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73화
그러나 불안하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정화를 진행해 주십시오.”
길드 동맹은 이번 일을 위해 막대한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했다.
여러 교단 주교를 동원해서 정화 마법을 시전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여러 간부들이 갖고 있는 공적치 포인트를 전부 써야 할 정도의 준비!
이게 실패로 돌아가면 여러 명의 눈에서 피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굶주린 혼돈을 잡으러 가서 희생을 했다고? 그게 말이 되냐?
-지금 대주교께서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보신 걸 의심하는 거요!?
-아, 아니. 의심하는 건 아니고….
-그쪽 교단에서도 봤는데!
-그 작자가 원래 헛소리를 많이 해서 또 헛소리 하나 보다 했네.
“…그만 싸우고 정화를 진행해달라고!!”
랭커는 발끈해서 화를 냈다.
지금 길드는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고생하고 있는데, NPC라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쓸데없는 걸로 다투고 있으니 울화가 치솟았다.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파이토스 교단 내에서 평판이…]
[데메르 교단 내에서…]
[……]
-거 참 무례한 모험가로군.
-맞습니다. 오스턴 왕국의 백성들이 힘들게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
길드 동맹은 태현이 아니었다.
태현이 여러 교단에게 맨날 시비를 털고 뜯어내고 괴롭혀도 멀쩡하게 지낼 수 있는 건, 본인의 행적이 매우 깨끗하기 때문이었다.
대륙의 여러 위기 해결+왕국 경영 완벽!
그에 비해 오스턴 왕국은 세금도 높고 주민들이 불만을 품으면 힘으로 눌러버리는 철혈의 왕국.
교단 사제들이 매번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말 한 마디 잘못하면 평판 떨어지고 친밀도 떨어지는 걸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했습니다. 정화를 진행해 주십시오. 이게 다 백성들을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백성들이 아니라 너희 길드원들 위한 일 아니야?”
태현이 옆에서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길드원들은 다급하게 말했다.
“쉿! 쉿!”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냐?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제발 좀 닥쳐줘…!”
사제들은 달랬지만 아직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데스나이트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왕가의 핏줄을 이어 받은 스타인하우어 님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맹세해라.
“…맹세하겠다.”
-성도 하나 내려줘라.
“아니 그건 좀….”
-역병이 영원히 퍼지는 걸 보고 싶나???
“…진짜 저런 XX끼들은 처음 보는 거 같다!”
데스나이트들은 언데드답게 인성이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길드 동맹은 이를 박박 갈며 말했다.
“좋다. 성 하나를 내려주겠다.”
오스턴 왕국은 넓었고, 외곽에 작은 성 하나 정도는 내줄 수 있었다.
그쯤 양보하고 나자 데스나이트들도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해도 좋다.
[역병 지대의 정화가 시작됩니다!]
[어떤 방해도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굶주린 혼돈의 광신도들이 나타납니다!]
“아오…!”
길드 동맹은 신음했다.
이놈의 역병 지대, 정화만 되면 진짜 이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
* * *
[굶주린 혼돈의 광신도들이 도망칩니다!]
[역병 지대의 정화가 계속해서 진행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위협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군.”
-폐하께서 없었다면 이 대륙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을 겁니다.
“하하. 그렇게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는데.”
-폐하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스스로를 희생하가며 맞서 싸울 수 있었겠습니까?
“에이. 다른 교단들의 역할도 컸지. 다른 교단들이 도와준 덕분에 싸울 수 있었네. 앞으로도 같이 싸웠으면 좋겠군.”
-영광입니다!
“…….”
“…….”
길드 동맹 랭커들은 엉망진창이 된 상태로 태현과 교단 NPC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정말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대화였다.
싸움은 그들이 다 했는데 서로 ‘네가 더 잘 했다’, ‘아니다 네가 더 잘 했다’이러면서 놀고 있지 않은가.
