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74화 (1,373/1,826)

§ 나는 될놈이다 1374화

보통 랭커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좋아했다.

A 퀘스트와 B 퀘스트가 있으면, 둘 중 보상이 좋은 퀘스트를 먼저 깨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꼭 이성적으로만 행동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대회에 참가한 요리사들 상태가 바로 그랬다.

처음에는 아키서스 교단 가입자나 골짜기 소속 플레이어들 위주로 ‘이야 보상 괜찮은데? 너 나갈 거지?’ ‘응. 너도?’ 하던 대회가….

‘차오가 나간다고? 그 차오가?’ ‘차오가 파즈 따위는 상대가 안 된다던데?’ ‘뭐? 이 새끼가??’ 하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확 커진 것이다.

“들어라. 우리가 누구냐?”

“레스토랑 길드원입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우리가 저런 놈들한테 질 거 같냐?”

“아닙니다!”

“그런데 길마님!”

“?”

차오는 고개를 돌렸다.

“저번에 김태현하고는 다시 엮이지 않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골짜기까지 와서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길드원의 순수한 질문!

“…저놈을 독버섯 수프 형에 처해라!”

“아니! 길마님! 길마님!!!”

아픈 곳을 찌른 길드원은 그대로 끌려 나갔다.

차오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다른 랭커 놈들한테 질 순 없다. 알겠냐?”

“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남들 요리에 뭘 넣어도 좋다!”

-저런 쓰레기들 같으니.

-저놈들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해.

당당한 쓰레기의 모습에 다른 요리사들이 수군거렸다.

실력은 확실해도 하는 짓이 워낙 더러웠기에 이미 소문이 파다한 것이다.

“드래곤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그래봤자 펫! 우린 드래곤도 만족시킬 수 있다! 가자!”

“와아아아아!”

한편 다른 곳에서도 뜨거운 준비가 일어나고 있었다.

“파즈 님. 꼭 레스토랑 길드를 꺾어주십시오! 저놈들은 있어서는 안 될 독버섯 같은 놈들입니다!”

“알겠다. 날 믿어라!”

파즈는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요리사 랭커였지만, 여러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그를 돕기 위해 찾아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레스토랑> 길드에 대한 원한!

남 재료 먼저 독점해 버리기, 남 요리 망치기 등등 각종 견제에 당하면 없던 원한도 생기는 것이다.

-레스토랑 길드가 이기는 꼴은 못 보겠다!

덕분에 파즈는 뛰어난 요리사 플레이어의 도움을 여럿 받을 수 있었다.

“파즈 님. 이건 <에랑스 왕국 비전의 레시피> 중 하나입니다. 요정의 꿀과 수각룡의 알, 지옥화염돼지의 앞다리살로 만든 비전의 요리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파즈 님! 이건 <고대 제국 3단 케이크> 레시피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키서스 교단이 이걸 만들어서 대접했는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몰랐다고….”

“다들 고맙다! 꼭 이기겠다!”

그리고 이런 준비는 파즈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저기 봐! 폴리다!”

요리사 신진 랭커 폴리.

최근 각종 퀘스트로 주가를 확 올린 랭커로, 에스파 왕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요리사 랭커였다.

“디드리도 있어!”

낚시꾼 출신 요리사 랭커 디드리!

각종 희귀한 생선과 해산물을 구해오는 게 특기로, 그걸 기반으로 펼치는 요리가 장기였다.

“국밥한그릇이다!”

“국밥한그릇이 누군데?”

“우르크 지역에서 유명한 오크 요리사야!”

“…그건 별로 안 대단한 거 아닌가?”

엘프 요리사, 드워프 요리사까지는 그렇다 쳐도 오크 요리사는 뭔가 좀….

별로 안 대단해 보이는데?

개인 랭커들만 있지 않았다.

길드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갖고 왔습니다. 다시다 님!”

“김태현하고 가장 친한 길드가 누구냐?”

“파워 워리어!” “파워 워리어!”

“길드 동맹!”

“방금 길드 동맹이라고 한 새끼 누구야?”

“…….”

