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91화
낭티오네에게 접근하려고 하자 바로 떨어지는 친밀도.
이세연은 바실리스크의 이름을 알고는 물러섰다.
“저… 다가가도 될까?”
-킷! 키잇!
“왜 날 싫어하는 거지?”
“네크로맨서라서 아냐?”
“바실리스크면 악 성향인데 네크로맨서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
이세연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범한 마을 들어갔을 때 ‘우리 마을에서 꺼져 이 괴물!’ 소리 듣는 건 받아들여도, 도적 마을 들어갔을 때 ‘우리 마을에서 꺼져 이 괴물!’ 소리 나오면 매우 억울하기 마련.
“그러면 독 빼려고 해서 그런가? 독 빼는 게 싫나?”
태현은 낭티오네에게 물었다. 낭티오네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안 싫다는데?”
“…그러면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이야기가 그렇게 되긴 하네. 흠. 나는 요리 선물하면서 친해졌는데 선물을 해보는 건?”
태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세연은 갖고 있던 사악한 아이템들을 꺼내며 낭티오네에게 내밀어봤다.
-퉷!
“에랑스 왕족이면 다인 줄 아나 본데…!”
“참아. 죽이면 안 돼.”
이세연은 분노를 억눌렀다.
태현의 펫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녀가 먼저 공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태현만 아니면 바실리스크는 오늘 죽어서 본 바실리스크가 되거나 데스 바실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키이잇.
바실리스크가 태현 뒤에 숨어서 이세연을 비웃었다.
오랜만에 성질 돋우는 NPC를 만난 이세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 * *
“으아악!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잖아!!”
“…다른 사람들은 그러셔도 태현 님은 저희 보고 놀라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미안하게 됐다. 습관이 되가지고.”
태현은 진정했다.
하늘섬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만난 탓에 좀 놀란 것이다.
“너희들이 여기에는 왜…?”
“다니엘을 도우러 왔습니다.”
다니엘.
골짜기에서는 한때 ‘그 새끼’ 같은 이름으로 불렸던 기계공학 대장장이였다.
가브리엘이야 ‘폭탄만 있는 게 아니니 너의 뜻을 마음껏 펼쳐보거라’라고 말했지만, 그 밑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폭탄 무서워서 도망친 놈!
-감히 폭탄을 버리다니. 앞으로는 배신자를 다니엘이라고 부르자.
-안 좋은 거에는 다 다니엘을 붙여서 부르겠어!
…하지만 진심은 통하기 마련.
다니엘이 꾸준하게 기계공학 아이템을 만들어서 골짜기 대장장이들에게 보여주고 선물하자, 그들의 사이는 점점 더 회복되었다.
“한때는 다니엘을 양심도 없는 유다 같은 배신자라고 생각해서 매일 폭탄을 만들 때마다 다니엘 사진을 안에 넣을 정도로 싫어했었지만….”
“….”
뒤에서 듣고 있던 다니엘이 살짝 울려고 했다.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였냐?’
저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다니…!
“…이제는 다니엘에게는 다니엘의 길이 있었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다니엘이 요즘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렇게 와서 도와주고 있는 겁니다.”
“왜 손이 부족하지? 너희 설마 하늘섬에도 테러하고 있냐?”
“아니 저희를 뭘로 보시고!”
대장장이들은 발끈했다.
“저희가 물론 심심하면 폭탄을 설치하고 어떻게 건물을 박살 낼 수 있을까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긴 합니다만 마음은 선량하다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이다비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듣고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그래. 너희들은 참 선량하지. 그래서 뭘 하고 있는 건데?”
“기계공학 탈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대신 말하며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켰다.
<다니엘의 기계공학 판매점(폭탄 아님)>이라고 쓰여진 간판이었다.
폭탄 아님이라고 강조한 게 괜히 마음이 아팠다.
‘어쩌다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만나서….’
