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88화 (1,387/1,826)

§ 나는 될놈이다 1388화

태현은 멈칫했다.

분명 ‘저놈을 당장 잡아 가둬라!’라고 외치려고 했는데, 옆에서 먼저 나온 것이다.

범인은 이다비였다.

“??”

“…죄송해요. 순간 입이 멋대로….”

“아니. 죄송할 건 아니지. 나도 하려고 했으니까. 저놈을 당장 잡아 가둬라!”

-예!

-아, 아니! 왜! 약속했잖소!

“이건 그것과 다른 이야기지.”

판온에서는 플레이어들끼리 결혼하거나 NPC와도 결혼할 수 있긴 했다.

딱히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태현도 만약 NPC랑 결혼해서 특별한 스킬이나 아이템, 혹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꽤 고민해 봤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웬 꼬마랑 결혼하라고 하다니.

양심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었다.

“저 양심 없는 놈을 골짜기의 가장 깊숙한 감옥에….”

-아니. 이 애 말고 다른 딸을 말하는 거요!

“아. 그랬나?”

태현은 머쓱해졌다.

2왕자의 딸이 땡글땡글한 눈빛으로 태현과 이다비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버지를 가두시는 거에요?

“음. 아니.”

태현은 선량한 사람이나 어린애한테는 비교적 약한 편이었다.

-도와줘. 이다비.

-아니… 이걸 도와드려야 할 것까지 있나요?

이다비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신 나서서 상대해 주기로 했다.

‘왕족에 화술 스킬 높으셔서 상대하셔도 별 상관 없을 텐데.’

악마 공작은 갖고 놀면서 저렇게 무해한 왕족 NPC는 상대하기 꺼려한다는 게 신기했다.

“오해가 있었단다.”

-아버지를 가두는 게 아니에요 그럼?

“응. 가두지 않을 거야.”

분위기가 풀리자 2왕자는 안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오. 저 애는 다른 귀족한테 보내서 혼인동맹을 맺을 생각이었거든.

“지금?”

-지금 보내야지?

“저놈을 당장 잡아 가둬라!”

* * *

<왕족과의 혼인-에랑스 왕가 퀘스트>

에랑스 왕가의 핏줄은 대륙의 왕족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래된 핏줄.

이들은 많은 마법과 비밀을 숨기고 있는 가문이다.

그들 중 하나와 혼인을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기회!

이 기회를 받아들인다면 왕가에 숨겨진 비밀을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 에랑스 왕가의 비전 스킬, 에랑스 왕가의 비밀.

‘아니. 궁금하게 만드는군.’

퀘스트창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에랑스 왕가의 비밀이 대체 뭐지?

‘에랑스 왕국의 왕관이나 검 위치 같은 거면….’

에랑스 왕국의 왕관, 에랑스 왕국의 검.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당장 1왕자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장 먼저 찾아다녔던 게 저 왕관과 검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에랑스 국왕도 저 왕관과 검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언데드라서 아이템을 착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갖고 싶다!

[게다가 에랑스 왕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사기적인 스킬들이 여럿 있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조언합니다.]

‘아니. 아탈리 왕국은 국왕 해도 그런 거 없었는데 너무 억울하군.’

물론 국왕으로서 쓸 수 있는 각종 스킬들이 있긴 했지만, 무슨 고대 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핏줄이 가진 신비한 사기 스킬 같은 게 주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거야 혈연 관계가 아니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이 정도로 이었으면 혈연관계 아닌가?’

“흠. 근데 문제는 결혼을 하면 에랑스 왕국이랑 싸워야 한다는 건데.”

“태현 님.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

“결혼만 하고 안 싸우시면 되죠.”

“아니…!”

천재냐?

태현은 이다비의 의견에 감탄했다.

생각해 보니 혼인한 다음에 에랑스 왕국이랑 안 싸우면 되는 것 아닌가.

2왕자가 불평 좀 해도 태현이 그런 거에 흔들릴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차.’

이다비는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하지 말라고 말릴걸…!