“그래. 우리 파워 워리어다! 우리가 누구냐! 얼마나 친하면 저런 포장마차까지 받은 사이다.”

파워 워리어의 요리사들은 태현과 함께 퀘스트를 깬 대가로 강철로 만들어진 포장마차를 받았다.

기계공학+대장장이 스킬의 정수!

빠른 이동과 함께 각종 수납과 재료 손질이 가능한 이 포장마차는 다른 요리사들의 부러움을 받는 명품이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반성해야 한다.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는 거다. 파워 워리어는 그냥 숫자만 많은 길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능력이 있는 길드라고!”

“와아아아아아!”

파워 워리어 요리사들은 야심이 있었다.

안 그래도 길드의 핵심 중 하나로 성장한 만큼, 판온 전체에 그들의 실력을 알리겠다!

스킬 레벨이나 레시피만 보면 다른 요리사들이나 길드에 밀리지 않았는데도 파워 워리어란 이름 탓에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파워 워리어? 걔네 팝콘만 잘 만들지 않나?

-그냥 싼 요리 만드는 데 특화된 길드 아님? 팝콘은 잘 만들긴 하더라.

-요리사라고 하기는 좀 부끄러운 편이지. 근데 팝콘은 진짜 맛있더라.

…이 수모를 반드시 씻어내고야 말겠다!

길드들이 지나가고 나서, 온몸에서 사악하고 음침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계에서 온 악마…는 아니었고, 그냥 요리사였다.

앞에 ‘괴식’이 붙긴 했지만.

“판온에서 가장 건강한 요리는 뭐냐?”

“괴식 요리입니다.”

“판온에서 가장 효과 좋은 요리는?”

“괴식 요리!”

“그렇다면 가장 우월한 요리는?”

“괴식 요리!!”

“그렇다! 괴식 요리는 가장 우수하며, 이것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에랑스 왕궁 요리 같은 건 기름지고 느끼해서 두 입 이상 못 먹는 요리 스킬의 쓰레기고, 바다 요리 같은 건 재료만 믿고 나대는 요리 스킬이라고 할 수도 없는 스킬이며, 오스턴 왕국 요리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스킬이다! 이 스킬들을 모조리 밀어내버리는 것이 판온 요리계의 밝은 내일을 약속하는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미친놈들….

-가장 미친놈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어지간한 광기에는 면역이 된 골짜기 플레이어들도 괴식 요리사들의 광기에는 혀를 내둘렀다.

거의 기계공학 대장장이 수준 아니야?

“정말 라인업이 대단하지 않냐?”

“모으려고 해도 못 모으겠다.”

판온 요리사 올스타전 수준!

그리고 주현영이 친구들과 함께 지나갔다.

“현영아. 다른 참가자들 진짜 준비 많이 한 거 같은데 어떻게 상대할 거야?”

“나는 그냥 내가 제일 잘 만드는 수프 레시피로 갈 생각이야.”

“진, 진짜? 그래도 괜찮겠어? 너무 수수하지 않아?”

“수수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제일 잘 만드는 게 이건데.”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

* * *

-여러분! 지금 저는 ‘그 골짜기’에서 대회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김태현이 직접 주최한 이 대회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보십시오! 먹음직스러운… 아니. 이게 뭐야? 독약 아냐?

-캬오오….

불불이는 매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 나온 요리들이 생각보다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아니… 요리를 낼 거면 멀쩡한 걸 내야지 왜 이렇게 이상한 걸 내냐?”

괴식 요리를 보고 말한 게 아니었다.

멀쩡한 요리들도 간이 이상하게 되어 있거나 독이 들어가 있는 걸 보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요리사들은 매우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저 레스토랑 놈들이 수작질을 부렸습니다!”

“저놈들 때문이에요! 저놈들이 요리에 독을 넣었어요!”

그러나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매우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들은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여러 퀘스트에서 남들을 방해하면서 쌓인 실력은 보통이 아니라서, 증거 하나 남지 않고 벌써 여러 요리사들을 견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멍청한 놈들. 당한 게 바보지.’