열심히 하는 거 보니 그냥 대장장이 스킬 팠으면 평범하게 랭커 되어서 평범하게 좋은 길드 들어가서 평범하게 대접받으면서 판온 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장장이들이 악이었다.
[그 악의 시초는….]
태현은 못 들은 척 물었다.
“기계공학 아이템은 특정 상황 아니면 장사 잘 안 될 텐데?”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요즘은 꽤 많이 팔립니다.”
처음에는 기계공학 탈것이나 기계공학 관련 아이템들에 별 관심 없던 플레이어들도, 최상윤과 정수혁이 꾸준하게 성적을 내자 슬슬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기계공학 탈것 괜찮은 거 같은데?
-김태현도 타고 다니잖아.
-김태현이 타고 다닌다고 기계공학 탈것이 괜찮냐? 그럼 넌 김태현이 폭탄 쓰는데 왜 폭탄 안 쓰냐?
-그, 그거야 폭발하니까….
-기계공학 탈것도 폭발해 임마! 속지 마! ‘기’자 들어가는 스킬하고는 엮이지도 말라고!
-에잇. 난 그래도 써보고 싶어!
-야! 멍청한 놈아! 너 그러다 경기에서 죽어!
…하나둘씩 다니엘을 찾아온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기계공학 아이템들도 하나둘씩 팔리게 됐다.
-이 조그만 축음기는 뭔가요? 혹시 음악 녹음 가능한가요? 돌아다니면서 음악 듣고 싶은데.
-네. 근데 특정한 음악만 녹음 가능합니다.
-어떤 음악이요? 락? 재즈? 클래식?
-욕설만 가능합니다. 이름 보시면 알겠지만 <고블린 욕설 녹음기>라고 욕설만 크게 증폭해서 틀어주는….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예!?
-직장상사가 쓰는 건물에 다 놓고 올 거예요.
-손, 손님. 기계공학은 복수와 파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장난의 도구인데….
-폭탄 만들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에요?
-폭탄… 저는 안 만든다고요….
어찌 되었든 간에 기계공학 아이템들은 장난감 같은 효과가 많아도 쓸 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계공학 탈것이 꽤 잘나가는 것이다.
현재 판매 탈것:
<가브리엘의 정신 나간 붉은색 화염 로켓>
<가브리엘의 정신 나간 네 발 오토바이>
<가브리엘의 정신 나간….>
“왜 다 정신 나간이 붙어 있죠?”
“저거 기계공학 아이템 특성 중 하나야.”
태현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아이템에 붙는 여러 접두사.
<눈부신> <전설적인> <화려한> <단단한> 같이 좋은 접두사부터 시작해서….
<저주받은> <아키서스> 같은 위험한 접두사들까지.
<정신 나간>은 양날의 검 같은 효과였다.
속도가 빠른 대신 오작동 확률이 올라가는 옵션!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불안하면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나? 터지면 손해가….”
“저희 길드원들 엄청 타는데요.”
“….”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벌써 잘 타고 다니고 있었다.
-이거 근데 경기장 밖에서 터지면 로그아웃 아닌가?
-죽는 걸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하긴 그것도 그래. 페널티 좀 받으면 그만이지.
“이번에 태현 님도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드리지 못해서 아쉽지만 태현 님이 기계공학 탈것으로 활약하실 생각을 하니 제가 다 기쁘군요!”
“어… 다른 거 타고 나가려고 했는데.”
“…예?”
“왜 놀라? 내가 데리고 다니는 펫들 있잖아.”
태현의 유명한 드래곤 계열 펫들.
용용이, 흑흑이.
어중간한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놈들은 말도 못 붙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당연히 이런 튼튼함은 경주에서도 유리한 것이다.
“아이고! 안 됩니다! 김태현 님 같은 분이 기계공학을 버리시다니요! 기계공학하면 김태현! 김태현하면 기계공학 아닙니까! 기계공학의 아버지 같은 분이 기계공학을 버리시다니!”
