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92화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말한 건 기존의 탈것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은 탈것을 만들라는 거였지, 기존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벌이던 개짓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게 아니었다.
“탈것 제작부터 먼저 집중하셔야 하지 않나요? 하신다면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단 말이지.”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탈것은 뭐가 있을까?
“로켓이나 오토바이를 새로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태현 님 스킬도 많이 올랐고, 쓸 만한 재료도 많이 구하셨잖아요.”
마계부터 시작해서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 굶주린 혼돈 퀘스트까지 깨면서 각종 특이한 재료를 모은 태현이었다.
예전에 만든 탈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탈것이 나오리라.
“그렇지만 기왕 만들 거 뭔가 좀 더 쓸 만한 걸 만들고 싶거든. 기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어렵네요. 기계공학 탈것도 완벽하진 않으니까요. 분명히 단점이 있고, 그걸 극복하려면… 다른 스킬들을 써서 만들어보거나….”
기계 용이나 기계 말 같은 걸 만들되 연금술이나 마법 스킬을 같이 써서 만든다면 부담이 좀 덜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건 진행하려면 꽤 오래 걸려. 제작법도 없으니까.”
아무리 태현이 대장장이 기술 스킬, 기계공학 스킬 최고급을 찍고 판온에서도 손꼽히는 랭커였지만 제작법 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퀘스트 시작하고, 정보 모으고, 재료 모으고, 시행착오 겪고….
“아.”
“좋은 생각 떠올랐어요?”
“확실히 맨바닥에서 새로 만드는 건 오래 걸리겠지. 하지만 기존에 있는 걸 재활용한다면?”
“네? 혹시 퀘스트 깨시면서 그런 탈것 아이템 구한 적이 있으세요?”
이다비는 놀랐다.
그런 아이템이 있다면 확실히 몇 배는 쉬울 것이다.
수리를 해도 되고, 거기서 제작법을 추출해내는 시도를 해도 되고….
태현이 희한한 퀘스트들을 여럿 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깼을 줄이야.
“아니.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을 쓸 생각인데.”
“…???”
* * *
“흠… 여기서 가장 맷집이 좋은 건 역시 바실리스크겠지. 좋아. 낭티오네로 해야겠다.”
-아니! 주인님! 이건 정말 너무하십니다! 흑흑!
-주인이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저 바실리스크보다 뭐가 못하단 건가? 물론 힘이나 체력에서는 밀리지만 저 무식한 몬스터가 마법 하나 제대로 쓸 리 없지 않은가?
두 드래곤은 단단히 항의했다.
그러나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다. 생각해 봤는데 체력이 중요할 거 같아서.”
-키이잇.
낭티오네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드래곤은 분통이 터져서 가슴을 두드렸다.
-저 저 저 간악한 뱀대가리 놈 같으니라구!
-골드 드래곤이 대체 왜 바실리스크한테 밀려야 한단 말인가?!
두 드래곤은 땅을 치고 꺼이꺼이 울며 원통해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바실리스크한테 지는 건 정말 분했던 것이다.
-캬오오?
두 드래곤의 모습에 불불이는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이 딱히 좋은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태현이 ‘시험대’라느니 ‘잘 될지 모르겠군’ 같은 말을 중얼거렸던 거 같은데….
“그런데 너희들 내가 뭐 하려는 건지 알고는 있냐?”
태현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생각해 보니 딱히 제대로 말 안 해줬는데 다들 열렬하게 호응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애정인가?
-어… 잘 모릅니다만?
-무엇인가?
-키이잇?
“지금부터 너희 위에 기계공학 장비를 장착할 생각이야.”
-…….
-…….
-…….
두 드래곤과 한 바실리스크는 정색했다.
뭐라고?
“생각해 보니 난 <기계공학 장비 제작>이라는 강력한 스킬을 갖고 있지. 이걸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어.”
반은 기계, 반은 사람인 사이보그가 있듯이 탈것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원래 강한 육체를 기계공학 아이템으로 더욱더 강화하는 방법.