“하긴 결혼도 비밀리에 해버리면 에랑스 국왕이 어떻게 알겠어.”

“그… 그렇죠.”

-…오해가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오.

2왕자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고 붙잡혔다가 풀려난 바람에 옷차림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렇게 꼴이 엉망이지?”

-…….

“어쨌든 그래.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지. 다른 딸은 어디 있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소.

‘레벨 높았으면 좋겠는데.’

이다비가 슬쩍 귓속말로 물었다.

-태현 님은 어떤 상대였으면 좋겠어요?

-나?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결혼을 한다면 어떤 상대가 좋을까?

-일단 레벨이 높아야지.

-…….

-직업은 뭐가 좋을까… 아, 전투 직업, 제작 직업, 예술 직업 다 좋은데. 고민이 되는군. 그래도 전투 직업이면 마법사가 좋겠어. 지금 전사 계열은 충분하니까. 사기적이고 희귀한 마법을 갖고 있으면 좋겠는데… 제작 직업도 나쁘지 않지. 지금 대장장이 쪽 NPC들은 쟁쟁한 놈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재봉사 NPC들은 숫자가 적잖아? 재봉사일 경우 에랑스 왕국의 비전 재봉 스킬을 갖고 올 수도 있으니 더더욱 좋을 거야. 만약에 예술 직업일 경우에는 조각이나 그림에 뛰어났으면 좋겠는데, 골짜기가 지금 보다시피 계속 건물이 늘어나고….

태현은 1초도 쉬지 않고 다다다다 늘어놓았다.

그 의견에 이다비는 압도되었다.

아니…!

‘이런 걸 물은 게 아닌데…!’

-…대충 이 정도면 될까? 이다비는 어떤 상대가 좋을 거 같아?

-저는 착한 상대면 좋겠는데요.

-착하다니. 이다비. 그럴 리가 없잖아. 기본적으로 골짜기 오는 NPC들은 어딘가 한 군데 나사가 빠져 있는 NPC들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지 않을까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 2왕자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여기 있소. 폐하!

“…?”

“???”

태현과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투명인간?”

“은신 스킬?”

“설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서 결혼하라는 거 아닌가? 천재적인데?”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그런 방식이면 나도 여러 번 쓸 수 있겠는데?

그러나 2왕자는 진지했다.

-여기 있지 않소! 폐하! 똑바로 봐주십시오!

“아니 여기 있는 건 너희들이 타고 온 탈것들밖에 없는데….”

말하던 태현은 문득 소름이 돋았다.

2왕자와 2왕자 수행원들의 숫자보다 탈것이 하나 많았던 것이다.

워낙 화려하게 잘 입고 있어서 그렇지, 저 탈것의 생김새는 다른 탈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른 탈것들이 멀쩡하고 훌륭한 군마나, 거대 독수리였다면….

저건…?

“바, 바실리스크인데요??”

“바실리스크가 탈것인가?”

태현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탈것이 어디까지 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이론상 악마도 탈것으로 만들 수 있고 드래곤도 타고 다닐 수 있으니까, 바실리스크 같이 위험한 몬스터도 탈것일 수는 있는 거 같은데…?

“태현 님. 정신 차리세요. 바실리스크는 탈것이 아니라 보스 몬스터거든요 보통.”

태현이 어지간한 말을 해도 동의해주던 이다비였지만, 지금은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바실리스크는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였던 것이다.

가장 강한 몬스터라고 손꼽히는, 레벨 천은 쉽게 넘기는 드래곤만큼은 아니어도 레벨 600~700은 넘겨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다.

우드드득!

태현이 다가가자 바실리스크는 그 몸을 쭉 펼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뱀처럼 생긴 바실리스크가 똬리를 틀고 웅크린 채 있어서 몰랐지만, 몸을 쭉 펼치자 무슨 드래곤처럼 거대한 몸집이 드러났다.

-사실 2왕자가 날 암살하려고 온 건가? 하긴 생각해 보니 2왕자도 어느 교단이랑 계약했어도 이상할 거 없긴 하지.