“버리는 게 아니라 경주에 안 쓴다고.”
다니엘은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걸 신호로 다른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기계공학 탈것을 써주십시오!!”
“기계공학 탈것을 써주십시오!!!”
“이거 놔라.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케인으로 단련된 내가 너희들이 질척거리는 거에 흔들릴 정도의 사람으로 보이냐?”
“크윽…!”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기계공학 스킬 퀘스트>
당신은 고대 제국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에게서 내려오는 스킬,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을 이은 뛰어난 대장장이다.
그 스킬을 이어 받은 대장장이로서, 하늘섬 경주에 기계공학 탈것으로 활약해야 한다.
뛰어난 활약을 한다면 새로운 비전이 열리리라!
보상:?, ??, ???
“…아니 젠장.”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 스킬을 갖고 있다고 이런 퀘스트가 뜨다니.
물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때문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상당히 공교로웠다.
이 자식들 때문 아니야?
‘왠지 모르게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불길하단 말이지.’
세상의 업보란 업보는 다 쌓고 다니는 것 같은 불길한 아우라!
“알겠다. 타고 나가주지.”
“…!!!”
“감사합니다!!!”
“역시 김태현 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저희를 신경 써주셔서…!”
“아니거든.”
* * *
“그런데 기계공학 탈것은 경주에서 좀 그렇지 않나?”
“….”
“니가 그러면 안 되지…!”
태현이 말하자 정수혁과 최상윤은 할 말을 잃었다.
다른 플레이어면 모를까 기계공학의 아버지인 태현이 저런 소리를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선배님. 기계공학 탈것도 좋습니다! 저희 성적을 봐주십시오. 우승 횟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야 불안정하지만 효과 나올 때는 좋으니까 우승 횟수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 불안정하잖아.”
“아… 아니야. 기계공학 탈것을 욕하지 말라고.”
“맞습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둘의 태도에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뭐지?
골짜기에 있는 <악마의 대장간>에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거 같은데….
-이상한 폭탄 좀 그만 만들고 안정적인 거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으헝헝!
-…내가 잘못했다. 니들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태현이 네 실력이면 훨씬 더 안정적인 걸 만들 수 있잖아?”
“그렇기야 한데, 하늘섬 레이스 보니까 탈것에 따라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특성이 있더라고.”
오기 전에 하늘섬 레이스를 꽤 확인하고 온 태현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신없고 박진감 넘치는, 변수 넘치는 경주였다.
그리고 탈것에 따라 경기장에 들어가면 각종 특성이 주어졌다.
기계공학 탈것의 특성은 아무리 봐도 불안정!
물론 기본적으로 기계공학 탈것이 좀 삐걱거리고 불안정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저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다니엘 정도면 실력이 낮지 않은데….
“그래서 안정적으로 용용이나 흑흑이 타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차라리 잘된 겁니다. 이번 기회에 선배님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탈것을 만들어서 기계공학의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시는 겁니다.”
“나도 수혁이의 말에 동의한다. 넌 언제나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고 대단한 업적을 세웠던 놈이잖아.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거야!”
“….”
‘이 자식들 괜히 떼어놨었나…?’
태현은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자기들 퀘스트 하면서 스킬 올리라고 보내놨더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이상한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정신 차려라!
‘하긴 이번 기회에 도전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긴 한데.’
보상도 그렇고 확실히 새로운 한계를 깨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대장장이 시절에도 언제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왔던 태현이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저 둘이 약간 광기에 찬 눈빛으로 저러고 있다는 점!
태현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으음. 한계를 뛰어넘는다…. 남의 탈것에 폭탄을 미리 장착하거나… 힘들겠군. 한두 명이면 몰라도. 아니면 시중에 돌아다니는 탈것에 폭탄을 설치하면… 이것도 힘들 거 같고.”
“…태현 님. 정신 차리세요!”
“응?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