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67화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며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거의 확실한 확률이 망해서 1:1에서 진 사람이 앞에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게 쳐다보지?”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이세연 네가 빠질 상황은 대비를 해놨으니 다행이네.”
기본적으로 한국대표팀이 가장 많이 연습한 상황은 태현이 밴 당했을 때의 상황이었다.
태현이 밴 당했을 때 후보 중 어떤 선수를 넣어야 가장 좋을까?
큰도끼전사 같은 변칙적인 딜러를 넣을 것인가, 안정적인 딜러를 넣을 것인가, 아니면 탱커 하나를 더 늘려서 진형을 바꿀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게 강팀의 조건 중 하나였다.
…그딴 거 하나 없이 한 가지 전략만으로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던 팀 KL도 있긴 했지만 그건 진짜 예외인 경우였고!
“누굴 넣을래?”
“흠… 쟤네가 그 저주술사를 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원거리 딜러가 좋겠어. 광역기 가능한… 마법사겠군.”
“예지가 좋겠네.”
추예지.
한국대표팀 후보 중 하나로, 나름 이름 있는 마법사 랭커였다.
쓸 만한 광역기를 여럿 갖고 있는 게 강점!
같은 직업인만큼 이세연과도 친분이 있는 마법사 플레이어였다.
“그래. 추예지 선수면 괜찮겠네. 잘 부탁한다.”
“최… 최선을 다할게!”
갑작스럽게 자신한테 이야기가 돌아오자 추예지는 얼어붙었다.
후보여서 그렇게 크게 긴장하고 있지 않았지만 설마 자기가 참가하게 될 줄이야.
‘망하면 어떡하지?’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실수하는 것만큼 부담되는 것도 없었다.
만약 지기라도 하면 온전히 그녀의 탓 아닌가.
“진정하세요.”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다비가 추예지를 위로해 줬다.
“아무도 추예지 선수 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저도 부족한 실력이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선수로 출전한다는 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니까요.”
“말 잘했어. 이다비. 그리고 추예지 선수. 실수한다 하더라도 그건 추예지 선수를 뽑은 사람 잘못이지 추예지 선수 잘못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그 실수도 다 감안하고 뽑은 거니까.”
“…지금 나 욕하는 거 아니지?”
이세연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 우리 둘 이야기였어. 같이 뽑았잖아.”
“오해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네 책임이 좀 더 큰 것 같긴 해.”
“죽을래?”
‘역시….’
둘이 뽑았다는 말에 추예지는 놀랐다.
선수가 선발권을 가진다는 게 얼핏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지만, 한국대표팀은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실제로 감독도 관리와 체크 위주로 할 뿐, 전술에 대한 자유나 선택은 선수들에게 거의 맡겼다.
김태현과 이세연을 향한 굳건한 신뢰!
그리고 이 두 선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좋아. 한 번 가보자고. 추예지 선수. 저번에 썼던 광역기 쓸 만하던데. 그거 몇 번 쓸 수 있지?”
“다섯 번 쓸 수 있어.”
“다섯 번이나? 아니. 이세연보다 나은데? 이세연은 언데드 소환하느라 시간 걸리는데….”
“…….”
이세연은 추예지와 떠들며 걸어가는 태현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저게 뚫린 입이라고….
* * *
“이다비. 추예지 선수가 많이 긴장한 것 같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라운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케인 작전이다.”
“???”
옆에서 듣고 있던 류다영은 의아해했다.
케인 작전이 뭐지?
그러나 듣고 있던 이다비는 바로 알아차렸다.
“아. 그 작전이요.”
“…?”
다른 선수들한테 말 안 하고 이다비와 태현만 준비한 작전이라니.
좀 의아하긴 했지만 류다영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둘이 하는 짓이니 생각이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케인 작전.
한마디로 팀 중 한 명을 케인으로 생각하란 뜻이었다.
…실수해도 대비할 수 있게 집중적으로 돌봐주란 뜻!
