슈라익 장로는 경악했다.
아니,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크라스비 장로를 붙잡아서 협박한다니. 그런 방법이 통할… 아니, 통할 것 같기도 하고?
말하던 슈라익 장로는 멈칫하더니 솔깃해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평소부터 크라스비 장로가 좀 재수 없기도 했고….
“그러면 가서 붙잡읍시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같은 장로인데….
“붙잡아서 뭘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경주만 할 겁니다.”
물론 상대는 최대한 묶어놓은 상태에서 하겠지만….
그것도 경주는 경주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화신이 이상한 경주 문화를 퍼뜨리는 게 아닌가 걱정합니다.]
카르바노그는 살짝 걱정이 됐다.
태현이 만약 여기 영주가 되면 더티 레이싱 유행이 부는 것 아닐까?
경주 시작하기 전부터 서로 공격하고 탈락시키는 그런 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