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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89화 (1,388/1,826)

§ 나는 될놈이다 1389화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면 태현과 이다비를 붙잡고 ‘정신 차리세요!’라고 해줬겠지만, 불행히도 지금 여기에는 태현과 이다비밖에 없었다.

“그럴듯한데요?”

“그렇지? 굳이 저주를 풀 필요 없을 거 같지?”

“네. 확실히 저주 풀면 약해질 거 같으니까….”

“게다가 저주를 안 풀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어.”

“그게 뭔데요?”

“저주를 안 풀면 에랑스 왕국하고 싸우는 걸 미룰 수가 있어.”

잘 생각해 보니 2왕자의 딸에게 걸린 저주를 풀고 혼인을 하고 나면 이제 그 다음부터는 빼도 박도 못하게 2왕자와 같은 편을 먹는 셈이었다.

태현이 아무리 화술 스킬이 높더라도 ‘아 우리 안 친해요’ 같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에랑스 왕가가 가진 특수한 스킬들이나 아이템들이 탐이 나더라도 위험부담이 꽤 큰 일.

그러나 저주를 풀지 않고 버틴다면?

-혼인을 하려면 일단 저주를 풀어야 하니 빨리 저주를 풀어주시오.

-노력하고는 있는데 저주가 안 풀려서….

-저런. 확실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오. 아주 강력한 저주니.

-그런데 에랑스 왕가에 내려오는 스킬은 뭐가 있는지?

…같은 식으로 알맹이를 빼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다 보니 이거, 그거 같은데?

‘혼인빙자사ㄱ….’

이다비가 갸웃거리는 사이 태현은 2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2왕자 전하. 만나봤는데….”

-으흠. 물론 마음은 이해하오.

2왕자는 태현이 뭐라고 하기 전에 서둘러 변명을 시작했다.

-저주에 걸렸다지만 저 모습이 좀 많이 흉측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지겠지.

-키이익.

그에 맞춰 바실리스크가 혀를 날름거리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어허. 조용히 하렴. 이야기 중이지 않느냐.

-키잇!

-하지만 네가 흉측하고 위협적으로 생긴 걸 어떡하라고!

-키이이잇!

-이, 이런 못된 녀석. 감히 네 아비를 위협하느냐! 그런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느냐!

‘겁먹은 거 같은데?’

이미 2왕자는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 있는 상태였다.

-…어찌 되었든 원래는 정말 착하고 아름다운 애였소! 저주에 걸려서 저렇게 된 거지. 믿어주시오. 저주만 푼다면 이 대륙의 누구보다도 더 아름다운 애로 돌아올 거요.

2왕자는 간절히 말했다.

그러나 아키서스 성기사들은 냉정했다.

-저 에랑스 왕국에서 도망쳐 나온 왕족 놈이 어디서 혓바닥을 놀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주를 풀기 전에 교황님을 잡아먹을 놈 아닙니까. 까놓고 말해서 저게 2왕자의 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골짜기 뒤편에 와이번 하나 있는데 그거 갖고 와서 고대 제국 공주라고 우기는 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 성기사들은 태현을 닮아서 말에 칼날이 뾰족하게 서 있었다.

듣고 있던 2왕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바실리스크는 진짜 아닙니다. 교황 성하!

-교황님께서 직접 저주 풀 방법 찾아내셔서 풀어낸 다음에 동맹을 맺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손해입니까! 우리 교단 장사도 그렇게 안 하는데!

“그만해라. 먼 길을 오셨는데 그렇게 말하면 상처 받지 않겠나.”

갑자기 친절해진 태현의 태도에 2왕자는 살짝 당황했다.

역시 그래도 한 왕국의 왕답게 왕족을 대접해 주는 것일까?

“왕자 전하. 이 몬ㅅ… 아니. 이 따님분이 저주에 걸렸다는 걸 믿소.”

-고, 고맙소!

“이 몬ㅅ… 그냥 이름을 물어봐야겠군.”

-방금 몬스터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소?

