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71화
“확실히 저 NPC는 보기 드문 쓰레기긴 하군.”
“그렇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퀘스트로 치면 온갖 희귀한 퀘스트를 다 깨왔던 태현이 그렇게 말하자, 길드 동맹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정말 평범한 쓰레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길드 동맹 놈들 갑자기 얄미워지는군.’
아키서스 교단에서 저 정도는 평범한 수준인데, 길드 동맹 랭커들은 ‘와 NPC가 뭐 저렇게 쓰레기일 수가 있지?’ 하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얼마나 꽃길만 걸어왔으면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오스턴 왕국의 NPC들은 매우 근면성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김태현.”
“?”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혹시 물어봐도 괜찮을까?”
매우 공손한 태도로 물어보는 길드 동맹의 랭커.
그 예의 바른 태도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라.”
“…저 뒤의 오크 아저씨들은 대체 왜 따라오는 거냐???”
다른 랭커들은 속 시원하단 표정을 지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못 물어본 질문!
대체 저 오크들은 왜 따라오는 걸까?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태현은 너무 당연한 걸 물어서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정말 모르겠다.”
“왕국 남부 전문가잖아?”
“…….”
“…….”
랭커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저 인간들이….
설마…?
“저 인간들 설마 우르크의 오크 길드들이냐? 그 미치광이들?”
“도와주러 온 사람들한테 그게 무슨 무례한 소리야?”
“저 인간들이 역병 지대 만든 장본인 아니야!!”
랭커들은 참다 못해 폭발했다.
시간이 꽤 지나긴 했지만 이런 원한은 잊을 수 없는 법.
치사하게 영지전 졌다고 자기들 영지에 독 풀고 튄 놈들이 저 인간들 아닌가!
그 외침을 들은 오크 아저씨들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거 젊은 친구들이 너무 과거에만 얽매여 있군.”
“맞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봐야지. 나이 많은 우리보다 저렇게 꽉 막혀서야.”
“그렇게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
랭커들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최소한 너희한테 듣고 싶지는 않다!’
길드에 대해 그렇게까지 충성하지는 않았지만, 저 오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길드에 대한 애정이 솟구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두고 가라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했다 이거지.”
태현이 묻자 랭커들은 꼬리를 내렸다.
무엇보다 지금 아쉬운 건 그들이었던 것이다.
‘아오. 재수없는 놈.’
‘역병 지대만 사라지면 두고 보자.’
‘근데 김태현 지금 사라져도 당장 스미스가 이끄는 미친놈들이 위에 있는데 싸울 수 있나?’
‘…언젠가 두고 보자.’
길드 동맹의 랭커들이 품는 불만과 별개로, 태현은 오크 아저씨들을 무조건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왕국 남부 전문가지.’
한때 여기서 영지를 꾸렸던 이들인 만큼 지형과 길에 매우 익숙했다.
게다가 길드 동맹이 무슨 함정을 꾸몄을 경우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서로 악감정 많은 사이.
몸 많이 사리는 오크 아저씨들도 길드 동맹 상대할 때만큼은 아끼지 않고 덤벼들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쫓겨난 원한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다비. <굶주린 혼돈의 미로>에서 챙긴 아이템을 갖고 골짜기로 돌아가줘. 하늘성에 올린 다음, 하나씩 분별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네. 진행하고 있을게요. 그리고 퀘스트 가능하면 빨리 깨고 돌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불불이 요리 퀘스트 거의 다 준비 끝나가는 것 같은데요.
-현실에서도 요리 때문에 고생했는데 여기서도….
-에이. 괜찮을 거예요. 여긴 프로들만 모였잖아요.
-…골짜기에 괴식 요리사들 많지 않나?
-그러면 진행하고 있을게요!
이다비는 바로 말을 돌렸다.
‘확실히 빨리 퀘스트 진행해야겠군.’
지금 태현은 직업 퀘스트부터 굶주린 혼돈, 이데르고 교단 대비까지 할 일이 많았다.
역병 지대 퀘스트 정도는 빠르게 깨야 한다!
