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51화
아쉽게도 신앙은 구독 버튼 두 번 누르는 것처럼 쉽게 믿었다 취소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포기하고 작업에 몰두했다.
페널티 있는 작업이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으니까.
“준비됐나?”
“가자.”
태현과 필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작업에 들어갔다.
전투 스킬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대장간 모루와 화로 앞에 서서 망치를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의 뒤에서는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거장의 풍모!
그걸 보고 있던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땅, 땅, 땅-
‘이게… 이게 최상위권 랭커의 박력인가?’
‘그냥 제작만 하고 있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멋있다…!’
서로 말없이 호흡을 맞춰가며 전력을 다하던 태현과 필.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실패했군.”
“다시 해야지 뭐.”
“…….”
“…….”
“왜 그러나?”
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의 표정이 기묘했던 것이다.
“아… 아니. 성공한 줄 알았습니다.”
너무 비장하고 멋있어서 성공한 줄 알았는데 실패였어?
“대장장이 일이 뭐 이렇지. 99번 시도해서 1번 성공하면 좋은 거지.”
“맞는 말이야. 999번 시도해서 1번 성공해도 감지덕지니.”
“뭘 좀 아는군. 훗.”
필은 코밑을 쓱 훔쳤다.
평소 태현에게 노예처럼 부려 먹혔던 응어리가 남아 있었지만, 이렇게 같이 마주 보고 망치질을 하니 그런 마음이 싹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필 씨!”
“왜 부르나?”
“지금 두 분이 같이 제작하는 거 찍어도 됩니까?”
“난 괜찮다만… 김태현 선수는 어떻지?”
“나도 괜찮다. 그런데 뭐 어디에 쓰려고?”
“기념입니다. 기념.”
딱히 어디에 쓰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이 두 대장장이가 서로 같이 작업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전설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남겨야 한다!
“아. 찍으면 나도 좀 주게. 게시판에 올려야겠군.”
“무슨 게시판?”
“대장장이 랭커들끼리 모이는 비밀 게시판이 있네.”
“…난 처음 듣는데?”
태현의 질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 한 명이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이름을 착각한 게 아닐까요?”
“야. 그건 좀 아니다. 말을 해도 뭐 그런 변명을 하냐.”
“그럼 니가 분위기 바꿔보던가!”
“아니… 게시판 초대 안 했다고 내가 뭐 화나거나 그러진 않는데.”
태현은 딱히 상처받지 않았다.
판온 1에서도 그런 거 초대 못 받았으니까.
지들끼리 놀면 지들끼리 노는 거지 뭐 그런 거 갖고 상처 받지는 않았다.
“…내가 초대해 줘도 괜찮겠나?”
“게시판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태현은 궁금해졌다.
뭔 이야기를 하길래?
“흠… 보통 뭘 제작하는지, 어떤 퀘스트를 하는지, 어떤 재료를 찾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어떤 스킬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하곤 하지.”
랭커들의 게시판은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살벌한 전쟁터였다.
제작 직업 같은 경우는 서로 PVP를 뜰 수 없었기에 더욱더 그 어둠이 심했다.
-지금 내가 제작하고 있는 건 오리하르콘에 오리하르콘을 섞은 고대 제국 황제의 검이지. 퀘스트가 워낙 많아서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자식… 진짜인가? 크윽. 나도 질 수 없지.’
-아직 제작 못 했다니 아쉽게 됐군. 난 이번에 고대 제국 황제의 방패를 거의 완성했는데. 덕분에 아다만티움 구한 걸 다 썼어. 김태현이 아다만티움 장비에는 일인자라고 하는데, 이제 곧 그 이름이 바뀔 거야.
‘크윽. 이놈. 난 거짓말이었는데 이 자식이…?’
-난 강화를 다섯 번 해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 스킬을 얻었지. <무한의 강화>란 스킬인데.
‘뭐? 그런 스킬이 있어??’
…이렇게 서로 허세를 부리면서 가짜 정보를 섞는 것이다.
당연히 서로 랭커인 만큼 치열하게 견제하는 것!
