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46화 (1,345/1,826)

§ 나는 될놈이다 1346화

태현은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제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충성스럽게만 지내다오!

광기 넘치는 괴기한 NPC들은 이미 골짜기에 충분했다.

태현은 평범하고, 능력 있고, 충성심 있는 NPC들을 원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너무 너그러우십니다. 흑흑.

-저희가 교황 성하를 뵐 낯짝이 차마….

“…….”

이 교단은 부끄러워해야 할 놈들은 안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놈들이 부끄러워해하고 있었다.

* * *

“다들 날 따라줘서 고맙군. 골짜기로 가게 되면 너희들의 충성심을 교단에 널리 퍼뜨려줬으면 좋겠다.”

-저희가 감히 그런….

“퍼뜨리라고!”

-예, 옛!

태현은 진심이었다.

제발 이 비전 암살자들 절반만이라도 좀 닮아봐라!

“그리고 가기 전에 괴수 둥지를 토벌하고 싶은데.”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였기에 괴수 둥지 토벌은 마저 끝내고 싶었다.

이 주변 지형에 능숙한 교단 비전 암살자들이 도와준다면 훨씬 쉬워지리라.

-하지만 교황 성하. 다른 이들이 먼저 싸운 다음에 나서는 게 낫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은 가장 마지막에 나서야 한다고….

“…정말 잘 배우긴 했는데 지금 이 근처에는 써먹을 놈들 별로 없으니까 우리끼리 잡자.”

애초에 태현은 이미 약탈자들을 많이 데리고 온 상태였다.

여기서 더 동원하려고 해도 마땅치 않은 것!

-혹시 그러면 데리고 오신 놈들 중에 아키서스 교단을 믿지 않는 자들을 앞장세워도 되겠습니까?

“그건 물론 상관없지.”

역시 이런 부분에서는 같은 교단 소속답게 뜻이 맞았다.

우리 교단 아니면 화살 받이!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마을 안으로 입장을 허가받았습니다.]

-축하한다! 너희 모험가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올 자격을 부여받았다!

“와아아!”

“고맙습니다! 마을 안에서 사람 죽이지 않고, 물건 훔치지 않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신나게 두들겨 맞던 약탈자들은 일단 시련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했다.

뭔가 좀 갑작스럽게 끝나긴 했지만 살아남은 것 자체가 시련의 통과 조건이겠지?

-그리고 더욱 기뻐해라! 너희들은 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로 전직할 자격을 부여받았다!

“!!!”

“진, 진짜입니까 그게?”

“전직만 시켜주신다면 아키서스 교단 따위는 얼마든지 믿겠습니다!”

약탈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웅 직업으로 전직만 가능하면 교단이 뭐냐!

아키서스 교단 가입해서 십일조를 내라고 해도 꼬박꼬박 낼 수 있었다.

“방금 아키서스 교단 따위라고 한 놈은 가장 앞에 세우도록.”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전 암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태현이 비전 암살자로 전직할 수 있다고 꼬드기라고 했을 때는 ‘아니 아키서스 교단에 기라성 같은 직업들이 많은데 비전 암살자를 전직하고 싶어할까요?’라고 반응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기본적으로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암살자 같은 직업을 매우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이 주변에 있는 괴수들을 처치하고 둥지를 토벌하고 와라! 그렇다면 비전 암살자로 전직하게 해주겠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잠깐. 괴수 처치면 아까 그런 괴수 아니야?”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 일단 전직 가능하다는 게 중요하지!”

“아니 중요하….”

“와아아아아!”

몇몇 정신줄 붙잡고 있는 약탈자는 퀘스트 난이도가 심상치 않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런 걸 의심하지 않았다.

일단 기뻐하고 보자!

지금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이성은 상당히 흐려진 상태였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이 지하 마을까지 온 상황에서, 목숨을 건 시련까지 받고 난 뒤였다.

비전 암살자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뭐든지 다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고생을 했는데 좋아야지!

-자. 이 장비들을 착용하라!

“장비까지!”

