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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52화 (1,351/1,826)

§ 나는 될놈이다 1352화

“표정이 안 좋은데? 억지로 데리고 온 거 아니야?”

이세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얼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모습이 마치 판온 1에서 태현한테 붙잡힌 길마들 같았던 것이다.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반박했다.

“억지 아니거든? 퀘스트 얼마나 즐겁게 같이 깼는데.”

“…?”

그 말에 이다비가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깨는 사람이 즐거울 수가 있나?

제일가는 광팬도 태현과 함께 퀘스트 한 번 하면 ‘화면 너머로 뵙는 게 낫겠습니다’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즐거웠지?”

“어… 그렇지. 나는… 정말 즐거웠다….”

‘아무리 봐도 협박당한 것 같은데?’

이세연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더 캐묻진 않았다.

판온에 태현한테 협박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뭐 이제 와서 새삼 그걸 따진단 말인가.

중요한 건 협박당했냐 안 당했냐가 아니라 퀘스트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였다.

그리고 태현이 협박해서 데려올 정도면 쓸 만한 인재라는 뜻!

“보니까 10명 미만으로 공략하는 건 좀 애매해 보이던데.”

“그렇지. 규모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어.”

태현의 말에 이세연도 동의했다.

던전에 따라 공략하는 인원도 나뉘기 마련.

<굶주린 혼돈의 미로>는 5, 6명으로 공략하기에는 좀 아슬아슬해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최소한 열 명 이상으로 가고 싶었다.

“너희 팀원들은?”

“걔네들은 지금 각자 바빠서 부르기 힘들어. 너희 길드원들은?”

“몇 명 부르긴 했어. 우리 길드원들은 원래 숫자가 적은 데다가 자기 퀘스트 깨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더 부르기가 좀 그래.”

태현과 이세연 모두 대형 길드 소속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서는 동원력이 약했다.

대형 길드 소속이었다면 손짓 한 번으로 랭커 열댓 명을 우르르 부를 수 있었겠지만….

“아는 랭커들 중에서 불러볼까?”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괜히 귀찮아질 수 있을 텐데.”

“하긴 그것도 그래.”

아는 랭커들이야 많았지만 실력과 인성 모두 다 믿을 수 있는 랭커는 흔치 않았다.

당장 랭커들에게 이세연은 발목 잡고 끌어내려야 하는 경쟁자인 것이다.

게다가 김태현까지 있다고?

-…반드시 실패해야 해!

같은 식으로 훼방을 놔도 이상할 거 없었다.

“흠… NPC를 늘려볼까?”

“NPC도 괜찮지. 앗. 너희 교단의 간부들을 부르려고?”

“아니. 그건 쓰레기고.”

“…….”

“…….”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즉답하는 태현의 모습에 이세연은 당황했다.

야 너희 교단이야…!

“일단 페르스메스를 데리고 갈 생각이야.”

“페르스메스는 누구지?”

“주교 후계자 NPC.”

“!”

이세연은 반색했다.

NPC 중에서 주교 후계자 정도라면 그 레벨은 물론이고 갖고 있는 스킬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런 NPC라면 대환영이었다.

“뭐야! 쓰레기라고 해놓고 그런 NPC를 숨기고 있었어?”

“우리 교단 NPC 아니라 이데르고 교단 NPC인데.”

“…….”

주변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세연은 사과했다.

“미안….”

“왜 사과를 해? 사과하지 마.”

사과하니까 더 슬퍼지잖아!

“흠. 아키서스 포병대를 데리고 갈까? 딜은 확실히 잘 넣는데.”

아키서스 포병대!

야만전사들과 아키서스의 키메라들이 주변을 호위하고, 뛰어난 드워프 장인들과 거인 일꾼들이 대포를 관리하고 조종하며, 악마들이 마력을 지원해 주는, 완벽한 팀워크의 다종족연합파티였다.

태현의 부름이 없을 때는 왕국을 돌아다니며 모험가들을 지원해 주는 이 든든한 집단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매우 좋았다.