물론 이렇게 가짜 정보만 있는 건 아니었고 쓸 만한 정보들도 많았다.
가끔은 서로 협력해서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들기도 하고, 같이 퀘스트를 깨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이세연도 흑마법사 랭커 게시판 쓴다고 들었던 거 같아.”
“김태현 선수는 왜 안 쓰십니까?”
“그야….”
성기사 게시판에 들어가야 하나?
기계공학 랭커 게시판은 들어가기 싫은데….
“…필요 없어서?”
“오오….”
“역시. 확실히 최고에게는 그런 게시판이 필요 없다는 마인드인가요?”
“아니 그런 거창한 마인드는 아니고….”
“멋있긴 하다. 그치?”
“우릴 쥐잡듯 잡긴 하지만 그래도 저럴 때 보면 멋있긴 해.”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떠드는 사이, 필은 글을 올렸다.
<허허,,, 횐님들,,, 저가 이번에 작업 한 번 같이 해,봣읍니다.>
“…….”
“…….”
옆에서 보고 있던 태현과 길드원들은 소름이 돋았다.
잊고 있었지만 필은 여기서 가장 나이 많았던 아저씨!
다들 그를 쳐다보자 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문제 있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필 씨. 파이팅!”
‘말려야 하지 않나?’
‘말렸다가 상처받으시면 어떡합니까?’
* * *
-어? 필이 글 올렸네.
필은 대장장이 랭커들 사이에서 나름 신뢰도가 높았다.
온갖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놈들 중에서 그나마 거짓말 안 하는 사람!
덕분에 필이 글을 올리자 대장장이 랭커 여럿이 글을 확인했다.
‘누구랑 같이 작업을 한 거지?’
‘필하고 아는 사이면… 제너럴갓태현 아닌가?’
‘제너럴갓태현 그 새끼 진짜 너무 재수없어. 잘나가서 더 재수없어.’
‘…!!!?!?!’
별생각 없이 글을 확인한 랭커들은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대장간에, 많이 익숙한 대장장이 랭커!
바로 김태현과 같이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 미친…!
-김태현하고 같이 작업을 하고 있어?? 왜???
-김태현 아버지랑 친구신가??
-내가 그거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안 먹히던데??
-…그걸 해봤다고?
놀랍게도 대장장이 랭커 중에서는 김태산에게 접근해서 환심을 산 다음 태현의 꿀을 빨려고 했던 랭커도 있었다.
물론 김태산과 아저씨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랭커들은 충격으로 떨었다.
김태현이 누구랑 같이 공동작업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봤던 것이다.
그들은 충격으로 떨면서 리플을 남겼다.
<허허,,, 횐님들,,, 저가 이번에 작업 한 번 같이 해,봣읍니다.>
└멋있습니다^^
└같이 작업하는 대장장이 실력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맞아. 필에 비하면 좀 스킬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랭커들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우린 조금도 부럽지 않아!
물론 눈치 없는 놈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아닌데? 김태현이잖아? 필 씨. 김태현하고 같이 한 거 보니까 부러운데 저도 좀 초대해 주십시오.
‘아니 제너럴갓태현 이 새끼 진짜 눈치가 없나!’
랭커들은 제너럴갓태현을 욕했다.
다들 별 거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고 애쓰는데 치사하게 혼자…!
└그럴까요,,,? 제너럴갓태현 횐님, 다음에 한 번 불러드리겟습니다,
“?????”
“?!?!?”
‘안 돼!’
‘필! 저런 새끼 부르지 마!’
‘차라리 날 부르라고!’
랭커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냥 솔직하게 같이 하자고 해볼걸!
태현이 대장장이 랭커로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다들 정확히 알지 못했다.
워낙 영상 공개도 하지 않고 알려진 정보 자체가 적은 것이다.
하지만 결코 낮은 편은 아니었다.
만든 아이템들 보면 각종 희귀한 유니크 스킬들을 갖고 있는 게 분명!
그리고 솔직히 실력이 낮더라도 같이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럴 기회가 언제 찾아온단 말인가.