-만약 암살하려고 온 거면 정말 대단한 NPC인데요.

태현이 그렇게 ‘저놈을 잡아 가둬라!’ 하는데도 끝까지 버틴 것 아닌가.

그 정도면 태현을 능가하는 연기의 천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다비. 만약에 공격 시작하면 무조건 뒤로 빠져나가.

-하지만 여기 다른 NPC들도….

-걔네들은 죽어도 돼.

-…아니 안 되죠! 손해가 얼마나 큰데요!

여기서 태현을 호위하는 아키서스 성기사들은 교단에서도 나름 정예인, 각종 퀘스트로 경험치 먹이고 아껴서 키운 NPC였다.

이들이 죽으면 그 손해가 막대한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 것과 달리 바실리스크는 공격하지 않았다.

“아… 정말 탈것이 맞았나 보군.”

“저런 걸 타고 다니는 사람이면 성격이 좋을 거 같진 않은데요.”

“나도 악마 타고 다니잖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카르바노그가 거기서 납득하지 말고 의심을 해보라고…]

카르바노그는 태현이 성격이 좋다는 것부터 의심을 해보라고 이다비에게 조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다비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래서 2왕자 전하. 따님은 어디 계시지?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바실리스크를 어떻게 길들인 건지 묻고 싶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결혼할 상대를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실리스크를 길들였는지 물어보려는 것에 가깝게 느껴졌다.

‘속마음이 다 드러나는 거 같은데요….’

-저기 있지 않소?

“어디?”

“안 보여요.”

2왕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바실리스크를 가리켰다. 태현은 경악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바실리스크가 당신 딸을 잡아먹었다고??”

-무슨 망발이오! 저게 내 딸인데!

“…….”

“…….”

태현과 이다비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그러니까….

어….

저 바실리스크가 2왕자의 다른 딸이라고?

“태현 님. 그냥 죽이시죠. 아무리 봐도 암살 시도 같아요.”

“으음.”

이다비가 속삭이자 2왕자가 불안해졌는지 급히 변명했다.

-물론 오해할 수는 있소! 아니, 오해를 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는다면 폐하께서도 분명히 납득을 하실 것이오.

“어… 뭐 바실리스크 뱃속에 들어가서 들어야 하나?”

[카르바노그가 깔깔 웃습니다.]

<공주의 비밀-에랑스 왕가 퀘스트>

2왕자의 딸은 강력한 저주로 인해 뱀들의 왕, 바실리스크로 변하게 되었다.

왕가의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언젠가 진실은 새어나오게 되는 법.

진실을 안 당신은 공주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낼 책임이 있다.

공주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낼 방법을 찾아내라!

보상: ?, ????

“아니… 2왕자가 바실리스크랑 결혼한 게 아니었군.”

이다비와 카르바노그 모두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 무슨 지나치게 편견이 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저주로 변한 거였다니.”

“전 당연히 저주로 변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 난 바실리스크 혈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바실리스크로 변하는 저주라면 분명 강력한 저주일 거예요. 마법사들을 모으고 사제들을 불러서 어떤 저주인지 확인하고 풀 방법을 하나씩 찾아보죠. 아키서스 교단도 상당히 커져서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

“왜요?”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의 반응이 생각과 달랐던 것이다.

방법을 보완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말해야 하지 않나?

“어… 굳이 저주를 풀어야 하나?”

“…네??”

“돌아오는 것보다 바실리스크 상태가 더 강할 것 같은데.”

“…아니… 태현 님….”

[카르바노그도 경악해합니다!]

이다비와 카르바노그 모두 경악해서 태현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진지했다.

“꼭 저주라고 해서 무조건 풀 필요는 없잖아. 유익한 저주면 이용할 수도 있는 거지. 바실리스크 정도면 되게 강하고 희귀한 편이라 버리기 아깝지 않나?”

그럴듯한 논리에 이다비는 순간 현혹되는 걸 느꼈다.

어라?

진짜… 그런가…?

일반 신부보다 바실리스크 신부가 더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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