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68화 (1,367/1,826)

§ 나는 될놈이다 1368화

-잘 들어. 복잡한 컨트롤이나 어려운 거 할 필요 없어. 그냥 나만 보고 있다가, 내가 신호 보내면 나한테 광역기 날려.

추예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들은 다 필사적으로 머리 굴려가면서 싸우고 있는데 그녀 혼자 이렇게 편하게 싸워도 되는 걸까?

…그러나 거절하기에는 너무 편했다.

그냥 생각을 비우고 태현의 신호에만 맞춰 행동하면 됐다.

-퍼스트 킬! 새로운 얼굴인 추예지 선수가 좋은 활약을 보여줍니다! 중국대표팀의 펭귄팬더 선수를 잡습니다!

-팬들이 탄성을 내뱉는군요!

-정말 좋은 플레이였습니다. 이게 얼핏 보면 쉽지만, 짧은 타이밍을 정확히 읽고 찔러야 하거든요. 추예지 선수. 좋은 플레이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상대 힐러가 바로 힐을 넣었을 것이다.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폭딜로 쓰러뜨린 것!

태현이 상대의 HP를 계산하고 적절한 순간에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추예지 선수! 또 한 명 잡아냅니다! 맹활약! 맹활약입니다!!

추예지는 활약하면서도 매우 민망한 표정이었다.

‘진짜 이렇게 쉽게 해도 되는 걸까?!’

태현이 던져주는 걸 날로 받아먹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MP 부족해지면 이다비가 바로 충전해 주고….

너무 편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기다리다가, 신호 나오면 마법 쏘고, 그러면 상대 쓰러지고.

하나둘씩 잘리자 중국 팀들은 후퇴한 다음 재정비를 하고 다시 복귀했다.

그들은 놀랍게도 진형을 풀고 사방에서 사납게 덤벼들었다.

-궈이훙 선수! 기습을 시도합니다! 중국팀. 진형을 풀고 기습을 시도합니다!!

-놀랍군요! 원래 중국팀이 저런 기습을 자주 쓰는 팀이 아니잖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워낙 불리한 상황이다 보니 도박을 해서라도 뒤집으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이런 깜짝 기습은 태현의 장기였지만, 중국 팀도 할 줄 알았다.

딜러 궈이훙은 숲을 돌아서 나타난 다음 뒤에서 덤벼들었다.

힐러나 마법사 중 하나는 무조건 자른다!

…그러나 이미 태현이 옆에 버티고 있었다.

“!?”

“왔냐?”

카카카캉!

-기습 경로 예측됐습니다! 기습 경로 예측됐습니다!!!

-김태현 선수, 완벽하게 읽어냅니다!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어요!

태현은 밀어붙이는 대신 바로 돌아와서 진형 재정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기습 많이 하는 사람은 남이 기습할 만한 경로도 예측하기 쉬운 법.

하물며 그게 태현이라면 상대 분위기만 보고서도 대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정면에서 안 오고 미적거리길래 뭔 짓을 하나 했는데 역시 돌아서 오고 있었나?’

태현은 이번 게임에서는 전면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앞으로 돌격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이다비나 추예지를 보호할 수 있게 탱커 옆에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든 방어에 나설 수 있는 유동적인 위치.

그런 플레이를 하다 보니 상대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도 수월했다.

물론 상대 입장에서는 진짜 개짜증 나는 일이었다.

“김태현 이 개자식아 작작 좀 해라!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물어뜯는 거냐! 무승부만 해도 너희는 올라가잖아!”

“미안한데 난 상대가 누구든 간에 싸울 때는 최선을 다한다.”

울부짖는 상대 쪽 선수를 맞받아치며 태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서로 검이 오가고 스킬이 오가고 궈이훙이 슬슬 밀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피지컬로 밀리는데 태현은 본진 지원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기습 실패합니다! 다른 선수들도 후퇴합니다! 궈이훙 선수, 혼자 포위되기 싫으면 이쯤에서 빠져야 합니다!