-크으으으으으으….
-제너럴갓태현 이 새끼…!
* * *
[추출에 성공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얻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굶주린 혼돈의 정수: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갖고 있는 기운의 조각이 뭉쳐진 정수다. 이 정수를 사용하면 강한 힘을 불러올 수 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불러낼 경우 저주받을 수 있음)
“악, 악명이 올랐어! 악명이 올랐단 말이야!”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도 신호등 기다렸다가 건너는 필은 안절부절못했다.
악명이 오르다니!
그에 비해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괜찮다. 내려가서 기도 몇 번 하면 악명 좀 내려갈 테니까.”
“진, 진짜인가? 다행이군. …아니, 왜 악명이 내려가지?”
필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건 태현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키서스 교단의 기도 효과 중 하나!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여럿 확보한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원래 장비에 녹여 넣으려고 만들었는데….
‘하. 이거 진짜 만병통치약 같은 놈이군.’
<굶주린 혼돈의 정수>가 너무 쓸모가 좋았던 것이다.
싸울 때 써도 좋고 대화할 때 써도 좋고 제작할 때 써도 좋고….
워낙 쓸모가 좋으니 섣불리 쓰는 게 망설여졌다.
이렇게 순도 높은 정수를 얻을 기회가 흔치 않은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장비는 확실히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냥 써서 힘을 불러내는 건 태현의 신성 스탯도 있고 권능도 있었으니 저항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힘이 들어간 장비를 계속 입고 다니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긴 그건 좀 겁없는 짓이긴 해.’
태현은 고민했다.
한 번 써보고 싶긴 한데….
“그러면 폭탄에 넣어서 써봐야겠다.”
[카르바노그가 두려움에 떱니다!]
미친 발상 같았지만 확실히 말은 됐다.
폭탄은 계속 장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한 번 터뜨리면 끝이었으니까.
“폭탄 제작하는 거, 구경해도 괜찮나?”
필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게 악명 자자한 폭탄 제작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상관은 없는데, <악마의 대장간>으로 내려가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랑 같이 만들 건데.”
“…난 여기 있겠네!”
필은 빠르게 포기했다.
* * *
내려와서 악마의 대장간을 향하던 태현은 이세연 일행을 마주쳤다.
“직업 퀘스트 깼다면서? 암살자였어 그게?”
“응. 생각보다 되게 괜찮은 친구들이더라.”
“…?”
이세연은 태현의 말에 순간 혼란에 빠졌다.
보통 암살자 NPC들은 인성 더럽고 사악하지 않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김태현. 나 제안 하나 하려고 왔어.”
“?”
“<굶주린 혼돈의 미로>. 우리가 깨자!”
“…!”
생각지도 못한 이세연의 제안에 태현은 놀랐다.
랭커 파티 몇몇이 갈려나갔는데도 이세연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얼핏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확고한 자신감이었다.
‘무슨 생각이 있나 보군!’
저런 자신감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기 마련.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수락할 줄 알았어. 넌 일부러 난이도 높은 퀘스트만 깨잖아.”
“…아닌데???”
“응? 아니야? 그런 줄 알았는데.”
뒤에 있던 류태수도 그런 줄 알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태현이 남들 안 하는 직업 좋아하는 거지 일부러 쓰레기 골라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뭐 이런 오해를…?
“그런데 그 뒤의 분은 누구?”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 어색하게 서 있는 플레이어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바로 재칼이었다.
“아. 여기는 재칼인데. 저번 퀘스트를 깨면서 만났어. 실력이 괜찮더라.”
“진짜? 네가 그럴 정도면 진짜 괜찮은 모양인데.”
‘죽고 싶다…!’
재칼은 심장이 쿵쿵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이거 혹시 김태현이 그를 괴롭히려고 데리고 온 거 아닐까?
감히 케인의 친구를 사칭한 그를 따끔하게 벌하기 위해서라면 말이 됐다.
그렇지 않다면 이 쟁쟁한 랭커들 사이에 데려다놓고 칭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으흑흑…! 용서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