-도적 요새 토벌 퀘스트가 나와서 비싼 돈 내고 포병대를 불렀는데 만족도가 최고예요! 그냥 요새를 갈아버리더라고요!

-마법사 NPC 부르거나 스크롤 필요 없더라. 포병대가 훨씬 좋음. 다만 아탈리 왕국에서만 쓸 수 있는 게 아쉽긴 함.

-그런데 우리에 있는 악마들이 자기들 속아서 갇혔다고 구해달라고 비명 지르던데 그건 뭐임?

-멍청하긴. 그게 악마 속임수잖아. 그거 열면 악마가 너 공격한다.

-헉. 악마 놈들 진짜 비열하네.

-그러니까. 악마의 말은 절대 믿어주면 안 돼.

“아키서스 포병대… 괜찮겠다. 던전 안은 엄청 넓었으니 포병대의 거인들이나 대포, 악마 우리가 지나갈 길이 충분할 거야.”

말이 미로였지 던전 안은 매우 드넓었다.

넓으면 넓을수록 아키서스 포병대가 활약하기 좋았다.

“이 정도면 대충 구색은 갖춘 것 같은데? 공략 계획 짜보자.”

“좋아. 영상 갖고 왔으니까 여기서….”

“아. 그 전에 나 폭탄 좀 만들고. 그 다음에 소환수들 밥 좀 주고.”

“…그, 그래. 옆에서 구경할게.”

“구경을? 재미없을 텐데.”

* * *

“킥킥킥킥킥!”

“힉힉힉힉힉!”

‘진짜 미친 사람들 같은데.’

<악마의 대장간>에 있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아. 김태현 님 오셨습니까.”

그러다가 태현이 들어오자 매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방금 뭐하고 있었던 거냐?”

“필드에서 적 만났을 때 적들이 겁나서 도망치게 만들려면 어떤 복장이 좋을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잖아. 그냥 벗고 다니자니까? 벗고 다니면 사람들이 은근히 공격을 못 해.”

“아니. 하지만 그건 방어력이 너무 약한데….”

안에서 벌어지는 근사한 토론에 뒤에 있던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아. 다른 분들도 오셨네요?”

“파워 워리어 길마님이시다!”

“아앗. 길마님!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께서!”

“여기 앉으십시오!”

“의자 없냐? 의자 어디 갔어?”

“네가 날려먹었잖아…!”

“젠장. 터뜨린 놈이 엎드려! 책임져라. 네가 의자다!”

“어쩔 수 없지. 길마님! 제 등 위에 앉으십시오!”

기계공학 대장장이 중 한 명이 엎드렸다.

세상만사 다 무시하고 폭탄에만 열중하는 이들이었지만, 파워 워리어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이 가진 폭탄을 가장 먼저 실험해 주고, 재료 필요하면 찾아서 가져다주고, 폭탄 만들면 가져다가 팔아주는 든든한 동료였던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

그런 곳의 길마가 왔으니 충성충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앉, 앉기 싫지만… 성의는… 성의니까….”

이다비는 눈을 질끈 감고 앉으려고 했다. 태현은 엎드린 사람을 발로 걷어찼다.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말고 비켜라. 안에서 의자 갖고 와. 아니면 내가 즉석에서 만들 테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악마의 대장간>의 주인이자, 악마 대장장이인 사루온이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의 주인인 에슬라는 봉인에서 해방되어서 마계로 돌아갔지만 사루온은 골짜기에 남아 이렇게 NPC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옆이 교단 총본산인 게 좀 흉흉하긴 했지만, 의외로 골짜기 생활은 만족도가 높았다.

악마가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뿜어내는 희로애락 같은 감정들.

…그리고 골짜기는 이런 감정들을 매우 잘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폭탄을 하나 만들려고 왔다.”

“!”

-!

태현의 말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부터 사루온까지 깜짝 놀랐다.

태현이 직접 와서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문 닫아라!”

“뒤에서 작업하고 있는 놈들 다 오라고 해! 이건 들어야 한다!”

-무슨 폭탄을… 만드시려고 하십니까?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담긴 폭탄을 만들려고 하는데.”