“아닌데? 이름이 어떻게 되지? 바실리스크라고 부르면 되나?”

-…낭티오네요.

“낭티오네 바실리스크?”

-바실리스크는 왜 자꾸 붙이는 거요? 붙을 리가 없지 않소?

“아. 미안하게 됐군. 어쨌든 저주를 풀려고 노력해 보겠소.”

-고맙소!

[에랑스 왕국의 2왕자가 당신의 말에 매우 감동합니다!]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가에서 평가가…]

[공적치 포인트가…]

[……]

“이 저주를 풀고 나면 같이 동맹을 맺어 어떻게 싸울지 생각해 봅시다.”

-고맙소,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낭티오네야. 국왕 폐하와 같이 다니면서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보거라.

[낭티오네가 일행에 합류합니다.]

[일시적으로 스킬이 추가됩니다!]

[<바실리스크의 상태 이상 저항>이…]

[<바실리스크의 마법 저항>이…]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에랑스 왕가의 고대 축복>이…]

[<에랑스 왕가의 가호>가…]

[……]

[……]

파아아아아앗!

태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낭티오네는 훨씬 더 많은 버프를 가지고 왔다.

에랑스 왕가의 혈통+바실리스크 상태는 어디 가서 찾아볼 수 없는 사기적인 조합.

그런 조합에 걸맞게 강력한 버프를 태현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혹시 악마 고기 좋아하나? 악마 고기 먹을래?”

-키이이잇!

“음. 싫어하나 보군. 바실리스크는 좋아할 줄 알았는데.”

“바실리스크도 악마 고기는 싫어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 *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데…?”

이세연은 놀란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파다 시.

하늘섬의 도시 중에서도 최근 급격하게 유명세를 올리고 있는 도시였다.

그 이유는 바로 도시의 명물인 <하늘섬 레이스> 때문!

매달 영주가 하늘섬 레이스 최다우승자로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스에서 우승할 때마다 도시에서 각종 혜택이 주어졌다.

들어갈 수 없는 시설에 입장 허락이 떨어지고, 방금까지는 ‘썩 꺼지게! 자네같이 느려터진 모험가에게 팔 물건은 없네!’ 하고 떠들던 NPC가 ‘어서 오게! 자네한테만 팔 아이템이 있다네!’라며 환영을 해주고….

도시 전체가 레이스에 미친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판온에 이상한 도시가 처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온갖 도시들이 있는 만큼 이런 도시도 당연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도시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개인 방송에 올라오고,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었다.

-레이스 우승 두 번 해본 플레이어의 공략 방법.

-스파다의 영주가 되기 위해서는?

-대장장이 랭커가 레이스에도 도전해 봅니다.

랭커들까지 참가해서 이야기를 할 정도면 일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거기에 랭커들이 찾아갈 만한 보상이 나오는 게 분명했다.

“길마님. 여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방금 지나간 사람 랭커였어요.”

이세연은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하늘섬에 와 있었다.

흑마법사로서 쓸 만한 스킬을 찾거나, 다른 길드원들에게 쓸 만한 스킬을 찾기 위해서.

“한 번 NPC들한테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길드원들 중 가장 명성 관리 잘 하고 화술 스킬이 높은 탐험가 직업이 나섰다.

아무래도 이세연은 네크로맨서 직업이다 보니 NPC 상대할 때 페널티가 많았던 것이다.

“흠흠. 주인장.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세연 길드의 탐험가는 동작이 숙련되어 있었다.

화술 스킬이나 명성 스킬을 올려주는 장비들을 슬쩍 드러내면서, 공손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모험가인지 알려주는 팁!

-자네는….

“아니. 별 거 아닙니다. 제가 해낸 업적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거든요.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 좀 쑥스럽습니다만….”

탐험가 플레이어는 평소에 성공하던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반응도 보기 전에 앞서갔다.

[레이스 참가 경험이 없습니다.]

[……]

[……]

[현재 스파다 시에서 명성이 매우 낮습니다.]

