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86화
-몰라. 미친놈들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길드 동맹은 간단하게 잘랐다.
판온에는 미친놈들이 많았고 그런 놈들 속마음까지 다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대책.
-하여간 카르바노그 신전을 지어주면 악마들이 덜 날뛴다는 거 아니냐?
-어. 카르바노그 신전을 지으실 겁니까?
-왜? 못 지을 것도 없지.
듣고 보니 그랬다.
만약 아키서스 신전이었다면 김태현이 신경 쓰이고 배가 아파서 지을 때 망설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르바노그 신전은 아예 다른 신전.
신전 좀 지어준다고 길드 동맹이 손해 볼 일이 없는 신전이었다.
게다가 대륙의 교단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악신 교단도 아니니 신전 지어줘서 나쁠 게 없겠지!
* * *
“카르바노그 교단 신전을 지으라고요? 허. 이건 좀 어렵겠는데요?”
“왜냐?”
“아, 이게 유명한 교단이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니까 골드가 좀 더 들 것 같은데….”
“…알겠다. 지급해 줄 테니 제대로 짓기만 하도록.”
“크헷헷헷. 알겠습니다.”
-야. 카르바노그 교단 신전 짓는 방법 아는 사람?
-제작 방법이나 관련 책 구함.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수군거리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지어달라니 짓긴 해야겠는데 워낙 안 유명하던 교단이다 보니, 건물 제작법도 안 퍼진 것이다.
-골짜기에 카르바노그 신전 있잖아. 그거 보고 물어보자.
-뭐?! 카르바노그 신전이 있었다고!? 진짜?!
-사디크 교단 신전 옆에 있지 않았나…?
-사디크 교단 신전이 있었다고!?!
-…….
-사디크 그거 은근히 쓸 만해….
어찌 되었든 간에 제작법 문제가 해결되어서 사람들은 뚝딱뚝딱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오스턴 왕국 남부에 가장 먼저 지어지는 신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카르바노그 교단의 신전이 된 것이다.
[훈련 받은 전투악마들의 활동이 줄어듭니다!]
[주변의 토끼들이 늘어납니다!]
[주민들의 만족도가 오릅니다!]
[……]
“오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길드 동맹은 그 효과에 매우 만족했다.
일단 악마들이 잠잠해진 건 물론이고, 생각했던 것보다 주민들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토끼가 너무 많아지지 않나요?”
“레벨 낮은 놈들도 많은데 빨리 잡으라고 하면 되지. 많아져봤자 얼마나 많아지겠어.”
* * *
“역시 아키서스 교단은 크게 변하지 않았나?”
태현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서 이다비가 위로했다.
“한 번 망한 역사가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카르바노그 교단은 꽤 바뀌었는데 말이지….”
골짜기 앞을 순찰하는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 NPC들을 만나서 말을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달라진 게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교황님.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악마 놈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꽤 멀쩡한 말이었지만, 고대 제국 아키서스 정예 성기사들을 보고 온 태현의 마음에는 영 부족했다.
고대 제국 성기사들이라면….
-악마! 죽인다! 잡고 찢는다! 커다란 내장!
이랬을 텐데.
“…네? 농담이죠?”
“아니. 진짜 이랬는데.”
이다비는 경악에 가까운 시선을 던졌다.
그건 아키서스 성기사가 아니라 그냥 야만족 전사 아닌가요?
“요즘 교단에 이상한 일 없나?”
-펠마스 님께서 안 하던 짓을 하지 않으셨나?
-근데 그건 원래 그러잖아. 매번 이상한 일을 하시는데.
-하긴 그것도 그래.
“…?”
태현은 성기사들의 대화에 뭔가 위화감을 눈치챘다.
펠마스가 달라졌나?
“사고치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다른 가능성에 걸어보자!”
태현은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고대 제국 시절의 과거로 올라가서, 태현은 펠마스의 먼 선조에게 ‘도박하지 마라’라고 강하게 조언을 해줬었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었을까?
-갈락파드. 자네의 신앙심은 아직 부족하네. 하루에 더 많은 기도를 올려야 할 것 같군.
