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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65화 (1,364/1,826)

§ 나는 될놈이다 1365화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다.”

태현의 말에 이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상대를 준비한 것처럼 상대도 우리에 대해 많이 준비했을 거다.”

중국 국가대표팀이 가장 많이 준비한 팀은 바로 한국 국가대표팀일 것이다.

이쪽도 아껴 놓은 스킬은 몇 개 있었지만, 그래도 그걸 제외한 대부분의 전략들은 상대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수많은 팬들은 한국 팀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의외로 태현이나 이세연은 냉정했다.

‘재수 없으면 질 수도 있는 거지 뭐.’

‘규칙이 바뀐 데다가 상대가 너무 집중적으로 공략을 준비해서 질 수도 있어.’

게임이란 게 언제나 이길 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운이 좋고 준비를 더 많이 해오면 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했다.

“그렇다고 겁먹으란 소리는 아니야. 그저….”

“…최선을 다하란 것뿐이지.”

태현의 말을 이세연이 끝내주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국가대표팀에서 리더 역할을 맡는 선수가 여럿이면 충돌이 생겼다.

각자 자존심이 있고 자부심이 대단해서 굽히질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한국 국가대표팀은 정말로 행운아였다.

서로 절대 양보할 일 없는 커리어를 가진 선수 둘이 의견이 딱딱 맞는 것이다.

워낙 하는 짓이 비슷해서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태현이 좀 더 미친 전략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런 시합에서는 왕도가 없어.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서 잡는 거지. 내가 판온 1 마지막 때 느낀 건데….”

“이야기가 좀 새는 거 같은데?”

“그래. 미안. 이야기가 좀 샜다.”

태현은 다시 이야기를 원상복귀시켰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제까지 준비한 게 있으니, 열심히 잘 하자는 거야. 너무 긴장하지도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평소처럼만 해. 그러면 이기든 지든 후회는 남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솔직히 너희들이 못해도 욕은 우리가 먹을걸.”

태현의 말에 이세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맞는 말이잖아.”

“그걸 굳이 말하니까 기분이 묘하잖아.”

두 선수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패배했을 경우 그 책임감 또한 크게 질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왜 다섯 명 다 못 잡음?? 퇴물됨???

-이세연 왜 좀비 드래곤 소환 안 함?? 너무 자만심 넘치는 거 아님?

-아 내가 가서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절대 그런 꼴을 두고 보진 않겠습니다. 만약 질 경우 제가 기자회견을 열고 제 탓이라고 밝히겠습니다!”

류태수의 말에, 류다영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한국에서 못 살게 될 걸….”

“기자회견은 됐고 그냥 편안하게 하라고.”

* * *

“지면 전부 다 장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

감독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만큼 중국 국가대표팀 분위기는 살벌했다.

캐나다와 무승부를 거둔 탓에 진지하게 올라간 예선 탈락 가능성!

팬들은 ‘설마….’ 하면서도 만약 떨어질 경우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조질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다.

벌써 살해 협박 받은 선수들이 여럿일 정도로.

‘젠장. 분위기 최악이군.’

‘감독 눈빛 봐라. 우릴 죽이려고 하는 눈빛이야.’

감독, 우종위안은 E스포츠 선수 출신이면서 감독으로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둔 사람이었다.

감독 스타일은 맹장(猛將)!

밑의 선수들을 가차 없이 채찍질해가면서 경쟁시킨 다음 살아남은 사람만 쓰는 철저한 실적지상주의자였다.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이렇게 압박 심한 경기에서 저런 감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만 심하게 만들뿐.

“무승부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버려라.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갖고 싸워! 무승부를 노리는 얄팍한 마음을 가졌다가는 바로 상대한테 허를 찔릴 거다. 상대가 누군지 잠시도 잊지 마라!”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누군지는 그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태현의 생각보다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해온 것이다.

노력의 비율로 따지자면 한국 국가대표팀 상대로 한 90%를 했고, 캐나다 대표팀에 9%, 일본 대표팀에 1% 정도?

솔직히, 일본 대표팀한테 한 라운드 패배한 거나 캐나다 대표팀 상대로 무승부를 거둔 것도 한국 대표팀을 신경 쓰느라 그런 게 컸다.

그만큼 철저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연습해 왔다!

“쑹이머우. 이번 1라운드부터 네가 나간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쑹이머우.

사실 국대팀에 들 정도로 뛰어난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랭커긴 했지만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1부 리그의 선수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국대팀에 뽑힌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쑹이머우가 저주 특화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경기에서는 쓸 일이 없었기에 후보로만 내버려 뒀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쑹이머우. 너한테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무조건 김태현만 마크해라. 알겠냐?”

“예!”

감독은 쑹이머우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다.

김태현의 발목만 잡을 수 있다면 충분했다.

‘무조건 김태현 한 명만 잡으면 남는 장사다.’

김태현과 이세연 모두 어마어마한 플레이어였지만, 투기장에서는 좀 달랐다.

이세연은 예측이 됐지만 김태현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네크로맨서인 이세연은 투기장에서 딱히 변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깜짝 언데드 러쉬 정도?

그에 비해 김태현은 그 특유의 기동력과 회피력으로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진형을 파괴하고 플레이어 한 명을 자른 다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감독은 확신했다.

한국팀의 승리 패턴은 김태현으로부터 나온다고.

-아! 중국 팀의 구성은 저번과 달라졌습니다. 쑹이머우 선수가 참가했군요. 어떤 의미일까요?

-저주술사인 쑹이머우 선수가 참가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김태현 선수를 집중적으로 노리겠다는 거겠지요.

회피 불가능한 여러 저주가 쌓일수록 태현의 행동에는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태현이 <저주 이동> 같은 대책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걸려오는 모든 저주를 다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으리라.