‘요리가 나올 때까지가 승부인 거다.’

‘증거 없는데 어쩔 거야?’

이런 퀘스트에서 상대를 엿먹이고서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실력이 증거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NPC는 증거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 증거도 없는데 증언만으로 쫓아낼 순 없다!

‘큭큭큭큭….’

“흠. 레스토랑 길드는 그럼 실격인 걸로.”

“…?”

“?!?!?!?”

속으로 웃던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기겁했다.

아니 뭐라고?!

“무, 무슨 말이십니까! 왜! 왜 실격을?!”

“왜냐니… 지금 진지하게 묻는 거냐? 남의 요리 망쳤으니까 실격인 거지.”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하지만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끝까지 잡아뗐다.

“증거!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증거를 주십시오!”

“아니… 너희 뭔 소리 하는 거냐? 내가 NPC도 아니고. 그냥 내가 열었는데 내 마음에 안 들면 실격인 거지. 애초에 난 너희가 여기 있는 게 되게 신기한데. 우리 별로 안 친하지 않나?”

“…….”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들에게 당한 요리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공정한 판결이십니다!!”

“탈락! 탈락!”

“저것들을 쫓아내버려야 해!”

“한, 한 번만 기회를 다시 주시면….”

“실격된 놈들은 빨리 나가라.”

태현은 손짓했다.

불불이 좀 키우려고 요리 바치라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요리에 독 타고 간 망치고 아주 난리가 났다.

이러라고 연 대회 아니야!

‘내가 퀘스트를 이상하게 깬 업보인가?’

퀘스트를 이상하게 깼더니, 태현이 연 퀘스트도 이상하게 깨려는 놈들이….

-캬오. 캬오.

[불불이가 매우 만족스러워합니다!]

[<심해의 괴수 활어회>에 담긴 힘으로 불불이의 힘이 오릅니다!]

[……]

[……]

그래도 다행히 그 다음 요리들은 불불이가 먹을 만한 요리들이 나왔다.

대회에 참가해서 예선을 뚫을 정도니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것이다.

-캬오!

[불불이가 기뻐합니다!]

다음에 나온 요리를 보자 불불이가 기대에 찬 함성을 질렀다.

“오. 뭘 만들었길래 불불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저희는 식재료부터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떤 식재료가 가장 강한 마력을 품고 있을까?”

파워 워리어 요리사들의 말에 태현도 궁금해졌다.

“어떤 식재료지? 나도 알고 있으면 좋겠는데.”

“바로 마계의 악마 고기입니다. 강할수록 좋지요.”

“…그건 어디서 구했는데?”

“아키서스 포병대에게 부탁해서 살코기를 얻었….”

-퉷.

불불이가 질색한 표정으로 요리를 뱉었다.

뭐 이리 미친놈들이 많아!

* * *

괴식 요리사들의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요리>까지 먹고 나자 불불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만 먹으면 안 되냐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내가 괜히 미안하군.’

그 와중에 주현영의 차례가 왔다. 주현영은 그릇에 담긴 수프를 내놨다.

펫한테 먹이 줄 때 가장 많이 주는 요리 중 하나!

그걸 본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수수하지 않나?”

“그래도 저 펫이 누구 펫인데….”

남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재료를 가득 채우고, 온갖 장식을 넣어 지나갈 때마다 소리가 나고 빛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수프 한 그릇만 내놓다니!

곱게 끓여진 흰색 죽 같은 수프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캬오오!

그러나 불불이는 매우 감동한 표정으로 그릇을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놀랐다.

아…!

요리에 중요한 건 화려한 재료나 스킬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었구나!

남들이 감동하는 동안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 요리 뭘로 만들었지?”

“요정의 꿀, 에랑스 왕가 비전의 조합 향신료, 심해 깊숙한 곳의 마력수, 최상급 활력의 우유 등을 사용해서 일주일 정도 끓였습니다. 레시피는 고대 제국 시절 레시피를 사용했고요.”

“…….”

“…….”

그 말에 다시 사람들은 깨달았다.

아…!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고 뭐고 재료랑 스킬이 최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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