“감사합니다!”

약탈자들이 암살자용 갑옷을 착용하는 걸 보고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건 무슨 장비지?”

-대대로 내려오는, <아키서스 노예의 체벌용 갑옷>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입히는 갑옷이지요.

“…!”

갑옷 안에는 특수한 침이 들어가 있어서, 비전 암살자들이 지시를 내리면 그 침이 갑옷을 입은 사람을 찔렀다.

그러면 특수한 약물이 사람을 광전사처럼 만들었다.

“나도 제작법 좀 알려주겠나?”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아키서스 노예의 체벌용 갑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

[……]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겠다!

그런 흉흉한 갑옷인 것도 모르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신나서 갑옷을 챙겨 입었다.

이렇게 잘 챙겨주다니 왠지 예감이 좋은걸?

“다 준비됐다면 출발하자. 나도 같이 가겠다.”

태현의 말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크게 감동받았다.

김태현은 전직할 필요도 없는데 함께해 준다니!

아까 버리고 혼자 마을로 들어간 원한 같은 건 이미 녹아 사라진 뒤였다.

“정, 정말이냐 그게?”

“너희들을 데리고 온 게 누구냐? 책임을 져야지.”

“역시 김태현이다! 여기 있는 다른 쓰레기들하고는 근본부터가 다르다니까!”

“너 죽고 싶냐?”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아니 김태현 왜 저런 놈들한테 잘해줌??

-김태현 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폭탄 목걸이 채웁시다.

-그냥 아까 하던 것처럼 뒤에서 칼 휘두르면 안 됨??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하는 짓거리가 흥미진진해서 보는 거였지, 딱히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응원하는 건 아니었다.

<루돌프>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응원하고 싶은 놈들은 아닌데 이것저것 사고 치는 거 보는 건 재밌다!

…그런 놈들이 김태현 잘 만나서 버스 타는 것 같아 보이자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김태현 씨 루돌프 길드는 빼버리면 안 됩니까? 쟤네 불평 많이 하던데.

“야. 이거 우리 길드 방송이야!”

“우리 길드 방송에서 우리를 욕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

루돌프 길드원들이 씩씩거리는 동안 재칼은 무기를 점검했다.

오늘 하루 동안 정말 판온에서 놀랄 경험은 전부 다 모아서 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열심히 해야지.’

김태현 앞에서 케인하고 같은 길드 나왔다고 사칭한 걸 떠올리니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 이불을 뻥뻥 차더라도 지금은 지금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아. 근데 진짜 쪽팔리는데.’

태현은 재칼이 갑옷을 안 입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왜 갑옷 안 입지?”

“아. 평소에 안 입던 갑옷 입었다가 컨트롤 나빠질까 봐 안 입었는데… 입어야 하나…?”

재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말의 자존심이 있어서 존대는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벌써 정신적으로 허리가 반쯤 굽혀진 상태였다.

“합격!”

“????”

* * *

태현이 비전 암살자들을 찾아서 저 밑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고대 제국 대학에 들어와서 스킬 배우고 있던 랭커들은 단체로 나온 퀘스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을 처치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몇몇 랭커들은 아예 배짱을 부렸다.

“남들이 안 할 때 스킬 찾아야지. 멍청한 놈들.”

“이럴 때 도박을 할 줄 알아야 크게 되는 거다. 김태현이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를 모르네. 남들하고 다 똑같은 길을 갔으면 김태현이 이렇게 유명해졌겠냐?”

“맞는 말이야!”

남들이 퀘스트 깨고 오느라 시간 낭비하는 사이, 고대 제국 대학을 훑으며 꿀 같은 스킬들을 획득하겠다는 계획!

…계획은 좋았지만 고대 제국 대학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제국 원소의 정령>이 나타납니다!]

[<제국 원소의 정령>이 당신들을 공격합니다!]

“?!??”

“아, 아니! 왜 이래! 여기서는 전투 금지인데!!”

[<제국 수석 요리사>가 나타납니다!]