-그르르르륵!
“역병 지대 몬스터다! 조심해!”
“크윽. 보통 사나운 놈들이 아니잖아?!”
“젊은 친구들이 활약하게 내버려 두자고! 태현아! 뒤로 물러서!”
역병 안개 속에서 오염된 몬스터가 뛰쳐나오자, 오크 아저씨들은 재빨리 태현을 데리고 뒤로 피했다.
그러고는 열심히 응원을 시작했다.
“파이팅! 젊은 친구들!”
“거 젊은 친구들이 힘 좀 써봐!”
“아, 더럽게 못하네! 나 때는 말이야! 눈 감고 한 손으로 다섯 마리도 잡았겠다!”
“…….”
“…김태현. 저 오크들 입 다물게 해준다면 정말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싸우겠다. 네 도움도 받지 않고!”
그 랭커들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짜증이 많이 난 모양이었다.
[역병에 오염된 불곰이 <역병 숨결>을 사용합니다!]
[역병에…]
[……]
남부 역병 지대는 평범한 야생동물들도 사나운 몬스터로 변해 있을 정도로 마굴이 되어 있었다.
몬스터들의 레벨도 레벨이지만, 역병이란 특수한 속성이 상대하기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길드 동맹 랭커들 역시 이번 퀘스트를 위해 단단히 준비된 이들.
[<정화의 물약>으로 인해 역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위대한 조각상에 기도한 효과로 인해…]
[……]
[……]
“진형 유지해! 스타인하우어를 우선적으로 보호해라! 절대 진형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해!”
“이봐! 젊은 친구들! 우리도 지켜줘야지!”
오크 아저씨들이 항의했지만 랭커들은 무시하고 무기를 휘둘렀다.
솔직히 김태현까지 있는데, 뒤에 좀 내버려 둔다고 죽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저런 못된 놈들 같으니. 우리를 아예 무시하는군.”
“잘 됐다. 태현아.”
“?”
“우리가 설마 그냥 심심해서 저놈들을 놀리고 조롱했겠냐?”
“어. 아니었습니까?”
태현은 당황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야. 인마.”
“사실 그런 의도도 조금 있긴 했….”
“쉿. 조용히 해.”
“어쨌든 우리 의도는 저놈들의 시선을 우리한테서 돌리는 거였다.”
오크 아저씨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가 열심히 가꾼 영지들을 버리고 떠날 때, 우리가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아냐? 다 챙기지 못한 것들도 많았지.”
“그래서요?”
“그걸 다 어디다 뒀겠냐. 땅 속에 파묻고 지도로 만들었다.”
“…!”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그런 꿍꿍이가 있었단 말인가?
그냥 마음 비우고 편하게 게임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디 있는데요?”
“야. 목소리 낮춰라. 여기 근처에 없어. 안으로 더 들어가야 나와.”
원래 영지는 남부 역병지대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오염도가 가장 심한 편이었다.
이제까지 오크 아저씨들이 보물을 숨겨 놓고 찾아오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게다가 우리가 이 근처에 얼쩡거렸으면 저놈들이 몰랐겠냐?”
길드 동맹이 맨날 태현한테 두들겨 맞아서 우스워 보일 수 있었지만, 절대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한테는 악의 제국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들!
오스턴 왕국 근처에 얼씬거렸다면 바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들 어차피 현질 많이 해서 보물 좀 없어도 괜찮지 않아요?”
“태현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 잃는 건 배가 아프지!”
“그리고 그건 돈 주고도 못 사는 보물이야.”
“…?”
태현은 의아해했다.
대체 무슨 보물이길래 이 아저씨들이 저러는 거지?
* * *
[역병 안개가 짙어집니다!]
[역병의 바람이 더욱더 강해지며 몬스터들을 폭주시킵니다!]
[사방에서 습격이 시작됩니다!]
“버프 준비!! 버프 준비!!!!”
랭커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슬슬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레벨 400~500 정도 되는 몬스터들 자체는 힘들지만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인하우어를 지키면서, 사방에서 숫자로 몰아붙이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불리한 지형+까다로운 속성+숫자로 몰아붙이는 적들!