태현은 말과 함께 조각을 꺼냈다. 그 안에 담긴 사악한 힘에 사루온은 경악했다.

‘저런 미치광이 같은 교황을 보았나!’

“왜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아… 아닙니다.

사루온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원래도 두려운 인간이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을 쓰려고 하는 걸 보니 그 두려움이 두 배로 늘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도 쓰려는 놈인데, 악마 하나 정도는 그냥 죽이고도 남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쓰는 게 과연 정말로 괜찮은 생각일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사루온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굶주린 혼돈은 대륙과 교단만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악마들도 굶주린 혼돈은 싫어했다.

선악 가리지 않고 무조건 꿀꺽 삼켜버리는 놈인데 당연히 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미친놈의 힘이 담긴 폭탄이라니 아무리 봐도 불길했다.

“사루온 님!!!!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실망입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격노했다.

평소에는 ‘큭큭 악마의 힘이라는 건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피, 살, 뼈 등등 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쓰는 것이지…’ 하면서 폼을 잡던 사루온이었다.

그런 사루온이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하다니.

-아… 아니. 오해하지 마라. 나는 겁을 먹은 게 아니다.

“그러면 왜 거절하시려고 한 겁니까!”

-아니라니까! 그냥… 그냥 예의상 한 말이다! 난 지금이라도 바로 만들고 싶지!

“역시…!”

“죄송합니다! 저희가 오해했습니다!”

사루온은 속으로 제자들을 욕했다.

평소에는 귀여운 놈들이었지만 오늘은 매우 밉상이었다.

“잘 됐군. 사루온. 같이 열심히 만들어보자고.”

-…….

사루온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폭탄 만들다가 굶주린 혼돈한테 찍히는 일이 생기질 않길 빌 수밖에.

‘굶주린 혼돈 그놈 한 번 찍히면 골치 아픈데….’

* * *

굶주린 혼돈을 막기 위해, 대륙으로 찾아온 각 교단의 천사들.

그중 아키서스 교단의 상급천사 아흐다엘이 있었다.

야심 차게 내려왔지만 굶주린 혼돈…이 아니라 예전에 원수진 악마들의 습격으로 인해 크게 다치고 골짜기의 대신전 깊숙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급천사!

태현은 아흐다엘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

-앗. 화신님!

아흐다엘은 여섯 개의 팔로 검, 도끼, 창, 지팡이, 곤봉, 방패를 휘두르며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오러가 폭발하듯이 솟구쳤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부상이 회복 안 됐는데 저 정도면 부상 회복되면 어느 정도로 강한 거야?

-이렇게 공간을 제공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는 내가 해야지.”

대륙에 내려온 것뿐만 아니라, 아흐다엘이 골짜기에 있는 덕분에 버프 먹은 게 쏠쏠했다.

-이렇게 찾아오신 걸 보니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겠군요. 드디어 굶주린 혼돈의 군세가 대륙을 불태우고 왕들의 목을 베어가며 이 골짜기 앞까지 쳐들어온 거겠죠?

“…아닌데?”

뭔 상상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아니에요? 에이… 굶주린 혼돈이 좀 일을 못하네요. 한동안 쫓겨나 있어서 감을 잃었나?

“…….”

-아니면 화신님께서 일을 너무 잘하셔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런 거면 좋겠군.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굶주린 혼돈의 미로>라는 곳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아. 그 던전 이름 들어본 적 있어요.

“!”

예상치 못한 말에 태현은 반색했다.

아흐다엘이 알고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다.

“잘 됐군. 어떤 던전이지?”

-아주 예전에 한 번 여러 교단이 힘을 모아서 그 던전을 공략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요.

굶주린 혼돈은 나타날 때마다 대륙의 공적으로 뽑혔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먹어 삼키는 탐욕스러운 괴물!

이 굶주린 혼돈의 던전 중 하나를 깨기 위해, 여러 교단의 영웅들과 천사들이 모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너도 그때 같이 참가했었군?”

-아니요.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같이 안 끼워줬어요.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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