-이런 식으로 한 선수만을 노리고 카운터 치는 전술이라니. 좀 신기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보통 이제까지 전술을 바꾸는 건 상대 팀 전체에 맞춰서 바꾸는 식이었으니까요. 이렇게 한 명만 노리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1라운드 맵은 <강철의 사원>. 승리 조건은 중앙 진지 점령!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중국 대표팀의 전술은 어떤 결과를 갖고 올 것인지. 한 번 지켜봐주십시오!

캐스터가 말하는 사이 양쪽 팀은 빠르게 진형을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 낮춰! 거리 벌리지 마라!”

“알겠다고!”

“쑹이머우. 저주 준비했지?”

“물론 준비했습니다.”

-중국 대표팀. 단단합니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움직이는데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 대표팀의 진형은 단단했다.

보통 서로 빠르게 움직이다 보면 한 명이 떨어지거나 거리가 벌어지기 마련.

그러나 선수들은 철저한 훈련으로 진형의 거리를 완벽하게 유지했다.

김태현이 파고 들 상황을 대비해서였다.

들어오는 순간 진형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길을 막고, 쑹이머우의 저주가 연타로 날아올 것이다.

김태현이 반응할 틈도 없이 바로 끝장낼 준비가 철저했다.

‘와라. 김태현.’

감독은 주먹을 쥐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많은 준비를 해왔다.

이 함정은 그 모든 준비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절대 무리다. 이 함정을 본 적도 없는데. 밟는 순간 끝장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진형을 흔들러 오기만 해도 치명타를 입힐 자신이 있다!

…그런데 김태현은 오지 않았다.

‘…왜 안 와?’

감독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김태현은 정말로 오지 않았다.

‘???’

* * *

-한국대표팀의 전술도… 상당히 신선합니다!

-아니, 사실 이건 신선한 게 아니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이건 신선한 게 아니라 그냥 정석 전략입니다. 이제까지 한국대표팀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놀라운 거지요.

태현은 어디 이상한 곳에 가 있지 않았다.

그냥 팀원들 사이에 있었다.

“언데드 소환 중. 15초.”

“오케이. 들어가기 전에 버프 건다.”

“…진짜 괜찮은 거 맞습니까?”

류다영은 아직도 어색한지 자꾸 뒤를 돌아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팀의 탱커인 류다영.

원래라면 이다비와 이세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런데 뒤에 태현까지 있으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나 없다고 생각하고 하라니까.”

“하지만 정말 제가….”

“괜찮아. 김태현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류다영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무리 그래도 탱커가 케어해 주지 않으면 좀 위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케어해 줄 필요 없이 내가 알아서 내 목숨 챙길 테니 넌 나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해.

류다영의 움직임을 읽고,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서 방패로 삼는다.

케인을 사용해서 몇 번이고 해왔던 태현이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기막힐 정도의 묘기!

류다영이 탱킹. 양옆에서 태현과 류태수가 딜링. 그 뒤에서 이다비와 이세연이 전선 유지.

균형 잡힌 정석 그 자체!

…하지만 한국대표팀이 저러니까 너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김태현 선수가 컨디션이 안 좋은 거 아닐까요?

-중국대표팀의 전력을 모르니 측정하는 걸지도….

-이미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으니 안정적으로 가는 걸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추리하는 해설자들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근데 그냥 정석 쓰는 거잖아?

-그거 갖고 뭐 컨디션이 안 좋다는 소리가 나와?

-그러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첫 충돌이 일어났다.

김태현 언제 나타나나 노심초사하며 움직이던 중국 팀은 저 앞에서 진형 갖추고 달려오는 한국 팀을 발견했다.

“전투 준비!”

“김태현 저기 있는데요?”

“가짜일 수도 있어! 방심하지 마!”

쾅!

탱커끼리 부딪히고 딜러들이 서로 살벌하게 폭딜을 시작했다.

-광기의 폭발 검법, 완벽에 가까운 연격,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그리고 역시 이런 난전에서 빛을 발하는 건 태현이었다.

남들 아직 딜링 사이클 중반도 가기 전에 혼자서 풀 사이클을 돌리면서 미친 듯이 상대 탱커를 녹여 버리고 있었다.

“힐! 힐!! 힐 줘! 김태현 이 자식 완전 미친 놈이야!”

상대 탱커가 욕하는 걸 들으면서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방송에 다 나오고 있는데….’

태현이 그렇게 딜을 했지만 상대 탱커는 버텨냈다.

이미 각종 버프를 받아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던 데다가 뒤에서 힐까지 받은 것이다.

‘온다!’

‘지금이야 말로 온다!’

-김태현 선수! 도나요? 도나요?! 옆으로 도나요!?

해설자도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팬들도 따라서 외쳤다.

-지금부터 김태현의 시간이지!

-아까까지는 봐줬던 거고 이제 들어가서 진형 파괴한다!

혼란스러운 난전 상황에서 옆으로 치고 돌아가 상대의 진형을 파괴하고 힐러를 잘라오는 극한의 컨트롤!

그 화려한 모습을 기대하며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태현은 그 자리를 지켰다.

“류태수. 잡을 필요 없다! 그냥 밀어만 내!”

팀 진형에서 벗어나지 않고, 상대 탱커를 닥치는 대로 패서 물러나게 만드는 수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아예 각이 나오지 않으니 이건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김태현 저 새끼 저거 왜 저래!?”

“김태현! 뭐하는 거냐! 겁 먹었냐!”

초조해진 선수 한 명이 도발하듯이 외쳤다. 그 모습에 태현은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 진짜 함정을 파고 있었군!’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했는데…!

‘그러면 더 들어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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