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56화
태현은 포병대의 포격으로 스켈레톤을 녹여 버릴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의 광역기도, 사제들의 광역기도 강력했지만 포병대의 포격도 그에 못지 않게 강력했다.
제대로 준비만 되면 MP 소비 거의 없이 주변을 갈아버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물론 그 와중에 말 안 듣는 다른 교단 성기사들이 휘말릴 수 있긴 했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불운한 사고였다.
이세연을 돕기 위해 따라온, 이세연의 길드원들이 당황해서 물었다.
“어… 교단 NPC들이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고 있긴 하지만, 저들을 공격하는 건 좀 위험한 짓 아닐까요?”
“그렇군.”
“그렇죠 역시?”
태현이 말을 알아듣자 랭커들은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태현이 누군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발사.”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포병대가 설치된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서로 다른 크기와 규격을 가진 대포들이 일제히 다른 소리를 내며 포탄을 날리는 모습은 일종의 합창단 같았다.
아키서스의 키메라들과 야만전사들은 빠르게 설치 가능한 박격포를 곳곳에 배치하고 닥치는 대로 포탄을 넣고 있었다.
거인들은 자기들 체격에 맞게 만들어진 중포를 어깨 위에 올린 채 접근하는 놈들을 향해 묵직하게 한 방씩 쏴 갈겼다.
퉁, 퉁, 퉁-
그리고 가장 핵심인 드워프들.
드워프들은 포병대 특유의 거대 대포들을 악마 우리와 연결시켜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악마들의 비명은 대포 직전의 신호 같은 것.
꽈르르릉!
거대 대포가 한 번 불을 뿜자 스켈레톤들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각 교단 성기사들의 활약을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딜링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이세연은 새삼 감탄했다.
맨 처음에는 되게 괴상한 조합의 용병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볼 때마다 강해지더니 이제는 무슨 마탑 마법사단 뺨을 때릴 수준이었다.
몇천 마리 스켈레톤들이 스켈레톤 전투마와 스켈레톤 기사들을 주축으로 달려들다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성기사들도 좀 휘말렸다.
-으아아아악! 땅이 뒤집힌다!
-천상 새벽의 가호!!
다행히 성기사 특유의 생명력과 사제들의 지원이 있어 죽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폐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희까지 공격하시면 어떡한단 말입니까!
“미안하게 됐다. 그러니까 명령을 들어야지. 이쪽에서 흑마법 쓰면 방해하지 마라.”
-…….
[교단들 사이의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교단들 사이에서 악명이 올라갑니다.]
‘…얘네 진짜 상대하기 짜증 나.’
흑마법 쓰는 거 보면 악명 오르고 흑마법 쓰는 거 안 막으면 악명 오르고 싸우는 도중에도 네크로맨서 견제를 하려고 하고….
태현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이세연이 속삭였다.
“교단 개같지? 교단들 버리고 자유로운 흑마법 세계로 올래?”
“꼭 저런 교단만 있는 건 아니니까. 교단 성기사들!! 우측으로 집합!!”
태현은 화술 스킬을 써서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질렀다.
아예 교단 쪽의 전력을 우익 한 곳으로 묶어 맡길 생각이었다.
여기 플레이어들이 흑마법을 써도 따로 떨어져 있으면 비교적 문제가 덜 생길 테니까.
[최고급 화술 스킬을…]
[최고급 전술 스킬을…]
[데메르 교단 성기사단이 이동합니다!]
[타이란 교단 성기사단이 이동합니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이 일부 명령을 거부합니다!]
“발사! 저기에 쏴라!”
[파이토스 교단 내의 악명이 오릅니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단이 완전히 이동합니다!]
‘자리를 잡았군.’
태현은 안도했다.
처음에는 좀 혼란이 있었지만, 일단 원정대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이제까지 던전을 공략했던 원정대는 숫자도 적은 편이었고 이런 상황에 대비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태현의 원정대는 워낙 라인업이 화려해서, 이런 몇만이 넘는 언데드들의 파도에도 꿈쩍하지 않고 정면 승부로 버텨낼 힘이 있었다.
“접근 못 하게 막아라!! 포병대에 적들이 붙으면 딜이 막힌다!”
“예!”