-…어떤 미친 악마 놈이 네 정신을 오염시킨 것이냐??
갈락파드는 어떻게든 펠마스의 정신을 원래대로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돌아와라 펠마스!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지금 아키서스 교단의 많은 신도들이 타락해 있네. 황금을 지나치게 밝히고 있지’ 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황금 많이 밝히는 놈이 저런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네놈 재산부터 먼저 다 바치고 그런 소리를 해라.
-훗. 갈락파드. 이미 내 재산은 다 바치고 오는 중이네.
-…?!!?
갈락파드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펠마스가 앞에 자기 재산을 쌓아 놓은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들!
-아니… 펠마스… 죽을 때가 된 것이냐?
-진정한 신의 뜻을 깨달았을 뿐.
“…….”
“…….”
안의 광경을 본 태현과 이다비는 할 말을 잃었다.
진심으로 좀 무서웠던 것이다.
“태현 님. 과거를 잘못 건드린 거 아닐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오히려 좋은 거 아닐까?”
“…저 꼬라지가요??”
“예전보단 낫지 않나?”
돈에 집착하면서 어떻게든 골짜기 플레이어들의 한 푼을 긁어모으려는 것보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에 모든 걸 바친 저 모습이 좀 더 나은 것 같았다.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긴 한데요, 좀 무서워요.”
“하긴 눈이 좀….”
펠마스의 눈빛은 좀 광기가 엿보였다.
원래도 좀 광기가 있었는데 저러니까 더….
“일단 펠마스는 나중에 생각하고.”
‘나중에 생각할 일이 아니지 않나…?’
“지금 당면한 것부터 처리하자.”
태현은 지금 골짜기에 쌓여 있는 퀘스트들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우선 <고대 제국 아키서스 교단 신전> 건설.
고대 제국 시절로 갔던 덕분에 퀘스트를 얻을 수 있었다.
기존의 신전을 업그레이드해서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
“영지 버프는 물론이고 교단 소속 버프는 다 들어갈 테니 이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해.”
“좋은 버프 나오면 좋겠어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부를게요.”
“그 다음은 <아키서스의 만신전>, 말이 만신전이지 지금 지을 수 있는 건 파이토스 교단 신전밖에 없긴 해.”
파이토스 교단 신전.
태현이 과거에 숨겨 놓은 비자금 덕분에 생긴 퀘스트였다.
파이토스 교단의 보물들을 얻은 덕분에 세울 수 있게 된 신전!
여러 교단들의 신전을 세워 놓는 것으로 완성되는 만신전 퀘스트인 것이다.
“파이토스 교단 신전은 고대 제국 신전보다 난이도가 낮지 않나요?”
“그건 그런데, 내가 파이토스 교단 소속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
그건 그래!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이나 사제들이 와서 건설 도와주면 편하겠지만 그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괜히 화해했는데 또 원한 쌓는 거 아니야?
“하지만 태현 님. 저번에 던전에서 희생한 것 덕분에 꽤 많이 친해졌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 부른 다음에 또 희생하는 걸 보여주면 된다 이거지?”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
무슨 미친 소리를…!
“그 친분을 믿고 부탁해 보라는 뜻이었어요.”
“아. 뭐야. 그런 뜻이었군.”
“그럼 어떤 뜻인 줄 안 건데요…?”
“하긴 부탁 한 번 해보는 건 나쁠 거 없겠지.”
영지에 자기 교단 신전 지어달라는데 기분 나빠할 교단은 없었다.
물론 그 신전의 의미가 좀 다르긴 했지만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근데 지금 대형 건설이 너무 많지 않나? 이다비 너 탑 건설도 진행 중이잖아.”
“네. 하지만 같이 할 수 있어요.”
이다비의 전직 퀘스트는 아키서스의 대형 건축물 중 하나를 짓는 것.
그리고 이다비가 고른 건 탑이었다.
“골짜기에 골드 쌓인 거 충분하니까요.”
“하긴 그렇지.”
최근 각종 퀘스트를 깨면서 모은 아이템들과 골드.
태현은 도토리를 모아 놓는 다람쥐처럼 꾸준하게 쌓고 쌓고 쌓았다.
