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48화
펠마스가 놀라거나 말거나, 갈락파드는 진지하게 쥐, 로샤크에게 말을 걸었다.
-저런! 이번에 비전 암살자들을 데리고 오셨습니까. 실로 대단하시오.
-찍찍.
-우리 말이오? 허… 이런 부끄러운 일을 말하기는 뭐하지만, 저 한심한 친구가 일을 망친 탓에 기껏 이데르고 교단에서 붙잡아 온 놈에게서 정보를 못 얻어내고 있소이다.
-찍찍찍.
-왜 그냥 두고 있냐니… 교황 성하께서 자비롭고 너그럽기 때문 아니겠소. 저도 저놈은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만….
-이 자식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펠마스는 씩씩대며 갈락파드의 말을 막았다.
어느새 둘이서 손을 잡고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여기 쥐… 분께서 비전 암살자의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이 일은 쉽게 해결하지 못할 거다. 우리니까 그나마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거다!
-찍찍찍?
-직접 들어가서 놈을 굴복시키시겠다고? 그래도 되겠지만 이거 미안해서….
갈락파드의 말을 더 기다리지 않고, 로샤크는 훌쩍 뛰어내리더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찍찍찍.
[이데르고 교단의 주교 후계자, 페르스메스가 항복합니다!]
[페르스메스가 아키서스 교단에 굴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증오가…]
[……]
[……]
-오오오! 역시!!
-…….
펠마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저 쥐는 대체 뭐야?
* * *
‘영지에 돌아온 김에 미뤄뒀던 일들 좀 해야겠군.’
여러 교단 NPC들이 골짜기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 맡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태현이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건….
‘일단 굶주린 혼돈의 갑옷에서 조각 추출하고, 이번에 사냥한 괴수 고기들을 이용해서 불불이한테 먹일 요리를 만든다.’
1왕자에게서 얻은 갑옷을 녹여서 굶주린 혼돈의 조각을 빼내려고 한 건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었다.
다른 교단이야 ‘히익! 어떻게 그런 사악한 힘을!’이라고 질색하겠지만 태현 입장에서는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 같은 반응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놈들도 이용하면서 살아왔던 게 아키서스 교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하 둥지를 싹 토벌하면서 괴수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태였다.
-잡았다!
-아니, 그런데 왜 머리가 3개가 나오지? 머리 하나 아니었어?
-멍청한 놈. 이게 아키서스 교단의 기적이다!
-…기, 기적이 원래 이렇게 소소하고 실용적인가? 뭔가 좀 더 거창해야 하지 않나?
태현의 각종 버프 덕분에 괴수들을 사냥한 약탈자들은 몇 배로 나오는 괴수 사체에 깜짝 놀라야 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처럼, 김태현도 그런 능력이 있는 건가?
뭔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이 괴수 고기를 계속 갖고 다니는 것보다는 활용하는 게 좋았다.
양이 어마어마했으니 태현이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게 좋을 것이고….
‘무엇보다 불불이를 성장시켜야 해.’
이번 싸움에서도 느낀 거지만 불불이의 성장이 너무 느렸다.
그렇다면 먹여서라도 키우겠다!
“골짜기에 공지를 내려야겠다. 퀘스트를 준비하도록.”
-아니! 무슨 퀘스트를 내리실 생각이십니까?
“드래곤 요리에 자신 있는 사람을 모으도록.”
-아! 드래곤 고기를 요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태현은 사제 NPC의 반응에 당황했다.
드래곤 고기가 거기서 왜 나와?
-아니십니까? 전 새로 잡으신 줄….
-주인이여…?
-주인님…??
두 드래곤이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태현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 드래곤 고기가 아니라, 드래곤에게 좋은 요리!”
-아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희를 위한 요리입니까?
“아니. 불불이 먹일 요리인데.”
-…….
흑흑이가 매우 서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태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너희 것도 해줄게.”
* * *
[골짜기에 교단의 새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새 퀘스트라는데?”
“후. 이래서 뉴비는… 내가 잘 설명해 주마.”
무려 아키서스 교단 실버 등급인 플레이어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가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는 것 같은데, 교단 퀘스트는 정말 자주 나온다. 하루에 몇십 개가 나오지.”
“오… 그런 거군.”
“그래! 그 퀘스트들 중에서 쓸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바로 경험과 연륜이라는 거다.”
교단의 퀘스트들은 정말 다양해서, <신전 앞 잡초 뽑기>, <골짜기 위 돌연변이들이 좋아하는 그림 찾아오기>, <악마들을 위한 보양식> 같은 잡다한 퀘스트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 교단을 모욕한 도적 두목 목 따오기> 같은 사냥 퀘스트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노련한 골짜기 플레이어들은 이런 퀘스트들을 구분할 줄 알았다.
“지금 시간대를 보면 펠마스가 퀘스트를 내주는 시간대인데. 별로 안 좋은 퀘스트들이 많지. 이런 퀘스트는 참가하지 않는 게 좋다.”
“근데 저기 사람들 달려가는데?”
“뭘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
-야! 김태현이 퀘스트 냈다!
-김태현이 직접 퀘스트 냈다고!!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빨리 달려! 늦으면 광장에 들어가지도 못해!
“…야.”
“아, 아니. 펠, 펠마스가 퀘스트 내주는 시간대인데….”
* * *
<드래곤의 입맛을 맞춰라-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교단을 부활시키고 성세로 이끄시는 우리 위대한 교황 김태현 성하께서 오늘 한 가지 명령을 내리셨다!
교황께서 데리고 다니는 드래곤들이 더욱 더 강하고 포악해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먹잇감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먹잇감을 바치는 이들에게 교단의 축복이 있으리라!
보상:?, ???, ????
“…아니. 잠깐.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태현은 당황했다.
