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62화
쾅! 쾅! 쾅!
태현은 이골로약을 말 그대로 땅 속 깊숙이 파묻어버리려는 것처럼 공격을 가했다.
한 번 창을 휘둘러 내리찍을 때마다 주변으로 충격파가 터져나가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이골로약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파괴됩니다!]
마치 양파의 껍질을 하나씩 까듯이 태현은 지치지도 않고 창을 후려갈겼다.
압도적인 스탯과 레벨이 있으면 복잡하게 스킬을 연계시키면서 콤보를 구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심플하게 강한 스킬을 연타하면서 상대를 파묻어버리면 됐다.
-아스비안의 일격! 아스비안의 일격! 아스비안의 일격!
-컥! 컥! 크악!
이골로약은 그 와중에 어떻게든 반격을 시도했다.
방어하면서 거리를 벌리는 게 안 될 것 같으니, 어떻게든 맞받아쳐서 틈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그냥 무시하고 몸으로 받아냈다.
-굶주린 혼돈의 마창!
[굶주린 혼돈의 마창이 몸에 직격합니다!]
[현재 방어력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 HP가 매우 높…]
[……]
[저항에 성공합니다!]
행운 스탯에 권능 스킬에 아키서스의 영혼관, 아키서스의 제물, 아키서스의 휘광 3종 세트를 받고 있는 상황.
굶주린 혼돈의 마법을 그냥 몸으로 받아내도 HP가 널널했다.
-굶주린 혼돈의….
-아스비안의 일격!
[치명타가 터집니다!]
[상대의 마법이 끊깁니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파괴됩니다!]
[이골로약의 갑옷이 파괴됩니다!]
[이골로약의 힘이 새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마법이 폭주합니다!]
콰아아아아!
드디어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전부 파괴되고 이골로약의 본체에 데미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데미지가 들어간 것 때문에 마법이 날뛰고 태현을 할퀴었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갔다.
‘여기서 끝장을 낸다!’
우드득!
원래라면 예전에 죽었어야 할 이골로약이었다.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굶주린 혼돈의 힘이 전부 흘러나가자 몸이 끝부터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의 권속이자, 미궁성의 주인 이골로약이 쓰러집니다!]
[굶주린 혼돈의 미로가 붕괴됩니다!]
[권속이 쓰러진 것에 대해 굶주린 혼돈이 극도로 분노합니다. 앞으로 굶주린 혼돈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침공을 해올 것입니다.]
[중앙 대륙에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막대한 레벨 업의 메시지창과 함께, 이골로약은 처박힌 땅을 그대로 무덤 삼아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걸 보고 있던 원정대는 자신들도 모르게 함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불만 많던 교단의 대주교들도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 * *
“죽… 죽는 줄 알았다.”
신진 랭커들로 구성된 공략대 파티는 간신히 벗어나올 수 있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갑자기 벽끼리 충돌하면서 그 안에 갇히는 바람에 이대로 끝장나는 줄 알았지만, 랭커들은 역시 랭커였다.
냉정한 판단력과 명확한 스킬 조합으로 상황을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빠져나간 다음에도 주변에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난장판이 길을 막고 있어 치열하게 싸워야 했지만….
어찌 되었든 간신히 뚫고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아무리 그래도 던전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건 일반적인 상황 같지 않은데.”
“뭐 소환된 거 아닌가?”
“먼저 들어간 파티가 뭐 건드린 거 아니야?”
“설마… 이걸 어떻게 일으켜.”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김태현 원정대가 라인업이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이 던전에 지진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지하에 폭탄을 쫙 깔아서 날려버린 게 아니라면….
“…야. 저거 뭐냐???”
랭커 중 시야가 가장 넓은 랭커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살벌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괴수와 맞붙는 원정대는 물론이고, 움직이는 성을 타고 있는 이골로약과 태현의 싸움까지!
그 사이 있었던 일을 모르는 랭커들 눈에는 그냥 태현이 이골로약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키서스의 제물>이나 영혼관, 휘광 같은 스킬들 때문이라는 건 상상치도 못하는 상황.
아무리 태현이 최상위권 랭커라지만 저건 말도 안 됐다.
대체 어떻게 패고 있는 거지??
“…개 패듯이 패고 있다?!”
“진, 진짜? 보스 몬스터를???”
“보스 몬스터 맞는 것 같은데? 저게 보스 몬스터가 아니면….”
랭커들은 현실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골로약을 땅에 집어 던진 다음 그대로 창으로 찍어버리고, 계속해서 땅으로 박아버리는 태현!
멀리서 봐도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한 공격이었다.
“…….”
“…….”
“야. 레이드에 끼기로 했잖아. 안 가냐?”
“어….”
신진 랭커들은 기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최상위권 랭커들이 레벨과 스탯이 높고 장비가 좋다 하더라도 그 차이가 그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컨트롤이나 전략 같은 걸로 충분히 좁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고 기가 죽었다.
저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어떻게 따라간단 말인가?
원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상대 레이드에 끼어들어서 얌체같이 나눠 먹으려고 했던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그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섭다!
들어갔다가 같이 매장되는 것 아닐까?
* * *
-정말 숭고한 싸움이었소! 교황 성하!
-스스로를 희생할 줄이야.
“진짜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거였어?!”
싸움이 끝나고 대주교들이 하는 말에 이세연이 더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아니겠지?’ ‘착각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이세연의 말에 다른 대주교들이 구박을 던졌다.