플레이어들은 포병대 우선으로 주변을 막았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워낙 단단해서 잘 뚫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스켈레톤도 점점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에 몇천 마리씩을 날려 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스켈레톤은 늘어났다.
아까는 스켈레톤 와이번이 한두 마리 나오던 게 이제는 우르르 나오고, 스켈레톤 드래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드래곤이 소환됩니다!]
[스켈레톤 제사장이 나타납니다!]
[스켈레톤 대전사가 나타납니다!]
[스켈레톤 드래곤이 울부짖습니다! 피어가…]
[스켈레톤…]
[스켈레톤…]
[카르바노그가 이 뼈다귀들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고 외칩니다!]
미친 듯이 내달리는 메시지창들.
스켈레톤 네임드 몬스터들이 수십 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이런 놈들의 스킬은 매우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암흑 차원의 이동!
“놈들이 파고든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그렇게 어그로를 끌고서 단단한 벽이 되어줘도 뒤에서, 위에서 날아오는 스켈레톤들!
재칼은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아키서스 비전 암살자로 전직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여기 오기 전에 미친 듯이 연습해서 대충 스킬 콤보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뭐라도 해야 한다!!’
퍼퍼퍼퍼퍽!
재칼은 몸을 던져 공격을 막았다.
원래 탱커도 아닌, 유리몸인 암살자가 이런 식으로 탱킹을 하는 건 매우 무모한 짓이었지만….
이 공격은 의외의 효과를 발휘했다.
스켈레톤들의 어그로가 재칼에게 쏠린 것이다.
-아키서스의 비전 회피, 아키서스의 환영 춤, 아키서스의 흔들리는 바람!
재칼은 닥치는 대로 회피 스킬을 건 다음 도주기까지 사용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없던 힘까지 나오기 마련.
“으아아아아악!”
안 그래도 올라간 회피율에, 재칼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컨트롤을 펼치자 스켈레톤들의 공격이 전부 빗나가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저… 저… 저놈 누구냐?!”
“딜러가 탱킹을 하고 있잖아!?”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딜러가 자기 컨트롤만 믿고 탱킹을 하는 건 정말 고수 중의 고수만 가능한 일이었다.
까딱하면 목숨 날아가는 위험한 짓인 것이다.
김태현 같은 또라이나 자주 하는 짓이지 어지간해서는 그러지 않는 법인데…?
“재칼이란 랭커다. 김태현이 직접 데리고 왔대.”
“뭐?? 재칼이란 랭커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김태현이 감탄해서 데리고 왔다고?”
“김태현이 자기와 맞먹는다고 했다고?!”
소문은 빠르게 살이 붙기 마련.
재칼이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에는 이미 플레이어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재칼을 쳐다보고 있었다.
“와… 너 진짜 대단한 놈이었구나. 재칼.”
“어떻게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랭커가 이렇게 안 유명할 수가 있었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건가? 대단하군. 그렇게 실력을 숨기다니. 앞으로 기대하겠어.”
“…????”
재칼은 뭘 말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말을 끝내버리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들이?
“아니 이건 우연이었고 운도 엄청 따라줬….”
“그만 겸손하라니까.”
“저런 부분에서 겸손한 건 김태현하고 비슷하네. 저래서 데리고 온 건가?”
“원래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좀 묵직해야지. 암.”
“…우에엑.”
재칼은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부… 부담되어서 죽을 거 같다!
* * *
-큰일 났습니다!
“?”
-우리에 갇힌 악마들이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저런!”
태현은 경악했다.
드워프들이 꽝꽝 쏴대는 거대 대포를 책임지고 있는 악마들이 쓰러지다니.
“혈액을 꺼내서 악마들에게 먹였나?”
-워낙 지쳐서 놈들이 잘 먹지 않습니다!
“내가 가겠다!”
태현은 후다닥 달려갔다.
스켈레톤 네임드들을 썰어넘기느라 바빴지만, 이런 건 원래 전문가가 해야 하는 법.
악마들이 우리 안에 축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이놈들! 왜 피를 갖고 왔는데 먹지를 못해! 응!
드워프들이 우리를 탕탕 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악마들은 못 본 척 기절한 시늉을 했다.
“비켜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요리를 해놨지.”