궈이훙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빠지고 싶었는데 태현이 깔짝거리면서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폭딜 넣으려고 살벌하게 스킬 준비하면 어떻게든 빈틈 만들어서 호다닥 도망이라도 쳐보겠는데….

태현은 데미지를 넣는 것보다는 그냥 막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다.

너 김태현 맞냐 이 새끼야!?

‘흠. 시간만 끌어도 알아서 정리되겠군.’

중국 선수들은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맛봐야 했다.

딱히 실수한 게 없는데 어디서부턴가 뭔가 자꾸 꼬여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 * *

“감독님. 뭐하십니까?”

우종위안이 2라운드 경기 보다 말고 스마트폰 꺼내서 검색을 하기 시작하자 스태프들이 당황해서 물었다.

“이민 갈 나라 찾고 있다.”

“…….”

“…….”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해를 못 했기에 스태프들은 얼어붙었다.

진담인가?

진담이면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되나?

“농담이다 이 새끼들아!”

“아… 아아! 농담이었군요!”

“대체 저게 뭔 어처구니없는 꼴이냐!? 김태현이 첩자라도 심어 놓은 게 아니면 저게 말이 된단 말이냐!”

미친개처럼 날뛰던 태현이 왜 갑자기 오늘 경기에서만 매우 신중하고 헌신적인 팀 플레이어가 되었단 말인가.

감독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걸 맞춰서 예측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략이 미리 샜다는 의심밖에 들지 않았다.

“…….”

“…….”

그들은 멍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2라운드도 어느새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의 가려진 승부의 윤곽.

갑자기 김태현이 미쳐서 팀킬을 하지 않는 한 중국대표팀이 역전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인터넷의 반응도 비슷했다.

어떻게든 ‘아직 모른다’ 하며 현실을 부정하던 중국 팬들도 이제 슬슬 받아들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이게 말이 되냐고!!

-XX 감독하고 선수들 전부 다 장강에 빠져 죽어!! 그렇게 세금을 받아먹고 예선 탈락을 하는 게 말이 돼!?

-진짜 가능성 없냐? 이번 라운드만 무승부 따고 다음 라운드 이기면… 무승부잖아….

-우리 주제에 E스포츠 종주국 타이틀은 무슨… 어디 가서 중국이 E스포츠 강국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라. 쪽팔린다.

-예선 탈락할 수도 있지. 그래. 누구나 예선 탈락할 수 있는 거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에서 이제 수용의 단계에 들어선 팬들.

물론 그렇다고 안 빡친 건 아니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보이는 저 반응 속에는 불길 같은 분노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내일쯤 되면 중국대표 게임단 훈련 시설이 불타고 박살 나 있을지도 몰랐다.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쪽에서는 벌써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대표팀, 첫 판온 월드컵에 16강 진출 확정…>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수많은 찬사를 받아…>

<강호 중국 탈락에 대륙 ‘충격’>

벌써부터 기사가 미리 올라오고 있을 정도!

사실 한국은 오늘 경기가 어땠든 간에 확정 진출이었으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경기 끝납니다!!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한국 국가 대표팀이 위로 올라갈 자격을 증명해 보입니다!!

-한국 선수들은 그들에게 쏟아진 수많은 질문을 실력으로 대답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을 겁니다!!

-평소의 화려함은 없지만, 그 이상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훌륭했습니다. 한 명의 활약이 아닌, 선수 모두의 활약이 어우러져서 이긴 경기였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들의 찬사를 받으며 경기가 종료되었다.

경기장에서, 집에서 보고 있던 전세계 팬들은 거세게 환호하며 축하를 보냈다.

딱히 한국을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중국 탈락이 너무 웃겼던 것!

-중국 예선 탈락! 중국 예선 탈락!!!

-고마워 김태현! 앞으로 동쪽을 향해 매일 절할게!