-이래서 탐욕스럽고 비열하고 더러운 흑마법사들이란! 숭고한 희생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군!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여줬는지 모른단 말인가!
“…야. 얼마 전까지는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온갖 진상은 다 피워놓고 이러면 뭐 달라질 것 같아??”
이세연은 살짝 열 받았다.
교단 쪽 NPC들이 네크로맨서한테 시비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별로 화나지 않았지만, 이건 달랐다.
평소에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개무시하고 시비 걸던 놈들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나?
-불행한 오해가 있었는데 그 오해를 풀었을 뿐이오.
-암. 이렇게 오해가 풀리다니 기쁜 일이지.
“…….”
“…….”
이세연뿐만 아니라 태현도 황당해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얄밉지?
[카르바노그가 패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안 패.’
물론 매우 얄밉긴 했지만, 태현은 다른 교단의 주교들이 보내는 칭찬을 얌전히 받기로 했다.
<아키서스의 제물>로 스스로를 바친 덕분에 원한이 싹 사라진 건 물론이고 갑자기 친밀도가 폭발적으로 올라간 상황.
물론 이러려고 한 건 아니긴 했지만, 이럴 때 생색을 내줘야 했다.
“그래. 내가 숭고한 마음으로 희생을 하긴 했지.”
“…….”
이세연이 할 말을 잃고 눈을 깜박거리는 동안 태현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싸웠다가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올 거란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
-역시…!
-정말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교황 성하!
원정대에 참가한 교단 NPC들은 그렇게 들었던 경고를 잊고 완전히 감동에 빠져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에 속지 마라’라는 말을 그렇게 듣고 와도 어쩔 수 없는 아키서스의 마법!
“크흑. 생각하니 슬프군.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륙을 걱정하는데 오해 때문에 매번 다른 이들의 견제를 받고.”
-교단으로 돌아가게 되면 성하에 대한 일을 낱낱이 전하겠소! 성하에 대해 안 좋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놈들을 따끔하게 벌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오!
“그래. 나에 대해 욕을 하는 놈들은 굶주린 혼돈의 첩자일지도 모르니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아니. 그건 잘 모르겠고….
[설득에 실패합니다!]
-어찌 되었든 교황 성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하겠소!
-맞아. 아키서스 교단이 대륙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하오!
-아키서스! 아키서스! 아키서스!
평생 들을 환호를 여기서 다 받는 것 같았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칭찬은 고맙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겸손하기까지!
-저게 바로 영웅이지!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온몸을 뒤흔들며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는 교단 NPC들.
그 모습에 이세연은 살짝 아쉬워했다.
다른 교단들한테 같이 미움 받는 처지라서 좋았는데 그것도 끝난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미로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안에 남은 걸 찾아야 한다. 성기사와 사제들을 풀어서 미로에 흩어진 아이템들을 찾아라.”
미로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온 게 이번 원정대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여러 교단에서 보낸 이들이 있는 것이다.
태현이 노리는 건 바로 이런 아이템들!
-과연. 이 미로에 묻혀 있는 아이템들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굶주린 혼돈의 기운에 오염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 먼저 갖고 와라.”
-세상에…! 그렇게까지!
“…….”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교단 놈들이 시비를 걸던 때도 짜증 났지만, 무슨 말을 해도 교단 놈들이 찬양을 하는 모습은 그거대로 어이가 없었다.
‘정말 뭘 해도 얄미운 놈들이 있긴 있나 봐.’
-잠깐! 저기 모험가들이 있습니다!
“?”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던 랭커 파티를!
“너희들은 뭐냐?”
태현의 질문에 랭커들은 트고사를 쳐다보았다.
각자 따로 노는 이들이었지만 그나마 트고사와 시킬이 이들을 이끄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
…사실 랭커들이 김태현과 직접 상대하기 싫어서 떠넘긴 거긴 했다.
어쨌든 트고사는 앞으로 나섰다.
‘야. 트고사가 대답해도 되는 거냐?’
다른 랭커는 갑자기 덜컥 걱정이 됐다.
트고사는 평소부터 오만하고 건방지기로 유명한 놈.
지금은 없던 예의도 찾아서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게?’
랭커들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두려워했다.
‘트고사! 제발 상식 있게 대답해라!’
‘시비 걸지 마!’
‘우리가 왜 왔는지 그대로 말하지도 마!’
‘가족들을 생각해!’
“우리는….”
꿀꺽-
랭커들이 침을 삼키고, 트고사가 입을 열었다.
“…두 분 팬이라서 멀리서나마 구경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
랭커들은 경악했다.
트고사….
너…!
이런 말도 할 줄 알았구나…!
‘예절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놈인 줄 알았는데!’
‘무섭다. 김태현. 트고사가 저렇게 말하게 만들 줄이야.’
* * *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아무리 봐도 날로 먹으려다가 걸린 표정인데.”
이세연과 태현은 수군거렸다.
둘의 경력이 몇 년인데 저런 말에 속지 않았다.
애초에 어떤 미친 팬이 그거 하나 보려고 저렇게 랭커들 구성해서 여기 온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속셈이 뻔해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단 말이지.”
“?”
“그런 목적으로 온 거면 왜 안 끼어든 거지? 기회는 많았을 텐데?”
“…그걸 진심으로 묻는 거야?”
이세연은 태현의 질문에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