‘흠. 내가 생각해냈지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방법이군.’
-…키이이이잇! 키이이이잇!
낭티오네는 격렬히 거부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거부하는 그 모습에 두 드래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안 걸려서 다행이다!’
‘골드 드래곤의 장로님께서 날 구하신 거군.’
자존심 센 이들에게 저런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장비를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냥 장비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저주받은 장비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계공학 스킬이 어떤 스킬인지 잘 알고 있었는지 낭티오네는 매우 싫어했다.
[낭티오네가 거부합니다!]
[설득에 실패할 경우 친밀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기껏 먹이로 쌓아 올린 친밀도가 떨어질 상황이 되자, 태현은 낭티오네 앞에 서서 진지하게 말했다.
“낭티오네. 이 일은 너만 해줄 수 있는 일이야. 네가 없으면 안 돼.”
‘저걸 부럽다고 생각하면 내가 미친 걸까?’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로맨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대사였지만 이상하게 괜히 부러웠다.
“다른 어떤 사람들도 할 수 없는 일을 네가 도와줬으면 해. 낭티오네.”
-키이잇….
“도와줄 거지?”
-키잇.
낭티오네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바실리스크였기에 겉모습은 매우 섬뜩했지만.
[설득에 성공합니다!]
[낭티오네가 받아들입니다.]
[에랑스 왕가에 알려질 경우 왕족들의 분노를 살 수 있습니다.]
[공주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
[……]
‘아니 왜 분노를 하지?’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좋은 장비를 걸쳐주겠다는데 이게 왜 공주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란 말인가.
더 강하고 더 세지는데!
[카르바노그가 세상에는 강함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한숨을 쉽니다.]
* * *
[<바실리스크 전용 기계공학 갑옷>이 완성됩니다!]
[<바실리스크 전용 기계공학 강화 부스터>가 완성됩니다!]
[사용 시 과열 효과로 인해 불안정해질 수…]
[……]
[……]
“메카 바실리스크…!”
“오. 이름 좋은데?”
태현은 다니엘의 작명 센스에 감탄했다.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매우 싫어하는 거 같은데….’
낭티오네는 덜커덩거리는 기계 갑옷과 부스터를 달고 있는 자기 자신이 매우 싫은 모양이었다.
“테스트부터 해봐야겠군.”
태현이 도착하기 전, 레이스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은 소문으로 떠들고 있었다.
“들었냐?”
“대회 열리는 거? 당연히 들었지.”
“아니. 그거 말고. 김태현이 여기 왔다는데.”
“뭐? 김태현이??”
경주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거 기회 아니냐?”
“무슨 기회? 김태현한테 찍혀서 게임 접을 기회 말하는 거냐?”
“…뭔 개소리야? 김태현 공격한다는 게 아니라. 레이스에서 이기겠다는 거잖냐.”
“!”
그 말에 친구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김태현하고 1:1로 싸워서 이길 기회가 또 언제 오겠는가.
만약에 이번에 레이스에서 김태현을 이기기라도 하면…?
-손자야. 여기 앉아봐라. 지금부터 개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할아버지 또 김태현 이긴 이야기할 거지?
…대대손손 기록에 남겨서 떠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한 번만 이기고 그 다음부터 대결 피하면 1승 0패, 전적으로 김태현보다 더 강한 게 되는 거지.”
“더럽게 졸렬하고 비겁한 방법이지만 매우 마음에 드는걸??”
“그리고 그걸 떠나서 김태현 이기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겠어.”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태현을 기다렸다.
평소라면 절대 잡을 수 없는 기회.
‘김태현이면 역시 오토바이인가?’
‘아니. 로켓일지도.’
‘뭐든 간에 기계공학 탈것의 약점은 명확해. 견제할 수 있다.’
‘어떻게든 부딪혀서 난전으로 끌고 가면 김태현도 끝이죠.’
‘다른 놈들도 다 김태현을 노릴 테니 유리하다.’
하늘섬 레이스도 투기장처럼 대부분의 스탯과 스킬을 봉인하고 랜덤으로 스킬을 부여받는 형태.