다른 길드들이 세금 빡세게 돌리면서 각종 부대 고용하는 동안 태현은 뚝심 있게 세금 낮게 돌리면서 저축만 했던 것!
“그러면 이대로 진행해야겠군. 굶주린 혼돈 요새에서 갖고 나온 아이템들도 빨리 정화가 다 됐으면 좋겠는데….”
굶주린 혼돈 요새를 공략하면서 얻었던 각종 아이템들.
원래라면 비싸게 팔아서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지만 잠시 미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굶주린 혼돈에 오염된 상태였던 것이다.
지금 교단의 NPC들이 나서서 정화하기 위해 최대한 애를 쓰고 있었지만 영 속도가 느렸다.
“그거 말고는… 아. 맞아. 잊을 뻔했군. 카르바노그 교단의 <비전 악마 훈련서>를 갖고 왔어. 이걸 사용해서 전투악마를 훈련시킬까 싶은데.”
[현재 전투악마들을 10마리 이상 데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영지에 붙잡힌 악마들의 전투력이 기준을 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영지에 <아키서스의 전투악마 훈련소>를 바로 지을 수 있습니다!]
바로 뜨는 메시지창.
남들은 몇 개의 연계 퀘스트를 더 해야 했지만, 태현은 이미 악마 관리의 프로였다.
그런 프로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은 없는 법.
[<비전 악마 훈련서>를 사용했습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카르바노그 교단의 복수-카르바노그 교단 퀘스트>
카르바노그 교단은 은원을 잊지 않는다!
고대 제국 시절 카르바노그 교단은 아키서스 교단의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고대 제국 사람들은 아키서스 교단을 배신하고 멸망하도록 내버려 뒀으니, 이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카르바노그 교단은 전투악마들을 대량으로 양성해 다른 교단들에게 복수하려고 했지만 고대 제국의 멸망으로 인해 취소당했다.
이제 그 뜻을 당신이 이을 때다!
전투악마군대를 만들어 대륙을 불태워버려라!
보상: ?, ???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카르바노그 교단 너희 뭐하고 있던 거냐…?
‘고대 제국 멸망할 때 같이 안 망했으면 100% 악신 교단 됐을 거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저 요청은 무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할 생각도 없었어.
태현은 퀘스트를 무시했다.
어지간해서는 퀘스트 무시하진 않았지만 이건 무시해야 하는 퀘스트였다.
* * *
원래 활기찬 골짜기였지만, 오랜만에 분위기가 몇 배로 끓어올랐다.
바로 태현 때문이었다.
태현이 직접 골짜기를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지휘하는 이상 분위기가 안 끓어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김태현이다!! 김태현!”
“가짜 아니지?”
딱히 골짜기에서 할 거 없는데도 태현의 얼굴을 보러 오는 팬들이 많을 정도였으니, 그 열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열심히 지어줘서 고맙다!”
“와아아!”
“모두의 도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교단 상급 사제들이 축복을 무료로….”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물론 이런 떡고물도 있기 마련이었다.
영주인 이상 플레이어들에게 베풀어 줄 때도 있어야 하는 법.
원래도 골짜기는 상당히 많이 퍼주는 영지였지만, 태현은 더욱 퍼줬다.
각종 축복을 열고, 요리 퍼주고, 시설 열고, 초보자들 던전 갈 때 성기사들 빌려주고….
다들 기뻐하는 모습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효과적이군.’
판온 1 때부터 모두가 하던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언제나 인기가 있기 마련.
비용은 좀 들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쓰는 골드를 생각해 보면 훨씬 더 이익이었으니까.
세금이 낮은 태현의 영지는 사람 숫자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저기….”
“?”
“상자 열어주실 수 있나요?”
“뭐 그 정도야.”
태현은 별생각 없이 상자를 열어줬다.
[눈부신 빛이 상자에서…!]
“아아아앗!”
“…제, 제 것도 열어주세요!”
“뭐야? 무슨 일임?”
“김태현이 상자 열어준대!”
“뭐?! 김태현이 교황의 특수 능력으로 상자 축복 걸어서 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