그 시간에 싸워줬으면 싸움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파아아앗!
[역병 지대의 정화가 완료됩니다!]
[오스턴 왕국의 불만도가 크게 줄어듭니다!]
[역병 오염이 더 이상 퍼지지 않습니다!]
[……]
[……]
눈부신 빛과 함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힘이 퍼져나가고 역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경건심이 절로 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역병 정화 퀘스트에 참가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교단 공적치 포인트들이 오릅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남이 다 해놓은 퀘스트에 마지막으로 끼어들어서 보상만 받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다.
태현 정도 되는 랭커에게도 매우 기쁜 일!
매우 기뻐하고 있는 태현에게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다가왔다.
태현과 달리 그들은 기뻐하지도 못할 정도로 지치고 피곤한 얼굴이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그보다 너무 많이 신경을 써서 지쳐버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로그아웃하고 싶은 얼굴!
“…다 끝났다. 김태현. 도와줘서 고마웠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빨리 네 영지로 돌아가라.”
“알겠으니 다들 진정하라고.”
태현도 받을 거 받았으니 이제 골짜기로 돌아가서 할 일 할 생각이었다.
의외의 보상에 보물까지 챙겼으니 여기서 더 미적거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 그런데 다시 오긴 해야겠군.’
생각해 보니 카르바노그 퀘스트를 이 근처에서 받지 않았던가.
조각상을 복원해야 자세한 걸 알 수 있겠지만, 아마 오스턴 왕국 남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역병까지 사라졌으니 이제 찾기 더 쉬우리라.
“그나저나 완전히 초토화가 됐는데….”
“이걸 다 어떻게 수리하냐?”
“새 영지 생겨서 좋아할 일이 아닌데 이거.”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드넓은 땅이 다시 생겼다고 처음에는 기뻐했는데, 주변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오랜 시간 동안 역병에 오염되어 있었던 탓에 완전히 초토화가 된 것이다.
비옥한 농장들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단단한 성벽은 쑥대밭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올려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성이나 도시에 들어가도 쓸 수 있는 게 없다고 봐야 했다.
그냥 처음부터 요새나 마을을 세워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시설도 지어야 하고, 아니, 그 전에 울타리나 목책부터 세워야 할 거 같은데.”
“미치겠네 이거.”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은 판온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였지만, 이들을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오스턴 왕국에서 미다스 길드나 스미스의 화이트 나이트와 싸우고 있느라 길드원들의 피로도가 높은 상황.
-여러분! 오스턴 왕국 남부로 가셔서 땅을 갈고 새 마을을 건설합시다!
-길마가 미쳤나?
-우리가 무슨 니네 나라에 가둔 죄수로 보이냐!? 그걸 우리가 왜 해! 우우우!
얻어먹을 거 많은 간부나 랭커들은 몰라도, 일반 길드원들은 길드에 대한 충성심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다.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는 이들.
“길마님께 말해서 돈 좀 써야 할 거 같다.”
“길드 창고에 돈이 있습니까?”
“밖에서 투자 받은 돈 있으니까 그거 골드로 바꿔서 써야지. 골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사람 부를 수 있다.”
“오오…!”
간부의 든든한 말에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역시 쑤닝 님이셔!
게임은 좀 못하더라도 사업 수단은 김태현보다 위인 것이다.
‘오….’
그리고 그 말을 태현도 들었다.
이거 왠지 기회 같은데?
* * *
“감사합니다!”
“그래. 걔네 지금 상황 급한 거 같으니까 싸게 받지 말고. 맞다. 재료 필요하면 말해. 왕국 병사들 동원해서 채집 시킬 테니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이다비는 태현과 파워 워리어 길드 간부들의 대화에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렸다.
이게 지금 무슨 대화지?
“태현 님. 쟤네들이 설마 구걸한 거 아니죠???”
“응? 안 했는데?”
“휴….”