길드 동맹 랭커들도 작정하고 싸워야 했다.
“진형 유지하고 준비했던 스크롤 꺼내!”
“마법 시전할 동안 시간 벌어주십시오!”
“내가 간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오크 아저씨들은 드디어 슬슬 거리를 벌렸다.
“지금이다! 빨리 가자! 여기가 원래는 성벽 입구였어!”
“이쪽으로 길 따라 가면 옛 성문 터가 나오는데 거기서 안으로 더 들어가면 광장이다! 그쪽으로 가야 해!”
“…아니, 나쁠 거 없긴 한데 꼭 이렇게까지 해서 얻을 보물입니까?”
태현은 오크 아저씨들을 따라가며 말했다.
일단 보물 얻어서 나쁠 거 없었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사실 좀 의아하긴 했다.
정말 이런 짓을 해서 얻을 만한 보물일까?
‘이러다가 길드 동맹 랭커들이나 스타인하우어 죽기라도 하면 많이 아쉬워지는데, 그냥 도와주는 게 낫지 않나?’
길드 동맹 랭커들이 알아서 잘 준비했겠지만, 랭커들도 사람.
실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아, 진짜 아까운 보물이라니까. 나중에 역병 지대 풀리기 전에 찾아야 해!”
“찾으면 너도 나눠줄게!”
오크 아저씨들은 역병 안개가 낀 길을 잘도 달렸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게 분명했다.
“여기다! 표지판 찾았다!”
팍팍팍팍팍!
오크 아저씨들은 대부분 레벨이 높은 데다가 장비도 잘 갖춰 입어서 스탯이 높았다.
그런 스펙으로 삽질을 해대니 땅이 파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아저씨들 우르크에서 얼마나 삽질을 많이 하고 다닌 거야?’
태현이 감탄할 정도였으니, 오크 아저씨들이 우르크에서 얼마나 많은 잡일 퀘스트를 깼을지 짐작이 갔다.
미개척지인 만큼 퀘스트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곳!
[땅 속에서 <오스턴 왕국의 정체불명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땅 속에서 <오스턴 왕국의 정체불명 명화>를 발견합니다!]
[……]
[……]
“…!”
그 드러난 정체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보물이 이걸 말하는 거였다니!
오스턴 왕국의 각종 그림이나 조각상들이 땅 속에서 우르르 나왔다.
[예술 관련 스킬이 너무 낮아 확인할 수가 없…]
[예술 관련 스킬이 너무 낮아…]
불행히도 오크 아저씨들은 스킬이 워낙 낮아 이런 명품들을 갖고 있어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예술 쪽 찍으신 분이 하나도 없어요?”
“…….”
“…뭐 그럴 수도 있지….”
오크 아저씨들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원래 잘 보관해둔 다음 나중에 방법을 구해서 감정하려고 했는데, 일이 꼬이는 바람에 도망치게 됐지 뭐냐. 워낙 부피가 커서 들고 가기도 힘들었다.”
[고대 제국 관련 지식이 높습니다.]
[고대 제국 관련 칭호…]
[신성 스탯이 높…]
[……]
[감정에 성공합니다!]
<예술의 계승자-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 시절 찬란하게 번영했던 예술은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예술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잊혀지고 망가진 예술품들을 복원시켜 세상에 알리십시오.
수많은 예술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 위업을 찬양할 것입니다!
보상: ?, ???, 칭호 <고대 제국 예술의 계승자> 획득.
‘아니…?’
태현은 퀘스트창에 놀랐다.
퀘스트 보상이나 내용에 놀란 게 아니라, 다른 것에 놀란 것이다.
‘대체 어디서 이걸 구하신 거야?’
용케도 고대 제국 시절 예술품들을 찾아서 숨겨놓았다.
길드 동맹이 이걸 봤다면 군침을 흘리면서 덤벼들 정도의 보물이었다.
영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예술품들은 매우 강력한 아이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