-중국 놈들 리그 성적 좋다고 거들먹거리더니 꼴 좋다!

-한국대표팀은 내 영웅이야. 우리 국가대표팀은 탈락했지만 한국대표팀을 응원하겠어.

중국은 E스포츠 강국인 만큼 다른 나라의 어그로도 많이 끌어 놓은 상태였다.

여러 선수들이나 리그 성적 갖고 잘난 척 한 업보가 많이도 쌓여 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번 승리는 정말 꿀맛 같은 승리였다.

김태현이나 판온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뜨거운 반응이 올라오자 이름을 듣고 알게 될 정도로!

그리고 그런 사람들보다 몇 배로 더 기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캐나다 팬들이었다.

-16강 진출! 16강 진출!!!

-꿈 아니지 이거?

-모금해서 토론토에 김태현 동상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

원래 기대했다가 못 가는 나라보다, 기대 안 했는데 가게 된 나라가 몇십배로 기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대표팀이 바로 그랬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채로 두근거리고 있었는데….

한국대표팀이 정말 0패로 압승을 해버린 것이다.

어부지리로 16강 진출!!

-지금 토론토 한인타운 분위기 장난 아니다. 축제 분위기임.

-판온 관심 없는 사람들도 김태현 이름 외치고 있는데??

캐나다에 가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글을 올렸다.

갑자기 ‘와아아악’ 하고 함성이 터져 나오더니 캐나다 사람들이 나와서 김태현 이름을 고래고래 외치고 다니는 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 착각할 정도였다.

-모두 조용히 해!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인터뷰하잖아!

-이런 무례한 놈들! 한국대표팀 선수들께서 말씀하시는데 떠들다니!

캐나다 팬들은 극존칭을 붙여가며 떠들었다.

한국 선수들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던 것이다.

* * *

농담이 아니라 정말 한 걸음 뗄 때마다 새로운 기자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아무리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전 세계의 기자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투기장 앞에서 질문 잘 따내려고 레벨 올리고 장비 맞추고 있을까.

그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이득을 보는 건 같은 나라 기자였다.

바로 한국 기자들!

“이거 치사한 거 아니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당신들만!”

“꼬우면 그쪽도 한국 국적 따던가! 당신도 당신 나라 선수 인터뷰할 때는 우선권 받잖아!”

“새치기 하지 말고 정당하게 줄을 섭시다!”

“턱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당신 같으면 그러겠소!?”

한국 기자들은 으쓱거리며 앞에 섰다.

이럴 때 덕을 보지 않으면 또 언제 본단 말인가.

“그러면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살짝 지친 표정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얼굴이 밝았다.

오늘 경기의 가장 큰 수혜자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각오로 임했냐, 경기가 일방적이었는데 계획한 대로였냐, 기분이 어떠냐….

“추예지 선수. 오늘 첫 출전치고는 정말 대단한 활약을 하셨습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광역기가 계속 들어갔는데….”

“감,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매우 긴장한 채로 했습니다. 광역기 타이밍은 김태현 선수가 지시하는 대로 했습니다.”

“지시요?”

“네… 네. 싸우다가 타이밍에 맞춰서 신호를 보내면 그걸 보고 광역기를 쏘는 식이었습니다.”

“…….”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과 이다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왜 그런 것까지 말해!

-그걸 지시했다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 타이밍을 김태현이 지시했다고? 언제?

-대체 뭐 어떻게 지시를 한 거지? 뇌가 두 개인가??

태현은 생각했다.

사람이 다섯 명이면 한 명은 케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일까?

‘그래도 뭐 저건 실수도 아니니까….’

“김태현 선수. 한국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신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는데요. 팬들이 그만큼 김태현 선수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습니다. 혹시 본선 진출 기념으로 팬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음… 예. 예선도 끝났으니, 다른 선수들과 같이 방송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

예상치 못한 대답에 기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보통 ‘제가 훈련하고 집안일하느라 바빠서 힘들 것 같습니다’ 하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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