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61화 (1,360/1,826)

§ 나는 될놈이다 1361화

랭커들의 세계는 1초가 매우 중요한 세계였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복잡한 상황은 많이 찾아오게 되어 있고, 이 때 빠르게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했다.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만약 싸운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태현의 판단력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최상급이었다.

이제까지 했던 수많은 전설 퀘스트 클리어가 그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의 신!

그 특유의 본능적인 판단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아키서스의 제물을 사용했습니다!!]

[스스로를 제물로 바칩니다!]

[<거룩한 신앙심의 동상>이 파괴됩니다!]

태현이 제물로 바친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아키서스의 제물>을 얻었을 때만 해도 이 스킬을 스스로한테 쓸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솔플 위주인 태현에게 이런 스킬을 자기 자신한테 쓴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

그러나 오랫동안 일행들과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 태현은 가끔씩 ‘아키서스의 제물을 나한테 써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룩한 신앙심의 동상>이나 <부활> 같은 강력한 권능 스킬들로 예비 목숨을 쟁여두고 있는 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키서스의 제물>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파아앗!

[강력한 힘이 퍼져나갑니다!]

태현의 몸이 눈부신 빛으로 휩싸이더니, 그 중심으로 거대한 빛의 파동이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이 드넓은 굶주린 혼돈의 미로를 전부 덮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강렬한 기세였다.

그 모습에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뭐지? 우이포아틀의 힘을 빌린 상태라서 그런가?’

지금 태현은 <아키서스의 영혼관>을 사용해서 어마어마하게 강해져 있는 상태.

그 상태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으니 그 효과도 그만큼 강렬하긴 할 것이다.

태현이 <아키서스의 제물>을 스스로한테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골로약이 쓴 혼돈의 저주 때문이었다.

이골로약이 아주 작정을 하고 쓴 저주답게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태현이 <아키서스의 화신> 권능 스킬과 강력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골로약은 그걸 감안하고서도 이길 자신이 있어 보였다.

즉 그만큼 사기적인 스킬이라는 것!

그냥 죽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았다.

예비 목숨이 있었으니까.

오히려 무서운 건 안 죽었을 때였다.

판온의 저주에는 정말 별의별 저주가 다 있었다.

능력치 내리는 저주, 레벨 내리는 저주 등등.

이런 저주로 굶주린 혼돈에게 잘못 코가 꿰이면 그 관련 퀘스트만 몇 개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걸 직감하고 스스로 제물로 바친 것이다.

그리고 그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혼돈의 저주가 사라집니다!]

태현이 한 번 죽은 것으로 인해 혼돈의 저주가 사라진 것이다!

이골로약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일이었다.

기껏 영혼 지팡이까지 바쳐가면서 회심의 저주를 갈겼는데 그걸 자살해서 피해가는 놈이 있다니.

아키서스 교단이 더럽다 더럽다 말은 들었지만 진짜 이 정도로 더러울 줄은 몰랐다!

[아키서스의 제물로 인해 막대한 버프를 받습니다.]

[힘이…]

[……]

[……]

[……]

-크… 크륵.

원정대가 뿜어내는 막대한 힘에, 갓 태어난 혼돈의 괴수들이 겁을 먹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물러설 정도로 그 기세가 살벌했던 것이다.

바로 이게 태현이 노린 두 번째 이유였다.

이골로약의 신경이 온통 태현에게 쏠린 틈을 타, 원정대에 버프를 걸어 남은 이들을 쓸어버리는 것!

이골로약이 불러낸 악마들이 워낙 강력해서 원정대의 발이 묶여 있었지만, 원정대는 절대 약한 편이 아니었다.

한 번 기회만 잡으면 확실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너무 좋았다.

지금 무슨 원정대가 아니라 아키서스의 전투천사들 총집합한 것 같은 분위기!

[스스로를 희생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이는 어떤 아키서스 교단의 영웅들도 하지 못했던 위대한 업적입니다!]