광장의 한쪽 끝부터 다른 쪽 끝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었던 것이다.
길드 동맹의 일을 돕느라 오스턴 왕국 수도 광장에서 방송을 진행한 적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게 말이 되나?
한쪽은 대기업들이 온갖 투자를 해가며 홍보하고 준비해서 개최한 거고, 다른 하나는 그냥 퀘스트일 뿐인데….
그러나 눈앞에 있는 건 진짜 현실이었다.
-김태현 동원력 장난 아니다. 대체 몇 명이 모인 거야?
-그 퀘스트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아니. 아키서스 교단 소속 아니면 그렇게까지 좋은 퀘스트 아닐걸. 저기 모인 사람들 중 절반은 그냥 궁금해서 모인 거 같은데.
그 추측이 맞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 절반 넘는 사람들은 그냥 김태현이 직접 퀘스트한다는 소식에 신기해서 온 것이었으니까.
“무료 요리 배급합니다! 받아가세요!”
“무료 요리 나눠드립니다! 와서 먹으면서 들으세요!”
“어. 진짜 무료에요?”
“네! 고기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와! 감사합니다!”
“이거 근데 무슨 고기지?”
“돼지고기 같은 거 아닌가?”
“그런 것치고는 색이 좀 독특한데…?”
플레이어들은 의아해했지만 감사히 받았다.
원래 레벨 낮을 때는 이런 음식 하나하나가 귀한 법.
한 푼의 실버라도 아껴야 하는데 이런 무료 음식은 큰 힘이 됐다.
“와. 이 꼬치구이 맛있는데? 도시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는 거 같아. 고기도 큼지막하고 소스도 달짝지근하고….”
“여기 요리사들 생각보다 되게 잘하나 봐.”
파워 워리어 소속 요리사들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큭큭큭….’
사악하게 미소 지었지만 딱히 수상쩍은 계획을 꾸미는 건 아니었다.
단지 뿌듯해서 웃는 거였다.
태현과 함께 다니면서 요리 스킬을 배운 것도 있고, 그 외 다른 장소에서 꾸준히 요리를 하면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오른 것이다.
어찌나 기세가 좋았는지, 지금 파워 워리어 길드 내에서 이 요리사 그룹이 수익 1위를 노리고 있었다.
폭탄 전문 기계공학 대장장이 그룹과, 구걸 전문 거지 그룹, 퀘스트 정보 전문 탐험가 그룹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1위를 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다.
‘이번 분기에 1위 찍는다!’
‘길드의 최고가 되는 거야!’
‘괴수 고기도 많이 받았겠다, 아끼지 말고 팍팍 써!’
태현에게 막대한 고기를 지원 받은 파워 워리어 요리사들은 신이 나서 요리에 몰두했다.
하지만 팍팍 쓴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재료는 많이 쓰지 못했다.
몸에 밴 절약 습관 때문이었다.
“야! 그 김치찌개에 고기를 통째로 넣으면 어떡해! 비계만 넣어, 비계만! 고기는 잠깐 담갔다 빼는 거라고!”
“…팍팍 써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아, 아차. 그랬지. 미안하다.”
* * *
“대체 저놈은 전생에 뭘 했길래 저렇게 사람을 잘 모으는 거지? 피리 부는 사나이였나?”
“…….”
“…….”
길드 동맹 간부들은 침묵했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그들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저놈은 진짜 사람 잘 모은다!
저런 놈이 판온 1 때는 그냥 말없이 사람 썰고 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는 짓만 보면 한 몇십 년 동안 사람만 모으고 다녔던 것 같은데….
-여러분!
-와아아!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제가 드릴 퀘스트는….
-와아아아아아!
-아직 말도 안 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저거 바람잡이 심어놓은 거 아닙니까?”
“그럴듯하군. 우리도 많이 그러잖아.”
대형 길드들은 저런 식으로 연설하거나 퀘스트 할 때 영상 멋지게 찍기 위해서 바람잡이를 심어놓곤 했다.
“김태현은 저런 거 안 쓸 겁니다.”
“네가 뭘 알아 이 자식아!”
“새로 온 놈 주제에!”
‘늙은이들 진짜 더럽게 구박하네.’
새로 들어온 간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길드 동맹 간부 회의는 치열한 정치 싸움의 자리였다.
한 번 실수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실수하고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쑤닝에게만 허락된 권리였다.
“그래도 김태현 놈이 잘나가는 게 딱히 우리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
결과적으로 길드 동맹이 진행하고 있는 대회는 태현의 후광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봐야 했다.
태현이 심사위원 자리에 없었다면 이만큼 대박이 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잘된 건 좋은데 보통 짜증 나는 게 아니라고. 투자자 놈들이 얼마나 난리인지 아냐?”
“예? 어째서입니까?”
“김태현 좀 더 내보내라고… 웬 미친놈들은 김태현한테 자기네 기업 좋아한다고 립서비스 하게 만들라고 하더라. 미친놈들. 그게 되겠냐??”
김태현한테 PPL 강제로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쑤닝이 드래곤을 잡아 오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는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고대 제국 대학에서도 꽤 괜찮은 스킬들 갖고 나왔고요.”
“그건 그렇긴 하지.”
이번 고대 제국 대학은 상당히 기쁜 소득이었다.
길드 동맹 소속 랭커들이 각종 비전 스킬들을 배워 갖고 나온 것이다.
“스미스 그 새끼만 없었어도 훨씬 더 배웠을 텐데.”
“아주 진짜 미친놈입니다. 요즘 보면 김태현보다 더 얄미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 사실상 고대 제국 대학은 멈춘 상태 아닙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제국 대학이 내준 퀘스트 때문에 일시 정지한 상황.
몇몇 최상위권 랭커들은 이 퀘스트를 진지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건 길드 동맹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