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93화 (1,392/1,826)

§ 나는 될놈이다 1393화

신나게 달리던 플레이어들이 이상함을 깨달은 건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였다.

태현이 쫓아오지 않아서 쭉쭉 속도를 내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웬 거대한 메카 바실리스크가 보였던 것이다.

‘김태현이 역전했나!? 언제 역전했지?! 지름길이 있었나!? 아니. 그건 불가능해!’

‘뭐야?! 어떻게 된 거냐!’

다들 당황하는 사이, 눈치 빠른 플레이어 한 명이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김태현 이 미친 자식!”

“??”

“막자다!! 김태현이 길을 막으려고 하고 있어!”

고전 레이싱 게임에서부터 이런 사람들은 꼭 있었다.

남들을 앞서가는 것보다 남들을 막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하늘섬 레이스도 플레이어들이 즐기는 게임인 만큼 당연히 이런 막자가 있었다.

게다가 태현이 타고 있는 메카 바실리스크는 그 덩치가 꽤나 커다란 편이라 길막에 유리했다.

“왔냐? 기다리고 있었다.”

“김태현! 당신 같은 선수가 이렇게 치졸하게 게임을 우으으읍!”

“잘했다. 낭티오네!”

[낭티오네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낭티오네가 칭찬에 수줍어합니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플레이어는 반응 하나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실리스크에 삼켜졌다.

낭티오네가 받은 스킬, <덥석덥석>은 그 귀여운 이름과 달리 살벌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한 번 걸리면 그대로 레이스 탈락이나 마찬가지!

뒤따라오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침을 삼켰다.

“아키서스의 쇠사슬!”

‘온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레이스의 고수.

태현을 상대로 이겨보겠다고 왔으니 당연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첫 번째 출발했을 때 태현이 썼던 스킬을 바로 외워서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걸리면 붙잡아서 끌고 오는 요상하고 희한한 스킬!’

‘케인 놈이 쓰는 거랑 비슷한 스킬이지만 걸리면 골치 아파진다. 무조건 피해야 해!’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스킬 이름을 외치자마자 바로 탈것을 옆으로 꺾거나 급정지했다.

속도야 느려지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태현의 스킬에서 벗어나는 거였다.

‘제발 나만 아니면!’

‘나 말고 다른 놈!’

“…??”

플레이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끌려가는 놈이 안 보였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쇠사슬>!”

촤르륵!

태현이 스킬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이름만 외친 게 아니라 진짜로.

[<아키서스의 쇠사슬>이 작렬합니다!]

[플레이어가 그대로 끌려옵니다!]

“야!!”

남은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판온 최고 플레이어 이야기 나오면 절대 빠지지 않고 꼽히는 랭커가 저런 치졸하고 비열한 수작을 쓰다니!

스킬을 쓴 척 이름만 외치고 안 쓴 것이다.

너무 유치한 속임수라서 당한 게 더 분했다.

“거 미안하게 됐다.”

태현은 뻔뻔하게 말하며 바실리스크를 몰고 앞으로 내달렸다.

스킬을 피하느라 속도를 늦춘 다른 플레이어 한 명이 또 잡아먹혔다.

“튀어! 거리 벌려!”

“<눈부신 빛의 점멸>!”

플레이어들은 아껴 둔 스킬들을 사용하며 어떻게든 간신히 벗어났다.

‘살았다!’

‘김태현이 나까지 잡지는 못했군!’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알지 못했다.

한 바퀴 더 돌면 어차피 다시 태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

“…….”

뒤늦게 깨달은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태현이 빨리 오라는 듯이 출발선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태현이는 그냥 내보내지 않아야 할 거 같은데.”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최상윤은 경악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 관중들은 이렇게 떠들며 잔뜩 기대했다.

-와. 김태현이 참가한다고? 나 김태현이 참가하는 경기 처음 봐!

-김태현이 직접 뛰는 경기 보는 건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해.

-나중에 자식 낳으면 오늘 경기를 자랑하겠어.

어떤 경기든 간에 태현이 한 번 참가하면 절대 평범하지 않게 변하는 것이다.