‘…아니.’

태현은 황당해했다.

진짜 스스로를 희생한 적이 한 번도 없나?

아니….

한 번 정도는 있지 않을까?

[칭호, <아키서스의 희생자>를 얻습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권능 스킬 <아키서스의 희생>을 얻습니다!!]

<아키서스의 희생>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주는 만큼 파티원들에게 강력한 버프를 줍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거기에 레벨 업까지.

스스로를 제물로 한 번 바쳤다고 한 번에 2업을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물론 좋냐, 싫냐를 따지면 좋았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경험치를 줄 일인가??’

그렇게 따지면 아니지 않나?

[거룩한 희생으로 인해 추가 버프가 들어옵니다.]

[<아키서스의 휘광> 버프가 걸립니다.]

[거룩한 빛이 사악한 땅을 정화시킵니다!]

[스스로의 희생으로 원정대에 참가한 교단들이 갖고 있던 모든 악감정을 잊어버립니다!]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

[……]

콰아아아아아-

<아키서스의 영혼관>에서 불러온 우이포아틀의 힘.

<아키서스의 제물>로 불러온 희생의 힘.

<아키서스의 휘광>으로 받아온 강력한 버프.

이 세 개가 모두 합쳐지자 태현의 힘은 그야말로 드래곤과 정면에서 치고받아도 될 정도로 강력해졌다.

태현 본인도 지금 얼마나 강해졌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그걸 상대해야 하는 이골로약은 겁에 질렸다.

-…우리 대화로 해결해 보는 게 어떠냐?

“오냐.”

말과 함께 태현은 용의 파멸을 휘둘렀다.

생전에 쓰던 애창을 다시 잡은 우이포아틀의 영혼이 기뻐 날뛰는 게 느껴졌다.

-아스비안 제국의 회오리!

스킬 이름은 무슨 마법 스킬 같았지만 마법 스킬이 아니었다.

태현의 손아귀에서 창이 빙글빙글 돌며 회전하더니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창과 힘으로만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괴력!

그 모습에 이골로약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쭐해하지 마라, 필멸자 놈! 아직 내게는 굶주린 혼돈이 내린 수많은 힘과 비법이 남아 있다. 이걸 네놈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냐?

“해봐라.”

태현은 짧게 대답하고 덤벼들었다.

입은 해보라고 말했지만 상대가 뭘 할 생각은 조금도 주지 않는 모습!

애초에 태현은 지금 전사, 근거리 딜러 상태였고 상대는 마법사, 원거리 딜러였다.

붙어서 뭘 할 시간을 주지 않는 건 당연한 전략이었다.

-나를 지켜라! 괴수 놈들아!

이골로약은 괴수들을 불러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원정대가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 * *

-위대한 망치의 힘이여 오소서!

-오오! 파이토스 님께서 마치 직접 오신 듯하다!

-덤벼봐라,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아!

<아키서스의 제물> 버프를 받은 원정대는 세상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돌진 중이었다.

“청옥 골렘 소환! 골렘 군단 복제, 대군단 돌격! 무한한 어둠의 힘!”

이세연은 닥치는 대로 마법을 시전하며 골렘들을 소환했다.

평소에는 MP 소모 때문에 아껴뒀던 골렘들을 닥치는 대로 소환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상태가 완벽했다.

너무 버프가 대단해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김태현이 이런 버프를 걸어줄 만한 직업이 아닐 텐데?’

김태현의 직업은 여러 특이 스킬을 갖고 있는 근거리 폭딜 직업이지 저런 식의 버프 직업이 아니었다.

저런 버프 스킬을 쓰려면 만만찮은 희생을 했을 터.

일단 퀘스트가 아군 쪽에 유리하게 풀려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불안할 정도였다.

‘설마 태현 님….’

이다비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보아하니 <아키서스의 제물>을 쓴 게 분명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 없었으니 그 상대는 자기 자신!