굶주린 혼돈의 미로에 들어오기 전, 태현은 온갖 준비를 했다.
그 준비 중 하나에는 악마들이 탈진해서 쓰러졌을 때 먹일 요리도 있었다.
스테미너 괴식 요리!
-하지만 교황님! 저놈들이 먹질 않습니다!
“그것도 방법이 있지.”
태현은 한 손에는 성수, 한 손에는 채찍을 들었다.
그리고 뿌리면서 때렸다.
-악! 아악! 아아아악!
“먹어라! 먹기 전까지 때리겠다!”
당근과 채찍이 아닌 채찍과 채찍!
이것이 바로 아키서스식 방식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악마들을 회복시켜서 대포를 발사해야 하는 태현 입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게 없었다.
“먹어라! 맞기 싫으면!”
-…….
-…….
멀리서 싸우고 있던 다른 교단 사제들은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아키서스 교단이 정말로 악마를 가두고 있다는 게 사실이군요!
-다른 건 몰라도 저렇게 악마를 잡는 건 좋은 일 아닙니까?
-무슨! 악마를 처리해야지. 저렇게 가둬놨다가 탈출이라도 한다면….
서로 의견이 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이긴 했다.
[악마들의 힘이 회복되었습니다!]
[거대 대포가 다시 작동을 시작합니다!]
“계속 몰아붙여라!! 진형을 유지하고 딜을 더 퍼부어!”
산더미처럼 쌓인 뼈 위로 천둥번개와 같이 포탄이 작렬했다.
한 번 터질 때마다 불기둥이 솟구치고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태현은 그 사이를 겁 없이 누비며 스켈레톤 네임드들만 집중적으로 조졌다.
[광기의 폭발 검법을 실패했습니다! 폭발이 일어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광기의 폭발 검법에 성공했습니다. 폭발이 추가적으로 일어납니다!]
태현은 광기의 폭발 검법을 사용해 주변을 휩쓸어버린 다음, <아키서스의 두 번째 공격>까지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두 번째 공격!
여러 번의 광역기로 만들어진 길.
태현은 폭발 도약을 사용해 스켈레톤 드래곤 위로 뛰어올랐다.
-치명타 폭발!
-퀘에에에엑!
이제까지 쌓인 치명타 스택을 폭발시키는 공격에, 스켈레톤 대전사가 스켈레톤 드래곤 위에서 떨어졌다.
‘여기서 몰아쳐야 한다!’
워낙 적들의 숫자가 많아서 하나 잡을 때 머뭇거리거나 시간 끌 수가 없었다.
바로 잡고 이동해야 한다!
태현은 <혼돈과 악마와 불의 검>에 잠재된 스킬을 격발시켰다.
-혼돈의 폭발!!
[굶주린 혼돈의 영역에서 혼돈의 힘이 증폭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까지 추가로 받으며, 태현은 주변을 쓸어버렸다.
[스켈레톤 제사장이 사악한 주술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아키서스의 상급 마법 해제, 아키서스의 상급 마법 흡수! 아키서스의 상급 광역 결계!
태현은 아다만티움 갑옷의 스킬까지 닥치는 대로 사용했다.
원래는 상대 스킬 보고 견적 낸 다음 어떻게 했을지 결정을 했겠지만 지금은 적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템 스킬을 써서라도 화근을 막아야 했다.
‘젠장. 원래 내 스킬들이 이상한 부분들이 많아도 가성비가 좋아서 MP 부족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각종 MP 회복 장비를 중첩시켜서 입고, MP 소모가 적은 스킬들 위주로 싸우고 있는데도 MP 부족에 허덕였다.
그만큼 적과 많이 싸운 것이다.
-진실된 위대함의 축복!
[강력한 신성 마법으로 MP가 회복됩니다!]
[MP 회복 속도가 늘어납니다!]
‘오!’
태현은 반색했다.
역시 교단 NPC들을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다.
사제들이 제공하는 미친 듯이 강력한 버프들!
‘어느 교단에서 제공한 거지? 데메르인가?’
태현은 뒤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딱히 다른 교단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다른 쪽에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
대신 손을 흔들고 있는 건 이데르고 교단의 주교 후계자, 페르스메스였다.
반대쪽에서 태현을 도우려고 혼자 달려온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솔직히 감동적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