“김태현 선수. 그래도 그 저주술사를 빼는 게 낫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난 그냥 넣는 게 나아 보이던데. 걔는 솔직히 있어주는 게 고맙지.”
태현은 쑹이머우가 있어주는 게 솔직히 편했다.
물론 태현 본인이 슈퍼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없는 게 낫긴 했지만, 태현은 슈퍼플레이 안 해도 됐다.
그냥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걔 말고 걔네 힐러 밴하는 게 낫다고 봐. 걔네 힐러가 힐 되게 잘하더라.”
중국대표팀 힐러-탱커 연계는 상당했다.
1라운드에서 패배는 할지언정 탱커가 끝까지 버티고 버틴 것이다.
그렇게 딜을 때렸는데도 버틴 걸 보면 탱커도 탱커지만 힐러의 능력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후보 선수로 바꾸기만 해도 그 능력이 꽤 내려가리라.
“상대 시야에 들어오면 광역기. 상대 시야에 들어오면 광역기. 상대 시야에 들어오면 광역기.”
추예지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랭커였지만 이런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이렇게 되새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추예지 선수. 상대 들어오면 그냥 연습했던 대로만 행동하면 돼. 알겠지?”
“어? 어. 응.”
“추예지 선수.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빗나가도 다른 사람들이 커버해 줄 테니까요.”
“그렇지만 팬들이 날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
추예지의 질문에 이다비는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를 케인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대응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요. 어차피 16강 진출은 확정인데 뭘 그런 거 가지고 욕하겠어요.”
태현과 이다비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추예지를 달랬다.
케인을 상대하며 단련된 둘의 실력은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도 정신이 돌아오게 할 정도였다.
듣다보면 없던 자신감이 안에서 충만해질 정도!
“나는 할 수 있어! 그래!”
“바로 그 자세야. 추예지 선수!”
“바로 그거에요!”
-한국대표팀. 이세연 선수가 빠지고 추예지 선수가 들어옵니다. 추예지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괜찮은 마법사입니다. 자료를 보니 광역기 마법이 특히 장기더군요. 아마 그걸 노리고 넣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세연 선수가 빠진 탓에 그 공백이 상당할 테니까요.
투기장에서 네크로맨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한 직업은 투기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신 네크로맨서는 다른 직업들에게 없는 장점들이 있었다. 이런 걸 잘 다루는 이세연이 빠진 이상 전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라운드도 김태현 선수가 안정적인 운영을 갈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김태현 선수의 슈퍼플레이를 기대했거든요.
-하하. 여기 모인 분들도 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습니까?
“예선탈락! 예선탈락! 예선탈락!”
“예선탈락! 예선탈락! 예선탈락!”
-…다 같이 김태현 선수의 이름을 외치시는 걸 보니 생각이 비슷한 것 같군요!
해설자는 경기장의 사람들이 중국팀 예선탈락 외치는 건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갔다.
과연 프로다운 태도였다.
-하지만 저는 감탄했습니다.
-그건 왜죠?
-게임이라는 게 계속 그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 게임의 전술입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빠르게 밀려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김태현 선수의 이번 플레이는 정말 유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걸 보고서 어떤 사람이 김태현 선수가 팀플레이를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원래 사람이 약점이 없으면 어떻게라도 긁어보려고 했다.
리그 첫 번째 시즌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하고 나자, 태현에게 당한 팬들은 어떻게든 약점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김태현의 약점은 뭐지? 여섯 명과 싸우면 진다?
-그건 누구나 그래….
-김태현은 주장으로서 팀원 교육을 똑바로 못 시켜서, 팀원이 자기 밥도 제대로 못 차려먹게 만들었다?
-개소리 좀 하지 마.
-김태현의 플레이는 너무 단독 플레이에 집중되어 있지 않나? 지금이야 갑옷에 스킬 공략이 전혀 안 되어서 다들 속수무책이지만, 공략법 나오면 저것도 막힐 거고. 그러면 김태현도 퇴물행임.