이다비는 후회했다.

케인을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일이 벌어진 이상 원정대가 할 수 있는 건 빠르게 끝내고 도와주러 가는 것밖에 없었다.

아키서스 포병대와 플레이어들은 우측을, 이세연의 언데드 군대는 좌측을, 교단 원정대는 정면을.

일행은 세 갈래로 나뉘어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을 미친 듯이 두들겨 팼다.

그렇게 강력한 괴수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두들겨 맞았다.

-강력한 신앙의 사슬!

-매혹의 눈동자!

-심해 그물의 속박!

각 교단의 대주교들과 사제단들이 미친 듯이 뻥튀기 된 힘으로 각종 상태 이상을 걸어버리면….

퍼퍼퍼퍼퍽!

성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접근해서 살벌하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원래라면 성기사들도 괴수한테 한 대 맞으면 훅 날아갈 수 있어서 자제를 해야 하는데, 워낙 버프가 든든해서 그냥 덤벼도 됐다.

가장 짜증 나는 성기사들 특유의 전투법, ‘너 한 대 치고 나 한 대 치자’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 *

이골로약은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굶주린 혼돈이 친히 내려준 거대한 미로가 갑자기 무너진 것?

원래라면 뭉칠 일 없는 교단 놈들이 똘똘 뭉쳐서 여기 앞까지 온 것?

아니. 그건 그렇다 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저 약하던 놈들이 갑자기 뭐라도 잘못 먹은 것처럼 미쳐 날뛴단 말인가.

특히 저 아키서스 교단 출신 놈은 무슨 힘을 썼는지 정말 어마어마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악마를 우리에 넣어 데리고 다니는 놈이니, 무슨 영혼을 흡수해서 힘을 쓰는 거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교단의 우두머리 놈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쾅!

[막대한 힘으로 이골로약의 방어막을 뚫고 데미지를 입힙니다!]

[이골로약이 땅 깊숙이 처박힙니다!!]

태현이 묵직하게 공격을 날리자, 움직이는 미궁성 위에서 방어를 굳히고 있던 이골로약은 그대로 날아갔다.

가드째로 날려서 땅에 박아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이골로약이 움직이지…]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파괴됩니다!]

[……]

[……]

도망쳐야 한다!

이골로약은 처음으로 도망을 결심했다.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이골로약은 마법사 특유의 부족한 HP와 맷집을 굶주린 혼돈의 가호로 커버했다.

굶주린 혼돈이 내려준 힘이 이골로약의 몸을 감싸고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현의 공격은 한 방 한 방 들어올 때마다 가호를 파괴하고 뒤흔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순식간에 방어가 깨지고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차올랐다.

-크… 크으윽….

상대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터. 도망가서 버티면 됐다.

자존심이 좀 무너지긴 하겠지만….

[이골로약이 혼돈의 도주 마법을 준비…]

“이골로약! 설마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상대의 낌새를 예리하게 눈치챈 태현이 크게 외쳤다.

“굶주린 혼돈의 권속이 설마 도망칠 리가 있나!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태현의 말에 용용이도 맞장구를 치며 크게 외쳤다.

-굶주린 혼돈의 권속이 도망을 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면 차라리 죽어야 한다!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이골로약!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느냐! 아탈리 왕국 출신은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유령, 오도라브까지 껴서 외치자 이골로약은 벌컥 화를 냈다.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이미 충분히 짜증 나는데 아주 기름을 붓고 있는 놈들이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

[설득에 성공합니다!]

이골로약은 망설였다. 태현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도망치면 굶주린 혼돈은 죽음보다 더 커다란 벌을 내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골로약. 도망치지 않는다면 정당하게 1:1로 싸워주겠다!”

-…그게 정말이냐?

“아니!”

말과 함께 태현은 이골로약 위로 뛰어들어 맹공을 퍼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