-…뭐하는 듣도 보도 못한 모험가인데 나한테 친한 척인가?

“…예??”

-난 자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 아니. 제가 깬 퀘스트가 뭐가 있냐면….”

-그건 저 아래 대륙에서 있었던 일인 모양인데,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나?

“아니, 그게, 어….”

탐험가는 당황했다.

아무짓도 안 했는데 상인 NPC가 이렇게 차갑게 구는 건 또 처음이었던 것이다.

“거 좀 비키쇼.”

“??”

구박받으면서 쩔쩔매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먼저 온 거 안 보여?”

탐험가는 화를 냈다.

남이 먼저 와서 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건 싸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은 그렇게 레벨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한 50~60?

그에 비해 탐험가는 이세연의 정예 길드에 소속되어 있을 정도로 레벨 높은 플레이어.

보통 시비를 반대로 걸면 걸었지 이렇게 걸진 않았다.

대체 뭘 믿고…?

“억울하면 레이스로 붙던가.”

“…뭐?”

“너 경기장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도시에 새로 온 놈이지? 난 무려 레이스에 198번이나 참가했다 이거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서는 레이스 실력이 뛰어난 놈이 왕이라 이거지. 너 같은 레이스에 참가한 적도 없는 초보자는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좋은 말을 했군. 모험가. 뭘 좀 아는 모험가인데?

심지어 상점 주인마저 거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탐험가는 어이가 가출하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뭐해. 빨리 안 비키고?”

‘크윽…!’

마음 같아서는 도시 안이고 뭐고 그냥 이 자식을 로그아웃시켜버리고 싶었지만, 다른 길드원들한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탐험가는 울분을 삼키고 밖으로 나왔다.

“…미친놈들이라니까요!”

“와. 생각보다 너무 심한데?”

이세연은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보상은 물론이고, 도시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라도 경주에 참가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이 길드원들 중에서 누가 잘 달릴까?

“다들 탈것은 있지?”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세요?”

“여기서 내가 가장 잘 달릴 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세연의 질문에 길드원들은 전원 손을 들었다.

과연 자존심 하나만큼은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사람들!

“…그래 그냥 다 같이 참가해서 이긴 사람 위주로 퀘스트 진행해 보자.”

“예!”

“그런데 길마님. 저번에 PD한테서 그렇게 부탁을 받았다면서요?”

“아. 김태현 선수하고 요리 배틀 붙은 그거 말하는 거지?”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되게 재밌게 본 것이다.

-와. 진짜 재밌게 노시긴 하네. 근데 왜 길마님은 김태현하고 요리 싸움을 하시는 거지?

-어… 누가 보면 이다비 선수를 두고 삼각관계 벌이는 거 같은데.

-저걸 또 이기셨어. 어… 남의 게임단 숙소에 놀러 가서 진심으로 저렇게 이기셔도 되나? 좀 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길마님 성격에 누구한테 져줄 바에는 그냥 방송 때려치실듯.

“다음에 또 방송 나가실 거예요? PD가 그렇게 부탁한다면서요.”

소문에 따르면 PD가 엉엉 울면서 ‘한 번만 더 둘이 나와주면 다시는 안 질척거릴게!’라고 빌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거 헛소문이라니까.”

“아. 그래요?”

“바닥에 엎드려서 빌진 않았어. 그냥 울었을 뿐이야.”

“…….”

“…….”

울면서 부탁한 게 사실은 맞구나!

대체 얼마나 대박이 났으면….

“그리고 그게 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가는 게 아니잖아. 김태현하고 같이 나가야 하는 건데.”

“김태현 선수도 하긴 정말 바쁠 겁니다. 퀘스트는 물론이고 게임단 관리도 해야 하니.”

“옆에서 보니까 보통 고생이 아니긴 해. 하지만 자기가 자처한 거니까….”

이세연이 보기에도 태현은 너무 손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 일인데.

그리고 그걸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대회에서 실력으로 증명하기도 했고….

그렇게 떠드는 사이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세연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들과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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