-오오….
-그럴듯해!
-공략법이 뭔데 그래서?
-…그건 게임단이 생각해내야지.
확실히 첫 번째 시즌에서 태현의 플레이는 거의 다 똑같았다.
혼자서 적진 돌격해서 뒤흔들고 어떻게든 하나 이상 잡아낸 다음 탈출.
압도적인 컨트롤과 피지컬을 믿고 벌이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이건 태현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 KL의 다른 선수들의 실력을 걱정해서가 컸다.
정면에서 그대로 맞붙으면 많이 불리해질 수 있었으니까.
태현이 슈퍼플레이를 많이 하는 건, 그만큼 팀 상황이 그걸 필요로 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군. 김태현은 팀플레이가 안 되고 단독플레이만 된다… 막히면 망한다….
-제발 좀 막아라!
└님들도 그냥 팀 KL 팬하셈.
└└아 저리 꺼져!
…이런 말들이 많았지만, 오늘 경기는 그런 말들을 싹 밟아버리는 결과를 보여줬다.
저렇게 안정적인 팀플레이도 보여주기 힘들 것이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중국 대표팀은 힐러가 밴 된 탓에 후보 힐러가 들어옵니다.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자잘한 실수를 합니다. 지금 거는 마법은 <최상급 마법 방어> 버프인데, 상황을 생각해 보면 물리력 계열 방어를 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중국대표팀. 화물을 지키며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2라운드의 승리 조건은 화물 운송.
한쪽은 지키면서 목표 지점으로 화물을 이동시키고, 한쪽은 막는 규칙이었다.
-중국 선수들. 아까처럼 그렇게 진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꽤 느슨해졌는데요?
-아무래도 김태현 선수가 역습을 하지 않아서 손해를 봤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리한 스코어다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거겠죠.
‘김태현 미친놈이 왜 제정신을 차리고 난리야?’
‘저 뭘 해도 미운 놈…!’
중국 선수들은 욕하면서 화물을 지켰다.
1라운드가 끝나고 보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죽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패배하게 되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해 보니 역시 태현을 지나치게 의식한 게 컸다.
그놈의 침입을 대비하느라 손해를 많이 본 것이다.
그래서 2라운드 때는 진형을 바꿨다.
태현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함정을 만들어놨지만,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진형을 맞추고 있진 않았다.
‘어차피 즉사시킬 필요는 없어. 발을 묶고 이탈만 시켜도 충분하다.’
‘김태현이 빠지기만 해도….’
오히려 이런 느슨함이 태현을 낚아줄 수 있는 미끼가 되지 않을까?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나아갔다.
…물론 태현은 정말 이번 게임에서는 단독 침입을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가자! 탱커 무너뜨리러!”
태현이 달려들자 상대 탱커는 울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저 미친놈 또 왔어!
쿵! 쿠쿠쿵!
서로 탱커를 두고 화력을 퍼붓는 전면전.
1라운드와 비슷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그러나 중국 쪽 탱커는 1라운드보다 빨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힐러가 바뀐 탓에 스킬이 꼬인 것이다.
“탱커한테 힐 줘! 탱커한테!!”
“우리한테 주지 말고 탱커한테 줘!”
“어, 엇!”
그리고 그런 혼란을 태현이 놓칠 리 없었다. 가장 먼저 깨달은 태현은 신호를 보냈다.
“추예지 선수!”
“보고 있어! 보고 있어!”
“좋아. 간다!”
태현은 류다영과 함께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상대 탱커가 밀린 사이 적 딜러 하나와 치열하게 합을 교환하고….
“지금!”
태현이 신호를 보내자 추예지는 바로 광역기를 갈겨버렸다.
김태현과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싸우고 있는 상황에 광역기가 나올지 몰랐던 적 딜러는 깜짝 놀랐다.
“!?!?”
아니 이건 반ㅊ….
콰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