[분노로 정신을 잃어버린 <제국 수석 요리사>가 당신들을 짓밟아버리려고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오우거 요리사는 정령보다 훨씬 더 화나 있는 것 같았다.

랭커들은 허겁지겁 공격을 피하며 도망쳤다.

대학 안에서 교수 NPC들은 각종 보너스를 받아서 그런지 반격을 하더라도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대가 안 가져왔다고 이러는 겁니까?? 가져올게요! 가져오면 되잖아요!”

“공격 그만하라고!”

쾅! 쾅! 콰르르릉!

그러나 아무리 랭커들이 말한다 하더라도 통하지 않았다.

필사적인 술래잡기 끝에 전멸!

그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야. 퀘스트 안 깨고 남아 있다가 공격 받아서 죽었다는 게 진짜냐?

-이거 장난 아닌데….

-몬스터 없어서 방심했었는데 이거 교수 NPC들이 더 위험한 거 아니야?

고대 제국 대학에 발을 디딘 플레이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설마 여기서 죽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대 제국 대학 개같은 곳임!! 절대 가지 마라!!

-얘는 죽은 놈 중 한 명 같은데.

-랭커가 되어 가지고 그거 하나 못 피하고 죽은 게 말이 되냐? 쪽팔린 자식.

-아니! 진짜 장난 아니게 셌다고! 드래곤 수준이었다니까??

-드래곤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드래곤이 무슨 동네 똥개인 줄 아나.

-그보다 지금 퀘스트 고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별생각 없었는데 저거 보니까 머리 복잡해지네. 고대 제국 대학 다시 들어갔다가 뒤지는 거 아니야?

-퀘스트만 깨면 그만인데 뭐가 걱정?

-멍청하긴… 지금 저거 깨도 새 퀘스트 나올 텐데, 안 깼다고 조금도 안 기다리고 바로 죽인 거잖아. 무서워서 어떻게 들어가냐?

-난 들어간다. 비전 검술 스킬 아직 못 배웠어. 그 고생을 했는데 무조건 배워서 갖고 나올 거임.

-야. 나 대장장이인데, 스킬 가르쳐주는 골렘 찾았거든? 근데 제자를 안 받는대. 이거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

-나도 그 골렘 찾았는데 좀 이상해. 안 가르쳐주는 NPC도 있나 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고렙의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서라도 버티겠다!

그런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고대 제국 대학은 다음 퀘스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이 지배하고 있는 땅, <굶주린 혼돈의 미로>로 향하는 공간의 문이 열립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고대 제국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굶주린 혼돈의 미로>로 향하십시오!]

“…아니 미쳤나 이게!!”

“지금 저번에 내준 퀘스트 다 깬 지 얼마나 됐다고 어딜 가라는 거야!”

“저기 깰 수 있는 건 맞나??”

“여기 있는 인원이면 가능할지도….”

새로 열린 던전에 들어가서 깨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몇몇 겁 없는 플레이어들이 들어가서 안을 확인해 봤지만….

-으아아악! 으아아악! 끄아아아악!

-뭐 이런 미친 던전이 있냐! 후퇴! 후퇴! 전멸하겠다!!

들어간 파티가 전멸 직전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랭커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던전을 공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 *

“힘, 힘이…! 힘이 솟구친다! 체력도!! 이 갑옷의 힘인가 봐!”

“이런 갑옷을 공짜로 줬다고?!”

-진짜 말도 안 된다.

-아. 내가 저기 가 있으면 몇 배는 더 잘 했는데.

“…잠, 잠깐. 김태현. 왜 방어력이 내려가고 전투 멈추면 HP가 깎인다는 메시지창이 뜨지?”

“원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법도 있는 법. 가서 싸워라.”

“야! 야!!! 야 김태현 이 자식아!”

“김태현 님. 저 건방진 놈을 희생시켜서 저번처럼 전체 버프를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눈치 빠른 약탈자 한 명이 재빨리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약탈자들은 그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거 참 좋은 방법 같은데?

“…이 갑옷 너무 좋아서 고맙다고…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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