극한의 속도가 부딪히는 살벌한 레이스가 되겠지?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건 다른 선수들 전원을 상대로 막자를 시도하는 태현이었다.

“와아아아아! 김태현! 김태현!”

“경쟁자를 모두 다 삼켜버리십쇼!!”

물론 이것도 다른 의미로 반응이 화끈했지만, 대회 주최 입장에서는 저런 막자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

대회 진행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미리 알아서 다행 아닙니까? 그냥 내보냈는데 선배님이 저런 짓 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회 진행이 개박살 났을 것 아닌가.

“그래도 태현이가 한 번쯤은 나와줘야 반응 좋을 거 같아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최상윤은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경주 한 번 내보내려고 했는데, 지금 경주를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대단하긴 해.’

어이없는 것과 별개로 좋은 전략이긴 했다.

레이스에 훨씬 익숙한 사람들과 속도 싸움을 벌여봤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현이 유리한 전략을 끌고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감탄이 나오는 건 저 전략을 이렇게 즉석에서 바로 짜낼 수 있다는 점!

경기장 보고 플레이어들 보고 탈것 본 다음 바로 결정을 내려서 막자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출발선에서 버티고 있는 태현이 느긋해 보여도, 저건 보통 배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 명만 놓쳐도 그냥 끝장나는 짓 아닌가.

태현은 무조건 막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저기 있는 거였다.

-마지막 선수가 붙잡힙니다!!! 김태현 선수가 경주의 우승을 따냅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잠깐. 이거 해설은 누가 보는 거지?’

경주장에 있던 태현은 위에서 쩌렁쩌렁 들려오는 플레이어들의 해설 소리에 의아해했다.

이건 대회도 아니라 그냥 레이스인데 누가…?

위를 쳐다보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해설석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떠들고 있었다.

태현은 감탄했다.

자기 것도 아닌 경주장에 저런 걸 따로 만들어서 장사를 하고 있다니.

-잠깐 경기가 끝난 틈을 타 광고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광고는 길드 <성기사이즈킹>에 대한 광고인데요….

[경주에서 우승했습니다!]

[도시 내 평판이 오릅니다.]

[도시 내 친밀도가 오릅니다.]

[계속해서 경주에 참가해 더 많은 우승 횟수를 따내십시오!]

[장로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살짝 가지고 있습니다.]

[……]

[……]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보상과 함께 포상으로 상자가 주어졌다.

태현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열었다.

[행운이 매우 높…]

[……]

[……]

[보너스를 받습니다!]

[<광란의 가속 날개>를 얻었습니다!]

광란의 가속 날개:

내구력 100/100.

스킬 ‘광란의 가속’ 상시 발동.

어떤 미친 마법사가 저주를 건 강력한 마법의 날개다. 이 날개를 뒤에 단 자는 한 번 출발하면 쉽게 멈추지 못할 것이다.

‘아니 왜 이딴 게….’

태현은 살짝 실망했다.

상자에서 원하는 건 보통 무기나 장비 같은 것들.

그에 비해 여기 경주의 보상은 경주 관련 아이템이었다.

물론 <광란의 가속 날개>가 나쁜 아이템은 아니었다.

이동속도 관련 옵션이 있는 장비들은 언젠가는 쓸 일이 있기 마련이니까.

위험한 몬스터 상대로 도망치거나,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깰 때거나….

문제는 이게 저주 수준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뭐 얼마나 멈추기 힘들면 저주라고 설명에 나와 있는 거지?’

태현은 고민했다.

이 장비를 착용할까 말까.

본인이 쓰기는 좀 애매한 거 같은데….

‘아.’

태현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앞으로 경주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 태현 본인보다 더 속도가 필요한 상대가 있었던 것이다.

“낭티오네. 이 날개 차볼래?”

-키잇. 키잇.

낭티오네는 태현의 선물에 매우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바노그가 공주 너무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니냐며 슬슬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 카르바노그가 걱정할 정도로 태현은 너무 공주를 막 굴리고 있었다.

