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53화
-그때 아키서스 교단은 워낙 세력이 강대했고 온갖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즐비해서 다른 교단들은 저희를 끼워주길 꺼렸거든요.
“…그, 그랬구나.”
아흐다엘이 그렇게 말했지만 태현은 완전히 믿지 않았다.
분명 아키서스 교단이 몇 대 때렸을 것 같았던 것이다.
안 그랬을 리가 없다!
-그래도 실패한 원정대가 돌아오고 나서 이야기를 들은 게 조금 있지요.
“다행이군.”
아흐다엘은 다른 교단에게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지도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지도가 추가되었습니다.]
[……]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공략대 파티가 빠르게 전멸하거나 아니면 바로 포기하고 물러선 것 때문에 안의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부딪혀보면서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나?”
-위험한 곳이니까 다른 교단과 함께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 진짜?”
태현은 의아해했다.
물론 태현도 다른 교단과 함께하는 걸 굳이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흐다엘이 저렇게 말하니까 좀 의아했다.
아흐다엘은 아키서스 교단 내에서도 상당한 강경파.
기본적으로 머리 3개 달리고 팔 6개 달린 종족은 교단 내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살벌했던 것이다.
-네. 앞에 세워서 화살받이로 쓰시죠. 실패할 경우 먹이로 던지고.
“…그래….”
이어지는 아흐다엘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굶주린 혼돈의 미로-대륙 교단 퀘스트>
굶주린 혼돈의 등장은 대륙의 교단들 모두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들도 지금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 화신의 설득에 따라 원정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사이가 좋은 교단들을 우선적으로 설득해 원정대를 구성하라!
보상: ?, ???
“어… 음….”
사이가 좋은 교단이면….
[카르바노그 교단과 사이가 좋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고맙다. 정말 위안이 되는구나.’
“그나마 데메르 교단하고, 헤넨 교단하고 친한 거 같은데.”
땅과 치유의 여신 데메르 교단은 대륙에서 가장 인기 좋은 교단이었다.
플레이어들한테 인기 좋은 게 아니라 교단들 사이에서.
그나마 아키서스 교단하고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니….
도둑들의 교단 헤넨 교단은 저번에 좀 친해진 편이었다.
‘생각해 보니 좀 아쉬운 놈들하고만 친해지는 거 같은데.’
-그걸로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보니까 저 위에 각 교단의 영웅들이 있던데요.
아흐다엘은 하늘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 각 교단의 (늙은) 영웅들이 기억을 상실하고 아키서스 교단에 갇혀 있는 걸 보고 아흐다엘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많은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중에서도 이런 위업을 그 누가 해냈겠는가?
저런 번쩍이는 재능을 보니, 대륙에 신이 없더라도 아키서스 교단의 미래는 창창할 거라는 확신이 왔다.
-교황님께서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납치하신 거겠죠? 교단 놈들을 협박하기 위해서?
“아니. 그런 깊고 사악한 의도는 아니었….”
-에이. 너무 겸손하실 필요는 없어요.
“…….”
-저자들을 써먹죠. 이럴 때 쓰면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거 아니겠어요? 그냥 팔아먹지 말고 살벌하게 협박을 해서 팔아먹어요. 안 받아 가면 죽인다던가….
‘그냥 팔아먹어야겠다.’
태현은 아흐다엘의 말은 반쯤 걸러 들었다.
저 조언 따르는 순간 아키서스 교단은 진짜 대륙공적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알겠다. 한 번 해보도록 하지.”
확실히 저 하늘성에 있는 늙은 영웅들은 좀 애매하긴 했다.
마계 공작한테 한 번 크게 얼려졌다가 풀려나서 그런지 상태도 별로고, 오래 싸우지도 못하고, 여러모로 깜박깜박하고….
게다가 다른 교단들한테 들킬까 봐 제대로 밖에 동원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이쯤에서 비싼 값에 파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 * *
“와!! 아키서스 교단이 보낸 사신단이야!”
플레이어들은 화려한 행렬에 깜짝 놀랐다.
아키서스 교단의 깃발을 들고서, 화려한 신전 마차들이 도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볼 일 없는 희귀한 이벤트!
“파이토스 교단으로 가나 본데!?”
“무슨 퀘스트 나오나보다!”
두 교단이 서로 연락하고 그럴 정도면 퀘스트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플레이어들은 부푼 마음으로 달려갔다.
-…어디 교단?
-아키서스 교단에서 왔습니다.
-없다고 그래라!
-저, 그,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분께서 없다고 해봤자 소용없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파이토스 교단 대주교 중 하나인 후리도스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예측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들어오라고 해라.
-괜찮겠습니까? 대주교님?
-끄응. 어쩔 수 없지.
파이토스 교단은 대표적인 대륙의 거대 교단 중 하나.
주교 한두 명도 겨우겨우 유령 상태인 사람을 데리고 오는 아키서스 교단과 달리 대주교도 여럿이었다.
때로는 반목하고, 때로는 화합하고.
이러면서 점점 더 발전하는 파이토스 교단이었지만….
이 대주교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는 사안이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과는 상종하지 마라!
역사적으로도 엮여서 좋은 꼴을 봤던 적이 없었지만, 교단이 부활하고 나서는 특히 그랬다.
새로운 교황과 그 밑의 하수인들의 수완이 생각보다 너무 대단했던 것이다.
왕국을 장악하질 않나 간교한 혓바닥으로 신뢰를 얻질 않나….
그런 놈을 만나게 됐으니 기분이 편치 않았다.
-나, 펠마스요!
-…반갑소. 파이토스의 하찮은 종이자 주교를 맡고 있는 후리도스요.