이다비는 안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태현한테 직접 가서 구걸하는 건 길마로서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길마님. 그런데 골짜기 가서 김태현 님한테 구걸하면 안 됩니까?
-길드에서 쫓겨나고 싶으면 그래봐.
-…안 할게요.
“길드 동맹에서 오스턴 왕국 남부 정화하고 거기 새로 건설 시작한다길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한테 소개 좀 시켜줬어. 제작 잘 하잖아.”
“제작이 아니라 잡일을 잘 하는 거에 가까운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런 건설 퀘스트는 건축 스킬이나 제작 스킬이 크게 필요 없었다.
건축 스킬은 지시하는 한 명만 갖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필요한 건 힘, 체력, 지구력 등의 스탯과 이런 지루한 퀘스트를 꾸준히 참가하는 끈기!
그리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이런 부분에서 특히 뛰어났다.
* * *
-큭큭큭… 드디어 기회가 왔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 중 하나, 구다르는 매우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그를 따르는 길드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볼 때마다 사악하게 생긴 얼굴이야.’
뭘 해도 사악해 보이는 기적의 인상!
-무슨 기회인지 물어봐야지.
-앗. 예. 무슨 기회입니까?
-드디어 우리 건축가들이 활약할 기회! 잡일단에서 나와, 새로 <건설단>을 만들고 내가 그 단장이 될 거다!
구다르의 야심은 실로 놀라웠다.
구걸단이나 요리단 같은 새로운 단체의 대장이 되겠다!
-그냥 잡일단에 있으면 안 됩니까? 사이좋은데….
-시끄럽다. 언제까지 만족하고 살 거냐!
-저흰 딱히 건축에 욕심이 없는데….
-맞습니다. 자리에도 별 욕심이 없어요.
-내가 <건설단> 단장이 되면 너희한테 단장 운영비 다 나눠준다.
-…단장! 단장! 단장!
-구다르 단장 파이팅!
-무려 김태현 님이 직접 나한테 준 기회다. 이게 무슨 뜻이겠냐? 내가 활약을 하는 걸 기대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냥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쉿. 닥쳐.
-오스턴 왕국에서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와아아아아아!
-길드원들한테 연락해서 1인당 5골드 이하로는 받지 말라고 전해라! 절대 싸게 받지 말라고 해!
-하지만 구다르 님! 저희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놈들은 더 싸게 받지 않을까요?
-그런 놈들은 설득해서 가입시켜라! 같이 힘을 합치면 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분명히 넘어올 거다!
-오오…! 오오오!
* * *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
얼핏 보면 오스턴 왕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보다 더 많아 보였다.
대체 왜 이 많은 인원들이 모여 있는 것일까?
새로운 대형 퀘스트라도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지?”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진행을 돕기 위해 뽑힌 파워 워리어 간부들은 수군거렸다.
대체 왜 태현의 펫이 좋아할 만한 요리를 만드는 대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거지???
그리고 그건 모인 사람들도 비슷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모인 거냐? 뭐 상자라도 주나?”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이건 대회라고.”
“무슨 대회인데?”
“김태현이 데리고 다니는 펫 있잖아. 그 펫이 가장 좋아할 만한 요리를 만드는 대회야.”
“…지금 그 대회 하나 보자고 이렇게 모인 거야!??!”
“아, 아니. 참가 인원이 대단하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상황을 모르는 플레이어는 한심하다는 듯이 친구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친구도 할 말은 있었다.
이건 정말 쟁쟁한 요리사 랭커들이 참가한 대회였던 것이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
“그러니까 차오라는 랭커가 있는데, 이 랭커는 진짜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요리사거든, 이 차오가 파즈라는 랭커와 시비가 붙었는데 뭐라고 말했냐면….”
“…….”
친구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뒷이야기를 들은 플레이어는 할 말을 잃었다.
요리사 랭커들은 시간이 남아도나??
대체 이 대회가 뭐라고 그렇게 자존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