일단 공주 위에 타고 경주를 하는 것부터가 에랑스 왕족들 뒷목 잡을 일인데, 공주를 개조하고 부스터 달고 갑옷 입히고….

이제는 저주받은 날개까지 달게 하고 있지 않은가.

-키잇?

[낭티오네가 날개에 담긴 저주를 눈치채고 꺼림칙해합니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경우 친밀도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낭티오네. 내가 설마 사악한 의도를 갖고서 이 아이템을 선물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륙의 영웅이자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아탈리 왕국의 국왕인 내가?”

-키잇….

낭티오네는 바실리스크가 되었다지만 아직 순진무구한 공주였다.

그에 비해 태현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련한 사기ㄲ… 아니, 왕.

태현이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낭티오네는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낭티오네. 날 못 믿어?”

-키잇. 키잇.

“그렇지? 네가 날 믿을 줄 알고 있었어. 그러면 이제 이 날개를 착용해 줄 거지?”

-키잇….

“…….”

이다비는 매우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태현이 달콤한 말을 던지는 걸 지켜보았다.

퀘스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태현이 저런 달달한 말을 하는 게 상당히 위화감 넘쳤던 것이다.

NPC, 그것도 바실리스크를 질투해봤자 의미가 없는데…!

“그래그래. 낭티오네. 착하구나.”

-키잇. 키잇.

“태현 님. 되게 능숙해지셨네요. 처음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셔서 당황하셨는데.”

“아. 응. 인터넷에서 소랑 말 기를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검색해서 찾아봤어. 쓸 만하던데.”

“…!!”

이다비는 경악한 표정으로 낭티오네를 쳐다보았다.

방금 질투한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소랑 말 취급을 받고 있어…!’

* * *

[경주에서 우승했습니다!]

[도시 내 평판이 오릅니다.]

[경주에서 우승했습니다!]

[도시 내 평판이 오릅니다.]

‘나쁘지 않군.’

태현은 빠르게 경주에 익숙해졌다.

물론 나갈 때마다 매번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경기장은 계속 달라졌고 스킬이나 그런 부분에서도 변수가 심했으니까.

태현이 아무리 작정하고 길을 막으려고 해도 놓치는 상대는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은 안정적으로 우승을 해나갔다.

매번 우승을 할 필요는 없다.

세 판에 한 번, 네 판에 한 번씩 만 우승을 해도 충분하다!

그런 계산이 선 것이다.

‘어차피 매번 1등하려고 해봤자 연속으로 1등하는 놈은커녕 세 판에 한 번, 네 판에 한 번 하는 놈도 드물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1위 찍을 수 있다.’

도시 영주가 되려면 매달 레이스 최다 우승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

태현은 이 도시의 비밀과 관련된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영주가 되어야 한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안 나온 걸 보면 영주가 되어야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애초에 경주에서 눈에 띄는 성적 내야 한다고 했으니….’

-키이잇….

“왜 그래. 낭티오네. 나가기 싫다고?”

-키잇. 키잇.

“하지만 네가 나가지 않으면 난 경기에 나갈 수 없을 거고, 경기에 나가지 않으면 이번 퀘스트를 깰 수 없을 거고, 그러면 사악한 대륙의 악당들보다 늦게 움직이는 바람에 왕국이 멸망하고 교단이 멸망하고 대륙이 멸망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키이잇….

낭티오네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앞에 나섰다.

“흠. 낭티오네가 상당히 강해진 거 같지 않아?”

-주인이여. 낭티오네 대신 내가 나가는 게 낫지 않나? 낭티오네가 불쌍하다.

용용이는 안쓰럽다는 듯이 낭티오네를 쳐다보았다.

왕족으로 태어나 불편한 거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텐데, 웬 기계갑옷 입고 부스터 달고 저주받은 날개 달고 치열한 레이스를 연속으로 뛰고 있으니 시무룩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안 돼.”

-주인이여. 날 걱정해서…?

“아니 뭔 소리야? 낭티오네한테 들인 강화가 아까우니까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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