탈것과 플레이어의 특성에 맞게 주어지는 스킬들은 매번 달라졌다.
좋은 스킬, 나쁜 스킬들을 숙지하고 있다가 받는 순간 파악하고 노련하게 쓰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레이스 초짜가 고수를 이길 수는 없다!
“김태현이다!”
“어디?”
“저기!”
“…???”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높게 들었다.
김태현이 너무 위에 있었던 것이다.
쿵, 쿵, 쿵-
“바… 바실리스크 아니야???”
“바실리스크치고는 좀 너무 겉에 달린 게 많은데?”
“김태현이 기계공학 스킬로 기계 바실리스크 만들어 낸 거 아냐?”
“그런 걸 만들고 싶다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나?”
당황하는 플레이어들 사이로 태현이 질문을 던졌다.
“레이스 입구장이 이쪽인가?”
“어… 어.”
“고맙다.”
바로 입장해 버리는 태현.
그 모습에 아까 ‘김태현 이긴 다음 박제해야지’ 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 * *
지에인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알지?
-알고 있으니까 그만 물어봐라.
출발선에 있는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뿌리고 있는 태현.
남들이 타고 있는 탈것보다 몇 배는 커다란 덩치 때문이었다.
-키르륵. 키르륵.
메카 바실리스크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주변을 압도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럿이고 김태현은 혼자다.’
시작하기 전에 다들 약속한 것이다.
김태현부터 견제하자!
-3, 2, 1….
“쳐!”
지에인은 시작하자마자 타고 있던 탈것의 방향을 들어 태현한테 들이박았다.
<암흑칼날멧돼지>는 돌진력과 체력이 좋은 매우 희귀한 탈것 중 하나.
게다가 지에인도 좋은 스킬을 뽑은 상태였다.
‘<목표 꿰뚫기>, <넘어뜨리기>! 둘 다 견제하기 좋은 스킬이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각자 가진 스킬들을 갖고 태현한테 들이박았다.
[공격이 성공합니다!]
[메카 바실리스크의 방어력을 뚫지 못합니다.]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메카 바실리스크가 <덥석덥석>을 사용합니다.]
와그작!
바실리스크는 안 그래도 나쁜 기분을 다른 플레이어들한테 풀었다.
“크아아아악!”
레이스 달리기도 전에 바로 먹혀서 탈락하자 플레이어는 비명을 질렀다.
한 번 삼켜지면 회피고 저항이고 할 수 없는 사기적인 스킬!
“피해!!”
“낭티오네. 잘한다. 다 삼켜버려라!”
태현은 레이스의 비결을 빠르게 파악해가고 있었다.
자기가 1등으로 달려서 결승점을 통과해도 됐지만….
‘남을 다 죽여 버려도 1등이지.’
[카르바노그가 발상에 감탄합니다!]
“어딜 도망가려고! <아키서스의 쇠사슬>!”
태현은 받은 스킬을 사용해서 벗어나려는 플레이어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낭티오네가 바로 입을 벌려 플레이어를 삼켰다.
[상대를 탈락시켰습니다!]
[이동 속도에 <경주장의 싸움꾼> 버프가 들어갑니다!]
태현의 반응속도에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저건 지금 공격 받아서 반격하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김태현 저 자식 처음부터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처음 하는 놈이 저런 고급 기술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해서 견제하는 기술.
잘못 시전했다가는 자기만 뒤처질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었는데….
“젠장. 나 먼저 간다!”
“이 비겁한 놈아! 같이 싸우자며!”
“저건 싸우기 안 좋은 타입이야! 딱 봐도 전투에 강한 탈것이잖아!”
플레이어들은 핑계를 대며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재빠르게 속도를 내며 거리를 벌리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못 쫓아오는구나!’
‘역시 전투력이 높은 대신 속도는 좀 느린가 보군.’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맵은 3바퀴 돌아야 됐지?’
태현은 굳이 쫓지 않았다.
그냥 출발점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