-그렇군. 내 직위는 아키서스의 위대한 종이자 교단 서기관 및 관리관 및 사법관 및 외교관을 맡고 있는 펠마스요.
-…….
후리도스는 펠마스의 반응에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 저런 새끼가 있냐?
그보다 신실한 사람이 보통 신 이름을 붙이고 그 다음에 ‘위대한’ 같은 걸 쓰나?
-…뭔 일로 오신 것이오?
-실은 위대한 교황님께서 그쪽 교단의 옛 영웅을 발견하셨소.
-!
주교는 깜짝 놀랐다.
교단의 역사가 긴 만큼, 사라진 영웅들도 많았다.
그런 영웅을 찾았다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와야 했다.
교단의 실전된 스킬들부터 지식, 아이템 등등을 얻을 수 있는 기회!
-…그건 정말 잘 된 일이오!
주교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키서스 교단도 가끔은 좋은 일을 하다니.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다.
펠마스는 헛기침을 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흠흠. 그런데 저희 교황님께서 이번에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리고 있는데….
-!!
굶주린 혼돈까지?
파이토스 교단 입장에서도 굶주린 혼돈은 아키서스만큼이나, 아니, 아키서스보다 더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 원정대에 파이토스 교단의 뛰어난 영웅들이 참가하면 얼마나 좋겠소?
-으음!
-설마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서 돌려드리는데 거절하진 않으리라 믿소. 거절하면 뭐… 그 영웅께서 어떻게 될지….
-아니 지금 협박하는 것이오!?
-협박이 아니라 뭐 그냥 그렇다고….
주교는 기가 막혔다.
뭐 이런 놈들이 있냐?
* * *
“사실 파이토스 교단 소속이었던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 공작의 마력으로 인해 기억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
[……]
[말뜻이 틀리게 전달됩니다!]
-훗. 그렇군. 파이토스 교단에 들어가서 스파이 역할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 어르신. 그게 아니라요.”
태현은 당황했다.
분명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는데도 통하지 않는 가는 귀!
“어르신은 원래 사실 파이토스 교단이었는데 뭔가 오해가 있어서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라고 했던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거 참. 젊은 친구. 날 뭘로 보고. 이해했네. 그런 설정이란 뜻이지?
파이토스 교단의 늙은 영웅, 오벨탄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런 설정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
“…사실 그랬습니다. 가서 스파이 역할 잘 해주십쇼.”
[카르바노그가 뭐하는 거냐며 기겁해합니다!]
‘아니. 난 최선을 다했어. 선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태현도 사람인데 각 교단과 사이 나쁜 게 좋을 리 없었다.
처음에야 교단이 쫄딱 망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거친 수단을 써서 교단을 확장했지만, 이제는 좀 사이를 좋게 해도 됐다.
마침 저번에 퀘스트 보상으로 적대도가 초기화됐으니 이번에야말로 좀 선의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세상이 자꾸 태현을 몰아가고 있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써서 저렇게 말을 했는데도 못 알아먹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아키서스 교단의 목마-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옛날 옛적, 아키서스 교단은 멋들어진 목마 하나를 지어서 적 교단의 요새 앞에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멍청한 적 교단은 멋들어진 목마를 요새 안으로 갖고 들어갔고,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교단의 암살자들이 나와 요새를 쓸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상대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배신자를 만들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교단의 스파이를 만들어 놓으십시오. 이는 나중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상: ?, ???
‘…퀘스트도 날 떠미는군. 이제 어쩔 수 없다.’
신원 확인된 교단의 영웅들, 파이토스 교단, 타이란 교단, 네이바쿠 교단, 베레타르바 교단의 영웅들은 각자 인사를 하고 자기네 교단으로 떠났다.
-들키지 말게!
-자네야말로! 후후후!
떠나는 뒷모습을 본 태현은 문득 불길해졌다.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게 맞은 걸까?
‘너무 미친놈처럼 하고 있나 지금?’
[카르바노그가 말을 아낍니다.]
* * *
태현은 그렇게 착실하게 준비를 해나가며 주변의 정보를 수집했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다른 파티였다.
“이름 있는 공략 파티 서너 군데 실패하고 나서부터는 다들 발길이 끊겼어.”
“…어쩔 수 없군. 이다비. 게시판에 글 올리자. <굶주린 혼돈의 미로>가 그렇게 랭커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네!”
“…!”
가짜 여론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목격한 이세연은 경악했다.
원래 게시판의 소문을 잘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걸 보니 더더욱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
“이걸 보고 랭커들이 좀 더 많이 도전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뭐? 벌써 속았어?”
“아직 올리지도 않았어요. 여기 지금 중계하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녹색 물결.
그 익숙한 모습에 태현은 중얼거렸다.
“아니… 아버지….”
바로 김태산과 오크 아저씨들이 수군거리며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형님. 진짜 <굶주린 혼돈의 미로>를 들어가야 합니까? 집에 저 하나만 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데?”
“그건 네가 주말에 애들이랑 안 놀아주고 캡슐에 들어가서 게임해서 그런 거 아니냐?”
“…아니… 너무하시네….”
“너무하긴 뭘 너무해? 게임하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오크 아저씨들은 <굶주린 혼돈의 미로>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반사신경도 떨어지고, 무엇 하나 젊은 친구들보다 유리한 게 없는 상황.
쟁쟁한 랭커들도 피하는데 아저씨들이 무슨 욕심이 있어서 들어가고 싶겠는가.
“근데 봉식이가 저 나이에 도전을 한다잖냐. 우리가 도와줘야지.”
“…….”
아저씨들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주봉식.
아저씨들 중 한 명이자….
이번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에 참가한 선수 후보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